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6.02.23 [포르투갈] 신트라 – 페냐 궁전(Palacio Nacional de Pena) (2)
  2. 2015.04.21 중국 산둥성 취푸, 공묘 (2)
  3. 2014.12.15 여주 영릉(英陵) & 영릉(寧陵) (2)
  4. 2013.04.13 [네팔] 박타푸르 (2)

 

무어 성을 나와 5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페냐 궁전으로 갔다. 1995년 유네스코가 신트라 지역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데 있어서 일등공신은 분명 페냐 궁전이었을 것이다. 처음엔 수도사들을 위한 수도원으로 지었지만 19세기에 페르난두 2(Fernando II)가 개축을 해서 왕의 여름별장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입구에서 궁전까지 몇 백 미터 오르막을 버스를 타고 갈 수가 있는데 이것도 3유로인가 돈을 받았다. 그 까닭에 걸어 오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나도 힘들이지 않고 걸어 올랐다. 멀리서 보아도 숲으로 우거진 언덕 위에 우뚝 솟은 페냐 궁전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 궁전은 독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꼽힌다고 한다. 실제로도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본따 지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둘이 서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냐 궁전은 한 마디로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그런 궁전이었다. 마치 파스텔로 칠한 듯 화려한 색상을 지닌 궁전이 떡하니 눈 앞에 나타났다. 알록달록한 색상에 장난감 모형 같은 외관을 보니 좀 유치해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 화려한 모습에 절로 감탄사가 튀어 나왔다. 노랑색과 주황색을 많이 썼고 파란색과 보라색도 일부 사용하고 있었다. 건물 구조도 무척이나 오밀조밀했다. 정문이 있는 중앙부 벽면엔 타일을 많이 사용하기도 했다. 먼저 밖을 살펴보고 안으로 들기로 했다. 건물 밖으로 만든 회랑을 따라 성을 한 바퀴 돌았다. 여기선 월 워크(Wall Walk)라 부르는데 이렇게 바깥을 조망할 수 있는 산책로를 만들어 놓은 것이 내겐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바로 아래론 무어 성이 내려다 보였고, 저 멀리 대서양도 시야에 들어왔다.

 

외관을 먼저 돌아보곤 실내 구경에 나섰다.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앞사람 뒤퉁수를 보며 한 발씩 앞으로 나가는 방식이라 자세히 둘러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여름별장이라도 왕이 살았던 궁전이라서 내부 장식은 화려한 편이었다. 벽면을 그림과 타일로 치장한 장식도 아름다웠고 왕실에서 쓰던 각종 집기, 비품에서도 격조를 느낄 수 있었다. 방과 방으로 연결된 루트를 따라 수많은 방을 지나고 작아서 오히려 경건함을 느낄 수 있었던 예배당도 둘러보았다. 왕과 왕비의 침실도 지나쳤다. 각종 생활용품과 부엌을 마지막으로 다시 밖으로 나섰다. 시간이 넉넉했더라면 궁전 밖 공원 곳곳에 산재한 명소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지만 그러지 못해 좀 아쉬웠다.

 

 

 

페냐 궁전으로 올라가면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궁전을 올려다 보았다.

 

 

 

 

신트라를 대표하는 명소라 궁전 입구는 늘 관광객들로 붐볐다.

 

 

건물 중앙부의 외벽은 푸른 타일을 많이 써서 나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

 

 

 

테라스를 따라 궁전 외벽을 한 바퀴 돌 수가 있었다. 월 워크라 불리는 이 산책로가 퍽 인상적이었다.

 

 

 

궁전 뒤로 돌아가면 멀리 대서양을 볼 수 있다.

