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림동에 있는 달동네를 찾았다. 내 시간 여행의 세 번째 장소다. 달동네란 표현이 그곳에 사시는 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지도 몰라 조심스럽다. 하지만 난 달동네에 애정이 아주 많은 사람이고, 한때는 이런 달동네를 찾아 서울시 곳곳을 쏘아 다니기도 했다. 재개발한다고 소문이 난 곳이면 거의 모든 지역을 찾아가 보았다고 자부한다. 무엇 때문에 퇴락한 달동네 모습에 마음이 빼았겼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찾아간 것은 물론 아니다. 서울에 있는 달동네 골목길이 사라지기 전에 필름에 담아 놓겠다고 주말이면 서울 곳곳을 2년이나 찾아 다녔다. 난곡동이나 상계동, 중계동, 하월곡동, 우이동, 남가좌동, 금호동 등 대부분의 재개발 지역을 섭렵했다. 지금은 그 지역 대부분이 재개발로 인해 아파트 촌으로 변해 버렸다. 중림동도 그 때 몇 번 찾았던 곳이었다.

 

중림동과 나는 아주 짧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지방 출신인 내가 서울로 올라온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다. 가정 형편도 어려웠고 주머니에 용돈도 넉넉치 않았던 처지라 염치 불구하고 중림동에서 방 한 칸 얻어 자취를 하던 두 친구에게 몇 달 얹혀 산 적이 있다. 셋방 크기가 두 평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3명이 다리를 뻗고 누우면 마음대로 돌아 누울 수도 없었다.  

 

골목길 사진작가로 독보적인 명성을 얻으신 김기찬 선생은 1968년부터 이곳 중림동을 중심으로 골목안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셨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도 골목길 사진을 찍어 전시회를 한 적이 있다. 불편하신 몸임에도 지인 손에 끌려 김기찬 선생이 그 사진전 오프닝 행사에 오셔서 나로선 너무나 영광이었던 기억이 있다. 아쉽게도 그 분은 골목길 사진집 몇 권을 남겨 놓고는 2005년 타계를 하셨다.

 

중림동도 그 동안 변화가 많았다. 한 켠에는 고층 아파트가 새로 들어섰고 예전에 비해 동네 규모도 대폭 축소가 되었다. 그나마 한 귀퉁이에 옛집들이 남아 있어 다행이었다. 좁은 골목은 여전하였고 여전히 사람사는 냄새가 나서 좋았다. 팍팍한 형편임에도 화분을 가꿔 길에 내놓는 여유도 보였다. 할머니 몇 분이 공터 그늘에 놓인 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그 중 한 할머니는 낯이 익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4.09.26 1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4.09.26 13: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블로그 글과 사진에 호평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골목길 공모전 이벤트에 제 블로그 글과 사진을 응모하라는 말씀인지요? 저로서야 우리 서민들의 체취가 묻어있는 골목길을 재조명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무조건 협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방법을 알려주실 수 있는지요?

    • 보리올 2014.09.28 21: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부러 블로그까지 찾아주셔서 웬만하면 글을 올리려 했습니다만 글쓰기가 너무 어렵네요.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도록 해놓아야 하는데 등록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두 번이나 올린 글이 날라가 버려 아쉽지만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시간 여행이라 이름을 붙이고 찾아간 두 번째 장소는 서울 공덕동의 성우이용원이었다. 머리 깍기가 마땅치 않은 캐나다라서 고국 출장길에 머리를 깍겠다 벼르던 참에 아들에게 서울에서 오래된 이발소를 하나 찾아보라고 했더니 공덕동에 있는 이 이용원을 추천한다. 만리동 고개에서 배문고 쪽으로 가면 있단다. TV, 신문에도 소개된 유명한 곳이란 이야기보다는 3대가 이발로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는 이야기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성우이용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라고 한다. 1927년에 문을 열었다니 벌써 80년을 넘겼다. 이발소를 처음 본 인상이 너무 좋았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외관은 내가 찾던 것과 똑같지 않은가. 슬레이트 지붕과 페인트 칠이 벗겨진 문틀에선 세월의 관록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런 이발소를 찾을 수 있었다는 행운에 내심 무척 즐거웠다.

 

이발소 안에 있는 모든 집기, 비품은 마치 골동품 전시장 같았다. 연륜이 서린 이발 도구는 물론이고 면도칼, 말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칼갈이, 면도용 거품을 만드는데 쓰는 솔, 무쇠 난로, 세면대, 조리라 불리던 물뿌리개, 이발 의자, 의자 위에 아이들 앉히던 판자 등 모두가 내가 어릴 적 보았던 물건들과 똑같았다. 역사와 전통이 서린 이런 집기들을 여기서 보다니 이 무슨 횡재란 말인가.   

