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이라는 동쑤언 시장(Cho Dong Xuan)으로 가는 길에 홍하(Song Hong)부터 들렀다. 중국 윈난성에서 발원해 하노이를 가로질러 남중국해로 빠지는 길이 1,149km의 긴 강이다. 강가에 전망대나 오솔길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풍경은 기대에 너무 못 미쳤다. 강물도 흙탕물이었고 강가도 엄청 지저분했다. 조그만 나룻배들이 강가에 정박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외에는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자리를 떴다. 동쑤언 시장으로 이동해 안팎을 돌며 시간을 보냈다. 꽤 큰 건물 속에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우리 나라 남대문시장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밖으로 나와 길거리에 있는 노점을 살펴보았다. 꽃이나 과일, 생선을 파는 상인들이 눈에 띄었다. 비가 오는데도 장사에 활기가 넘쳤다. 그들의 분주한 모습을 통해 치열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시장이 난 좋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목이 말라 잠시 바에 들렀다.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St. Patricks Day)를 축하하는 행사가 있었는지, 녹색 모자를 쓴 외국 젊은이들이 멋진 포즈를 취해 주었다.




기대완 달리 홍하 풍경은 별로였다. 강물에 떠있는 나룻배마저 없었으면 무척이나 황당할 뻔했다.













우리 나라 남대문시장을 연상케 하는 동쑤언 시장은 사람들로 꽤 붐볐다.

실내 상가보다는 건물 밖 노점상이 더 볼만했다.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 축하 이벤트가 열리던 바에서 맥주 한 잔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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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09.11 1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연에서 난 야채, 과일들은 확실히 색감이 틀리네요~ 흐리고 어두운 사진의 느낌을 살려주네요! 요즘 여행갈때마다 조금씩 수동으로 조리개, 셔터스피드, ISO 를 건드려보고 있습니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의 마지막 구간을 걷는 날이 밝았다. 달링 리버를 출발해 뱀필드에 있는 파체나 베이(Pachena Bay)까지 걷는다. 거리는 14km5~6시간 걸린다 들었다. 어제 느꼈던 시원섭섭함이 오늘은 조금씩 섭섭함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빨리 나갈 필요가 없는데 우리가 너무 서두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식량도 동이 나고 포트 렌프류로 돌아가는 버스편도 이미 예약을 해놓은 상황이라 예정대로 나가기로 했다. 그 대신 출발 시각을 좀 늦췄다. 해가 떠오르는 시각부터 카메라를 들고 해변을 쏘다녔다.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싱그러웠다. 바다에서 떠밀려온 다시마 줄기에도 부드러운 빛이 내려앉았다. 공처럼 생긴 모양새에 머리카락 같은 뿌리가 달려있어 신기하단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 캠핑한 젊은이들이 아침 일찍부터 바닷가에 간이 의자를 놓고는 거기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긴다. 이 친구들 여유를 부리는 모습은 늘 우리보다 한 수 앞선다. 제대로 자연을 즐길 줄 아는 것 같아 부럽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트레일 상태는 좋았지만 오르내림은 제법 심했다. 달링 리버에서 미시간 크릭(Michigan Creek)까진 해안길을, 미시간 크릭부터 파체나 베이까지는 숲길을 걸었다. 11km 지점에 자리잡은 파체나 포인트 등대에도 잠시 들렀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등대에 거푸집을 설치해 놓았다. 부속 건물 옆에는 몇몇 도시 이름과 거리를 표시하는 화살표가 붙어 있었다. 등대에서부터 트레일은 거의 오솔길 수준이었다. 과거에 등대로 물자를 실어 나르던 길이었다. 오르락내리락 숲길을 꾸준히 걸었다. 바다를 굽어보는 조망도 없어 시간을 지체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파체나 포인트를 조금 지나 바다로 나가는 사이드 트레일이 나왔는데,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바다사자들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주저 없이 그 트레일로 들어섰다. 꽤 많은 바다사자가 무리를 지어 바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끔 덩치 큰 녀석이 무리에서 나온 한두 마리와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다른 녀석들은 싸움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블랙 리버(Black River)를 지나고 8km를 더 걸어 뱀필드 파체나 베이에 있는 국립공원 인포 센터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 출발점에서 받은 퍼밋을 반납했다. 이는 우리가 무사히 트레일을 벗어난다는 일종의 신고였다. 이제 공식적으로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 하이킹을 모두 마친 것이다. 인포 센터에 근무하는 직원으로부터 축하 인사도 받았다. 하이킹 첫날의 고단함과 하루 종일 비를 맞았던 날의 축축함도 이제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원래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은 다른 트레일에 비해 어려움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런 난관을 모두 이겨냈다는 성취감으로 가슴이 벅찼다. 거기에 이런 멋진 곳을 아들과 단둘이 걸었다는 점 또한 평생 잊지 못할 귀중한 추억이 되리라 본다.

