텡보체 호텔을 떠나기 전, 로지 여주인인 밍마 양지(Mingma Yangi)를 불러내 기념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네팔에서는 흔치 않은 여성 산악인에다 로지를 운영하면서 사업 수완도 만만치 않은 여장부다. 남체로 향하는 내리막 길은 고산병 걱정이 없어 좋았다.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여길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 일행들은 무슨 이야기거리가 그리 많은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다를 떨며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오늘이 지나면 에베레스트도, 로체도, 그리고 아마다블람도 보기가 쉽지 않을 터. 전망이 좋은 곳이 나타나면 이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다. 그래도 가장 압권은 야크 똥을 말리는 현장. 담벼락 돌에다 척척 붙여서 1차 건조를 한 다음에 땅 바닥에 넓게 펴서 말리고 있었다. 혹시 이 천연 연료도 화석 연료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겠지? 옛날엔 우리 시골에서도 소똥을 말려 불소시개로 썼던 일이 생각났다.

 

늦어도 정오까지는 남체 바자르에 도착할 것으로 보았는데 의외로 길이 멀었다. 거의 쉬지도 않고 걸었음에도 12시에서 30분이 지나서야 남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유만만한 후미는 당연히 거기서 1시간이 더 걸려서 도착을 했다. 점심은 남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쿰부 로지에서 정 상무가 한 턱 쏘았다. 야크 시즐러와 모모라 불리는 만두가 나왔는데 제법 맛이 좋았다.

 

가게에 나와 있던 로지 주인 할머니가 정모에게 특별 대접을 한다. 우리가 시키지도 않은 음식을 정모에게만 따로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오랜 인연이 있는 듯 했다. 물론 그 음식은 우리가 대부분 먹어치워 정모는 거의 한 점도 먹질 못했다. 영국에서 공부한 큰딸이 학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을 벽에 걸어 놓았다. 이 산골에서 아이를 영국 유학까지 시키다니 놀랍기만 했다. 그 동생쯤으로 보이는 다른 딸이 계산대를 지키고 있었는데, 너무 돈을 밝히는 듯 해서 인상은 좀 별로였다.  

 

아직까지 아마다블람의 위용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남체를 싸고 있는 산 봉우리들은 구름에 가려 기품을 많이 잃었다. 원래는 남체에서 하룻밤을 묵을 예정이었으나, 시간적 여유가 생겨 기왕이면 몬조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조르살레에서 국립공원 경내를 벗어났다. 우리 트레킹의 종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지루한 내리막을 걸어 몬조에 도착했다.    

 

저녁상에는 남체에서 사온 수육이 올라왔다. 남체에 맡겨 놓았던 팩소주도 돌고 돈다. 모처럼 거나한 술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모두가 고산병이란 걱정거리가 사라진 덕택이다. 소주가 부족했는지 거기에 럭시, 양주까지 등장을 했다. 모두들 기분좋게 취했다. 젊은 피들은 저녁 늦게까지 노래를 부르고 난리다. 이 늦은 시각까지 현지인들은 길가 마루에서, 담벼락에서 목을 빼고 우리를 구경한다. 참으로 할 일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나저나 마당에 텐트를 친 다른 나라 트레커들이 죽을 맛이었을 게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PartyLUV 2013.07.10 1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중간의 음식들 너무 먹고 싶네요~^^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2. 보리올 2013.07.11 0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특이한 음식일 뿐입니다. 우리 한식보다 맛있다고 이야기하긴 좀 그렇습니다. 네팔 가시면 한 번 먹어보세요.

  3. 안영숙 2013.10.03 0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돌담벽에 붙어 놓은 야크 거시기 위에 있는 예쁜 노랑 자캣 아가씨는 지금 도대채 뭘 하는 걸랑?

  4. 보리올 2013.10.03 0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가 그래도 허패의 캐나다 집단가출 당시 막동이였던 우리 '민갱이'입니다. 에베레스트 트레킹 갔을 때는 결혼 전이라 한국에 짝이 없으면 네팔로 시집 보내려 시험삼아 장작 좀 들어보라 했더니 영 아니올시다였지요. 저 정도 무게면 건장한 우리도 들지를 못합니다. 네팔 여인네는 머리로 사뿐히 잘도 들어 올리더구만. 하여간 우리 민갱이는 지금 한국에서 멋진 남편 만나 잘 살고 있답니다.

