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날씨부터 살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일출은 물 건너갔고 이제는 비나 어서 그치라고 빌어야 할 판이다. 비가 오는 줄 알았더라면 어제 만하린(Manjarin)으로 바로 올라가는 것인데 그랬다. 빵과 과일로 간단히 아침을 때웠다. 우의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꾸준히 오르막길을 걸어야 했다. 점차 날은 밝아오지만 운무가 세상을 집어 삼켜 눈에 보이는 것은 별로 없었다. 크루쓰 데 페로(Cruz de Ferro)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돌무덤 위에 십자가가 높이 세워져 있었다. 켈트족에 이어 로마인도 봉우리나 고개에 돌을 쌓는 전통이 있어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레온에 닿기 전에 준비한 돌을 올리고 나도 기도를 했다. 비 내리는 날씨라지만 사람과 십자가를 함께 찍기 위해 뒤따라 올라오는 사람을 기다렸다. 십자가 아래서 기도를 하거나 돌을 올려놓는 사람들의 경건한 태도에서 종교의 힘이 느껴졌다.

 

만하린으로 내려섰다. 토마스란 오스피탈레로(Hospitalero)가 폐허가 된 집을 재건해 알베르게를 만들었다. 형편없는 시설에 치장도 유치찬란했지만 그래도 중세의 분위기를 풍겨 정감이 갔다. 여기 오스피탈레로는 아침에 순례자가 알베르게를 떠날 때마다 종을 울린다고 한다. 순례자가 다시 길 위로 나섰음을 산티아고에게 알리는 의식이라 했다. 오스피탈레로에게 말 한 마디 건네려 했지만 다른 순례자들과 수다를 떠느라 나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순둥이 강아지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알베르게를 떠났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더니 몇 분 후에 가장 높은 지점인 해발 1,517m 지점을 찍고는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아주 긴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기슭 일부에 단풍이 들어 산색에 변화를 주고 있었지만 그리 요란하지는 않았다. 가을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비가 잦아 들면서 발걸음에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엘 아세보(El Acebo)의 가옥 구조가 산 건너편 마을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 집집마다 2층에 테라스를 만들어 놓았고 그 대부분이 집 밖으로 튀어나온 구조였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도 밖에 있었다. 검은 석판을 지붕에 얹은 것도 특이했다. 이런 것이 엘 비에르쏘(El Bierzo) 지역의 특징인 모양이다. 언덕에서 깃발이 여러 개 휘날리는 집을 보고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새로 지은 알베르게였다. 한적한 산골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산 아래 첫 마을이라 바에는 비에 젖은 순례자들로 만원이었다. 리에고 데 암브로스(Riego de Ambros)에도 벽이나 창가에 화분을 걸어놓은 집이 많았는데, 산골 벽지에 살아도 주민들 마음은 여유로워 보였다. 어느 집에는 티벳불교의 불경을 적은 룽다를 걸어 놓기도 했다. 리에고의 성당 벤치에 앉아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경사는 급하진 않았지만 내리막 길은 계속됐다. 멀리 마을이 보였다. 아름다운 산세와 계곡, 사람사는 마을을 한꺼번에 굽어보며 산길을 걷는 묘미를 어디다 견줄까 싶었다. 몰리나세카(Molinaseca)도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여기도 검정색 석판으로 지붕을 해서 마을이 좀 어둡게 보였다. 마루엘로(Maruelo) 강을 건너는 페레그리노(Peregrino)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섰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카페와 바, 그리고 주택이 늘어서 있었다. 산 니콜라스 성당도 들렀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몰리나세카를 벗어나 인도를 따라 걸었다. 아스팔트 도로를 걷는 대신 캄포(Campo)로 향하는 우회로로 들어섰다. 포도밭이 많이 나타났는데, 포도나무가 단풍이 드니 의외로 아름다웠다. 햇빛이 나기에 우의를 벗었더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물에 빠진 생쥐 모습으로 폰페라다(Ponferrada)에 도착했다. 비에르쏘(Bierzo) 지역의 경제 중심지라 규모도 꽤 컸다. 알베르게부터 찾았다. 도네이션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비가 그치길 기다려 시내구경에 나섰다. 폰페라다 외곽은 아파트와 콘도 등 현대식 건물이 많은 반면 도심은 중세풍의 건물이 많았다. 그룹으로 움직이는 관광객도 많이 보였다. 엔시나(Encina) 성모상이 모셔져 있는 바실리카부터 들렀다. 정문 입구에 템플 기사단의 십자가가 붙어 있었다. 템플 기사단의 요새였던 성채는 그 웅장한 모습에 시선이 끌렸으나 문을 닫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주마간산으로 도심을 둘러보고 수퍼마켓에서 부식을 구입했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이영호 선생이 스파게티에 돼지목살을 구웠다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나도 방금 산 와인에 계란을 삶아 테이블에 내놓았다. 꽤 푸짐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폰세바돈을 출발해 운무에 가린 산길을 걸어 올랐다.