 

모처럼 아침 시간을 여유롭게 보냈다.

일출 시각에 맞춰 밖으로 나가 해변을 거닐었는데 일출 자체는 그리 극적이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간이 의자를 가지고 바닷가에 모여 앉아 여유를 부리는 젊은이들이 내심 부러웠다.

 

 

해변으로 밀려온 다시마 줄기가 눈에 띄었다. 뿌리가 마치 머리처럼 보였다.

 

텐트 정리를 마치고 달링 리버를 출발하며 해변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를 찍어 보았다.

 

 

처음엔 해변을 따라 걸었다. 등산화를 벗고 물을 건너야 했고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도 지났다.

 

달링 리버의 캠핑장을 피해 따로 호젓하게 텐트를 친 사람들도 있었다.

 

 

파체나 포인트에 있는 등대에 들렀다. 화살표로 몇몇 나라의 거리와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이드 트레일로 들어서 바다사자가 서식하는 곳을 방문했다. 무리를 지어 시끄럽게 울어대는 소리가 제법 우렁찼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의 마지막은 숲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트레일에 오토바이 한 대가 버려져 있는 현장도 지났다.

 

트레일 종료 지점에 도착했다. 뭔가 그럴 듯한 기념비라도 세울 법한데 눈을 씻고 찾아도 그런 건 없었다.

 

 

 

뱀필드 파체나 베이에 있는 퍼시픽 림 국립공원의 인포 센터. 여기에 퍼밋을 반납해야 공식적인 일정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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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03.03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이 벅찹니다.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저도 아버지와 WCT 를 함께 해서 정말 좋았고 평생 잊지 못 할 추억이 될겁니다. 고맙습니다.

 

오전 6 30분이 되어서야 알베르게에 불이 들어왔다. 늦어도 8시까지는 퇴실을 하라고 하는데 아침 취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쁠 수밖에 없겠다. 배낭 안에 고히 모셔둔 곰탕 라면 세 개를 끓여 세 명이 나눠 먹었다. 비록 라면 한 봉지지만 남에게 베풀 수 있다는 것이 그냥 좋았다.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지만 알베르게를 나서 도로옆 오솔길로 들어섰다. 길은 어두컴컴했다. 도로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산티아고가 790km 남았다고 적혀 있었다. 차가 달리는 도로라 사람이 걷는 거리완 좀 차이가 나는 듯 했다.

 

하늘이 밝아 오는 시각에 부르게테(Burguete)에 도착했다. 이곳은 헤밍웨이가 스페인에 머무를 당시 송어 낚시를 하러 자주 오던 마을이라 했다. 그가 체류했던 호텔은 길가에 제법 번듯한 건물로 남아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헤밍웨이를 자주 접하게 된다. 플로리다에 살았던 그의 집도, 아이다호에 있는 그의 무덤도 보았으니 말이다. 어제부터 함께 걷는 학생이 현금이 필요하다고 해서 은행으로 갔더니 새벽부터 문을 열어 깜짝 놀랐다. 하지만 현금지급기가 없어 다른 은행으로 가야 했다. 마을 밖에선 서서히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자욱한 안개 위로 해가 솟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여기도 산악 지형에 속하는지 제법 오르내림이 심했다. 숲길도 많아 나무 터널을 지나는 곳도 몇 군데 있었다. 예쁜 마을을 지났다. 붉은 지붕에 흰 벽을 지닌 집들은 나름 고풍스런 느낌이 들었다. 현대식 성당이 있는 에스피날(Espinal)을 지나 알토 데 에로(Alto de Erro)를 넘으니 쑤비리(Zubiri)가 그리 멀지 않았다. 21km 거리를 6시간에 걸어 오후 2시에 쑤비리에 도착했다. 김 신부님과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로 점심 식사를 했다. 웨이트리스가 아침에 한국어를 배웠다며 우리에게 ‘안녕’이란 단어를 몇 번이나 써먹는다.

