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바람이 몰아쳐 잠을 자면서도 신경이 쓰였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날씨부터 확인을 했다. 여전히 비바람이 강했다. 이런 날씨에 선뜻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는데 알베르게 관리인이 들어와 청소를 할테니 밖으로 나가란다. 우의를 꺼내 입고 문을 나섰으나 금방 물에 젖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의 시작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도심 한 가운데에선 표지석이나 화살 표식을 찾기가 어려웠다. 일단 해변으로 갔더니 거기에 표지석이 있었다. (Cee)는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이라 시간을 내서 도심과 바닷가를 둘러보려 했지만 날씨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세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코르쿠비온(Corcubion)으로 들어섰다. 거센 파도를 피해 많은 배들이 여기서 피항을 하고 있었다. 높지 않은 고개를 하나 넘었다. 고개 위에서 멀리 피스테라 등대가 보였다. 땅끝 마을이 드디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에스토르데(Estorde)에선 잠시 길에서 벗어나 해변으로 들어가 보았다. 파도가 거세게 몰려왔다. 대서양이 몹시 화가 난 모습이었다. 사르디네이로(Sardineiro)에서 피스테라까지 7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보았다.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느냐에 따라 비를 맞는 부위가 달랐다. 해변으로 난 길에서는 얼굴로 파고드는 빗줄기 때문에 머리를 제대로 들 수가 없었다. 물에 빠진 생쥐 모습으로 피스테라에 닿았다. 땅 위에 돌로 만든 조가비 표식이 나타났고 형형색색의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눈에 보기에도 예쁜 마을이었지만 그걸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어디에서 비를 피하면서 몸을 말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사람들에게 물어 알베르게를 찾아갔는데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오후 1 30분에 문을 연다고 한다. 항구 주변을 서성이다가 빗줄기가 너무 굵어 버스정류장에서 비를 피하며 빵과 과일로 점심을 때웠다. 내가 보기에도 좀 청승맞아 보였다.

 

피스테라는 피니스테레(Finisterre)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것은 로마어에서 나왔는데 로마인들은 이곳을 세상의 끝이라 보았다. 그들보다 먼저 여기 살았던 켈트족도 카보 피니스테레(Cabo Finisterre)에 있던 태양 신전으로 가기 위해 이 길을 걸었다고 한다. 중세 시대엔 야고보 성인의 주검이 스페인으로 돌아온 궤적을 찾아 순례자들이 여길 찾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카미노 데 피스테라가 카미노 데 산티아고보다 더 오래된 순례길이었던 셈이다. 다시 알베르게로 갔더니 문을 열었다. 크레덴시알을 보여주고 또 한장의 순례증서를 발급받았다. 이 알베르게는 산티아고에서 걸어온 사람만 들어올 수 있어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마을에서 한국인을 10여 명 보았는데 모두 차량을 이용해 온 모양이었다. 침대를 정리해 놓은 후에 밖으로 나왔다. 빗줄기가 가늘어져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것마저도 얼마 있으니 그치기 시작했다.

 

