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와이를 방문한 가장 큰 목적은 해발 4,169m의 마우나 로아(Mauna Loa)를 오르기 위함이었다. 킬라우에아 방문자 센터 부근에서 시작하는 마우나 로아 트레일을 타면 대개 2박 3일 또는 3박 4일의 일정으로 천천히 고소 적응을 하면서 오르지만 우리는 정상을 당일에 오르기로 했다. 마우나 로아 북동쪽 사면에 기상관측소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이 해발 3,399m에 위치하니 고도 800m만 올리면 된다. 산행 거리는 정상까지 편도 6.2마일. 고산병 증세를 느낄 수 있는 고도에서 왕복 20km를 걸어야 하니 적어도 8시간에서 10시간은 잡아야 했다. 더구나 우리에겐 촬영팀이 함께 있으니 시간은 더 걸릴 지도 몰랐다.
마우나 로아 바로 이웃에 마우나 케아(Mauna Kea)가 버티고 있다. 하와이 말로 마우나 로아는 ‘긴 산’이란 의미고, 마우나 케아는 ‘흰 산’이라 한다. 해발 고도는 엇비슷해 보이지만 마우나 케아가 36m인가 더 높아 하와이 제 1봉의 위치를 차지했다. 멀리서 보면 두 봉우리 모두 완만한 둔덕으로 보여 고산다운 면모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자랑거리는 많았다. 마우나 로아는 산 자체의 면적과 부피를 따지면 세계에서 가장 큰 산괴를 자랑한다 하고, 마우나 케아 역시 해저에서부터 높이를 재면 에베레스트보다도 훨씬 높은 10,203m라고 한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두 산을 소개하는 모든 자료에 그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놓아 자연스레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다.
비가 내리는 힐로(Hilo)를 출발할 때는 솔직히 우중산행이 걱정스러웠다. 200번 도로를 벗어나 마우나 로아 접근로로 꺾어지는 지점에서 다행스럽게도 구름 위로 올라서며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 아래 구름이 깔렸으니 꽤 높이 올라온 모양이었다. 기상관측소까지는 아스팔트를 깔아 놓았지만 차 한 대 겨우 다닐 수 있는 외길이었다. 길 양쪽으로 검은 화산석만 깔려 있어 혹성 탈출에나 나오는 외계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커브를 돌 때마다 차창을 통해 마우나 케아가 그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마우나 케아 정상엔 천문관측소가 몇 개 있었다. 해발 고도도 높고 태평양 한가운데 홀로 떨어져 있어 천체 관측에 아주 좋은 조건을 지녔다고 한다.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벌써부터 머리가 띵하다는 사람도 나왔다. 바닷가에서 단번에 해발 3,399m까지 차로 올랐으니 산소 부족을 느끼는 건 당연한 현상이리라. 우리가 오르는 업저버토리 트레일(Observatory Trail)에는 표지판이 그리 많지 않았다. 정상까지 두세 개 표지판을 보았을 뿐이었다. 수십 미터 간격으로 놓여있는 돌무더기, 즉 케언(Cairn)을 주의깊게 찾아 그것을 따라야 했다. 사방이 온통 거무스름한 화산석만 깔려있는 특이한 풍경이 산행 내내 계속되었다. 가끔 누렇고 붉으스름한 색조도 나타나긴 했지만 검은색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별난 세상을 걷는 낯설음이 느껴졌고, 거기에 활화산을 오른다는 일말의 두려움, 고산병에 대한 걱정까지 더해져 마음이 묘하게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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