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르(Tomar)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템플 기사단(Knights Templar)에 대한 이해가 좀 필요하다. 성전 기사단이라고도 불리는 템플 기사단은 1119년 프랑스에서 9명의 기사가 예루살렘 및 순례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세운 수도회에서 시작한다. 흰색 바탕에 붉은 십자가를 그린 망토를 입었다고 한다. 1128년 교황으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고 십자군으로 하느님을 위해 싸울 것을 서원했다. 그 이름과 활약이 알려지면서 기사단에 입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십자군 원정이 끝나고 프랑스로 돌아와 회원들의 기부금이나 유산을 활용해 금융업에 손을 대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템플 기사단의 세력 확장을 우려하고 그들의 부를 탐낸 프랑스 국왕 필리프 4(Philippe IV)1307년 수많은 회원들을 체포하고 재산을 몰수했으며, 당시 아비뇽에 유수된 교황 클레멘트 5(Clement V)에게 요구해 1312년 수도회를 폐쇠하기에 이르렀다. 템플 기사단의 마지막 그랜드 마스터였던 자크 드 몰레(Jacques de Molay)도 결국 파리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그 당시 템플 기사단의 포르투갈 지부는 상황이 좀 달랐다. 이슬람 세력과 대치하면서 국토회복운동을 벌이고 있던 중이라 템플 기사단의 협력이 절실했던 것이다. 포르투갈 디니스(Dinis) 왕은 1344년 교황을 설득해 템플 기사단의 이름을 그리스도 기사단으로 바꾸곤 계속 활동을 하게 하였다. 대항해시대를 연 항해왕 엔리케 왕자가 그리스도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였고,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와 같은 탐험가도 기사단에 속했다. 탐험에 나선 포르투갈 선박에도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사용하였다. 현재도 포르투갈에선 그리스도 기사단이 건재하며, 포르투갈 대통령이 기사단장을 맡는 것이 관례다. 토마르에 있는 성은 1160년 템플 기사단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그리스도 수도원(Convento de Cristo)이란 이름을 지녔다. 성과 수도원이 함께 있는 구조로 포르투갈의 템플 기사단과 그 뒤를 이은 그리스도 기사단의 본거지로 쓰였다. 1983년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주차장에서 성문을 하나 지나 자갈이 깔린 오르막을 올랐다. 명색이 그리스도 수도원이라 했는데 성벽은 무어 성처럼 아랍 풍으로 지어져 있어 좀 의아했다. 이 성벽을 통과하면 정원이 나오고 그 뒤로 수도원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첫눈에도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어 그 실내 모습은 어떨까 궁금증을 자아냈다. 12세기에 지어진 수도원이지만 오랜 세월 개축이 되면서 여러 가지 건축 양식이 가미되어 꽤 화려한 외양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곳곳에 마누엘 양식이 많이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회랑과 정원이 나타났다. 아줄레주 타일을 사용해 우아함이 돋보였다. 몇 개 회랑을 거쳐 성당으로 들어섰다. 템플 기사단에 의해 초기에 지어진 원형 성전은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외형은 16각형으로 각을 잡았지만 내부는 원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동안 많은 성당을 방문했지만 이 성전은 어느 것보다 독특했고 아름다웠다. 장식도 무척 화려했고 그림도 많았다.

 

 

 

시청사와 광장이 있는 토마르 도심 뒤로 토마르 성이 눈에 들어왔다.

 

 

자갈이 깔린 길을 5분 정도 걸어 오르면 수도원 입구가 나타난다.

 

1515년에 만들어졌다는 마누엘 양식의 문은 꽤 화려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입장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회랑과 정원이 나타나 방문객을 맞는다.

 

 

 

성물 안치소로 쓰였던 공간은 텅 비어있었지만 천장 장식은 꽤 섬세하고 화려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예루살렘의 성전을 본따 지었다는 템플 기사단의 원형 성전이 눈에 들어왔다.

