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묵었던 캐슬린 호수에서 공원 북쪽에 위치한 타찰 달(Tachal Dhal) 방문자 센터까진 100km가 넘는 거리였다. 게다가 쉽 마운틴(Sheep Mountain) 동쪽 사면에 있는 솔저스 서미트(Soldier’s Summit)를 먼저 둘러보고 났더니 산행 출발이 꽤 늦어졌다. 불리온 플래토(Bullion Plateau)를 갈까, 아니면 쉽 크릭을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늦은 출발을 감안해 짧은 코스를 택했다. 이 쉽 크릭 트레일은 산행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왕복 10km 거리에 해발 1,281m까지 오른다. 등반고도는 427m. 여유롭게 걸었음에도 산행에 3시간 15분이 소요되었다.

 

타찰 달 방문자 센터에서 트레일헤드까지는 차로 좀 더 들어가야 했다. 주차장에서 차단기가 설치된 게이트를 지나 5분 정도 걸어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쉽 크릭은 오른쪽으로 꺽어야 한다. 갈림길엔 20년 전에 그리즐리에게 죽은 어떤 젊은 여성의 추모 동판이 세워져 있었다. 방향을 꺽어 트레일로 들어서는데 발 아래 누군가가 종이 한장을 돌로 눌러 놓았다. 이 트레일에서 어제 그리즐리 곰을 보았으니 조심하라는 경고 메세지였다. 이 쪽지를 읽은 일행들 모두 바짝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네 명이 뭉쳐 다니면 곰도 어쩌지 못할 것이니 일단 올라가 보자고 이야기하곤 내가 선두로 나섰다.

 

쉽 마운틴의 서쪽 사면을 에둘러 쉽 크릭을 따라 올라가는 산길이 죽 이어졌다. 초반에는 제법 가파른 경사면을 치고 올라야 했다. 2km쯤 올랐을까. 전망이 확 트이며 슬림스 강(Slims River)과 그 주변 산세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고도를 높일수록 산세는 더욱 깊어지고 풍경은 점점 그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넓게 자리잡고 있었고, 산 아래 계곡엔 수량이 제법 많은 슬림스 강이 구비구비 흐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파노라마 풍경에 절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저 계곡 끝에는 카스카월시 빙하(Kaskawulsh Glacier)가 있다고 해서 목을 빼고 찾아 보았지만 그 존재를 식별할 수는 없었다. 카스카월시 빙하는 클루어니 국립공원을 대표하는 아이콘 중의 하나였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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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4.03.05 0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전세낸데다 스릴까지 ~~
    여럿이서 그리즐리 곰을 만난다면 곰이 무서워서 피하나요??
    32살 아까운 나이에 자연으로 돌아갔네요...젊은 나이에 세상을 달리한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요...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을텐데~~

    • 보리올 2014.03.05 09: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흔히 그리즐리나 흑곰은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면 먼저 자리를 피합니다. 하지만 사람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는 경우는 나름대로 승산이란 것을 따집니다. 사람이 네 명 이상 모여 있으면 스스로 승산이 적다고 보기 때문에 사람이 좀 더 안전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입니다. 그래도 캐나다에선 일 년에 한두 명씩은 이렇게 곰에게 생명을 잃습니다.

 

첫날 밤은 캐슬린 호수 쉘터에서 아주 따뜻하게 보냈다. 장작을 때는 난로가 있어 실내가 훈훈했다. 침낭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정도였다. 호숫가 모래사장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현지 젊은이들이 자정쯤 잠을 자러 쉘터로 들어왔다. 둘째날 저녁에는 어느 신혼부부가 결혼 파티를 연다고 쉘터를 점거해 버렸다. 졸지에 숙소를 뺏겨 버린 것이다. 부득이 호숫가 모래사장에 텐트를 쳤다. 밤새 빗방울이 돋고 바람이 세게 분다 싶었는데 새벽에는 엄청난 돌풍이 불어왔다. 네 명이 누워있는 텐트가 바람에 날라갈 판이었다. 덩치 큰 내가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등을 대고 팔다리를 벌려 버티길 40여 분. 강력한 펀치를 날리듯 쾅쾅 등을 때리던 바람이 순간적으로 잦아 들었다. 급히 텐트를 걷고는 침낭을 들고 쉘터로 피신을 했다. 쉘터는 비어 있었다. 잠은 모두 달아나 버렸다. 깜깜한 밤에 냄비만 칙칙 소리를 내며 수증기를 내뿜는다. 이른 새벽부터 커피를 마셨다.     