 

신부님은 쑤비리에서 묵겠다고 해서 작별 인사를 건네고 마을을 빠져 나왔다. 난 일정이 빠듯해 남들보다는 조금씩 더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쑤비리를 빠져나오는 다리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줄리와 사이먼 부부를 만났다. 순례길에서 또 만나자 했지만 그들이 나를 따라잡을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홀로 유유자적 걷는 길에 햇볕이 작렬한다. 가을이 한창인 10월에도 이럴진데 한여름에는 얼마나 뜨거울까 싶었다. 조그만 마을을 두 갠가 지나 오후 4시에 라라소아냐(Larrasoana)에 도착했다.

 

거기엔 지자체, 즉 무니시팔(Municipal)에서 운영하는 조그만 알베르게가 있었다. 그 많던 한국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맥주 한잔으로 먼저 목을 축인 후 장을 보러 수퍼마켓으로 갔다. 알베르게에 조그만 부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이 닫혀 있는 수퍼마켓은 벨을 누르면 이층에서 주인이 내려와 물건을 판다. 물건도 종류가 많진 않았다. 쌀과 파스타 면, 그리고 과일을 좀 샀다. 계산을 하니 우리 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계산기 앞에도 ‘맛있게 드세요’라고 한글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인이 이 순례길에 많기는 정말 많은 모양이다.

 

알베르게에서 혼자 저녁을 준비했다. 밥을 해서 곰탕 라면에 넣고 죽처럼 만들었다. 양이 많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난 사실 한국 음식에 대한 집착은 별로 없다. 한달 내내 스페인 음식만 먹으라 해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이렇게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으면 돈이 크게 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순례자 메뉴로 식사를 했는지 알베르게로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든다. 덕분에 나만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다 밤늦게 침실로 들었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론세스바예스를 빠져 나와 순례길로 접어 들었다.

 

 

안개가 마을을 덮고 있는 부르게테.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 발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은행은 문을 열었다.

 

헤밍웨이가 자주 찾아와 묵었다는 부르게테 호스탈.

 

 

 

부르게테 마을을 벗어나니 안개 사이로 해가 솟았다. 소를 방목하는 목장에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쑤비리 마을로 향하는 순례길에도 따스한 햇살이 내려쬐고 있었다.

 

 

에스피날로 들어서는 초입에서 나뭇줄기 사이로 빛내림이 펼쳐졌고, 안개또한 마을을 동화속 풍경으로 만들었다.

 

 

 

지나는 마을마다 예쁜 집들로 가득했다. 석조 건물을 하얗게 칠해 더 아름다웠던 것 같았다.

 

우리가 양떼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양들이 우리를 지켜보는 듯 했다.

 

 

나무 사이로 뚫린 길은 그늘을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시원한 청량감도 선사했다.

 

 

쑤비리로 드는 지점에 고딕 양식의 라비아 다리(Puente de la Rabia)가 있다.

거기서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온 줄리, 사이먼을 다시 만났다.

 

 

 

10유로짜리 순례자 메뉴로 점심을 먹은 쑤비리의 오기 베리(Ogi Berri) 식당. 메인으론 빠에야가 나왔다.

 

에스퀴로츠(Esquirotz)란 조그만 마을에서 화려한 꽃장식을 한 집을 발견했다.

 

 

 

 

그리 크지 않은 라라소아냐 마을의 시골 모습.

 

저녁으로 준비한 곰탕라면죽. 산에서 캠핑하면서 즐겨먹던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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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5.11.20 23: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링크해서 구독하렵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저도 가고
    싶은 곳! 함께 걸어가는 기분입니다

    • 보리올 2015.11.21 0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의 응원에 정말로 힘이 솟는 느낌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가시는 꿈을 꾸시면 언젠가는 꼭 이루어질 겁니다. 저도 함께 기원하겠습니다.

