걍진곰파까지는 완만한 길을 따라 오른다. 빠른 걸음이면 2시간이면 충분할 것이지만 쉬면서 천천히 걸어 3시간이 걸렸다. 가끔씩 들판에 한가롭게 풀을 뜯는 야크들이 눈에 띈다. 야크란 히말라야에서만 볼 수 있는 동물이니 이 또한 히말라야 고유의 풍경이라 할만 하다.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더들의 모습도 보였다.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희열은 과연 어떨까?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한 대장이 먼저 하산을 하겠다 한다. 특식으로 라면을 끓였다. 사실 한 대장 가기 전에 닭도리탕을 대접하려 했지만 너무 바가지를 씌우려해서 그만 두었다. 보통 닭 한 마리에 600루피면 살 수 있었는데, 여기선 숫제 팔지 않겠다는 집도 있고 어느 집은 한 마리에 2,000루피를 달라고 한다. 닭도리탕 좋아하는 한 대장이 섭섭해 해도 이런 금액으로는 살 마음이 조금도 없다. 

 

가벼운 허그로 작별을 마치곤 한 대장은 올라온 길로, 우리는 걍진리(Kyanjin Ri)를 오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미리 받은 트레킹 정보로는 걍진리의 고도가 4,100m라 해서 300m만 오르면 되는 줄 알았는데 가이드 지반은 고도를 4,500m라 하고 지도에는 4,770m라 적어 놓았다. 오르막 경사도 만만치 않았다.

 

걍진곰파에서 두시간 반을 올라 걍진리 정상에 섰다. 걍진곰파에서 무려 730m나 올라온 것이다. 손목시계에 있는 고도계로는 4,582m가 나온다. 고소증세로 걱정이 앞섰지만 일행들 컨디션이 그리 나쁘지 않다. 나를 빼곤 4,500m가 넘는 높이를 처음 경험하는데 다들 발걸음이 가벼워 걱정을 덜었다. 걍진리에 오를 수 있었던 행운에 가벼운 허그로 서로를 축하했다.  

 

걍진리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풍경은 단연 일품이었다. 찬바람이 쌩쌩 불어오는 쌀쌀한 날씨였지만 우리는 이 장관에 넋이 팔려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랑탕 계곡 트레킹이 유명한 이유가 바로 이 풍경 때문 아니겠는가. 사실 걍진곰파까지 이르는 트레킹 코스가 그리 뛰어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라 칭송했다는데 당시엔 그랬을지 모르지만 잘못 와전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걍진리에서의 조망은 이런 생각을 다소 떨쳐 버리게 했다.

 

무사히 4,500m 지점을 찍고 온 기념으로 로지로 돌아와 맥주 한 잔씩을 돌렸다. 가이드가 내일 아침 출발을 30분 늦추자고 한다. 당연히 기상 시각도 30분 순연될터. 그러면 장장 11시간을 잠자리에서 버텨야 하는데 이 고역을 어찌 할꼬? 하루 종일 걷거나 산을 올라 몸은 고단하지만 11시간을 딱딱한 침대에서 버티는 것은 장난이 아니다. 전기라도 있으면 책이라도 읽으련만.

 

 

 

 

 

 

 

 

 

 

 

 

 

 

 

 

 

 

 

  

'산에 들다 - 히말라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랑탕 트레킹 - 6  (0) 2013.10.07
랑탕 트레킹 - 5  (0) 2013.10.06
랑탕 트레킹 - 4  (2) 2013.10.05
랑탕 트레킹 - 3  (4) 2013.10.04
랑탕 트레킹 - 2  (4) 2013.10.03
랑탕 트레킹 - 1  (4) 2013.10.02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안영숙 2013.10.11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곳, 강진리 정상의 풍광이 제일 으뜸이었다, 이곳을 보러 며칠간 고생한것 같았다.
    그래서 기분이 너무좋아 못하는 맥주와 pop corn이 유달리 맛있어 과음에? 꽁치
    김치찌게 과식에 고산증이 왔나 모르겠다. 어째든간에 걸음만은 뒤지지 않고
    잘 걸었던것은 사실이고,이남기님의 위로와 간호로 빨리 쾌유해서 남은 여행이 즐거웠읍니다.