 

수도원 안에 있다는 8개 회랑 가운데 하나

 

성당의 서쪽 창문은 마누엘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 16세기 초에 건축되었다.

대항해시대를 상징하는 혼천의와 밧줄, 매듭으로 장식되어 있다.

 

 

수도사들이 식사를 하고 음식을 준비하던 공간

 

밖으로 나오다 만난 회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던 곳이란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전 630분에 아침 식사를 한다고 해서 부지런히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한국인 모녀만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 빵과 비스켓, 주스, 커피 등이 놓여 있었다. 이것으로 배를 채우긴 힘들지만 여기선 대부분 이렇게 아침을 때운다. 출발 준비를 끝내고 715분 알베르게를 나섰다. 밖은 깜깜했다. 어느 정도 날이 밝기를 기다릴까 했지만 한국 모녀가 먼저 출발하기에 나도 덩달아 따라 나섰다. 헤드랜턴을 밝히고 30분쯤 함께 걷다가 작별 인사를 하곤 앞으로 나섰다. 여명도, 일출도 그저 그랬다. 해가 솟은 직후에 엘 부르고 라네노(El Burgo Ranero)에 도착했다. 부드러운 햇살이 산 페드로 성당 종탑을 비춘다. 종탑엔 새들이 지은 집이 몇 채 남아 있었다. 성당 주변으로 떼지어 날아다니는 비둘기들이 보였다. 설마 비둘기들이 저 집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라네로에서 레리에고스(Reliegos)로 향하는 순례길은 아스팔트 도로와 나란히 놓여 있어 화살표도 필요 없었다. 순례길 왼쪽으로 가로수를 심어 놓았지만 너무 앙상해 제 역할을 하기엔 아직 어려 보였다. 사방으로 누런 벌판이 펼쳐진 풍경도 단조로워 심심하던 차에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친구가 있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폴란드 카토비체(Katowice)에서 온 잭이란 친구였다. 포르투갈의 파티마(Fatima)를 출발해 산티아고를 지나쳤고 계속해 루르드와 예루살렘을 향해 걷고 있다고 했다. 파티마에서 여기까진 한 달이 걸렸단다. 예루살렘에 닿으면 총 거리가 9,000km는 될 것이라며 수첩을 꺼내 지나온 도시에서 받은 스탬프를 보여줬다. 그런데 헤어지기 전에 이 친구가 돈을 달라고 손을 벌렸다. 순간적으로 멍했지만 주머니에 있던 1유로 동전 세 개를 건네주었다.

 

11 30분 레리에고스에 도착했다. 오전에 벌써 20km를 걸은 것이다. 좀 이르긴했지만 바에서 토르티야 두 개에 와인 한 잔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냉장 보관된 토르티야를 그냥 주기에 데워달라고 했더니 몇 분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듯 했는데 그래도 차갑긴 마찬가지였다. 다시 부탁하기도 그래서 그냥 먹었다. 다음 마을인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Mansilla de las Mulas)는 중세시대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였다. 마을 초입에 있는 비르헨 데 가르시아(Virgen de Gracia) 성당은 붉은색 바탕에 하얀색을 칠해 다른 성당과는 대조적이었고, 마을로 드는 성문은 허물어져 성벽만 조금 남아 있었다. 마을 가운데 위치한 산타 마리아 성당은 크진 않지만 깔끔했다. 에슬라 강(Rio Esla)을 건너며 뒤를 돌아보니 성곽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여긴 그래도 성곽이 오랜 세월 잘 버티고 있었다.