    • 농돌이 2015.11.21 07: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감사합니다
      봉급쟁이 터는 날 바로?
      오늘은 김장합니다 새벽에 씻어서
      놓고보니 산 입니다 ㅋ 종손의 무게거니 합니다
      멋진 글과 사진 소망합니다

    • 보리올 2015.11.21 0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종갓집에서 김장을 하고 계시는군요. 예전에 시골집에서 김장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2. justin 2015.12.08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례길 사진이 산과 같은 풍경의 사진과 틀립니다. 자연과 인간과 동물이 잘 어우러져있습니다.

    • 보리올 2015.12.08 1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무래도 사람사는 마을을 연결해 걷는 것이기 때문에 산 속을 걷는 산행과는 풍경이 많이 다를 수밖에 없지. 순례길 전구간에 산행같은 곳은 세 구간뿐이었다.

  3. 해인 2015.12.27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쁘게 꽃장식이 된 집들 사진을 보니, 빨리 봄이 왔으면 하는 저는 역시 천상여자인가봐요 ;) 갑자기 옛날에 살던 하우스가 그립기도 하고요. 그런데 끼니를 저렇게 때우시니... 살이 쭉쭉 빠지겄어요. 하루에 20-30km를 걸으면서 소비되는 열량은 엄청나겠죠?

    • 보리올 2015.12.27 1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통 성인의 하루 대사량을 2,500 칼로리로 본다면 30km를 걸으면 아마 에너지로 5,000칼로리는 쓰지 않을까 본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섭취하는 열량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지. 다이어트엔 정말 최고라 생각한다.

  4. 제시카 2015.12.31 1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우리아빠 사진 완전 짱이네용... 빛이내리는사진하구, 안개속에서 홀로 서있는 나무사진이 넘 이뻐요.. 저렇게 간단히 끼니 때우셨으니 그렇게 살이 빠지시죠!! 앞으로 하루에 하나씩 읽어야겠네염 ㅋㅋㅋㅋ

 

북한산 둘레길을 걷는 둘째 날에도 6구간에서 10구간까지 모두 다섯 구간을 걸었다. 하루에 걸은 거리는 17km.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아 하루 거리론 딱 맞았다. 지난 번에 내려선 형제봉 입구에 다시 섰다. 6구간은 평창마을길이라 불렀다. 주택 사이로 난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는 구간이 많아 매력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담벼락을 높이 세운 호화주택들이 많아 더욱 그랬다. 산을 깎아내면서 이렇게 높이 올라올 것까진 없지 않은가. 이런 주택보다는 푸른 숲이나 나무를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최근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남기업 성완종 전 회장이 죽기 전에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여길 배회했다는 생각이 들어 입맛이 씁쓸했다. 길을 걷는 내내 마음이 유쾌하진 않았다. 구기동으로 내려서 대로를 따라 걷다가 구기터널 위에 있는 탕춘대성 암문 위에서 7구간으로 들어섰다.

 

7구간 옛성길에서 다행스럽게도 다시 산길다운 산길을 만났다. 북한산 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어 숨통이 좀 트였다. 서울시에서 선정한 우수조망명소란 안내판도 보였다. 참으로 별난 명소도 많다 싶었다. 그 때문인지 여기를 지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구름정원길이라 이름 붙인 8구간은 내 기대완 크게 달랐다. 이름만 들어서는 천국에 있는 산책로 같이 보였는데 숲 사이로 나무 데크를 설치해 놓은 것이 전부였고, 거기서 보이는 거라곤 회색 아파트밖엔 없었다. 무엇 때문에 나무 데크로 길을 만드느라 돈을 쓰나 싶었다. 이것도 모두 국민의 혈세일텐데. 자연스럽게 돌과 나무 사이로 오솔길을 만들었으면 싶은데 말이다. 누군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버린 막대를 열심히 빨고 있는 다람쥐 한 마리를 목격했다. 그걸 맛있다 빨아먹는 녀석이 좀 측은했다.