 

 

 

십자가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돌무덤에 올라 기도를 하거나 가져온 돌을 올려놓곤 했다.

 

 

십자가가 세워진 고개엔 조그만 성당이 하나 세워져 있었고 그 앞 공터엔 누군가 돌로 원을 그려 놓았다.

 

 

 

그리 요란스럽진 않았지만 산기슭에 단풍이 들어 가을 분위기를 풍겼다.

 

 

템플 기사단의 십자가가 여기저기 걸려 있던 만하린 알베르게. 산티아고까지 222km 남았다는 이정표도 있었다.

 

 

발걸음도 가벼운 하산길에 비가 잦아들면서 덩달아 풍경도 살아났다.

 

산 아래 첫 마을인 엘 아세보 마을

 

 

리에고 마을도 엘 아세보 마을과 비슷하게 2층에 테라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마루엘로 강을 끼고 자리잡은 몰리나세카 마을도 아름다웠다.

 

몰리나세카에서 캄포로 내려서다 만난 포도밭에 가을이 찾아왔다.

 

폰페라다에 있는 알베르게에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중세풍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폰페라다의 도심을 둘러보았다.

 

 

바실리카(Basilica de Santa Maria)는 폰페라다를 대표하는 성당이었다.

 

성채 입구에 위치한 산 안드레스(San Andres) 성당

 

 

13세기 템플 기사단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카스티오 데 로스 템를라리오스(Castillo de los Templarios)

 

저녁은 스파게티에 돼지 목살, 삶은 계란으로 푸짐하게 먹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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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5.12.16 2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걸으셨습니다
    20일이 넘었으니ㅡㅡ
    포도밭 가을이 예뻐요
    여긴 폭설입니다
    홧팅!

    • 보리올 2015.12.17 01: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티아고 순례길이 이제 막판으로 접어듭니다. 가을철 포도밭이 예쁘단 생각을 이번에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드넓은 들판이 노랗고 붉은 색으로 물드는데 웬만한 단풍 저리 가라더군요. 봄에는 밀밭도 괜찮다고 하고요.

    • 농돌이 2015.12.17 0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럽쪽이 단풍나무는 못봤는데,,, 중간중간 포도밭, 플라타너스
      등이 단풍들으니까 그런대로 멋지던데요!

    • 보리올 2015.12.17 16: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캐나다 동부 지역은 가을 단풍이 대단합니다. 우리나라 산하의 단풍과는 느낌이 좀 다릅니다. 언제 캐나다 단풍보러 한번 오시죠.

    • 농돌이 2015.12.17 1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싶습니다
      전 농사도 짓고, 직장도 다니고,,, 집안 대장손이라서
      내 인생에 내가 희미합니다
      ㅠㅠㅠ

    • 보리올 2015.12.18 02: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는 일도 많고 집안에서의 위치를 감안하면 자유롭게 사시기가 쉽진 않겠습니다. 그래도 꿈을 꾸시면 언젠가 이루어질 겁니다. 건승을 빌겠습니다.

  2. Justin 2016.02.25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답다는 표현이 가장 많이 나온 날인것 같아요 ~ 아침에 날씨가 흐려서 애독자로서 걱정했는데 사진을 보니까 너무 이쁩니다!