 

이번에는 헤인즈 정션을 지나 클루어니 국립공원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다시 알래스카 하이웨이를 탄 것이다. 유콘에서 가장 큰 호수라는 클루어니 호수(Kluane Lake)와 솔저스 서미트(Soldier’s Summit)가 우리가 가는 목적지다. 거기엔 타찰 달(Tachal Dahl)이란 이름의 방문자 센터가 있지만 이 역시 시즌이 지나 문을 닫았다. 그 앞으로 펼쳐진 초원이 무척 아름다웠다. 솔저스 서미트로 올랐다. 이 솔저스 서미트는 알래스카 하이웨이를 모두 연결한 후, 1942 11 20일 준공식을 가진 곳이다. 주차장에서 1 km 걸어가면 되는데 솔저스 서미트에는 캐나다와 미국의 국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었다. 이곳에 서면 아름다운 클루어니 호수가 내려다 보인다.

 

클루어니 국립공원에서는 의외로 야생동물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분명 덤불 속 어딘가에는 그리즐리나 흑곰, 무스, 달 양, 늑대 등이 서식하고 있을 것이지만 겨울을 보낼 준비로 바쁜지 우리 앞에는 통 나타나지를 않았다. 길가에 침엽수가 보이긴 했지만 BC 주처럼 크고 울창한 침엽수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도 역시 추운 날씨 탓이리라 여겨졌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람 키 정도 되는 작은 관목들이었다. 주로 버드나무(Willow)나 난쟁이 자작나무(Dwarf Birch), 오리나무(Alder)가 많은데 이 나뭇잎들은 가을이 되면 노랗게 변색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 말은 유콘의 산이나 들판은 다른 곳에 비해 가을 색채가 풍부하다는 의미 아닌가. 우리가 여기에 온 것도 유콘의 가을을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붉게 타오르는 유콘의 가을은 아직 우리 눈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붉은 가을을 찾아 북으로 더 올라가야겠다.

 

 

 

 

<사진 설명> 이틀밤을 묵은 캐슬린 호수 쉘터. 우리에겐 너무나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다. 특히 텐트를 날릴듯 불어대던 돌풍에서 벗어나 쉘터에 자리를 폈을 때 이 쉘터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설명> 캐슬린 호수 주변만 거닐어도 지천으로 깔려 있는 것이 번치베리와 파이어위드였다. 번치베리의 빨간 열매와 빨갛게 변한 파이어위드의 이파리는 유콘의 가을색을 풍요롭게 만드는 존재였다.

 

 

<사진 설명> 아침, 저녁으로 그 모습을 달리하는 캐슬린 호수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것 같았다.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에 스트레스가 몽땅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 설명> 동녁을 붉게 물들인 태양이 구름 사이로 떠오르더니 뜬금없이 반대편에서 무지개가 뜨기도 했다. 이곳의 다양한 날씨를 보여주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사진 설명> 헤인즈 정션에서 다시 알래스카 하이웨이를 타고 북상해 클루어니 호수를 만났다. 그 길이가 무려 70km에 이른다는 호수를 우리는 극히 일부분만 보아야 했다.

 

 

 

 

<사진 설명> 솔저스 서미트에 오르면 그 아래로 클루어니 호수와 알래스카 하이웨이가 보인다. 1942 11월 알래스카 하이웨이 준공식을 거행했던 곳이다. 공사에 투입되었던 병사들의 우렁찬 함성이 들리는 듯 했다.

 

<사진 설명> 헤인즈 정션으로 되돌아 오면서 클루어니 국립공원과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다음엔 백패킹을 하면서 클루어니 국립공원의 속살로 들어가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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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식전당포 2014.02.16 04: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익하게 보고갑니당^^

  2. 제시카 2014.02.17 1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사진들이 다 달력에 나올것만 같아요 무지개도 이쁘고, 쉘터가 인상적이네요~ 자다일어나서 창문보면 바로 멋진 산이랑 호수가 보일테니!

    • 보리올 2014.02.17 16: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쉘터 덕분에 따뜻하고 편하게 밤을 보낼 수 있었단다. 그 때문에 클루어니 국립공원에 대한 인상도 무척 좋았고. 여행이라는 것이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인 총합 아니겠니?

  3. Grace 2017.05.26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여행기 감사합니다~
    쉘터에서 숙박까지 가능한가요~?
    파크 캐나다 홈페이지 에서는 키친쉘터라고 나오던데... 정보 좀 더 얻을 수 있을까요~~

    • 보리올 2017.05.26 13: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공식적으론 쉘터에서 숙박을 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캠핑장이 문을 닫고 새벽에 악천후가 몰려와 쉘터로 피신을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