 

만시야에서 6km 거리에 있는 푸엔테 비야렌테(Puente Villarente)까진 꽤 멀게 느껴졌다. 또 다시 오후의 권태와 피로가 몰려오는구나 싶었다. 푸엔테 비야렌테로 알고 도착한 마을은 비야모로스(Villamoros)였고, 푸엔테 비야렌테는 거기서 2km를 더 걸어야 했다. 푸엔테란 이름이 들어간 마을답게 꽤나 긴 아치형 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알베르게가 눈에 띄지 않았다. 지금까지 지나온 어떤 마을에서도 내가 가고 싶었던 알베르게를 놓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마을을 벗어날 지점에 이르러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미 30km를 넘게 걸었는데 다시 알베르게를 찾으러 되돌아갈까, 아니면 레온까지 내처 달릴까를 저울질하다가 좀더 걷기로 했다. 5km를 걸어 아르카우에하(Arcahueja)에 도착했다. 하지만 거기서 레온 9km라는 표지판을 발견하곤 힘이 빠져 발걸음을 멈췄다.

 

조그만 방 두 개를 가진 알베르게에 들었다. 식당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석식과 조식을 포함해 18유로를 받는다. 석식으로 제공된 순례자 메뉴는 그리 훌륭하진 않았지만 3코스의 격식은 갖췄다. 네덜란드에서 온 안나와 둘이 식사를 했다. 행색이나 체형을 보고 처음엔 남자인줄 알았다. 2012년에 이어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며 이번엔 아주 여유롭게 걷고 있다고 했다. 어둠이 내려앉을 즈음에 여자 네 명이 추가로 들어왔다. 토론토에서 왔다는 크리스티나와 미국에서 온 여성 셋이었는데, 푸엔테 비야렌테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었다가 너무 지저분하고 빈대도 있어 다시 짐을 싸서 여기까지 왔단다. 그 알베르게를 찾지 못한 것이 하늘의 뜻인 것 같았다. 여자 다섯 명을 호위해 자는 공간에서 의외의 난적을 만났다. 히스패닉 계통으로 보이는 미국 여자 한 명이 어찌나 코를 크게 골던지 웬만한 남자는 저리 가라였다. 진짜 지붕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어둠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면 길을 걷는 도중에 일출을 맞는다. 오늘은 일출이 좀 어설펐다.

 

엘 부르고 라네로 마을에서 만난 산 페드로 성당.

 

 

메세타 지역 특유의 풍경이 펼쳐졌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좀 휑해 보였다.

 

 

폴란드에서 왔다는 잭이란 친구는 파티마에서 예루살렘까지 장거리 순례를 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레리에고스 마을. 차가운 토르티야를 그냥 먹었던 기억만 남은 곳이다.

 

 

 

 

인구 2,000명도 되지 않는 시골 마을 만시야는 고풍스러움을 많이 가지고 있어 의외로 정감이 갔다.

 

레온과 카스티야 두 지방이 연합해 자치주를 이루고 있으나 그 사이에도 알력이 많은 모양이었다.

카스티야를 빼고 레온만으로 자치주를 만들자는 정치적 격문이 만시야 어느 벽면에 적혀 있었다.

 

 

 

다른 성당과는 모양새가 달라 기억에 남은 비르헨 데 가르시아 성당

 

 

 

만시야의 산타 마리아 성당은 특이점은 없었으나 깔끔하고 소박했다.

 

중세 성곽의 도시답게 만시야엔 성곽이 많이 남아 있었다.

 

만시야에서 푸엔테 비야렌테로 향하는 오솔길에서 발견한 가을 정취

 

비야모로스는 별다른 느낌없이 그냥 지나쳤다. 도로를 따르던 길이 마을로 들어와 한 바퀴 돌고 나간다.

 

푸엔테 비야렌테 초입에 20개의 아치를 가진 꽤 긴 다리가 놓여 있는데 순례자는 그 옆에 놓인 다리를 건너야 했다.

 

 

 

 

아르카우에하 마을의 유일한 알베르게에 들어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6.02.04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에서 마주친 폴란드 사람과 막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중에 돈을 달라고해서 놀라셨겠어요. 무전여행인걸까요? 아니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물어보는걸까요?

    • 보리올 2016.02.04 15: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가 말거는 것을 반긴 상황을 봐선 무전여행으로 순례를 하는 것 같았다. 예상밖으로 돈을 달라 손을 벌리니 그 때는 좀 당황스럽긴 하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