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을 기해 섬머타임이 해제되어 새벽 3시가 2시로 바뀌었다. 아침이 한 시간 일찍 찾아온 것이다. 수프를 끓이고 거기에 과일과 요구르트를 더해 아침을 때웠다. 밤새 비가 많이 내린 것 같았다. 알베르게를 나설 때는 비가 그쳤지만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기세였다. 아스토르가를 빠져나오며 현대식으로 지은 산 페드로 성당을 지났다. 여기도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날씨도 스산하고 풍경도 단조로워 카메라를 꺼낼 일이 거의 없었다. 그 덕분에 걷는 속도는 제법 빨랐다. 마을 몇 개를 예상보다 빨리 통과한 것이다. 엘 간소((El Ganso)의 성당 입구에 젖지 않은 벤치가 있어 거기 앉아 과일로 간식을 했다. 어제 알베르게에 함께 묵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내 앞을 지나쳐 먼저 가버렸다.

 

길을 걷다가 이두열 선생을 다시 만나 함께 걸었다. 연배도 나보다 위였고 대기업과 신문사, 중소기업 등에서 근무한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요즘 이 순례길에 왜 그리 열광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화제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 새 라바날 델 카미노(Rabanal del Camino)에 도착했다. 이두열 선생은 다른 일행이 있어 여기서 쉬고 가겠다 해서 다시 혼자 걷게 되었다. 라바날은 인구 50명이 사는 조그만 마을이지만 알베르게는 네 개나 될 정도로 순례자들이 많이 묵고 가는 마을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높은 지점으로 오르기 전에 여기서 나름대로 각오를 다진다고나 할까.

 

라바날은 마라가테리아(Maragateria)에 속하는 고장이다. 마라가테리아란 마라가토라 불리는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말하는데, 레온 주의 남서쪽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다. 그들이 짓고 살던 특유의 돌집을 마라가토 스타일이라 하기에 관심을 가지고 봤지만 그리 대단하진 않았다. 그들의 가옥을 보면서 여긴 돌이 흔한 모양이로군, 돌로 튼튼하게도 집을 지었네 하는 생각만 잠시 스쳤다. 난 라바날에 머무르기보다는 가능하면 정상 가까이로 올라갔으면 했다. 라바날을 벗어나는 지점에 샘이 있어 거기서 홀로 점심을 먹었다. 어제 수퍼마켓에서 산 멕시칸 토르티야에 땅콩버터를 발라 먹었다. 산 속으로 캠핑을 갈 때 식량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자주 써먹던 방식인데 어제 수퍼마켓에서 멕시칸 토르티야를 처음 발견해 구입을 했었다. 거기에 사과와 삶은 계란을 추가하니 점심으로 충분했다.

 

라바날부터는 계속 오르막이 이어졌다. 생장 피드포르에서 출발하는 카미노 프란세스, 즉 프랑스 길엔 큰 산 세 개가 있다고 보면 되는데, 피레네 산맥은 이미 초반에 넘었고 이번이 두 번째 산을 오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산을 넘는 것에 걱정이 많지만 난 전혀 신경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라바날이 해발 1,150m고 폰세바돈(Foncebadon)1,400m, 철제 십자가가 있는 최고점은 1,500m로 그리 높지가 않다. 오르막 경사도 심하지 않은 편이다. 해발 고도는 좀 있지만 험산은 아니란 이야기다. 잔돌이 많은 노면 상태와 비 내리는 날씨, 쌀쌀한 기온이 복병이라면 복병일 것이다. 늘 비슷한 날씨겠지만 오늘도 운무가 자욱해 시야를 가렸고,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오늘의 목적지로 삼은 폰세바돈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와 가게, 식당만 있을 뿐, 사람 사는 집은 폐허가 된 채로 흉물스럽게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거기에 안개까지 자욱하니 스산한 느낌마저 들었다. 유령 마을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순례자들이 늘어나면서 마을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들었다. 새로 신축하고 있는 건물도 분명 알베르게일 것이다.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1987년에 쓴 <순례자>라는 작품 속에 이 마을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개와 싸웠다고 하는데 난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진 못했다. 다섯 개나 되는 알베르게 중에 하나를 골라 들어갔더니 이두열 선생과 이영호 선생이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제 아스토르가 알베르게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던 독일 젊은이 셋도 이 알베르게로 들어왔다.