  2. 보리올 2013.10.11 15: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걍진리의 경치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통과의례로 고산증세가 스쳐 지나갔고요. 맥주, 김치찌개는 고산병과 아무 상관없을 겁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호텔 밖의 분위기가 어수선한 느낌에 잠을 깼다. 간밤에 엉뚱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짐을 나르던 야크 여덟 마리가 밤새 어디론가 도망을 쳤다고 한다. 로부체로 도망을 간 것 같다고 몰이꾼이 그 방향으로 쫓아간 사이 우리 팀의 사다인 옹추가 짐을 지키는 묘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별난 일이 다 벌어진다 싶었다. 단조로운 트레킹에 변화를 주려는 야크의 충정으로 여기기로 했다.  

  

페리체를 출발해 계곡을 따라 완만한 경사를 치고 올랐다. 오늘은 고도 700m를 올려 해발 4,900m까지 오르니 다들 긴장이 되는 하루리라. 얕은 개울을 건널 때는 살얼음 위를 조심조심 건너야 했다. 11월 말이면 얼음이 꽁꽁 얼어붙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구나 산길에도 눈을 전혀 볼 수가 없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눈과 얼음이 없는 초겨울의 히말라야를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 여기도 지구 온난화는 피해갈 수가 없는 모양이다.

 

어제 저녁까지는 식사를 거르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정모는 우리의 팀웍을 무척 부러워했다. 30여 명 일행 중에 아직까지 고산병으로 뻗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오늘 구간에선 고도를 높일수록 힘에 겨워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늘이 고비다. 조금만 더 힘내라 서로를 격려하면서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 수밖에.

 

세 시간을 꾸준히 오른 다음에 투크라(Thukla, 4620m)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다. 오늘은 유독 문경 형수와 진원 부부가 힘들어 한다. 투크라 로지에선 촐라체가 바로 코앞에 우뚝 버티고 있다. 우직한 성격의 경상도 산사나이, 박정헌 대장이 올랐던 등반 루트를 어림짐작으로 더듬어 보았다. <>이란 책에서 생사의 기로에 섰던 원정 기록을 읽었는데 그 현장에 내가 서 있다니 이 감격을 뭐라 표현할까.

 

투크라에서 세르파 무덤에 이르는 오르막에서 대부분 녹초가 되었다.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점점 넓어진다. 세르파 무덤엔 여기저기 탑이 세워져 있어 산에서 죽어간 영혼들을 기리고 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유명을 달리한 현장을 보니 마음이 짠해졌다. 죽음을 돈과 명예로 바꿀 수는 없을텐데고도를 높이면서 다리가 풀리고 때론 구토까지 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팀닥터 기탁 형님의 손길이 무척 바빠졌다.

 

쿰부 빙하 하단에 해당하는 모레인 지역을 따라 걸었다. 돌과 모래로 덮여 있어 빙하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돌이 많은 너덜지대라고나 할까. 로부체의 칼라파타르 로지에 들었다. 로지 앞으로 메라 피크(Mehra Peak, 5820m)가 자리잡고 있었고, 그 왼쪽엔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눕체가 버티고 있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직 에베레스트와 로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원래 주인공은 늘 뒤에 나오는 법 아닌가?

 

아직까진 큰 사고없이 어려움을 헤쳐 나왔다. 인원이 많음에도 특유의 팀웍으로 힘든 상황을 잘 이겨내고 있었다. 팀에 흐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한 몫을 했다. 허 대장의 은근한 카리스마가 작용한 탓일 게다. 저녁 식사 전에 대원들이 모여 일정을 협의했다. 고락셉(Gorakshep)까진 모두가 함께 운행을 하고, 내일 오후 칼라파타르(Kala Patthar)와 모레 오전에 갈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EBC)는 각자의 컨디션에 따라 다녀오기로 했다.