 

 

 

 

 

 

 

 

 

 

궁전 내부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왕과 왕비의 침실, 예배당, 집기, 부엌 등을 차례로 구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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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채영 2016.02.24 1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곳 여행기를 볼때마다 느끼지만 여긴 정말 동화 속 건물 같아요! 저도 언젠간 가볼 수 있길..:)

 

취푸(曲阜)는 인구 65만 명을 가진 조그만 도시지만 도시 전체가 공자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때는 노나라의 수도였고 중국 고대사에 나타나는 황제(黃帝)가 태어난 곳도 여기라 하지만, 여기를 방문하는 사람은 예외없이 공자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취푸에는 소위 삼공(三孔)이라 불리는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이 모여 있는데, 이 삼공 또한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았다. 삼공 모두를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은 한 사람에 150위안을 받았다. 3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다시 한번 중국의 비싼 문화재 입장료에 놀랬다. 15,000자로 이루어진 논어를 모두 외우면 공짜 입장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은근히 사람 열받게 한다.

 

공묘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성인의 반열에 오른 공자에 대해 황제들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던 곳이 바로 공묘였다. 한나라 시대부터 황제가 제사를 지냈다니 2천 년이 넘는 세월을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진 것이다. 만인궁장(萬仞宮墻)이라 적힌 둥근 성벽 아래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이 연이어 나타났다. 공묘의 압권은 아무래도 대성전(大成殿)이었다. 현재의 건물은 1724년 옹정제가 재건했다고 하는데, 처마에는 청나라 황제들이 쓴 푸른 편액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이 대성전은 베이징의 태화전, 타이안 다이먀오(岱廟)의 천황전과 더불어 중국 3대 고건축으로 불린다고 한다. 공묘 구경을 마치고 공부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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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5.04.21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처음에 공묘가 공자의 묘인줄 알았습니다. 공자 선생님은 유교 사상이 이 세상 많은 나라에 퍼진걸 아실까 궁금합니다.

 

여주엔 영릉이 두 개나 있다. 물론 한자로는 다르게 쓴다. 위치로는 바로 붙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진 영릉(英陵)은 조선조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무덤이고, 그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영릉(寧陵)은 조선조 17대 임금 효종대왕의 무덤이다. 사실 세종대왕의 영릉은 한두 번 다녀갔지만 효종대왕의 영릉은 그 옆에 있는지도 몰랐다. 두 분 다 조선조 임금이었는데 업적이나 유명세에 따라 우리가 차별을 하는 것 같아 속이 편치는 않았다. 여주를 지나는 길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세종대왕이나 만나고 가자고 영릉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말을 맞아 가족 단위로 소풍을 나온 사람들과 뒤섞여 예상치 못한 효종의 능까지 돌아 보았다.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아 관리가 예전보다 훨씬 철저해진 것 같았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세종대왕상이 세워져 있다. 역사적으로 워낙 유명한 인물이고 지폐에서 자주 접했던 왕이라 내심 친근함이 느껴졌다. 왼쪽으론 유물전시관인 세종관이 자리잡고 있고, 건물 밖에는 해시계와 자격루, 측우기, 혼천의, 간의 등 세종대의 과학기구를 전시해 놓고 있었다. 홍살문과 정자각, 비각을 둘러보고 영릉 앞에 섰다. 문인석과 무인석이 내 눈길을 끈 것 외에는 별다른 감흥은 일지 않았다.

 

효종대왕의 영릉은 70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 조그만 능선을 하나 넘어가야 했다. 효종의 무덤은 위에 있었고 그 아래 좀 떨어져 인선왕후의 무덤을 따로 썼다. 세종은 소헌왕후와 합장을 했다고 하는데, 효종은 왜 부인과 따로 쌍릉을 썼는지 모르겠다. 왕릉의 규모도 세종의 영릉에 비해 좀 작지 않나 싶었다. 세종의 영릉에 비해 사람들도 적었다. 효종대왕은 지하에서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난 한산해서 더 좋았다. 여유롭게 영릉을 둘러 보았다. 바쁠 것 없이 천천히 걸어 두 개의 영릉을 돌았더니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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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승수 2014.12.15 1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까지 왕능은 경주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역사 공부 시켜 주셔 감사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전주에도 조경단이라고 이조시대 왕능과
    이성계 장군의 흔적이 있는 오목대가 있다는 것을 귀 흘려 지나가듯 했네요..
    전주 이씨들인데~~~

    개방 시기가 5월에서 10월 말인데 언제 다녀 오셨는지요?
    일본 여행에
    순천에서 한 바퀴하시랴...또 여주 까지..
    밴쿠버, 밴프등에 비하면 한나절 거리인데..한 번도 다녀오지 않았으니..흑흑흑..

