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도 BC주 주도답게 돌아볼 곳이 의외로 많다. 빅토리아에 있는 아트 갤러리나 박물관을 모두 돌아볼 수는 없는 일이라 이너 하버에서 가까운 곳만 몇 군데 들러 보았다. 주 의사장 바로 옆에 위치한 로열 BC 박물관(Royal BC Museum)1886년에 세워져 제법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왜 로열이란 단어가 붙었는지 내심 궁금했는데, 이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사용 승인을 받은 사항이란다. 이 박물관엔 주로 BC주의 역사적 자료들을 수집해 2, 3층에 전시를 하고 있었다. 특히 인간과 자연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많았다. 옛날 거리 풍경도 정겨웠고, 원주민 갤러리나 자연사 갤러리에도 볼거리가 많아 의외로 시간이 걸렸다.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아 설렁설렁 지나쳐야만 했다.

 

미니어처 월드(Miniature World)는 옛날 마을이나 가옥을 미니어처로 재현해 놓은 박물관으로 엠프레스 호텔 옆에 자리잡고 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작고 정교하게 만든 모형들을 85점이나 전시하고 있었다. 마치 소인국을 방문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50개가 넘는 방을 가진 돌 하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하고, 1880년대 캐나다 내셔널 레일웨이(CN)를 본 따 만든 철도 모형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일부러 작게 만든 모형에서 세계 제일의 크기가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그 외에도 세계대전 당시의 시가전 모습, 유럽의 성채, 서부 개척 시대나 북미 원주민 마을의 가옥, 놀이공원, 서커스 등 다양한 주제로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되겠단 생각을 하면서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았다.

 

로열 런던 밀랍 박물관(Royal London Wax Museum)은 아쉽게도 2010년에 문을 닫았다. 이 사진들은 문을 닫기 이전에 찍은 것들이다. 한 가족이 50년간 운영하던 박물관이었는데, 여기도 무슨 까닭으로 로열이란 단어를 썼는지 모르겠다. 영국 런던에 있는 마담 투소(Madame Tussauds) 박물관과 비슷하게 밀랍으로 유명인사들의 인형을 만들어 놓았다. 엘리자베스 2세와 찰스 황태자, 다이애나 비 등 영국 왕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세계의 유명 정치인, 영화배우, 가수, 운동선수도 보였다. 이 박물관이 문을 닫기 전에 영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인형을 들여와 마지막으로 자리를 차지했다고 한다.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던 300여 개의 인형 가운데 내 눈길을 잡아 끈 것은 테리 팍스(Terry Fox)의 밀랍 인형과 1953년 에베레스트를 인류 최초로 오른 뉴질랜드의 힐러리 경과 네팔 세르파 텐징 노르게이의 밀랍 인형이었다.

 

 

 

 

 

 

실물보다는 사진 자료, 설명 자료가 많았던 로열 BC 박물관은 볼거리가 무척 많았다.

옛 풍경 사진들이 관심을 끌었고 이 지역에 살았던 원주민들 이야기도 관심 있게 읽었다.

 

 

 

 

 

 

옛날 마을 모습이나 생활상을 아주 작은 모형으로 정교하게 꾸며놓은 미니어처 월드도 역사 공부엔 아주 좋은 곳이었다.

 

 

 

 

 

 

 

밀랍 박물관으로는 북미 최초로 문을 열었다고 하는 로열 런던 밀랍 박물관은 현재 문을 닫아 더 이상은 볼 수가 없다.

300여 점의 인형이 다시 햇볕을 보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6.10.04 2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볼거리가 풍부하네요! 미래의 저의 자식들이 참 좋아하겠어요! ^^ 딱딱한 글보다 훨씬 생동감있어보여요 ~

 

우리가 하와이를 방문한 가장 큰 목적은 해발 4,169m의 마우나 로아(Mauna Loa)를 오르기 위함이었다. 킬라우에아 방문자 센터 부근에서 시작하는 마우나 로아 트레일을 타면 대개 23일 또는 34일의 일정으로 천천히 고소 적응을 하면서 오르지만 우리는 정상을 당일에 오르기로 했다. 마우나 로아 북동쪽 사면에 기상관측소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이 해발 3,399m에 위치하니 고도 800m만 올리면 된다. 산행 거리는 정상까지 편도 6.2마일. 고산병 증세를 느낄 수 있는 고도에서 왕복 20km를 걸어야 하니 적어도 8시간에서 10시간은 잡아야 했다. 더구나 우리에겐 촬영팀이 함께 있으니 시간은 더 걸릴 지도 몰랐다.