 

7시에 기상을 했지만 출발은 10시가 되어서야 할 수 있었다. 며칠 전 페리체를 지날 때 일행 몇 명이 능선에 올라 돌을 쌓아 화정이 추모탑을 조촐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페리체를 떠나기 전에 거길 오르자 의견이 모아졌다. 화정이는 한국여성산악회의 아콩카구아 원정을 대비해 훈련을 받던 중 얼마 전에 북한산에서 세상을 떴다. 우리 <침낭과 막걸리> 식구들에겐 한 가족을 잃는 엄청난 슬픔이었다. 추모탑은 아주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마다블람과 타부체, 로부체가 빤히 보이는 곳이었다. 평생을 산사람으로 살았던 친구니 좋아하겠다 싶었다. 돌탑 속 화정이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좋은 경치 벗삼아 편히 쉬게나.

 

페리체를 벗어나 전원이 기념 사진을 한 장 박았다. 하산에서 오는 여유 때문일까.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여기저기서 사진 찍는다 정신이 없다. 산을 오를 때의 긴장감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하긴 그만큼 힘들게 올랐기에 하산의 여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쇼마레를 지나 팡보체에서 점심을 먹었다. 김치 수제비가 일품이었다. 팡보체 고개를 내려오면서 희준, 현조의 추모탑을 다시 찾았다.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한 번 지나간 길이라지만 방향이, 시간이 달라서 그런지 생소한 느낌을 준다. 마음이 여유로워진 탓인지 색다른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시간이 많아졌다. 산길에서 피어나는 먼지만 없었다면 금상첨화였을텐데 그 점이 좀 아쉬웠다. 커다란 티벳 사원이 있는 텡보체에 도착했다. 산 아래에서 가스가 밀려온다. 우리 시야에서 사원도, 로지도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기후가 전형적인 쿰부의 겨울 날씨라고 한다. 여기도 이제 겨울로 접어드는가?       

 

트레킹을 하면서 내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설산 풍경보다는 오고가는 마을에서 순진무구한 악동들을 만나는 것이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은 카메라를 거부하는 녀석들도 나왔다. 히말라야 다른 지역과는 좀 다른 반응이었다. 야크가 평화롭게 풀을 뜯는 풍경도 좋았다. 남체 위에 있는 지역에선 이 야크가 주요 운송수단으로 쓰인다. 야크 숫놈과 일반소를 교배해 좁교라는 종자를 얻는데, 이 좁교는 남체 아래에서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일종의 전국구라고나 할까.

 

호준이와 핀조를 텡보체 사원에 보내 예불 시간에 특별히 화정이 추모제를 지낼 수 있는지 물어보라 했다. 예불 중에 링포체 큰스님이 간단하게 화정이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단다. 시주는 알아서 내라고 해서 내 주머니에서 100불이란 꽤 큰 돈이 나갔다. 대원들도 십 여명 넘게 예불에 참석을 했다. 예불은 우리처럼 그렇게 엄숙하지 않아 좋았다. 긴 나팔같이 생긴 악기와 북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엄숙함보다는 자유분방함이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염불 소리는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링포체 큰스님이 화정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식당에선 카드놀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돈을 딴 사람이 하산해서 저녁 한 끼를 쏘겠다 약조를 하고 시작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거금을 따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필수가 그래도 돈을 좀 딴 모양이었다. 따기는 땄는데 거금을 따지는 않아 한 턱 쏘지 않아도 되니 그것 참 실속있는 친구로군. 제 주머니만 두둑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나야 그런 재주가 없어 그냥 옆에서 구경만 하였다. 대신 문경 형님이 맥주를 쏘았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침부터 묘한 설전이 일어났다. 아니, 설전이라고 하기 보다는 기싸움이란 표현이 맞겠다. 음식을 앞에 놓고 허 대장이 먹은만큼 간다니 많이 먹어둬라는 격려성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박 대장이 즉석에서 받아쳤다. “난 많이 먹고 힘 못 쓰는 놈이 가장 싫더라며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거 많이 먹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눈치껏 조금 먹어야 하는 건지 좀 헛깔리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난 많이 먹으란 쪽에 내 한 표를 던지고 싶었다.