 

칼라파타르 로지는 지금까지 묵었던 로지에 비해 시설이 형편 없었다. 아예 밖에서 비박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생수 한 병에도 280루피를 달란다. 산 아래에 비해선 거의 7배 수준이다. 야크 똥을 태우는 난로 주변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소에서의 잠은 꼭 환각 상태와 비슷해 별 희한한 꿈을 꾸게 된다. 그것이 싫어 가능하면 늦게 자려고 일부러 밤늦게까지 버틴다. 열심히 야크 똥을 난로에 부었다. 이 야크 똥도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똥도 돈을 주고 사야 하다니……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설록차 2013.07.30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웅장한 에베레스트를 보니 벤쿠버 주위의 산이 귀엽게 보이네요...실제 눈으로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상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ㅠㅠ 맥주값은 고도와 비례해서 올라간다 하셨지요...그럼 물값도 마찬가지...^^

  2. 보리올 2013.07.30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말라야의 산들, 그 중에서 에베레스트의 위용은 대단합니다. 무척 위압적이라고 할까요. 열심히 운동하시고 체력 키우셔서 직접 한번 가보세요.

 

아침부터 묘한 설전이 일어났다. 아니, 설전이라고 하기 보다는 기싸움이란 표현이 맞겠다. 음식을 앞에 놓고 허 대장이 먹은만큼 간다니 많이 먹어둬라는 격려성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박 대장이 즉석에서 받아쳤다. “난 많이 먹고 힘 못 쓰는 놈이 가장 싫더라며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거 많이 먹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눈치껏 조금 먹어야 하는 건지 좀 헛깔리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난 많이 먹으란 쪽에 내 한 표를 던지고 싶었다.

 

팡보체(Phangboche) 가는 길은 처음엔 계곡을 따라 내리막길을 걷는다. 이 코스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나무 숲이 나타났다. 에베레스트만 다섯 번이나 등정했다는 전설적인 세르파 순다레가 자살했다는 소문이 있는 다리를 건넜다. 그는 왜 갑자기 찾아온 돈과 명예를 버리고 훌쩍 세상을 떴을까? 그의 죽음엔 몇 가지 소문이 떠돈다. 마누라 등쌀에 못이겨 진짜로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 다리에서 실족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다리를 건너며 지금은 떠나고 없는 사람의 이름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팡보체에서 일행들이 모두 발을 멈췄다.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새로 코리안 루트를 내려했던 오희준, 이현조 대원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팡보체 길가에 추모탑을 세운것이다. 미리 준비해 놓은 탑에 박 대장이 동판을 끼워 넣어 탑을 완성한 것이다.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두 친구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 오랜 세월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게 형이라 불러줬던 친구들인데젯상을 차려 놓고 모두 고인에게 절을 올리며 명복을 빌었다. 인당 형님과 박 대장은 여기서 헬기를 타고 먼저 카트만두로 돌아가기로 했다.

 

쇼마레(Shomare)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처음 히말라야에 온 봉주 형님과 사카이 다니씨 걱정을 많이 했건만 의외로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줄곧 선두권을 유지하는 두 노익장의 투혼에 내심 감탄하고 있던 터. 어디서 저런 괴력이 나오는 것일까 궁금해 살짝 물어 보았다. 봉주 형님은 뒤에 처지면 아예 포기할까봐 이를 악물고 앞에 나서고 있다 하고, 사카이씨는 꾸준히 운동을 한 덕분에 아직은 큰 어려움이 없다 한다.