 

마실길이라 불리는 9구간으로 들어섰다. 이웃집에 놀러 간다는 의미를 지닌 마실이란 단어에서 정감이 묻어났다. 은평 뉴타운을 왼쪽에 끼고 걸었다. 이 지역이 은평 뉴타운이란 것을 처음 알았다. 새로 조성하고 있는 한옥마을도 지났다. 길 자체는 정취가 있는 편이 아니라 따로 찍은 사진도 별로 없었다. 마지막 구간인 내시묘역길로 둘어섰다. 왕의 그림자로 살았던 내시들이 여기에 많이 묻혔다니 그 연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경천군 송금물천비라는 것만 보았을 뿐 내시의 묘는 어디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이름을 땄으면 한 군데라도 내시 묘역을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북한산성 입구로 들어서면서 서울시를 벗어나 고양시로 들어섰다. 10구간은 북한산성 입구를 지나 둘레교를 건넌 뒤 조금 더 걷고 나서야 효자동에서 마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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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친구들과 12일로 남도 여행을 다녀왔다. 원래는 변산과 선운산을 연달아 산행하려 했는데 폭우가 온다는 일기 예보에 갑작스레 행선지를 바꾼 것이다. 행선지를 바꾼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어디를 가는 지도 모른 채 따라 나섰다. KTX로 대전으로 내려가 친구들과 합류했다. 대구에서 올라온 옵저버 2명을 포함해 모두 11명이 차량 3대에 나눠 타고 구례로 향했다. 지리산 피아골 산행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거론되었지만 그곳 또한 엄청난 행락 인파에 차량 정체를 빚고 있다는 소식을 듣곤 바로 화엄사(華嚴寺)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예보와는 달리 날이 좀 궂기는 했지만 빗방울이 잠시 떨어진 것이 전부였다.

 

화엄사는 내 기억 속에 있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웅장한 규모도 여전했고,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각황전이나 석등, 불탑도 그대로였다. 가을 단풍을 즐기려는 행락객들로 붐비는 것만 제외하면 크게 변한 것은 없어 보였다. 새로운 불사 일으킨다는 광고만 빼고 말이다. 각황전 앞을 서성이며 화엄사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겼던 스무 살 남짓의 내 자신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때는 화엄사가 왜 그리 크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40kg이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혼자 노고단을 오르다가 운무에 길을 잃고 얼마나 산 속을 헤맸던가.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산사를 둘러 보았다.

 

노란 낙엽이 쌓인 오솔길을 걸어 구층암(九層庵)으로 향했다. 가을 정취가 물씬 배어 있었다. 천불보전을 구경하고 다시 발길을 연기암(緣起庵)으로 돌렸다. 대나무 숲 사이로 오솔길이 나타나 우리를 즐겁게 했다. 그 많던 행락객도 여기에선 볼 수가 없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계곡으로 내려서 김밥과 사발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막걸리 한 잔도 빠지지 않았다. 연기암 부근은 가을색이 더 짙었다. 높은 산을 오르지 않아도 가을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더구나 옛 친구들과 정겹게 이야길 나누며 걷는 길이라 부담이 없어 좋았다. 이 오솔길 산책이 얼마나 좋았던지 한 친구는 힐링의 길을 걸었노라 실토를 했다.

 

 

대전에서 고속도로를 달려 구례에 닿았다. 누렇게 익은 나락이 고개를 숙인 채 우리를 반겼다.

 

 

 

 

 

 

 

 

 

오랜만에 다시 화엄사를 찾았다. 화엄사는 백제시대에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각황전 등 4점의 국보와 보물 4점을 간직하고 있다.

 

구층암의 천불보전.

 

 

 

 

구층암에서 연기암에 이르는 오솔길이 운치가 있어 좋았다.

단풍도 곳곳에서 접할 수 있어 가을 한 복판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연기암을 오르니 멀리 섬진강이 내려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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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E성형외과 2014.12.08 1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풍이 살아있네요^^

    날씨는 춥지 않았나요?

    • 보리올 2014.12.08 1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날씨가 흐려서 오히려 단풍의 색감이 살아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햇빛이 있었더라면 투영광은 좋았겠지만 너무 현란할 수 있거든요. 제가 갔을 때가 11월 초라 그리 춥지는 않았습니다.

  2. justin 2014.12.12 1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시 미래에 갔다온 기분입니다. 저도 나중에 친구들과 옛 추억을 떠올리며 여행을 갔다오겠죠? 한국 단풍은 참 곱고 이쁩니다. 나무들이 한복을 입고 방기는 것 같습니다. 기분이 절로 좋아집니다.

  3. 설록차 2015.04.14 0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고운 가을색이에요...
    대나무밭 사이에서 나는 쏴~ 하는 소리...신비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분들도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산행동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