바다는 여전히 칙칙했지만 다양한 색채감을 뽐내는 마을 분위기에 그나마 위안을 얻었다. 바다에 떠있는 조그만 보트들도 정겨워 보였다. 날씨만 좋았더라면 이 풍경도 괜찮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아쉽긴 했다. 하지만 어쩌랴. 날씨는 내 소관사항이 아니니 말이다. 마을을 벗어나 등대가 있는 땅끝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편도 2.2km의 거리라 부담이 없었다. 등에 배낭도 없으니 발걸음이 자연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땅끝 마을이란 지정학적인 의미가 나에게 감동을 주었지만 등대 자체는 그다지 아름답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0.00km라 적혀 있는 표지석과 바위에 설치해 놓은 등산화 조각, 순례를 마친 사람들이 물건을 태운다는 소각장까지 두루 살펴보았다. 순례자들이 남겨놓은 메모, 소지품들이 안테나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티벳불교에서 사용하는 룽다도 걸어 놓았는데 그건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먹구름이 조금씩 걷히며 바다가 꿈틀꿈틀 살아나고 있었다. 고깃배 한 척도 통통거리며 바다를 가로질러 갔다. 어디에선 구름 사이로 햇살이 삐져나오기도 했다. 해질 때까지 기다릴까 하다가 아무래도 석양을 기대하긴 어려워 그냥 마을로 돌아왔다. 알베르게엔 사람들로 제법 붐볐다. 침대가 모두 찼다. 모처럼 밥을 지어 그 위에 콩수프를 얹어 먹었다. 이번 순례길에서 즐겨 먹던 메뉴가 밥이나 파스타 위에 콩을 얹어 먹는 것이었다. 새롭게 발굴한 메뉴였는데 만들기 쉽고 영양도 괜찮았다. 설거지를 하는 중에 한 서양 노인네가 쌀을 가지고 밥을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찌 밥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쌀로 죽을 만들어 거기에 렌틸콩과 치즈를 넣어 저녁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 음식의 이름이 뭐냐 했더니 이름은 없단다. 시식해 보라고 한 접시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것이 의외로 맛이 괜찮았다.

 

파스타 면에 콩을 얹어 간단히 만든 아침 메뉴

 

세의 도심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은 외관을 하얗게 칠해 깔끔해 보였다.

 

 

바다가 움푹 들어온 곳에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세 해변을 거닐며 마주친 풍경들.

 

조그만 배들이 코르쿠비온 앞바다로 피항을 왔다.

 

 

코르쿠비온 마을의 모습. 산 마르코스(San Marcos) 성당의 뾰족한 첨탑과 십자가가 인상적이었다.

 

 

코르쿠비온에서 산 로케(San Roque)로 오르는 길목에서 되돌아본 바다 풍경

 

이 지역은 옥수수 저장고인 오레오를 대부분 돌로 만들었고 그것을 버섯 모양의 받침대가 버티고 있었다.

 

산 로케 수도원 경내를 알리는 표식. 도네이션제로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하나 있다고 들었다.

 

에스토르데 마을의 해변으로 내려갔더니 파도가 거세게 밀려왔다.

 

 

해변으로 난 길을 걸어 피스테라로 접근하고 있다.

 

 

 

피스테라도 울긋불긋한 건물들이 많아 아름다운 면모를 지녔다.

 

 

피스테라의 바닷가 풍경

 

마을을 벗어나자 무너진 건물에 땅끝으로 가는 이정표를 그려 놓았다.

 

 

등대가 보이는 지점에 순례자 상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땅끝에 세워진 등대가 망망대해의 대서양을 굽어 보고 있었다.

 

순례길의 끝을 알리는 표지석엔 0.00km란 거리 표시가 적혀 있었다.

 

땅끝 마을을 알리는 표지석

 

등대 아래에 설치된 안테나에는 순례를 마친 사람들의 기념픔들이 매달려 있었다.

 

 

해수면에 햇살이 비춰 석양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으나 곧 비가 다시 내렸다.

 

알베르게에서 한 노인이 만들어 맛을 보라고 나에게 건네준 렌틸치즈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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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5.12.28 2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생하셨어요 ㅠㅠㅠ
    행복한 여행이셨기를 ,,,

    • 보리올 2015.12.28 23: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생은요. 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하루 종일 비 맞는 일은 좀 그렇지만 말입니다. 갈리시아 지역에서 의외로 비를 많이 맞았습니다.

