'섬머타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7.01 [호주] 그레이트 오션 워크 ③ (4)
  2. 2015.12.10 산티아고 순례길 18일차(아스토르가~폰세바돈) (2)



그레이트 오션 워크는 해안을 따라 걷기 때문에 해발 300m 이상을 오르지는 않지만 오르내림은 제법 심한 편이다. 모래사장이나 벼랑 끝도 걷고 울창한 숲을 지나기도 한다. 한 마디로 호주 남동부의 다양한 지형을 지난다. 해변을 걸으며 눈과 귀로 파도를 느끼는 순간도 즐거웠지만, 벼랑 꼭대기에 올라 일망무제의 남대양(Southern Ocean)을 바라보는 것도 아주 좋았다. 이 길은 백패킹 트레일인 만큼 며칠 분의 식량과 야영장비, 취사구를 들고 가야 한다. 경량의 장비를 고르고 최대한 가볍게 배낭을 꾸리는 기술이 필요하다. 무거운 배낭이나 야영이 힘겨우면 가이드 트레킹을 이용해도 좋다. 픽업이나 짐 운반을 도와주고 캠핑장에 미리 텐트를 쳐놓거나 식사를 준비하는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있다.

 

에어 리버에서 조한나 비치로 가는 셋째 날은 내륙을 좀 걷다가 곧 바다가 보이는 벼랑 위를 걸었다. 며칠간 남대양을 내려다 보았더니 바다 풍경은 솔직히 고만고만했다. 캐슬 코브(Castle Cove)로 내려서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만났다. 다시 벼랑으로 올라 등산화를 소독하는 스테이션을 지났다. 여긴 병원체에 의해 오염된 지역이라 보드워크를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등산화를 소독해야 했다. 뱀을 조심하라는 경고판도 보았지만 뱀은 만나지 못 했다. 길은 조한나 비치로 내려섰다. 2km에 이르는 모래사장을 걸어야 했다. 조한나 리버도 건넜다. 등산화를 벗고 강을 건널 생각이었는데 강폭이 점점 좁아지더니 끝내는 모래 속으로 물줄기가 스며들고 말았다. 폭우가 내리면 강폭이 20m로 불어난다는 강의 위엄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조한나 비치에선 GOW 캠핑장을 구하지 못 해 드라이브인 캠핑장에 묵어야 했다. 하루 운행한 거리는 14km로 가장 짧았다. 4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덕분에 점심도 캠핑장에 도착해 준비할 수 있었고, 오후엔 잠시 낮잠도 잤다. 캠핑장에 사람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휴대폰에 표시되는 시각이 이상해 텐트를 치고 있던 가족에게 시각을 물으니 내 시계완 한 시간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닌가. 어제 새벽에 섬머타임이 해제되면서 한 시간이 늦춰졌다고 한다. 예상치 못 한 시간까지 벌었으니 오후 시간은 진짜 여유만만이었다. 해질 무렵에 카메라를 들고 해변으로 나갔다. 12사도 바위가 있는 쪽에서 일몰이 펼쳐졌다. 그레이트 오션 워크를 걷는 동안에 만난 일몰 가운데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파도가 거센 남대양을 바라보며 조한나 비치로 향했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공존하는 청명한 하루였다.


옆 캠프사이트를 썼던 세 부자의 발걸음이 빠르다. 조한나 비치에서 3일간의 백패킹을 끝낸다고 했다.


내륙을 달리던 그레이트 오션 로드가 캐슬 코브에서 그레이트 오션 워크를 만난다.


그라스 트리(Grass Tree)가 무성한 벼랑길을 걸었다.


뱀을 조심하라는 경고판을 처음 접했다.


병원체로 오염된 지역이라 보드워크를 들어설 때와 나올 때 등산화를 소독해야 했다.


구간마다 보드워크을 설치해 식생을 보호하고 있었다.


산길에서 만난 커먼 히스(Common Heath). 빅토리아 주의 주화다.


토끼꼬리풀(Hare’s-tail)이라 불리는 라구루스 오바투스(Lagurus Ovatus)


조한나 비치로 내려서 조한나 리버를 만났다.



조한나 비치는 호주에서 꽤나 유명한 해변으로 2km에 이르는 모래사장을 걸어야 했다.