 

어제 파스타를 만들어준 젊은이에게 아침을 함께 하자고 했다. 팜플로나에서 산 신라면 두 개를 끓였다. 오랜만에 먹는 매콤한 라면이 입맛을 돋운다. 오전 8시 그 친구와 알베르게를 나섰다. 박재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친구는 학군장교 출신으로 중위로 전역한 뒤 지난 16개월간 세계여행을 하고 있었다. 돈이 떨어지면 여행지에서 일을 해 경비를 번다고 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것도 그와 무관하진 않았다. 그 친구의 장래 꿈을 들으며 길을 걸었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가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현실과의 괴리를 극복하려면 앞으로 어려움이 많겠구나 싶어 걱정도 되었다.

 

그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눈 깜짝할 새에 7km나 떨어져 있다는 산솔(Sansol)에 도착했다. 내 딴에는 경험이 더 많다고 이런저런 조언을 했는데 행여 노파심이나 잔소리로 들리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산솔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토레스 델 리오(Torres del Rio)가 빤히 내려다 보였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처음엔 한 마을인줄 알았다. 토레스 델 리오에는 산토 세풀크로(Santo Sepulcro)라 불리는 팔각형 모양의 아담한 성당이 있었다. 어찌 보면 에우나테의 산타 마리아 성당과 비슷해 보였다. 성당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도로를 몇 번인가 횡단한 후에야 비아나(Viana)에 도착했다. 정오도 되지 않았다. 네 시간에 18km를 걸었으니 빨리 온 셈이다. 젊은이는 여기서 묵겠다고 해서 헤어지기 전에 점심이나 함께 하자고 했다. 엘 포르틸료(El Portillo)란 식당에서 참치와 미역, 하몽을 넣은 타파스 세 종류에 맥주 한 잔씩을 시켰다. 어느 것이든 맛은 훌륭했다. 한 입에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사이즈였는데 이것도 타파스라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다. 점심을 마치고 그 친구는 알베르게로 가고, 나는 비아나 도심을 둘러보기 위해 되돌아섰다. 시청사 앞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은 문을 닫아 들어갈 수가 없었지만 거의 다 허물어진 산 페드로 성당은 입장이 가능했다. 한 귀퉁이 건물에 천장 벽화만 남아 옛날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홀로 걷는다. 어떤 사안에 생각을 집중할 수 있어 외롭단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로그로뇨(Logrono)까진 12km를 더 가야 했다. 시커먼 구름이 몰려왔지만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비아나를 벗어나자마자 벌처(Vulture)라 부르는 독수리 한 마리가 퇴비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동물의 사체를 먹이로 한다는 녀석이다. 근데 이 녀석 배짱이 얼마나 두둑한지 내가 다가가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로그로뇨를 4km 남겨놓고 나바라 주에서 라 리오하(La Rioja) 자치주로 들어섰다. 거기서 다시 얕은 언덕을 하나 넘어서야 로그로뇨에 도착했다. 어느 알베르게에서 사람이 나와 열심히 호객 행위를 한다. 적극적인 자세는 인상적이었지만 난 무니시팔로 가겠다 미리 못을 박았다. 에브로 강(Rio Ebro) 위에 놓인 피에드라(Piedra) 다리를 건너 도심으로 향했다.

 

이곳 알베르게에도 한국인들이 꽤 많았다. 침대에 시트를 깔고는 시내 구경부터 나섰다. 로그로뇨 대성당과 메르카도(Mercado) 광장, 산티아고 성당, 산 바르톨로메(San Bartolome) 성당을 찾아 다니며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성당 세 군데가 모두 문을 열지 않아 좀 실망했는데 저녁이 되어서야 대성당과 산 바르톨로메 성당이 문을 열어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알베르게로 돌아왔더니 독일에서 왔다는 모리츠가 스파게티를 준비할 예정인데 함께 하겠냐고 물어왔다.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내 식량부터 처치하고 싶어 정중히 사양을 했다. 냄비에 밥을 짓고 밥 위에 자반김을 뿌린 후에 고추장을 적절히 섞어 내 나름대로의 만찬을 즐겼다.