  2. Seattle 2015.12.29 0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꾸준히 걸으셔서 피스테라까지 오셨군요. 뿌듯한 보람이 느껴지는군요. 저희는 산티아고 도착후 렌트카로 피스테라와 무시아를 돌아 봤습니다.
    까미노를 걷기전 종교는 없어서 순례자 라고 하기는 무리지만 책에서 미국2대 대통령 존애담스가 독립전쟁때 조지워싱턴 장군의 명령으로
    프랑스에 지원 요청을 하러 피스테라에서 파리까지 까미노를 역으로 걸었다는 이야기를 읽고 나름 역사 기행길이라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길을 걸었습니다. 길을 걸어보니 관광상품화 되어있어서 성당을 빼고는 종교적 느낌은 안나고 길 싸인도 유럽의 오래된 문학적 길이라는
    팻말이 자주 보이더군요.

    정성껏 쓰신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보리올 2015.12.29 05: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꼭 종교적인 순례자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실제로 비종교적인 이유로 더 많은 사람들이 걷는다 하지 않습니까. 저도 그랬고요. 제가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데 언제 시간이 되시면 차나 한잔 하고 싶군요.

    • Seattle 2015.12.29 0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얼마전부터 보리올님 포스팅들을 자주 보았는데 세계 이곳저곳 많이 걸으셨더군요.
      생각도 넒으시고 건강한 생활을 하시는것 같아 읽을때마다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몇년전에 가족끼리 시애틀에서 차로 알래스카 호머를 왕복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들렸던 리아드 온천과 탑오브더월드 하이웨이 포스팅을 보리올님 포스팅에서 보니 반갑더군요. 정말 좋았던 곳 이었거든요.

      밴쿠버에 사시는군요. 저도 언젠가 보리올님을 만나뵙고 하이킹이나 여행하신 이야기들을 듣고 싶군요. 한 일,이년은 두아이 학교때문에 바쁘겠지만 그후 제가 밴쿠버근처 가게되면 블로그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 보리올 2015.12.29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기저기 다녔다고 자랑만 늘어놓는 것 같아 블로그를 괜히 하나 싶을 때도 있었는데 님의 글이 큰 힘이 됩니다. 언제 밴쿠버 오실 일이 있으면 꼭 연락주십시요. 따끈한 커피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3. Justin 2016.04.15 0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지구가 둥글지 않고 저곳이 땅끝마을이었으면 바다의 끝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해봅니다. 그러면 완전 다른 세상이었겠죠? 이제 종종 집에서 콩요리를 먹을 수 있겠네요 ~ 먹음직스럽습니다!

    • 보리올 2016.04.15 1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땅끝마을이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설정에 불과한데 거기에 집착하는 것 같아 내 자신이 싫어지기도 한다. 저 콩요리는 간편해서 많이 해먹었다. 네 동생들은 별로 좋아하지를 않더구나. 나중에 한번 시식할 기회를 주마.

 

지금까지와는 달리 알베르게의 아침 풍경이 무척 여유로웠다. 일단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설치는 사람이 없었다. 먼 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의 안도감, 아니 성취감에서 나오는 여유일지도 모른다. 난 대서양까지 이어지는 길을 내 발로 걸을 예정이라 남들처럼 마냥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간을 버스로 이동하는데 나만 홀로 유난을 떠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지하에 있는 부엌으로 내려갔더니 어느 한국인 여자분이 밥을 너무 많이 했다고 한 그릇을 그냥 준다. 밥을 태워서 냄새가 나긴 했지만 양파 볶은 것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오전 8 30분에 배낭을 꾸려 숙소를 나왔다. 평소보단 좀 늦은 출발이었다.

 