 

마우나 로아 바로 이웃에 마우나 케아(Mauna Kea)가 버티고 있다. 하와이 말로 마우나 로아는 긴 산이란 의미고, 마우나 케아는 흰 산이라 한다. 해발 고도는 엇비슷해 보이지만 마우나 케아가 36m인가 더 높아 하와이 제 1봉의 위치를 차지했다. 멀리서 보면 두 봉우리 모두 완만한 둔덕으로 보여 고산다운 면모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자랑거리는 많았다. 마우나 로아는 산 자체의 면적과 부피를 따지면 세계에서 가장 큰 산괴를 자랑한다 하고, 마우나 케아 역시 해저에서부터 높이를 재면 에베레스트보다도 훨씬 높은 10,203m라고 한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두 산을 소개하는 모든 자료에 그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놓아 자연스레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다.

 

비가 내리는 힐로(Hilo)를 출발할 때는 솔직히 우중산행이 걱정스러웠다. 200번 도로를 벗어나 마우나 로아 접근로로 꺾어지는 지점에서 다행스럽게도 구름 위로 올라서며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 아래 구름이 깔렸으니 꽤 높이 올라온 모양이었다. 기상관측소까지는 아스팔트를 깔아 놓았지만 차 한 대 겨우 다닐 수 있는 외길이었다. 길 양쪽으로 검은 화산석만 깔려 있어 혹성 탈출에나 나오는 외계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커브를 돌 때마다 차창을 통해 마우나 케아가 그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마우나 케아 정상엔 천문관측소가 몇 개 있었다. 해발 고도도 높고 태평양 한가운데 홀로 떨어져 있어 천체 관측에 아주 좋은 조건을 지녔다고 한다.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벌써부터 머리가 띵하다는 사람도 나왔다. 바닷가에서 단번에 해발 3,399m까지 차로 올랐으니 산소 부족을 느끼는 건 당연한 현상이리라. 우리가 오르는 업저버토리 트레일(Observatory Trail)에는 표지판이 그리 많지 않았다. 정상까지 두세 개 표지판을 보았을 뿐이었다. 수십 미터 간격으로 놓여있는 돌무더기, 즉 케언(Cairn)을 주의깊게 찾아 그것을 따라야 했다. 사방이 온통 거무스름한 화산석만 깔려있는 특이한 풍경이 산행 내내 계속되었다. 가끔 누렇고 붉으스름한 색조도 나타나긴 했지만 검은색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별난 세상을 걷는 낯설음이 느껴졌고, 거기에 활화산을 오른다는 일말의 두려움, 고산병에 대한 걱정까지 더해져 마음이 묘하게 요동쳤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다녀온 뒤, 카트만두보다는 한적한 전원 숙소를 찾아 하티반(Haatiban) 리조트로 이동했다. 카트만두 외곽으로 한 시간 가량 빠져 나간 후, 어느 시골 마을에서 버스가 멈췄다. 여기서부턴 길이 좁아 리조트 차량으로 갈아타야 한단다. 짚 몇 대에 분승해 구불구불 소나무가 많은 언덕길을 올랐다. 벌써 어둠이 내려앉아 리조트 전체를 둘러볼 수는 없었다. 이렇게 하티반 리조트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하티반 리조트는 방갈로 형태로 숙소를 만들어 놓아 방이 떨어져 있었다. 허영만 화백의 일본인 친구인 사카이 다니씨와 한 방을 쓰게 되었다. 내가 일본어를 조금 하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짐을 풀고 식당에 모였더니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지 전등 대신 촛불을 켜놓았다. 우와, 약간은 어두운 분위기가 오히려 운치가 있어 좋았다. 그래도 일부 지역은 자가 발전으로 불을 밝혀 놓아 큰 불편은 없었다.

 

카트만두의 야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맥주 한 잔씩 마셨다. 정확히 오후 7 30분이 되니까 전기가 들어온다. 일단 헤드램프를 켜고 샤워하는 것은 면했다. 실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부페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원래는 통돼지 바베큐를 하기로 했으나 하티반 측에서 반대가 심했단다. 그 대신 박영석 대장이 카트만두에서 돼지고기 수육을 잔뜩 사들고 왔다. 좋은 안주가 도착한 핑계로 럼주를 몇 잔 받아 마셨더니 금방 취기가 오른다.