조한나 비치를 벗어나 조한나 비치 전망대에 올랐다.





여유롭게 해변을 거닐며 바다 풍경을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조한나 비치에서 맞은 석양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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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다 2017.07.21 05: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들어올 수 있는 이 공간이 좋습니다. 긴 여정을 한 번에 훓고 가 보는 것도 내심 절약이라는 얄팍한 판단이 들기도 합니다.

    • 보리올 2017.07.22 15: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닉네임을 보니 바다를 좋아하시는 분 같습니다. 누군가 이 블로그를 찾아와주시는 것만 해도 저로선 영광이죠.

  2. justin 2017.10.19 2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뉴질랜드와 같은 섬나라라서 그런지 소독을 열심히 하네요~! 자연을 위해서 세심한 것까지 신경쓰는 것이 보기 좋습니다!

    • 보리올 2017.10.22 1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국의 식생이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법령을 갖추고 규제를 두는 것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 하지만 뉴질랜드와 호주는 국가가 직접 나서서 실천하는 것을 보니 꽤나 인상적이더구나.

 

오늘 새벽을 기해 섬머타임이 해제되어 새벽 3시가 2시로 바뀌었다. 아침이 한 시간 일찍 찾아온 것이다. 수프를 끓이고 거기에 과일과 요구르트를 더해 아침을 때웠다. 밤새 비가 많이 내린 것 같았다. 알베르게를 나설 때는 비가 그쳤지만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기세였다. 아스토르가를 빠져나오며 현대식으로 지은 산 페드로 성당을 지났다. 여기도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날씨도 스산하고 풍경도 단조로워 카메라를 꺼낼 일이 거의 없었다. 그 덕분에 걷는 속도는 제법 빨랐다. 마을 몇 개를 예상보다 빨리 통과한 것이다. 엘 간소((El Ganso)의 성당 입구에 젖지 않은 벤치가 있어 거기 앉아 과일로 간식을 했다. 어제 알베르게에 함께 묵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내 앞을 지나쳐 먼저 가버렸다.

 

길을 걷다가 이두열 선생을 다시 만나 함께 걸었다. 연배도 나보다 위였고 대기업과 신문사, 중소기업 등에서 근무한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요즘 이 순례길에 왜 그리 열광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화제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 새 라바날 델 카미노(Rabanal del Camino)에 도착했다. 이두열 선생은 다른 일행이 있어 여기서 쉬고 가겠다 해서 다시 혼자 걷게 되었다. 라바날은 인구 50명이 사는 조그만 마을이지만 알베르게는 네 개나 될 정도로 순례자들이 많이 묵고 가는 마을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높은 지점으로 오르기 전에 여기서 나름대로 각오를 다진다고나 할까.

 

라바날은 마라가테리아(Maragateria)에 속하는 고장이다. 마라가테리아란 마라가토라 불리는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말하는데, 레온 주의 남서쪽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다. 그들이 짓고 살던 특유의 돌집을 마라가토 스타일이라 하기에 관심을 가지고 봤지만 그리 대단하진 않았다. 그들의 가옥을 보면서 여긴 돌이 흔한 모양이로군, 돌로 튼튼하게도 집을 지었네 하는 생각만 잠시 스쳤다. 난 라바날에 머무르기보다는 가능하면 정상 가까이로 올라갔으면 했다. 라바날을 벗어나는 지점에 샘이 있어 거기서 홀로 점심을 먹었다. 어제 수퍼마켓에서 산 멕시칸 토르티야에 땅콩버터를 발라 먹었다. 산 속으로 캠핑을 갈 때 식량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자주 써먹던 방식인데 어제 수퍼마켓에서 멕시칸 토르티야를 처음 발견해 구입을 했었다. 거기에 사과와 삶은 계란을 추가하니 점심으로 충분했다.