알베르게 건너편으로 아침 햇살을 받은 산티아고의 스카이라인이 빤히 보였다. 붉은색 지붕을 이고 있는 건물들이 고풍스러움을 한껏 뽐내고 있어 고도의 품격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대성당으로 가는 골목엔 사람들 왕래가 거의 없었다. 대성당 앞 광장에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성당 뾰족탑으로 아침 햇살이 살포시 들어왔다. 호텔 앞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로 접어 들었다. 본격적으로 카미노 데 피스테라(Camino de Fisterra)가 시작된 것이다. 외곽으로 빠지는 지점에 표지석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엔 무시아(Muxia)까지 86.337km란 거리 표시만 있었고 피스테라까지의 거리는 없었다. 무슨 이유로 소수점 세 단위까지 표시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보고 절로 웃음이 나왔다. 스페인이 언제부터 이렇게 정확한 나라였던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산티아고를 완전히 벗어나 시골로 들어섰다.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산티아고의 스카이라인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벤토사(Ventosa)와 트라스몬테(Trasmonte) 등 작은 마을 몇 개를 지났다. 특별히 관심을 끄는 마을은 없었다. 시골에 있는 집치고는 규모가 꽤 컸고 붉은 지붕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길가에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유난히 많이 보였다. 순례길을 나타내는 노란 화살표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와 같았다. 한 가지 차이점은 이 길을 걷는 사람이 현저히 적다는 것이었다. 산티아고에서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피스테라나 무시아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길에서 만난 순례자가 대여섯 명에 불과하니 숫자가 줄긴 많이 줄었다. 그 덕분에 호젓하게 걸을 수 있어 좋았다.

 

푸엔테 마세이라(Puente Maceira)에서 탐브레(Tambre) 강을 건넜다. 근사한 다리에다 보를 넘은 강물이 마치 폭포처럼 쏟아졌다. 관광객들도 꽤 보였다. 네그레이라(Negreira)로 들어서기 전에 저택이 하나 나타났는데 담이 높아 안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쉐퍼드 두 마리가 담 위에 점잖게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지켜본다. 곁눈질도 하지 않고 쓸데없이 짖지도 않았다. 네그레이라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카페에서 햄버거를 하나 시켰다. 크기가 상당해서 두 손으로 들고 먹기가 힘들었는데 이렇게 맛이 없는 햄버거는 처음 보았다. 억지로 먹느라 정말 힘들었다. 이 마을에 혹시 수퍼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하나 있었는데 문을 닫았단다. 도대체 이렇게 큰 마을에서 빵이나 과일을 사기도 어려우니 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마을을 빠져 나오며 만난 산 마우로(San Mauro) 성당과 코톤 대저택(Pazo de Coton)이 인상적이었다. 대저택 아래에 있는 아치형 문을 지나야 했다.

 

오전에 이미 20km를 걸었고 빌라세리오(Vilaserio)까진 다시 13km를 걸어야 했다.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길을 걸었다. 눈앞에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축사에서 나오는 냄새도 다시 시작되었지만 마음은 무척 여유로웠다. 빌라세리오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더니 마침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구름을 붉게 물들이는가 싶더니 금방 어두워졌다. 알베르게 시설은 형편없었다. 침대가 없는 방에는 맨바닥에 매트리스만 깔려 있었다. 이런 알베르게는 솔직히 처음이었다. 특이한 경험이라 생각하고 하루 묵기로 했다. 숙박비는 도네이션이라 하지만 밤 늦은 시각에 관리인이 수금하러 와서 5유로씩 주지 않을 수 없었다. 크레덴시알에 스탬프도 받았다. 이 마을에 유일한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구운 햄과 계란 프라이, 감자 튀김이 나왔는데 성의도 없었지만 맛도 별로였다. 돈이 좀 아까웠다.

 

대서양 연안에 있는 피스테라로 향하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아침이 밝아오자 산티아고가 잠에서 깨어나 밝게 웃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 대성당과 시청사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다.

 

길가에 세워진 표지판에는 무시아까지 거리만 적어 놓았다.

 

산티아고를 벗어나 어느 언덕 위에서 산티아고의 스카이라인을 다시 보았다.

 

벤토스 마을에서 옥수수를 저장하는 오레오가 눈에 띄었다.

 

트라스몬테 마을에선 주민들이 겨울을 날 장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푸엔테 마세이라는 다리도 예뻤지만 폭포처럼 떨어지는 강물도 볼만했다.

 

길가에 네그레이라의 어느 알베르게를 선전하는 예쁜 그림 광고판이 걸려 있었다.