 

팡보체(Phangboche) 가는 길은 처음엔 계곡을 따라 내리막길을 걷는다. 이 코스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나무 숲이 나타났다. 에베레스트만 다섯 번이나 등정했다는 전설적인 세르파 순다레가 자살했다는 소문이 있는 다리를 건넜다. 그는 왜 갑자기 찾아온 돈과 명예를 버리고 훌쩍 세상을 떴을까? 그의 죽음엔 몇 가지 소문이 떠돈다. 마누라 등쌀에 못이겨 진짜로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 다리에서 실족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다리를 건너며 지금은 떠나고 없는 사람의 이름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팡보체에서 일행들이 모두 발을 멈췄다.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새로 코리안 루트를 내려했던 오희준, 이현조 대원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팡보체 길가에 추모탑을 세운것이다. 미리 준비해 놓은 탑에 박 대장이 동판을 끼워 넣어 탑을 완성한 것이다.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두 친구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 오랜 세월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게 형이라 불러줬던 친구들인데젯상을 차려 놓고 모두 고인에게 절을 올리며 명복을 빌었다. 인당 형님과 박 대장은 여기서 헬기를 타고 먼저 카트만두로 돌아가기로 했다.

 

쇼마레(Shomare)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처음 히말라야에 온 봉주 형님과 사카이 다니씨 걱정을 많이 했건만 의외로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줄곧 선두권을 유지하는 두 노익장의 투혼에 내심 감탄하고 있던 터. 어디서 저런 괴력이 나오는 것일까 궁금해 살짝 물어 보았다. 봉주 형님은 뒤에 처지면 아예 포기할까봐 이를 악물고 앞에 나서고 있다 하고, 사카이씨는 꾸준히 운동을 한 덕분에 아직은 큰 어려움이 없다 한다.

 

꾸준히 오르막 길을 걸은 후 계곡을 건너니 바로 페리체(Pheriche)가 보인다. 오늘부터 해발 고도 4,000m 이상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공기 밀도가 약해지고 공기 속에 있는 산소량까지 현격하게 줄어든 만큼 몸에서 슬슬 이상 징후들이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속이 메슥거려 토할 같고 머리에 두통이 오기 시작하며 온몸에 힘이 빠지면 일단 고소 증세가 것으로 보면 된다. 웬만 하면 참아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페리체에선 아마다블람의 모습이 가까이 보였다. 지금까지 멀리서 봤던 모습과는 꽤 다른 형상이었다. 에베레스트와 로체는 우리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계곡 건너편으로 타부체(Tabuche, 6367m)와 촐라체(Cholache, 6335m), 로부체(Lobuche, 6119m) 등 세 봉우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페리체의 해질녘 풍경이 무척 평화롭고 아름다워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야크가 여유롭게 풀을 뜯고 집집마다 밥을 짓는 연기가 굴뚝에서 솟는다.

 

우리가 투숙한 히말라야 호텔은 식당이 엄청 컸다. 지금까진 성선이와 한 방을 쓰다가 오늘부터는 정모와 쓰게 되었다. 저녁 식사 후엔 사진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모아 두 시간 사진 강좌를 열었다. 4,200m의 고소에서 강의를 한답시고 이렇게 말을 많이 하면 고소가 오는 것은 아닐까 살짝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긴긴 밤을 짧게 보낼 수 있다면 내 무엇을 마다하랴.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3.07.27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3.07.27 0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글을 달기가 좀 망설여졌습니다. 제가 남들보다 더 많은 곳을 다닌 것도 아니고 글과 사진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이런 칭찬을 들어야 하는가 싶었거든요. 총량적으로 본다면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역량을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단지 그 사람의 기질이나 성향이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요. 전 이상하게 자연에 매료되고 거기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그런 평범한 사람입니다. 설록차님은 제가 가지지 못한 또 다른 장점을 가지고 계실테니 이 세상이 모두 공평하다 봅니다.

 

고소 적응을 한다고 일부러 쿰중까지 다녀왔건만 아침부터 이상하게 발걸음이 무겁다. 계곡을 따라 잘 닦인 길을 줄지어 오른다. 걷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숨을 고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어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필수는 그런대로 회복이 된 것 같은데, 석균이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처음 히말라야를 찾은 사람에게 말로만 들었던 고소 증세가 점점 현실이 되어 가는 듯 했다. 하지만 어쩌랴. 고산에 들면 많은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인 것을. 

 

남체를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 기념탑을 만났다. 1953년에 초등을 했으니 2003년에 세운 탑이다. 기념탑 주변에서 아마다블람이 빤히 올려다 보였다. 일행들보다 조금 앞서 정모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캉주마 마을에 도착했다. 길목에 좌판을 설치해 놓고 각종 장신구를 팔고 있었다. 이렇게 조악해 보이는 장신구를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가게에서 밀크 티 한 잔으로 목을 축였다. 트레킹을 시작해 처음으로 야크를 보았다. 여기 사람들에게 야크는 매우 소중한 재산이다. 우유를 짜서 야크 치즈를 만들고 짐을 나르는 운송 수단으로도 이용한다. 심지어 야크 똥도 햇볕에 잘 말리면 훌륭한 땔감이 된다.