 

여기서 에베레스트가 보인다고 해서 일출 시각에 맞춰 테라스로 나갔다. 안개가 너무 자욱해 일출은 보지를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하더니 멀리 카트만두 시내와 그 뒤로 설산이 자태를 드러낸다. 에베레스트는 어느 봉우리인지 식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야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까지 다가가 설산을 보고 왔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발 준비를 했다. 짚을 타고 다시 큰길까지 나와 버스로 갈아 달탔다.

 

 

 

 

 

 

낮에는 카트만두에서 각자 자유 시간을 갖은 후 저녁은 고급 달밧에 네팔 전통춤을 감상할 수 있는 보전 그리허(Bhojan Griha)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 식당은 150년 전에 세워진 궁전을 개조해 만든 고급 레스토랑으로, 네팔에서는 전통 무용과 전통 음식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유명한 곳이다. 솔직히 난 벌써 몇 번을 다녀간 곳이라 그리 호기심이 많진 않았다.

 

종업원이 곡예를 부리듯 럭시를 따라준다. 팁을 적당히 쥐어주면 럭시는 거의 무한 리필이다. 치킨 커리가 들어간 고급 달밧이 기본으로 나오는데, 네팔 사람들처럼 손으로 주물러 먹어도 되고 숟가락을 달래서 먹어도 된다. 우리 입맛에도 맞아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다. 오후 7시가 되면 넓은 방으로 악대와 무용수가 들어와 공연을 시작한다. 저녁 식사는 가능하면 그 전에 마치는 것이 좋다. 남여 무용수들이 짝을 이뤄 네팔에 있는 일곱 개 부족의 전통춤을 보여준다. 음율도 흥겹고 춤사위로 꽤나 현란하다. 어느 정도 흥이 돋우면 손님들을 나오라 해서 함께 춤을 춘다. 네팔 전통춤과 우리의 막춤이 마구 섞여 무척 흥겨운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PartyLUV 2013.07.16 1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즐거워 보이네요~^^
    저도 함 꼭 가보고 싶네요~
    좋은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2. 올뺌씨 2013.07.16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커리 손으로 먹는거 꼭 한번 해보고 싶네요~
    저게 인도와 네팔 여행의 로망이었는데.

    화장실 문화 빼구요;;

    • 보리올 2013.07.16 14: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커리를 손으로 드시는 게 로망이셨다구요? 저는 잘 안되던데요. 아직도 숟가락을 쓰고 있답니다. 화장실은 그런대로 버틸만 하던데요.

 

오전 7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5시에 일어났다. 예약은 되어 있었지만 아차 하면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단다. 다와같은 친구가 급히 자리를 내놓으라 하면 항공사에선 절대 거절을 하지 못한단다. 일찍 공항에 나가 눈도장을 찍는 것이 좋다고 해서 그러자 했다. 다행히 비행기 네 대가 비슷한 시각대에 들어와 우리 일행 모두는 인원을 나눠 타고 루크라를 떠날 수 있었다.

 

카트만두에 도착해 야크 앤 예티 호텔에 잠시 짐을 맡겼다. 오후 늦게 카트만두 외곽에 있는 리조트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다들 사우나를 간다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사진 분류 작업을 하기 위해 정모네 집으로 갔다. 점심은 정원이란 한식당에 집결해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곁들였다. 전에도 자주 왔던 곳이라 눈에 익었다. 트레킹을 무사히 마친 것을 자축하는 건배도 했다. 오후 시간은 자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카트만두로 다시 돌아옴으로써 우리의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트레킹은 끝이 났다. 이번 트레킹에는 묘하게도 히말라야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이 절반을 차지했고 나머지 절반은 초행자였다. 솔직히 초행자 중에 몇 명은 중도에 탈락할 것이라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명도 낙오없이 모두가 해발 5,140m의 고락셉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난 이 기록도 무척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 모임에 탄탄한 팀워크와 훌륭한 팀닥터가 있었기 때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2002년 백두대간 종주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멤버들 간에 불협화음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큰 소리 한 번 난 적이 없는, 정말 믿기지 않는 팀워크다. 허 대장의 은근한 카리스마, 기탁 형님과 인당 형님의 헌신적인 후배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우리 모임엔 기탁 형님과 같은 훌륭한 팀닥터가 계시고, 이번에는 부인까지도 함께 활약을 해주셨다. 이들 부부 약사의 손길에 고산병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우리가 이 지구상에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 에베레스트를 오른 것은 물론 아니다. 기껏 고락셉까지 오르고 이런 자랑을 한다는 것이 살짝 창피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환상적인 멤버들과 함께 한 시간은 정상에 오른 것보다도 더 소중하고 행복한 것이었다.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언제쯤 다시 이런 산행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트레킹 개요>