 

네그레이라 직전에 있던 어느 저택 담장 위에 쉐퍼드 두 마리가 근엄한 자세로 앉아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스페인 음식은 입맛에 잘 맞았으나 이 햄버거는 솔직히 먹기가 좀 힘들었다.

 

네그레이라 도심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세워진 순례자 상

 

 

네그레이라의 코톤 대저택 아래를 통과하는 아치문. 산 마우로 성당은 코톤 대저택과 붙어 있었다.

 

 

네그레이라 성당은 시내에서 좀 벗어난 언덕 위에 홀로 세워져 있었다. 여기서 내려다 보는 마을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한적한 시골길이 다시 시작되었다. 산길에서 만난 표지석 위에 등산화 한쪽이 놓여 있었다.

 

페냐(Pena) 마을의 산 마메데(San Mamede) 성당

 

 

빌라세리오에선 학교로 쓰이던 건물을 공립 알베르게로 개조한 곳에 하루 머물렀는데,

침대가 아닌 매트리스에서 하룻밤을 자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빌라세리오에서 일몰을 맞았다. 그런대로 석양이 아름다웠다.

 

 

빌라세리오에 하나밖에 없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여직원은 불친절했고 가격에 비해 음식도 성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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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4.05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공식 산티아고 순례길이 끝나자마자 여러 방면에서 저리 비교가 될까요? 연장선일뿐인데 말이죠~ 새로운 여행을 떠나시는 기분이셨겠어요.

    • 보리올 2016.04.07 15: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순례길의 이름 자체가 달라서 그런지 시설도 그렇고 사람들 숫자도 많이 차이가 나는 것 같더구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친 사람들 대부분이 이 코스를 생략하거나 버스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지.

 

생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25일 동안 꾸준히 걸어 오늘 산티아고로 입성한다. 그렇게 흥분되거나 가슴이 설레진 않았다. 더군다나 대서양에 면해 있는 땅끝마을 피스테라와 무시아까지 4일을 더 걸을 것을 생각하니 종점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남들을 깨울까 싶어 불도 켜지 않고 배낭과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와 다시 짐을 쌌다. 출발을 하기 직전에야 안경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알베르게로 돌아가 침대를 뒤졌는데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배낭에 있는 짐을 모두 꺼냈더니 맨 밑바닥에서 나왔다. 한쪽 다리가 부러진 채로 말이다. 카운터에서 테이프를 빌려 임시로 붙여 놓았다. 살세다 마을을 통과해 나오는데 강아지들이 합창을 하듯 일제히 짖어댄다. 동녘 하늘에 붉은 기운이 퍼지더니 불쑥 해가 솟았다. 순례 마지막 날의 날씨가 화창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마을 간격이 많이 좁아졌다. km씩 떨어졌던 마을이 이제는 불과 몇 백 미터에 하나씩 나타났다. 오전에 벌써 크지 않은 마을을 몇 개나 지났다. 한 마을에선 문이 열린 오레오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 보관 중인 옥수수가 드러났고 배고픈 참새들이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가고 있었다. 참새의 굶주림까지 걱정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골 사람들의 인심이 느껴졌다. 내가 다가서는 것을 어찌 감지했는지 녹음된 음성이 갑자기 흘러 나와 날 놀래켰던 마을도 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마지막 말, 부엔 카미노는 알아 들었다. 어느 곳에 있는 알베르게를 선전하는 내용 같았다. 어제부터 느낀 것인데 길가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부쩍 많이 보였다. 지금까진 참나무가 많았는데 말이다.