 

계곡을 건너기 위해 한참을 내려선 다음에야 풍기텡가 마을에 도착했다. 점심으로 맛있는 칼국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기를 채우고 따가운 햇살을 피해 낮잠도 청했다. 허 화백의 일본인 친구인 사카이 다니씨는 컨디션이 좋은지 칼국수도 잘 먹는다. 히말라야가 초행임에도 고소 증세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미리 연습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인 모양이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지그재그 산길을 따라 무거운 다리를 옮긴다. 건조한 날씨 탓에 길에서 엄청난 먼지가 일었다. 그룹이 열을 지어 가다 보니 앞사람이 일으킨 먼지를 뒷사람이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호흡을 잠시 멈추면 금방 머리가 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초겨울 히말라야에서 눈이 없는 건조한 날씨와 이렇게 심한 먼지를 만날 것이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앞사람과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거나 아예 맨앞으로 나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속도를 좀 올렸다. 먼지 속에서 고도 600m를 올리느라 나름 고생이 많았다.      

 

텡보체(Tengboche)에 도착했다. 능선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마을 텡보체에는 규모가 큰 티벳 불교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쿰부 지역은 티벳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티벳 강점을 피해 티벳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에 많이 정착해 산다. 마을 어디에나 티벳 불교의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얼굴 생김새와 의상도 산 아래와는 달라 보였다.

 

히말라야 뷰 로지에 묵었다. 산악인 출신이라는 여주인은 박대장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이었다. 저녁 메뉴는 비빔밥. 고추장을 듬쁙 넣고 쓱쓱 비벼 먹었다. 두세 명을 제외하곤 다들 식욕이 왕성해 보였다. 여주인이 서비스라고 만두 몇 접시를 내왔다. 나중엔 와인까지 들고 온다. 박 대장에게 보이는 호의에 우리가 호강한다. 몸 컨디션이 그리 나쁘지 않아 나도 와인 몇 잔을 받아 마셨다.

 

카메라를 들고 로지 밖으로 나왔다. 조그만 언덕 위에 대한민국의 에베레스트 등정 2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흔히 고상돈 기념비라 불리지만 비석 어디에도 고상돈이란 이름은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 사원에서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몇몇도 스님들을 따라 예불이 열리는 법당으로 들어섰다. 1시간 20분을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했다. 그렇게 조촐하게나마 오희준과 이현조의 명복을 비는 시간을 가졌다.

 

로지 앞뜰 평상에 둘러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아마다블람 왼쪽 기슭이 밝아오더니 갑자기 둥근 달이 불쑥 떠올랐다. 보름에서 하루나 이틀 지난 모습이었다. 그래도 달이 무척 밝았다. 하늘을 수놓던 별들이 달의 출현에 모두 숨을 죽인다. 이런 기막힌 월출의 순간을 그냥 넘길 기탁 형님이 아니지 않는가. 맥주와 와인을 시켰다. 해발 3,800m가 넘는 높이에서 달에 취해 또 술을 마시다니 내 스스로 자충수를 두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 순간을 놓치면 후에 무척 후회가 될 것 같았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집팔이소녀 2013.07.02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영만 선생님 아니신가???

  2. 보리올 2013.07.03 0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화가 허영만 선생님이 맞습니다, 오랜 산행을 통해 우리는 허 대장님이라 부릅니다. 산행에선 부드럽고 은근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대단한 분입니다.

 

고소 적응을 위해 남체에서 하루 쉬기로 했다. 그렇다고 그냥 로지에 머무르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에베레스트 뷰 호텔을 지나 쿰중(Kumjung)까지 갔다오기로 하고 8 30분에 로지 앞에 집결했다. 박 대장과 정상욱 상무는 로지에 남겠다 한다. 가벼운 고소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몇 명 나왔지만 전반적으로 다들 컨디션은 좋은 듯 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속도를 달리해 오르막길을 오른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남체 마을 모습에 카메라를 꺼내는 횟수가 늘어났다.