 

저녁은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순례자 메뉴로 하기로 했다. 배에선 쪼로록 소리가나는데 저녁은 7시에나 준단다. 낮잠을 한숨 잤다. 그래도 5시가 되질 않았다. 구름이 많고 날씨가 쌀쌀했지만 밖으로 나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차가운 공기 때문인지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저녁으로 파에야가 나왔다. 지름이 1m나 되는 쟁반에 파에야를 요리해 모두 17명이 나눠 먹었다. 샐러드와 함께 먹으니 궁합이 아주 잘 맞았다. 와인을 곁들여 배불리 먹었다. 우리 테이블에선 한국인 셋과 독일 젊은이 셋이 함께 식사를 했다. 독일에서 5년을 살았던 기억 때문인지 독일에서 왔다니 더 정감이 갔다. 헨드릭스라는 청년과 슈테피, 그리고 다른 아가씨는 뭐라 이름을 알려줬는데 너무 길어서 기억할 수가 없었다.

 

 

 

첫 마을인 발데비에하스(Valdeviejas)에 도착하니 에세 오모(Ecce Homo) 성당이 길가에 자리잡고 있어

유리창을 통해 성당 안을 구경했다. 신앙은 건강의 샘’이란 한글 문구도 보였다.

 

 

순례길 옆으로 숲이 나타났다. 인공 조림한 숲도 있었고 자연적으로 조성된 숲도 있었다.

그나마 숲에서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길 위에 선 순례자들에겐 한걸음 한걸음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산타 카탈리나(Santa Catalina)엔 돌로 지은 성당과 집들이 있었다. 파란색 칠을 한 대문이나 창문도 눈에 띄었다.

 

 

허물어진 돌집이 유난히 많았던 엘 간소. 산티아고 성당도 문이 닫혀 있었다.

 

라바날 초입에 자리잡은 벤디토 크리스토(Bendito Cristo) 성당

 

 

이 지역 특유의 마라가토 스타일을 보여주는 라바날의 가옥들

 

 

라바날의 아순시온(Asuncion) 성당은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을 지니고 있었다.

 

라바날에 있는 또 하나의 성당을 지났는데 이름도 모른 채 그냥 지나쳤다.

 

운무가 자욱한 길을 걸어 폰세바돈으로 오르고 있다.

 

 

 

무너져내린 폐가가 많아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폰세바돈 마을

 

 

폰세바돈의 가게에 들렀더니 가격표에 한글로 상품명을 적어 놓은 것이 보였다. 한국인이 많다는 반증이리라.

 

 

 

 

알베르게에서 순례자 메뉴로 내놓은 파에야가 커다란 쟁반에 담겨 나왔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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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17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먼 기억이지만 정말 저도 독일 사람들을 만나면 방갑더라구요. 아버지께서도 독일어를 아직 많이 기억하고 계세요?

    • 보리올 2016.02.17 1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일에서 살았던 기억 때문에 독일 사람들이 더 반가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 그들도 내가 독일에서 산 적이 있다면 반가워 하더구나. 그래서 대화를 이어가기가 쉬워지지. 내 독일어는 서바이벌 수준이라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

 

아침에 야곱에게 한국 라면을 끓여 줄까 물었더니 사양을 한다. 라면을 끓여 혼자 먹어야 했다. 야곱이 먼저 출발하고 나는 나중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한 때문인지 날은 밝았지만 해는 보이지 않았다. 일출도 없었다. 아침부터 빗방울이 떨어져 배낭 커버를 씌웠더니 바로 그친다. 가끔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동차 도로를 따라 산 마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를 지났다. 도로 폭이 꽤 넓었고 우주선 같이 생긴 저수조가 세워져 있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줄곧 도로를 따라 걷다가 가끔 터널같이 생긴 숲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에 닿기 전에도 무슨 탑처럼 생긴 건물이 세워져 있는데 이것의 용도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엔 오르비고 강을 건너는 아주 긴 다리가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길다는 푸엔테 데 오르비고(Puente de Orbigo)13세기에 지어졌는데, 이 다리에 돈 수에로(Don Suero)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사랑을 얻기 위해 수에로는 이 다리에서 유럽의 내노라하는 기사들과 결투를 벌여 300개의 창을 부러뜨리겠다고 맹세를 했다. 수에로는 1434년 이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룬 후 순례를 떠나 자기 목걸이를 산티아고 상에 걸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Don Quixote)에도 영감을 주었다. 요즘도 매년 6월이면 다리 옆에서 창으로 하는 시합이 열린다. 마을은 다리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다리 건너편이 중심인 것 같았다. 산 후안 성당은 문을 열지 않아 밖에서만 올려다 보았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를 벗어나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이 길은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Villares de Orbigo)로 향하는데, 1km를 더 돌아가지만 풍광이 좋다고 해서 택한 것이다. 밭에서 일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는 농부의 자전거를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가운데 있는 성당에 들렀다가 벤치에 앉아 빵과 과일로 점심을 먹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오더니 스페인어로 뭐라 묻는다. 내 추측으론 배낭 무게가 얼마나 되냐고 묻는 것 같은데 나도 정확히 몰라 그냥 웃어주고 말았다. 메세타가 끝을 보이는지 마을을 벗어나 구릉으로 올랐다. 산티바녜쓰(Santibanez) 마을은 농사 준비로 바빠 보였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 새로 씨앗을 뿌리기 위해 밭을 갈아엎기도 하고 어떤 트랙터는 씨앗을 가득 싣고 밭으로 가고 있었다. 늦가을에 심으면 아마 보리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산티바녜쓰에서 아스토르가(Astorga)까진 11km 거린데 의외로 오래 결렸다. 오늘 걷는 거리는 28km로 다른 날보단 짧은데 피로도는 더 했다. 오른쪽 발가락의 티눈은 여전히 신경이 쓰였다. 오후가 되면 통증이 심해져 다리를 딛기도 어려울 때가 있었다. 꾸준히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도네이션제 매점도 나타났지만 그냥 통과했다. 돌로 만든 성 토르비오 십자가(Cruceiro de Santo Toribio)가 세워진 고개에 섰다. 산 후스토(San Justo)와 아스토르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뒤에 버티고 선 칸타브리카(Cantabrica) 산맥도 보였다. 눈에 들어오면 다 온 것이라 생각했는데 산 후스토에서 아스토르가까지 3km 거리가 꽤 멀었다. 아스토르가는 세비야(Sevilla)에서 올라오는 순례길, 즉 은의 길(via de la plata)을 만나는 곳이었다. 여기서 메세타 지역과 작별을 했다.