 

산티아고 경내로 들어섰다.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대성당까진 11km를 걸어야 했다. 공항 활주로가 끝나는 지점을 지나 라바코야(Lavacolla)에 도착했다. 예전 사람들은 순례를 하면서 거의 씻지를 못하다가 여기서 몸을 씻곤 산티아고로 들어갔다고 한다. 라바코야의 어느 성당을 지나는데 마침 미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그 앞에 있는 임시 가판대에서 꽈배기를 한봉 샀다. 도로를 건너다 발견한 가게에서 사과와 콜라를 사서 꽈배기와 함께 점심으로 먹었다. 산티아고를 10km 남겨놓은 지점부터는 거리를 알리던 표지석이 사라져 버렸다. 몬테 도 고쏘(Monte do Gozo)에 도착했다. 얕은 언덕 위에 교황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기념해 만든 탑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었다. 순례길에서 가장 크다는 몬테 도 고쏘 알베르게는 무려 400명을 수용한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들어섰다. 이곳을 순례한 유명인사들의 부조를 넣어 만든 높다란 탑이 순례자들을 맞는다. 갈리시아 자치주의 주도답게 건물이나 식당이 크고 화려했다. 조가비 표식을 따라 대성당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이 이리저리 엉켜 상당히 복잡했지만 내 눈엔 오히려 정겹게 보였다. 세월을 머금은 고풍스러움도 물씬 풍겼다. 그래서 산티아고의 올드타운이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것이다. 1075년에 착공해 1211년 완공된 대성당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백파이프 부는 사람의 환영을 받았다. 1유로를 기부했다. 대성당 앞 광장으로 들어갔다.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완주를 축하하거나 바닥에 앉아 대성당을 올려다 보며 감동의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아쉽게도 대성당 첨탑은 보수 중이라 거푸집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순례자협회에서 순례증서를 발급받았다. 증서 발급은 무료였지만 순례증서를 넣는 통은 2유로에 판다. 순례자협회에서 추천한 알베르게는 15분 거리에 있었다. 세미나리오 메노르(Seminario Menor) 188명을 수용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알베르게에서 석양을 지켜 보았다. 오후 7 30분에 예정된 순례자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대성당으로 갔다. 먼저 성당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보고 미사에 참석했다.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 불리는 향로는 정해진 요일이나 누가 도네이션을 하는 경우에 좌우로 움직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순례자들이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이 향로를 피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순례자 미사도 마쳤으니 이제 공식적인 순례는 모두 끝났구나 싶었다. 시원섭섭하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 벅찬 감동에 절로 눈물이 났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나에겐 그런 감동은 없었다.

 

살세다 마을을 빠져나오며 일출을 맞았다.

 

옥수수가 들어있는 오레오 문이 열려 있어 참새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N-547 도로를 만나는 지점에서 햇빛에 비친 내 그림자를 찍어 보았다.

 

산타 이레네(Santa Irene)에 있는 작은 성당은 반쯤 숲속에 숨어 있었다.

 

산티아고 경내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석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길을 걸었다. 순례자들이 공항 외곽에 쳐놓은 철망에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놓았다.

 

산 팔로(San Palo) 마을에 있는 이름 모를 성당을 지나쳤다.

 

 

라바코야의 베나발(Benaval) 성당에선 미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몬테 도 고쏘의 교황 바오로 2세 방문 기념탑

 

산티아고 도심으로 들어서면서 만난 기념탑에는 왕가의 인물이나 교황 등 유명인사들의 부조가 새겨 있었다.

 

 

산티아고의 도심 풍경

 

 

 

 

 

 

 

 

오브라도이로(Obradoiro) 광장에선 산티아고 대성당을 올려다 볼 수 있다.

시청사와 호텔 등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의 위용도 대단했다.

 

순례자협회에서 크레덴시알에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순례증서를 발급받았다.

 

산티아고 도심엔 알베르게가 없어 좀 걸어나가야 했다. 규모가 큰 세미나리오 메노르를 소개받아 하룻밤 묵었다.

 

세미나리오 메노르 알베르게는 언덕 위에 있어 산티아고 도심을 배경으로 석양을 볼 수 있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저녁에 순례자 미사가 열렸다. 무사히 순례를 마친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자리였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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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춘 호 2015.12.22 09: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가고싶게 만드는 후기인것 같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따뜻한 곳으로 떠나고 싶네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멋진 하루 되세요.