 

2007 11 23일부터 12 4일까지 <침낭과 막걸리>란 산꾼들의 모임에서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찾았던 12일간의 트레킹 기록이다. 만화가 허영만 화백을 중심으로 산행과 막영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원래는 2002년에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 산행이 모태가 되었다. 이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트레킹 기록은 월간마운틴 2008 2월호에 소개한 바가 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테레비소녀 2013.07.11 1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포스팅 잘보고갑니다..간접체험 잘하고 가요~~감사~

  2. 보리올 2013.07.11 15: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별말씀을요. 고맙긴 제가 오하려 더 고맙지요. 근데 연예게 소식통이시네요. 놀랍습니다.

  3. 설록차 2013.08.13 0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예로운 최후의 9인 중 한분이셨네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모르는 사이라도 젊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 추가) 지구절경기행 35회:네팔-히말라야의 빛,에베레스트 가도

  4. 보리올 2013.08.13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운이 좀 좋았다던가, 컨디션이 좋았다는 의미지, 영예라는 표현은 낯이 간지럽네요. 처음 가는 사람도 잘 올라가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건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체질에 따라 고소 적응이 많이 다릅니다. 직접 가서 한번 체험해 보세요.

 

히말라야 트레킹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와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그리고 랑탕 트레킹을 꼽는다. 그만큼 인지도나 유명세에서 앞서는 곳이다. 처음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서는 동생을 데리고 어디를 갈까 고민했지만 결론은 금방 났다. 바쁜 회사 생활로 오래 사무실을 비울 수 없는 동생의 입장을 고려해 가장 짧은 코스인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택한 것이다. 해발 고도도 다른 곳에 비해 부담이 적은 4,130m에 불과하다. 신체 건강한 사람이라면 일반인도 고산병에 대한 걱정없이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시도하는 코스가 대개 이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다. 이를 줄여서 보통 ABC라 부르기도 한다. 안나푸르나에는 남면과 북면에 각각 베이스 캠프가 있는데 정상에 도전하는 원정대는 주로 북면으로 간다. 물론 안나푸르나 남벽을 타려면 당연히 남면 베이스를 이용하지만 워낙 난코스라 원정대가 그리 많지 않다. 트레킹은 모두 남면 베이스로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코스엔 지나치는 마을마다 로지가 많아 어디에서나 숙박과 식사가 가능하다. 야영이나 취사 부담이 없어 너무 편하게 다녀오는 것 아닌가 싶어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카트만두에 도착해 비자 수속을 밟았다. 과거엔 길게 줄을 서서 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었는데 이번에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더구나 난 지난 봄에 받은 비자가 아직도 유효하다고 수수료 30불을 되돌려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네팔도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주 산꾼 박정헌 대장을 공항에서 만났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것이다. 공항에 마중나온 장정모에게서 포카라로 가는 국내선 티켓을 받았다. 고맙게도 집에서 김밥을 준비해 왔다. 포카라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국내선 청사에서 박대장과 같이 나눠 먹었다.

 

포카라행 20인승 경비행기가 하늘로 날아 오른다. 날씨가 맑아 설산이 우리 시야에 들어왔다. 포카라로 갈 때 비행기 오른쪽 좌석에 앉으면 이렇게 안나푸르나 연봉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포카라 공항에서 미리 도착해 있던 포터를 만났다. 이름이 누리라 했던 것 같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고 나야풀(Nayapul)까지 가자고 흥정을 벌였다. 택시 표식과 미터기가 없는 것을 보아선 무면허 택시임이 분명하다. 1,000루피에 합의를 보았다. 달리는 택시 차창을 통해 붉게 물든 마차푸차레를 볼 수가 있었다.

 

날이 금방 어두워지면서 마차푸차레도 우리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둠을 달려 나야풀에 도착했다. 허름한 매점에서 식빵과 콜라로 일단 허기는 면했다. 나야풀에 있는 로지는 시설이 별로라 비레탄티(Birethanti, 1,025m)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로지를 잡고 허기진 배를 채웠다. 트레킹 첫날이라 누리를 불러 우리 식탁에서 밥을 먹였더니 이것도 외국인 가격을 받는다. 혹시가 역시가 되었다. 모디(Modi) 강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방에 들어 책을 읽다가 저녁 9시가 넘어 조금 일찍 잠을 청했다. 꽤나 피곤했던 모양이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