 

라바날부터는 계속 오르막이 이어졌다. 생장 피드포르에서 출발하는 카미노 프란세스, 즉 프랑스 길엔 큰 산 세 개가 있다고 보면 되는데, 피레네 산맥은 이미 초반에 넘었고 이번이 두 번째 산을 오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산을 넘는 것에 걱정이 많지만 난 전혀 신경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라바날이 해발 1,150m고 폰세바돈(Foncebadon)1,400m, 철제 십자가가 있는 최고점은 1,500m로 그리 높지가 않다. 오르막 경사도 심하지 않은 편이다. 해발 고도는 좀 있지만 험산은 아니란 이야기다. 잔돌이 많은 노면 상태와 비 내리는 날씨, 쌀쌀한 기온이 복병이라면 복병일 것이다. 늘 비슷한 날씨겠지만 오늘도 운무가 자욱해 시야를 가렸고,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오늘의 목적지로 삼은 폰세바돈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와 가게, 식당만 있을 뿐, 사람 사는 집은 폐허가 된 채로 흉물스럽게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거기에 안개까지 자욱하니 스산한 느낌마저 들었다. 유령 마을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순례자들이 늘어나면서 마을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들었다. 새로 신축하고 있는 건물도 분명 알베르게일 것이다.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1987년에 쓴 <순례자>라는 작품 속에 이 마을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개와 싸웠다고 하는데 난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진 못했다. 다섯 개나 되는 알베르게 중에 하나를 골라 들어갔더니 이두열 선생과 이영호 선생이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제 아스토르가 알베르게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던 독일 젊은이 셋도 이 알베르게로 들어왔다.

 

저녁은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순례자 메뉴로 하기로 했다. 배에선 쪼로록 소리가나는데 저녁은 7시에나 준단다. 낮잠을 한숨 잤다. 그래도 5시가 되질 않았다. 구름이 많고 날씨가 쌀쌀했지만 밖으로 나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차가운 공기 때문인지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저녁으로 파에야가 나왔다. 지름이 1m나 되는 쟁반에 파에야를 요리해 모두 17명이 나눠 먹었다. 샐러드와 함께 먹으니 궁합이 아주 잘 맞았다. 와인을 곁들여 배불리 먹었다. 우리 테이블에선 한국인 셋과 독일 젊은이 셋이 함께 식사를 했다. 독일에서 5년을 살았던 기억 때문인지 독일에서 왔다니 더 정감이 갔다. 헨드릭스라는 청년과 슈테피, 그리고 다른 아가씨는 뭐라 이름을 알려줬는데 너무 길어서 기억할 수가 없었다.

 

 

 

첫 마을인 발데비에하스(Valdeviejas)에 도착하니 에세 오모(Ecce Homo) 성당이 길가에 자리잡고 있어

유리창을 통해 성당 안을 구경했다. 신앙은 건강의 샘’이란 한글 문구도 보였다.

 

 

순례길 옆으로 숲이 나타났다. 인공 조림한 숲도 있었고 자연적으로 조성된 숲도 있었다.

그나마 숲에서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길 위에 선 순례자들에겐 한걸음 한걸음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산타 카탈리나(Santa Catalina)엔 돌로 지은 성당과 집들이 있었다. 파란색 칠을 한 대문이나 창문도 눈에 띄었다.

 

 

허물어진 돌집이 유난히 많았던 엘 간소. 산티아고 성당도 문이 닫혀 있었다.

 

라바날 초입에 자리잡은 벤디토 크리스토(Bendito Cristo) 성당

 

 

이 지역 특유의 마라가토 스타일을 보여주는 라바날의 가옥들

 

 

라바날의 아순시온(Asuncion) 성당은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을 지니고 있었다.

 

라바날에 있는 또 하나의 성당을 지났는데 이름도 모른 채 그냥 지나쳤다.

 

운무가 자욱한 길을 걸어 폰세바돈으로 오르고 있다.

 

 

 

무너져내린 폐가가 많아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폰세바돈 마을

 

 

폰세바돈의 가게에 들렀더니 가격표에 한글로 상품명을 적어 놓은 것이 보였다. 한국인이 많다는 반증이리라.

 

 

 

 

알베르게에서 순례자 메뉴로 내놓은 파에야가 커다란 쟁반에 담겨 나왔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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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17 16: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먼 기억이지만 정말 저도 독일 사람들을 만나면 방갑더라구요. 아버지께서도 독일어를 아직 많이 기억하고 계세요?

    • 보리올 2016.02.17 1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일에서 살았던 기억 때문에 독일 사람들이 더 반가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 그들도 내가 독일에서 산 적이 있다면 반가워 하더구나. 그래서 대화를 이어가기가 쉬워지지. 내 독일어는 서바이벌 수준이라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