    • 보리올 2015.12.22 1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춘호님도 여행을 아주 좋아하시는 분이더군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글 부탁 드립니다.

  2. Preya 2015.12.22 1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하셨습니다 +_+/
    멋진 순례길이었네요.

  3. 농돌이 2015.12.23 0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고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생을 살면서 기념비적인 획을 하나 그으셨습니다
    일이라는 것이 하나의 과정이 지나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오래 오래 행복할 것 같습니다
    지중해까지 가시는지요?

  4. Justin 2016.04.04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짝짝짝~ 일단 산티아고에 입성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티눈과 발목 상태가 좋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오셨네요! 대단하십니다!

    • 보리올 2016.04.07 15: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뒤늦게 이런 축하를 받는구나. 지금은 발목 부상도, 티눈도 다 잊었는데 말이다. 처음엔 왜 이 길을 걷나 싶었는데 다 끝내니 다시 걷고 싶더구나.

 

할로윈 데이인 10월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상한 꿈을 두 개나 꾸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그 의미 파악에 골몰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치 하늘의 계시인 듯 해서 솔직히 하루 종일 머릿속이 꽤나 복잡했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뒤치닥거리다가 530분에 부엌으로 나왔다. 파스타에 렌틸콩을 얹어 아침으로 먹고 7시도 되기 전에 밖으로 나섰다. 깜깜한 어둠을 헤치고 한 시간 넘게 걸어야 했다.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 보였는데 구름이 살짝 벗겨지며 일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가 떠오른다는 느낌도 없이 허무하게 일출이 끝났고 말았다. 조금 있으니 시커먼 구름이 몰려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았다.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산 훌리안(San Julian) 성당은 전설에 비해서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었다. 어느 가게엔 마을 이름을 산 쑬리안(San Xulain)이라 적어놓아 좀 헤깔렸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나도 모른다. 훌리안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어느 날 사냥을 가서 사슴을 잡았다. 그 사슴이 죽기 전에 언젠가 부모를 죽이게 될 것이라 훌리안에게 경고를 했다. 그 예언을 들은 훌리안은 고향을 떠났다. 몇 년 후에 그의 소재를 알아낸 부모가 그를 찾아 갔는데, 훌리안은 외출중이었고 훌리안의 아내는 피곤해 하는 두 노인을 자신의 침대에 재웠다. 외출에서 돌아온 훌리안은 침대 위의 두 사람을 보고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착각하고 칼로 두 사람을 죽인다. 나중에 전모를 알게된 훌리안은 로마로 순례를 떠나 순례자를 위한 병원을 짓고 회개를 하며 살았다. 몇 년이 지나 천사가 내려와 훌리안의 죄를 사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카사노바(Casanova)를 지나 갈리시아 자치주의 루고 주에서 코루냐(Coruna) 주로 들어섰다. 어제 본 가옥들은 검은 슬레이트 석판으로 지붕을 이었는데 여긴 가옥들이 모두 둥근 모양의 붉은 기와를 썼다. 레보레이로(Leboreiro)의 성당도 작고 초라했다. 이곳도 전설이 전해진다. 이 성당 자리에 원래 샘이 있었는데 낮에는 신비로운 향기가, 밤에는 반짝이는 빛이 흘러 나왔단다. 그 주변을 파보니 성모상이 나와 성당으로 모셨는데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원래의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샘터가 있던 곳에 성당을 지어 바쳤더니 다시는 성모상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팡이 하나만 들고 내 앞으로 추월해가는 순례자들을 만났다. 짐이 없어 그런지 속도가 무척 빨랐다. 남자 둘, 여자 둘로 봐서는 두 부부로 보였다.