    • 보리올 2014.12.15 15: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무래도 한양 주변에 왕릉이 많지 않겠습니까. 서오릉, 서삼릉, 동구릉, 태릉, 선릉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지명이 많지요. 전 오늘 캐나다로 왔습니다. 2~3주 지내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카트만두에서 가진 하루 휴식일에 일행들과 함께 박타푸르(Bhaktapur)를 다녀 오기로 했다. 어떤 사람이 박타푸르를 보지 않고는 네팔을 보았다 이야기하지 말라고 극찬한 곳이다. 박타푸르는 카트만두 동남쪽에 있는 네팔 고대 왕국 중 하나다. 카트만두 밸리에 15세기부터 카트만두와 박타푸르, 파탄이란 세 개의 고대 왕국이 있었는데, 박타푸르는 18세기 말 카트만두 일대를 통일한 고르카 왕국에 정복을 당한 이후 쇠퇴를 거듭했다고 한다.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난 네와르 족들이 건설한 도시가 바로 박타푸르다. 도시 자체가 오래된 건축물과 조각품, 종교 사원, 석상들로 구성되어 있어 하나의 커다란 박물관 같았다. 붉은 벽돌을 많이 사용해 더 고풍스런 느낌이었다. 박타푸르가 자랑하는 건축물들은 대개 세 개 광장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는데, 서로 비슷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다른 것이 우리 눈을 헤깔리게 한다. 어느 건물이나 네와르 족의 뛰어난 손재주를 감상할 수 있었다.

 

입구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덜발 광장(Durbar Square)과 왕궁이 나타난다. 아름다운 자태와 고풍스러움을 한 눈에 느낄 수 있다. 타우마디 광장(Taumadhi Square)의 냐타폴라(Nyatapola) 사원은 단연 압권이었다. 5층의 벽돌 기단 위에 5층 목조탑을 세웠는데 그 계단을 오르면 광장 주변을 한 눈에 볼 수가 있다. 그 광장 건너편 3층 목조 건물에 냐타폴라 카페가 있는데 전망이 좋아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우리도 거기서 점심을 해결했다.

 

박타푸르의 또 다른 매력이라 하면 과거의 역사 유적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이 한 울타리 안에 공존한다고나 할까. 죽어있는 문화재가 아니라 살아있는 문화재라서 더욱 반가웠다. 광장을 조금만 벗어나면 골목마다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공예품, 옷감, 악기 들을 파는 가게도 있고 길거리 식당도 많다. 마침 무슨 종교 행사가 있는지 사람들이 음식을 받쳐들고 줄지어 사원으로 향하는 모습도 볼 수가 있었다.

 

원래 박타푸르는 이보다 훨씬 컸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1934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많은 건물이 파괴되어 예전에 비해 규모가 줄었다고 한다. 유네스코에서도 이 도시의 아름다움과 예술적 가치를 인정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을 하였다.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 <리틀 부다>의 촬영지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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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는 객 2013.09.14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후기가 감칠맛은 안나지만... ㅋㅋㅋ

    그 배짱(?)의 덕을 봤네요.

  2. 보리올 2013.09.16 0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쓴 여행 후기보다 님이 쓴 댓글이 더 감칠맛이 나지요? ㅎㅎㅎ 앞으론 글 쓸 때 MSG 팍팍 넣어야 할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