 

수목한계선에 위치한 파노라마 뷰 로지에 닿았다. 파란 하늘 아래 웅장한 봉우리들이 도열해 있었다. 에베레스트뿐만 아니라 로체(Lhotse)눕체(Nuptse)같은 높고 웅장한 봉우리들이 우리 시야에 들어왔고, 오른쪽에 아마다블람(Ama Dablam) 보였다.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아마다블람이 오히려 더 웅장하게 다가온다. 다들 예기치 못한 엄청난 풍경에 연신 감탄사를 쏟아낸다. 히말라야의 위압적인 풍경에 압도되었다고나 할까.   

 

파노라마 뷰 로지에 근무하는 한 현지 여성이 유창한 우리 말로 인사를 건넨다. 어떻게 한국말을 배웠냐고 물었더니 한국에서 몇 년간 근무한 적이 있단다. 그래도 너무 잘 한다. 점심은 에베레스트 뷰 호텔에서 먹기로 했다. 음식을 시켰는데 인원수가 많아서 그런지 시간이 너무 걸린다. 땀이 식어 추위를 느낄 때가 되어서야 음식이 나왔다. 한 시간이 더 걸린 것 같았다. 여기 사람들 너무 느긋한 것 아니야? 호텔 매니저에게 항의를 한 후에야 요리사와 웨이터들 동작이 좀 빨라졌다.

 

대부분은 여기서 돌아서기로 했고 나를 포함한 아홉 명은 쿰중을 들려 다른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좀 돌아가기는 하지만 에베레스트 초등자 힐러리 경이 쿰중에 세웠다는 학교를 들러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쿰중엔 모양새가 비슷한 집들이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힐러리 학교는 산 속에 있는 학교치고는 시설이 꽤 좋았다. 운동장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도 만났다. , 컴퓨터 교실도 들어가 보았는데, 한국산악회의 실버 원정대에서 지어주었다고 적어 놓아 내심 자랑스러웠다.  

 

쿰중에서 남체로 내려가는 길에 옛 공항을 지났다. 루크라에 새로 비행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여기를 이용했다고 한다. 카트만두에서 바로 이 고도까지 올라오면 고소 증세가 만만치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루크라에 새로 공항을 지었을까? 여기서 바라보는 조망도 무척 훌륭했다. 푸른 잔디가 깔린 사면에서 산악 마라톤을 하는 사람도 만났다. 나로선 숨 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 고도에서 마라톤이라니? 우리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라 그저 어리벙벙해졌다.

 

로지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또 수다를 떨었다. 수다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미국의 한 TV 방송국에서 예티 촬영을 나왔다고 부산했다. 촬영 장비에 인원까지 그 규모가 엄청났다. 그나저나 예티에 대한 소문만 분분했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직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이렇게 대규모 촬영팀을 보내다니 돈이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 가서 예티를 찍을 것인지는 직접 물어보지 못했다. 하여간 그네들 때문에 로지가 무척 시끄러웠다. 시끌법적한 분위기를 피해 몇 명 데리고 밖으로 맥주 한 잔 하러 나갔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농돌이 2013.06.30 22: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마음에 두고 있는 산입니다
    꼭 가보고 싶습니다
    멋진 사진과 풍광에 감사드립니다
    올 봄에 떠났어야 했는데,,,,, 목구녕이 포도청이라,,,,

  2. 보리올 2013.06.30 2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농돌이님, 에베레스트가 마음 속에 간절한 염원으로 남아 있으면 조만간 이루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자료가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몸 조심해서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3. 고윤 2013.06.30 22: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대단해요 저도 뭐든된다면 한번 가보고 싶네요 ㅜㅜ

  4. 보리올 2013.06.30 2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을 좋아하시면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는 꼭 한 번 다녀오시길 강추합니다. 고산 증세로 몸이 좀 불편하긴 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5. 설록차 2013.07.21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 중턱에 있는 좁은 길을 걸어가자면 다리가 후들거리지 않나요? 힐러리경이 세운 학교라니 더 자세히 드려다 보게 됩니다...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우리 수건돌리기와 비슷한듯~실제 웅장한 산을 보게 되면 어떤 느낌일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예티가 무엇입니까? 추가) 틀린 글자를 수정했더니 글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6. 보리올 2013.07.21 15: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산길은 양호한 편입니다. 더 위험한 구간도 많지요. 예티란 전설로만 이야기되는 히말라야 설인(雪人)을 말합니다. 하얀 털을 가진 커다란 고릴라를 연상하시면 됩니다. 설인을 봤다는 사람은 제법 많습니다만 어느 것도 증명이 되지는 않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