 

외할아버지, 아버지 뒤를 이어 48년이란 긴 세월을 이발이란 한 우물을 파면서 살아온 이남열 선생을 만났다. 그는 가히 이발 장인이라 부를만 했다. 60대 초반의 나이에 비해 얼굴은 무척 해맑은 편이었다. 그는 이발 기술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발 기술을 완벽히 익히려면 30~40년의 세월이 필요한데 요즘은 그렇게 배우려는 이발사가 없다고 한탄을 하신다. 기술을 제대로 익히지 않고 남의 머리를 만지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나저나 이 기술을 물려받을 사람이 마땅치 않아 고민이 많단다.

 

가위를 바꿔 가며 머리카락을 자르는 정성이 대단해 보였다. 마치 한올 한올씩 자르는 듯 했다. 미장원에서 기계로 휙휙 깍아대는 이발과는 맛과 격이 달랐다. 이발을 하면서 손님들과 나누는 이야기도 옛날 방식과 같다. 내게도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털어 놓는다. 이발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머리를 자르고 면도, 세발까지 해서 2만원을 받는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1 8 17일부터 8 29일까지 본국 출장 일정이 잡혀 주말을 이용해 몇 군데 다녀올 수 있었다. 옛 추억과 정취를 불러 일으키는 장소를 골라 내 시간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시간 여행이라 이름을 붙이고 찾아간 첫 번째 장소는 서울 북촌의 한옥마을이었다.

 

북촌 한옥마을을 찾은 횟수는 헤아릴 수가 없다. 인사동에서 가까워 구경을 간 적도 있고 사진기를 들고 일부러 찾은 적도 있다. 가회동에 한옥을 구입해 사시는 선배 집에도 가끔 갔었다. 한옥에서 잠자는 것도 물론 나에겐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있던 아들에게는 처음 한옥에 머무르는 기회라서 일부러 한옥 체험을 하기로 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며칠을 묵었다. 비록 방은 작고 그 안에 아무런 시설도 없었지만 한옥에서 잔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적이었다. 아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으리라 본다. 한옥체험관으로 유명한 락고재 1인실이 18만원, 2인실이 25만원을 받아 거의 일류 호텔 수준에 버금 간다. 물론 우리가 묵은 게스트하우스는 이보다 훨씬 저렴했다.

 

원래 북촌이란 청계천, 종로 윗동네란 의미로 쓰였다 한다. 전통 한옥이 밀집되어 있는 주거지역을 말하는데, 여기엔 가회동, 계동, 재동, 삼청동이 들어간다. 1960년대까진 거의 한옥으로 이루어졌던 북촌 마을은 1990년 이후 다세대주택이 많이 들어서면서 한옥이 급속히 사라졌다. 그래도 가회동 일대는 여전히 한옥이 많이 남아있고 요즘은 한옥 보전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미로처럼 뻗어있는 한옥마을 골목길도 걸을만했다. 좁은 골목을 따라 기와 지붕과 대문, 담장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회색빛 일색의 대도시 달동네 골목길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 공예품을 파는 가게나 아늑한 분위기를 지닌 전통찻집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가 있었다. 이제는 이런 전통 가옥이 외국인을 불러 들이는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설록차 2013.07.13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깨끗하게 정비되고 국내외 관광객이 늘었다면 실제 그 동네에 사는 주민은 조용하고 안락한 일상은 잃은거네요...한옥체험이 외국인에게 인기라던데 보리올님도 아드님과 체험을 하셨다니 뭐라 하던가요...일본식 집에서 양옥 2층집을 거쳐 아파트에서만 살아서 한옥은 시골 친척집밖에 못가봤어요...고향이 진주(사천)이라 서부경남 함안 의령에 친척이 많이 살았습니다...시골 한옥은 겨울에 외풍이 세고 불편했는데 위의 집들은 내부를 개량한 집이겠죠...사진을 보니 고향에 간 듯한 기분이 들어요...^*^

  2. 보리올 2013.07.14 0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은 한옥마을을 보려는 관광객으로 넘쳐납니다. 낮에는 꽤나 소란스러워졌습니다. 그래도 이런 한옥이 남아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편의성과 효율만 따지면 조금은 불편하기도 할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