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도시란 의미를 가진 앙코르 톰(Angkor Thom)은 가로 3km, 세로 3km의 정방형도시로 크메르 왕국의 마지막 수도였다. 12세기에 이미 인구 70만 명을 가진 도시였다면 아마도 그 당시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에 속했을 것이다. 도시는 수로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외부와는 다섯 개의 문으로만 연결되어 있다. 앙코르 와트에 비해선 면적도 훨씬 넓었고 볼거리도 더 많았다. 앙코르 톰의 중심은 단연 바이욘(Bayon) 사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욘을 먼저 둘러보고 바푸온(Baphuon) 사원을 지나 코끼리 테라스까지 걷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지만 난 그 반대로 돌았다. 지난 번에 그렇게 돌았기 때문이었다. 코끼리 테라스는 왕이 군대를 사열하거나 전쟁에 나가는 출정식이 열렸던 장소였다. 코끼리 머리 석상뿐만 아니라 벽면은 갖가지 조각들로 가득했다. 바푸온 사원은 지난 번에 너무 힘들게 오르내렸던 곳이라 다시 가지는 않았다.

 

앙코르 톰 중앙에 위치한 바이욘 사원으로 갔다. 이 사원은 앙코르 유적 가운데에선 상당히 큰 불교사원에 속한다. 자야바르만 7(Jayavarman VII) 통치하던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걸쳐 지어졌다고 한다. 앙코르 와트보다는 100여 년 뒤에 세워진 셈이다. 바이욘의 백미는 아무래도 크메르의 미소라 부르는 사면상이 아닐까 싶다. 20만 개가 넘는 돌을 쌓아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을 수없이 조각해 놓았는데, 돌 하나를 깍은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돌을 깍아 서로 각을 맞췄으니 그 수고가 말도 아니었을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자야바르만 7세가 사후에도 크메르 왕국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사면상이 조각된 탑들이 늘어선 3층에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각각 네 개의 미소상을 가진 54개의 석탑이 중앙성소를 바라보도록 세워졌다고 하는데 현재는 36개 석탑에 150개의 크메르 미소만 남아 있다.

 

앙코르 톰으로 들어서기 위해 다리를 건너 동문을 통과했다. 문 위에는 크메르의 미소라 불리는 사면상이 조각되어 있다.

 

손님을 싣고오는 툭툭이로 앙코르 톰은 분주했다. 대형버스는 들어올 수가 없어 아무래도 툭툭이가 대세를 이뤘다.

 

 

 

왕이 군대를 사열하거나 전쟁 출정식을 거행했다는 코끼리 테라스

 

중앙성소를 중심으로 세워진 탑들이 하늘로 솟아있는 바이욘 사원의 전경

 

 

바이욘 사원으로 드는 초입은 다른 유적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바이욘 사원의 진가는 누가 뭐래도 탑에 조각된 사면상의 은근한 미소에 있다고 본다.

 

바이욘 사원 중앙에 모셔져 있는 불상. 안으로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했다.

 

타프롬과 마찬가지로 바이욘 사원도 폐허가 되긴 했지만 나무 뿌리에 의한 공격은 받지 않았다.

 

 

 

바이욘 사원 밖으로 나오니 사방이 트인 건물 안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다.

스님도 있었고 불공 준비로 바쁜 보살도 여럿 보였다.

 

앙코르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비석이 바이욘 사원 밖에 세워져 있었다.

 

남쪽에 있는 좁은 문을 억지로 통과해 들어오려던 이 트럭 때문에 교통 체증이 생겼다.

 

남문 밖에 있는 다리 위엔 돌로 조각된 신상들이 늘어서 있었다. 새로 만들어 붙인 신상의 머리가 영 어색하기만 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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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6.15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메르의 미소가 묘한 매력이 있네요. 옛날 캄보디아 왕들은 웃는 상이였나봅니다.

    • 보리올 2016.06.16 0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실제로 미소짓는 상을 조각하려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얼굴 크기에 비해 입을 크게 하고 양쪽 입끝을 위로 치켜올려 웃는 얼굴을 만든 듯 하더구나.

 

리스본에서 신트라(Sintra)로 가기 위해 호시오(Rossio) 역에서 기차를 탔다.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타일로 예쁘게 외관을 꾸민 신트라 역사 앞에서 434번 시내버스를 바로 탈 수 있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로 순식간에 버스는 만원이 되었다. 산으로 오르는 숲길을 지그재그로 달려 무어 성에서 내렸다. 무어 성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8세기에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들이 요새로 지어 사용을 하다가 1147년 아폰수 1세가 리스본을 해방시킬 무렵에 성을 포기하고 퇴각한 이후론 폐허로 버려졌다가 19세기에 복구되었다. 1995년에 신트라 지역에 있는 문화재를 묶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는데 이 무어 성도 그 안에 포함되었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었다.

 

오솔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성터에서 발굴된 유적을 보관하는 전시실을 만들어 놓아 들어가 보았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났고 거기서 입장권을 검사했다. 오른쪽으로 돌아 성벽으로 올랐다. 원통형 모양의 중심부(castle keep)부터 올랐다. 무어 성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했던 성과는 많이 달랐다. 성이라기 보다는 군사 요새란 느낌이 강했다. 성 안에 있었다는 시설도 모두 사라지고 성벽만 남아 있었다.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성벽 위로 난 좁은 길은 오르내림이 심해 마치 산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해발 412m의 높이에 세워진 성이라 파노라마 조망은 훌륭했다. 아래로 신트라가 내려다 보였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성과 궁전도 보였다. 신트라의 명소인 페냐(Pena) 궁전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그 너머로 대서양도 눈에 들어왔다.

 

신트라는 리스본에서 당일로 다녀오기 좋은 위치에 있다. 호시오 역에서 신트라 행 기차에 올랐다.

 

신트라 역사 건물 앞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무어 성으로 향했다.

 

 

 

페냐 궁전에 이르기 전에 무어 성이 먼저 나타나 매표소 앞에서 버스를 내렸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전시실이 하나 있었다. 무어 성의 모형을 비치해 놓았고 여기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무어 성은 성벽만 남은 요새라 성곽을 따라 걷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신트라란 지명을 아랍어로 적어 깃발을 만들어 놓았다.

 

성 밖으로 통하는 조그만 문이 하나 있는데, 이 문을 통해 적군이 들어왔다고 해서 배신의 문이라 불린다.

 

성벽에 오르면 신트라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하얀 굴뚝을 가진 건물이 신트라 궁전(Palacio Nacional de Sintra)이다.

 

  

그리 멀지 않은 언덕 위에 세워진 페냐 궁전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성곽을 한 바퀴 돌아 로얄 타워를 끝으로 아래로 내려왔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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