 

밤에 다시 밖으로 나섰다. 라우렐 거리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로그로뇨는 리오하 주의 주도인만큼 먹거리가 풍부했다. 특히 와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리오하가 세계 5대 와인 생산지 중 하나라니 그럴만도 했다. 라우렐 거리의 타파스 바(Tapas Bar) 또한 로그로뇨의 자랑거리였다. 타파스는 식사 전에 술과 함께 먹는 간단한 음식으로 통상 바게트 위에 고기나 새우, 멸치, 버섯, , 치즈 등을 얹어 만든다. 여기 리오하에선 와인과 함께 먹는 안주라 보면 될 것 같았다. 가게마다 타파스를 개성있게 만들기 때문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맛을 보는 것이 좋다. 나도 여기저길 돌아다녔다. 사람들로 붐비는 골목을 헤집고 다니며 다양한 타파스가 준비되어 있는 바에서 와인 한잔에 타파스 한 조각 입에 무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로스 아르고스를 출발해 처음 만난 마을이 산솔이었다.

 

처음에 토레스 델 리오 마을을 보곤 산솔의 일부인줄 알았다.

마을 중앙에 별도의 성당이 있는 것을 보고 다른 마을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토레스 델 리오를 벗어나면 순례길 한 옆에 각종 메모들을 돌로 눌러놓은 곳을 지난다. 한글 메모도 많이 보였다.

 

어제 파스타를 요리해준 젊은이와 비아나까지 함께 걸었다.

원대한 꿈을 키우며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젊음이 마냥 부러웠다.

 

프랑스 르푸이를 출발해 산티아고를 찍고는 다시 르푸이로 돌아가고 있는 프랭키를 만났다.

왕복 3,400km의 장거리를 순례에 나선 것이다.

 

 

비아나로 들어서 시청사 앞에 있는 광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비아나에서 헤어지기 전에 젊은이에게 점심을 샀다. 참치와 미역, 하몽이 들어간 세 가지 타파스를 맛보았다.

 

 

외관이 이름다운 산타 마리아 성당은 문이 닫혀 밖에서 올려다만 보았다.

 

 

건물 대부분이 허물어진 산 페드로 성당은 정문과 성당 한 귀퉁이만 남아 있었다.

 

도로 아래를 지나는 지하 통로 벽면에 순례자들을 격려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동물의 사체를 먹고 산다는 벌처를 가까이에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라 리오하 자치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길가에 서있다.

 

로그로뇨는 산티아고 순례길 표식을 특이하게 만들어 길에 박아 놓았다.

 

11세기 후반에 지어진 피에드라 다리.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와 그의 제자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가 보수했다고 전해진다.

 

 

 

 

산타 마리아 라 레돈다(Santa Maria la Redonda)라고 불리는 로그로뇨 대성당.

성당 입구는 고딕 양식이지만 쌍둥이 탑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고딕 양식의 산티아고 성당은 문을 열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정문 위에 산티아고 마타모로스(Santiago Matamoros)라 불리는 전사 산티아고의 기마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산 바르톨로메(San Bartolome) 성당의 아치 정문에는 화려한 조각들이 가득했다.

 

 

와인과 타파스 바로 유명한 라우렐 거리. 타파스 바에는 맛과 색깔, 모양이 서로 다른 타파스가 진열되어 있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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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25 0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11.25 0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선생님도 그러시군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오래 전부터 가려고 했지만 이제사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의미가 없었기에 전반적으로 제 기대에는 못 미치더군요. 만약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북쪽길을 걷고 싶습니다. 포르투갈 길도 좋을 것 같고요.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2. Justin 2015.12.23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 그 젊은이가 아버지를 형님으로 모시는 저보다 더 어린 그분입니까? 저도 아버지 친구분들을 형님으로 모시면 반응이 어떨까요?

    • 보리올 2015.12.23 15: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 그 청년이 맞다. 둘 사이를 형, 아우로 부르는 것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제 3자가 결부되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 그래서 그 친구에게 다른 호칭이 좋겠다 했더니 바로 선생님이라 부르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