 

꾸준히 오르막 길을 걸은 후 계곡을 건너니 바로 페리체(Pheriche)가 보인다. 오늘부터 해발 고도 4,000m 이상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공기 밀도가 약해지고 공기 속에 있는 산소량까지 현격하게 줄어든 만큼 몸에서 슬슬 이상 징후들이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속이 메슥거려 토할 같고 머리에 두통이 오기 시작하며 온몸에 힘이 빠지면 일단 고소 증세가 것으로 보면 된다. 웬만 하면 참아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페리체에선 아마다블람의 모습이 가까이 보였다. 지금까지 멀리서 봤던 모습과는 꽤 다른 형상이었다. 에베레스트와 로체는 우리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계곡 건너편으로 타부체(Tabuche, 6367m)와 촐라체(Cholache, 6335m), 로부체(Lobuche, 6119m) 등 세 봉우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페리체의 해질녘 풍경이 무척 평화롭고 아름다워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야크가 여유롭게 풀을 뜯고 집집마다 밥을 짓는 연기가 굴뚝에서 솟는다.

 

우리가 투숙한 히말라야 호텔은 식당이 엄청 컸다. 지금까진 성선이와 한 방을 쓰다가 오늘부터는 정모와 쓰게 되었다. 저녁 식사 후엔 사진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모아 두 시간 사진 강좌를 열었다. 4,200m의 고소에서 강의를 한답시고 이렇게 말을 많이 하면 고소가 오는 것은 아닐까 살짝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긴긴 밤을 짧게 보낼 수 있다면 내 무엇을 마다하랴.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3.07.27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3.07.27 0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글을 달기가 좀 망설여졌습니다. 제가 남들보다 더 많은 곳을 다닌 것도 아니고 글과 사진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이런 칭찬을 들어야 하는가 싶었거든요. 총량적으로 본다면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역량을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단지 그 사람의 기질이나 성향이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요. 전 이상하게 자연에 매료되고 거기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그런 평범한 사람입니다. 설록차님은 제가 가지지 못한 또 다른 장점을 가지고 계실테니 이 세상이 모두 공평하다 봅니다.

 

고소 적응을 한다고 일부러 쿰중까지 다녀왔건만 아침부터 이상하게 발걸음이 무겁다. 계곡을 따라 잘 닦인 길을 줄지어 오른다. 걷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숨을 고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어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필수는 그런대로 회복이 된 것 같은데, 석균이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처음 히말라야를 찾은 사람에게 말로만 들었던 고소 증세가 점점 현실이 되어 가는 듯 했다. 하지만 어쩌랴. 고산에 들면 많은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인 것을. 

 

남체를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 기념탑을 만났다. 1953년에 초등을 했으니 2003년에 세운 탑이다. 기념탑 주변에서 아마다블람이 빤히 올려다 보였다. 일행들보다 조금 앞서 정모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캉주마 마을에 도착했다. 길목에 좌판을 설치해 놓고 각종 장신구를 팔고 있었다. 이렇게 조악해 보이는 장신구를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가게에서 밀크 티 한 잔으로 목을 축였다. 트레킹을 시작해 처음으로 야크를 보았다. 여기 사람들에게 야크는 매우 소중한 재산이다. 우유를 짜서 야크 치즈를 만들고 짐을 나르는 운송 수단으로도 이용한다. 심지어 야크 똥도 햇볕에 잘 말리면 훌륭한 땔감이 된다.

 

계곡을 건너기 위해 한참을 내려선 다음에야 풍기텡가 마을에 도착했다. 점심으로 맛있는 칼국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기를 채우고 따가운 햇살을 피해 낮잠도 청했다. 허 화백의 일본인 친구인 사카이 다니씨는 컨디션이 좋은지 칼국수도 잘 먹는다. 히말라야가 초행임에도 고소 증세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미리 연습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인 모양이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지그재그 산길을 따라 무거운 다리를 옮긴다. 건조한 날씨 탓에 길에서 엄청난 먼지가 일었다. 그룹이 열을 지어 가다 보니 앞사람이 일으킨 먼지를 뒷사람이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호흡을 잠시 멈추면 금방 머리가 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초겨울 히말라야에서 눈이 없는 건조한 날씨와 이렇게 심한 먼지를 만날 것이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앞사람과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거나 아예 맨앞으로 나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속도를 좀 올렸다. 먼지 속에서 고도 600m를 올리느라 나름 고생이 많았다.      