 

아치형 다리를 건너 푸레로스(Furelos)로 들어섰다. 산 후안 성당이 있었으나 문은 닫혀 있었다. 여기서부턴 행정구역상 멜리데(Melide)에 속하는 모양이었다. 공장지대를 지나 멜리데로 들어섰다. 도시 규모가 꽤 컸다. 풀포라 불리는 문어요리가 유명한 곳이라 원조격에 해당하는 풀페리아 에쎄키엘(Pulperia Ezequiel)을 찾아갔다. 큰 길에 접해 있어 쉽게 찾았다. 둥근 나무판에 문어를 이층으로 쌓아 그 위에 파프리카와 올리브 오일을 뿌려 나오는데 가격은 14유로를 받았다. 문어가 연하기도 했지만 맛도 뛰어났다. 와인은 한 병에 4유로를 받는데 난 반병만 먹겠다 해서 2유로만 냈다. 사기 그릇을 와인잔으로 사용하는 낭만도 누렸다. 멜리데 도심을 잠깐 둘러 보았다. 교구 성당과 그 옆에 있는 테라 데 멜리데(Terra de Melide) 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은 무료였는데 1유로를 도네이션하니 직원이 활짝 웃어줬다.

 

아르쑤아(Arzua)도 제법 컸지만 현대식 건물이 많아 큰 관심을 끌진 못했다. 도심 한 가운데 있는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을 뿐이다. 아르쑤아를 벗어나 작은 계곡이 많은 구간을 지나는데 의외로 오르내림이 심한 편이었다. 아르쑤아에서 살세사(Salcesa)까지 10km를 더 걸어 오늘 걸은 거리도 40km를 넘겼다. 다음 날 산티아고에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 오늘 조금이라도 더 걷자는 생각이었다. 살세다에 있는 투어리스트 알베르게에 들었다. 일종의 여행자 호텔인데 한 구석에 알베르게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침대 8개가 전부였다. 먼저 도착한 한국인 아가씨 두 명은 알베르게 비용으로 트윈룸을 배정받았다고 자랑하던데 나에겐 알베르게 침대를 준다. 이 방으로 한국인 젊은이 3명이 더 들어왔다. 점심으로 준비했다가 먹지 못한 빵과 계란, 과일로 혼자 저녁을 때웠다.

 

어둠 속에서 만난 이정표에 산티아고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산 훌리안의 전설이 서려있는 12세기 로마네스크 방식의 산 훌리안 성당

 

폰테 캄파냐(Ponte Campana)의 카사 도밍고(Casa Domingo)엔 커다란 조가비 장식이 있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속해 있는 코루냐 주로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표지석

 

 

레보레이로 마을과 산타 마리아 성당 앞에 설치된 카베세이로(Cabeceiro).

가난한 사람들의 오레오(Horreo)라 불리기도 하는데 버드나무로 광주리를 만들어 그 위에 짚을 얹었다.

 

레보레이로의 산타 마리아 성당. 성모상에 얽힌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멜리데의 도심 풍경

 

 

 

멜리데에서 문어요리로 유명한 식당인 풀페리아 에쎄키엘

 

 

멜리데 중심에 있는 상티 스피리투스(Sancti Spiritus) 교구 성당

 

 

 

교구 성당 바로 옆에 있는 테라 데 멜리데 박물관은 이 지역 민속 박물관이었다.

 

 

 

멜리데에서 1km 외곽지역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 안에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입장은 무료였지만 나올 때 도네이션을 받아 1유로를 주고 나왔다.

 

 

보엔테(Boente) 마을 중앙에 외관을 하얗게 칠한 산티아고 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보엔테의 N-547 도로변에서 아이들이 소품을 가지고 나와 판매를 하고 있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는 가운데 다리 하나를 건너니 리오(Rio) 마을이 나타났다.

 

 

 

팔레스 데 레이와 더불어 치즈로 유명한 아르쑤아 마을. 현대적인 건물이 많은 마을이라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갈리시아 지역 특유의 옥수수 저장고인 오레오가 자주 눈에 띄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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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3.24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떤 꿈을 꾸셨는지 궁금합니다 ~ 글과 사진을 보고나서도 아버지 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