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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06 마칼루 하이 베이스 캠프 <5>
  2. 2013.03.02 마칼루 하이 베이스 캠프 <1>

 

밤새 싸락눈이 텐트를 때렸다. 춥고 축축한 텐트 안에서 날씨를 걱정하며 바깥 날씨를 살피니 하늘이 너무나 쾌청한 것이 아닌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 같았다. 오늘은 십튼 라를 넘어야 하는 심적 부담이 있었는데 날씨만 좋다면야 뭔들 못하겠는가. 눈길 산행에 대비해 스패츠를 착용했다. 히말라야가 처음인 사람에겐 오늘 구간이 처음으로 맞는 시련일 것이다. 조금 있으면 입에서 단내가 난다고 아우성을 치겠지!

 

이 고도에서의 하룻밤이 녹녹치 않았던 모양이다. 고소 증세로 밤새 고생한 대원들이 김덕환 선배를 찾아 증상을 설명한다. 특히, 젊은 축에 속하는 윤석진 선배와 김백규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무도 내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네!” 약을 건네며 김덕환 선배가 농으로 한 마디 던진다. 어딘가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매번 빠지지 않고 팀닥터로 참가해 대원들 건강을 챙기는 양반인데, 고소 증세는 아닌 것 같고 어제 저녁에 도마 자매로부터 사서 마신 맥주가 문제인가? 고산병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숙취 아닐까 싶었다.

 

룽다가 펄럭이는 궁가르 라까진 줄곧 오르막이었지만 따뜻한 햇살에 경치도 뛰어나 그리 힘든지를 몰랐다. 멀리 동쪽으로 칸첸중가 산군이 자태를 드러낸다. 하지만 십튼 라가 가까워 올수록 대원들 발길이 점점 느려졌다. 햇살이 나면 눈에 반사되는 복사열 때문에 덥다가 구름과 바람이 몰려오면 갑자기 한기가 돈다. "어이구! 징허구먼, 징혀!" 십튼 라를 오르며 어느 대원이 독백처럼 뱉은 말이다. 그래도 어차피 가야만 하는 길. 초반에 해발 4,170m의 십튼 라를 넘는 것이 우리에겐 하나의 부담이었지만, 서로 서로가 의지해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인 그곳을 무사히 넘었다.

 

사방이 눈으로 둘러싸인 툴루포카리 호숫가에서 수제비로 점심을 먹는 운치란 뭐라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그냥 좋다, 좋다는 소리밖에는 달리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런 조망을 가진 레스토랑이 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날씨는 돌연 싸락눈으로 바뀌었고 주변 봉우리들은 모두 구름 속으로 숨어 버렸다. 눈을 맞으며 도바테(Dobate)에 도착을 했다.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텐트를 쳤다. 바닥은 울툴불퉁해서 허리를 펴고 똑바로 눕기가 힘들다. 그래도 텐트에서 휴식을 취하며 대부분 컨디션을 회복했다. 해발 3,750m로 내려오니 숨쉬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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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는 마칼루(Makalu, 해발 8,463m)하이 베이스 캠프를 청소하기 위해 한왕용 대장의 <클린 마운틴 캠페인> 다시 참여를 했다. 마칼루에 이르는 길은 에베레스트나 로체에서 그리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다르다. 다른 8,000m급 고봉에 비해 베이스 캠프의 고도도 상당히 높다. 그럼에도 이 캠페인에 참가한 인원 14명의 평균 연령은 엄청 높았다. 한 대장으로선 좀 걱정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평생을 산과 더불어 살아 오신 분들이니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선 현명하게 잘 판단하리라 믿었다.

 

마칼루는 에베레스트 동쪽으로 불과 27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런데도 에베레스트와 로체가 있는 쿰부 지역을 지나지 않는다. 가장 보편적인 접근 방법은 카트만두에서 툼링타르(Tumlingtar)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 멀리 동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것이다.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 가는 길처럼 로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길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카트만두를 떠나면서부터 매일 텐트를 쳐야 했고, 속에서 빗방울과 싸락눈을 피해야 했다. 그래도 그것은 낭만이 있어 좋았다.

 

마칼루에 이르는 길은 적잖은 다리품을 요구한다. 어렵사리 올라온 고도를 뚝 떨어뜨려 두 개나 되는 강을 건너야 하고, 중간에 해발 4,170m의 십튼 라(Shipton La)를 넘어야 한다. 초반부터 고산병 증세로 힘이 드는데,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바룬(Barun) 강을 따라 베이스 캠프로 다가갈수록 양옆 벼랑에서 떨어져 내리는 낙석도 겁났지만, 지겹게 걸어 올라야 하는 빙하 위 너덜지대는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지금 생각을 해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그런 곳이었다.

 

카트만두에서 하루를 묵은 안나푸르나 호텔을 떠나 공항으로 갔다. 오전 11시발 툼링타르행15인승 고르카(Gorkha) 항공기를 타기 위해서다. 출발시각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안내가 없다가 12시 반이 되어서야 비행기가 늦어진다고 이야길 한다. 누가 매점에서 맥주를 사다가 나누어 준다. 얼마에 샀냐고 물었더니 캔당 150루피. 하지만 그 뒤에 간 한 대장은 100루피에 샀다. 그 다음 사람은 다시 150루피. 마지막 사람은 135루피. 도대체 맥주 가격이 왜 널 뛰듯 하는지 궁금했지만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다. ‘엿장수 맘대로가 정답 아닌가 싶었다. 산에 들기도 전에 취기로 머리가 띵해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오후 1시가 넘어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 청사라 보기엔 너무 허술한 툼링타르 공항에 비행기가 내렸다. 비포장 활주로 빼고는 잡초만 무성한 풀밭이었다. 온통 연기에 그을은 식당에서 감자를 삶아 점심을 대신했다. 우리의 출현에 신기해하는 현지인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베이스 캠프를 향해 트레킹을 시작한다. 마네반장(Mane Bhanjyang)까지는 지프를 이용했다. 4월 하순의 뜨거운 햇살과 무더위에 땀은 비 오듯 하고 고물차에서 풍기는 역한 휘발유 냄새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빨리 시원한 산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지나치는 마을마다 "나마스테"하면서 두 손을 모으는 아이들 덕분에 그나마 더위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마네반장의 축구장 한 켠에 텐트 7동과 식당 텐트 한 동을 쳤다. 축구하는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일부 빼앗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네들도 공을 차면서 우리를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쳐다 보곤 한다.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보았다. 길 양쪽에 상가가 자리잡은 꽤 큰 마을이었다. 무슨 물건을 파는지 가게를 둘러보다가 야영지에서 신을 슬리퍼를 하나 샀다. 이 사람들은 이런 슬리퍼를 신고 베이스 캠프도 간다. 우리는 튼튼한 등산화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이게 삶과 레저의 차이인가?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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