 

아스토르가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었다. 한국인도 몇 명 보였다. 침대 정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알베르게 바로 앞에서 무슨 유적 발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스페인어 설명만 있어 뭔지는 모르겠다. 시청 앞 에스파냐 광장을 지나 대성당으로 갔다. 대성당은 규모가 꽤 컸지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에피스코팔 궁전(Palacio Episcopal)도 문이 닫혔다. 이 궁전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가 설계한 것으로 가우디가 카탈로니아 밖에 지은 건축물 세 개 중의 하나라 했다. 1889년에 착공해 1913년에 완공했다. 원래는 주교의 거처로 지어졌으나 한때는 팔랑헤라는 프랑코 시대의 정당 사무실로 쓰였고 지금은 순례 박물관(Museo de los Caminos)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대성당이나 궁전 모두 겉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수퍼마켓에 들러 시장을 봤다. 엄청 다양한 물품들이 있어 무엇을 해먹을지 머릿속이 분주했다. 빵과 과일에 캔으로 된 생선, 그리고 맥주와 와인을 샀다. 캔맥주는 하나에 35센트, 와인은 한 병에 2유로도 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사재기를 하고 싶었지만 배낭에 지고 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다음에 도착하는 마을에도 대형 수퍼마켓이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모처럼 냄비에 밥을 해서 배불리 먹었다. 서울에서 온 이두열 선생, 이영호 선생을 식당에서 만나 와인을 같이 나누어 마셨다. 며칠 전에 길에서 만났던 권영익 선생도 합류를 했다. 이 양반은 이번이 여섯 번째 산티아고 순례라 했다. 순례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전역을 하고 순례에 나선 젊은이 둘과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입대일자와 제대일자가 같은 동기생을 여기서 만났다고 신기해 했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 탓에 일출도 대충 넘어가고 말았다.

 

이른 시각에 산 마틴 델 카미노를 지나쳤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로 향하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걷다가 가끔 숲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는 중세 시대에 놓여진 멋진 다리 양쪽에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에 도착해 마을에 있는 성당에도 들렀다.

 

 

들판에 씨앗을 뿌리기 위해 분주했던 산티바녜쓰 마을

 

허물어진 흙담 옆에 도네이션제 매점을 차려 놓았지만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십자가가 세워진 고개 위에선 산 후스토와 아스트로가가 내려다 보였다.

 

산 후스토는 별다른 특징은 없었으나 초입에 순례자 상이 세워져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대성당 첨탑을 따라 아스토르가로 들어섰다. 여기도 순례자 상이 있었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아스토르가 시청사는 세 개의 타워를 가지고 있었다.

 

 

가우디가 설계한 에피스코팔 궁전. 가우디는 이 건물 신축에 이견이 많았던것으로 보인다.

 

 

 

 

아스토르가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걸작품이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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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15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 역사, 미술시간에 배웠던 고딕, 바로크 양식이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때는 시험 잘 보기 위해 열심히 외웠는데 정말 그때 그 순간인것 같습니다.

    • 보리올 2016.02.16 0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찌 배웠다고 그 모든 것을 다 알겠냐. 그런 것을 배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만 해도 대단하지. 살아가면서 그게 궁금한 경우가 생겨 다시 책을 보면 그땐 확실히 기억을 하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