 

텡보체(Tengboche)에 도착했다. 능선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마을 텡보체에는 규모가 큰 티벳 불교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쿰부 지역은 티벳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티벳 강점을 피해 티벳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에 많이 정착해 산다. 마을 어디에나 티벳 불교의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얼굴 생김새와 의상도 산 아래와는 달라 보였다.

 

히말라야 뷰 로지에 묵었다. 산악인 출신이라는 여주인은 박대장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이었다. 저녁 메뉴는 비빔밥. 고추장을 듬쁙 넣고 쓱쓱 비벼 먹었다. 두세 명을 제외하곤 다들 식욕이 왕성해 보였다. 여주인이 서비스라고 만두 몇 접시를 내왔다. 나중엔 와인까지 들고 온다. 박 대장에게 보이는 호의에 우리가 호강한다. 몸 컨디션이 그리 나쁘지 않아 나도 와인 몇 잔을 받아 마셨다.

 

카메라를 들고 로지 밖으로 나왔다. 조그만 언덕 위에 대한민국의 에베레스트 등정 2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흔히 고상돈 기념비라 불리지만 비석 어디에도 고상돈이란 이름은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 사원에서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몇몇도 스님들을 따라 예불이 열리는 법당으로 들어섰다. 1시간 20분을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했다. 그렇게 조촐하게나마 오희준과 이현조의 명복을 비는 시간을 가졌다.

 

로지 앞뜰 평상에 둘러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아마다블람 왼쪽 기슭이 밝아오더니 갑자기 둥근 달이 불쑥 떠올랐다. 보름에서 하루나 이틀 지난 모습이었다. 그래도 달이 무척 밝았다. 하늘을 수놓던 별들이 달의 출현에 모두 숨을 죽인다. 이런 기막힌 월출의 순간을 그냥 넘길 기탁 형님이 아니지 않는가. 맥주와 와인을 시켰다. 해발 3,800m가 넘는 높이에서 달에 취해 또 술을 마시다니 내 스스로 자충수를 두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 순간을 놓치면 후에 무척 후회가 될 것 같았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집팔이소녀 2013.07.02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영만 선생님 아니신가???

  2. 보리올 2013.07.03 0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화가 허영만 선생님이 맞습니다, 오랜 산행을 통해 우리는 허 대장님이라 부릅니다. 산행에선 부드럽고 은근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대단한 분입니다.

 

바깥 온도가 영하로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텐트 안 물통의 물이 모두 얼어 버렸다. 삼도(Samdo)로 향했다. 어제 베이스 캠프를 다녀온 탓인지 다리가 무겁다. 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았다. 3시간 걸려 도착한 삼도. 티벳(Tibet)으로 가는 교역로가 있던 곳답게 수십 마리 야크 떼에 짐을 싣고 있던 대상들을 만났다. 무슨 물건을 나르냐고 물었더니 주로 소금과 곡물이 교역 대상이란다. 티벳까지 보통 6일을 걸어간다니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오늘 점심도 칼국수. 점심을 마치고 잠시 낮잠을 청했다. 고도 탓인지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 아침에 마나슬루 봉과 작별을 고했는데 여기서 다시 만났다. 그런데 방향이 달라져 그런지 마나슬루의 모습이 영 낯설어 보였다. 다람사라(Dharamsala)까지 천천히 걸으며 고도를 1,000m나 올린다. 고도 4,000m를 지난 지도 한참이 지났다.

 

다람사라는 인가 한 채 없는 허허벌판이다. 해발 4,460m의 초원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어제 베이스 캠프를 다녀온 때문인지 고소 적응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늘 우리보다 늦게 도착하던 포터들이 오늘따라 먼저 도착해 텐트를 쳐놓았다. 이틀을 일 없이 편히 쉬더니 원기가 뻗치는 모양이다. 나무도 한 그루 없는 이 황량한 벌판 어디서 나무를 구했는지 모닥불을 피워 추위를 피한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