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에 어스름이 찾아왔다. 이제 포르투가 자랑하는 야경을 볼 차례다. 난 솔직히 도시의 야경에 그리 관심이 많지는 않다. 건물이나 조명 등 너무 인위적인 면이 많아서 그럴 게다. 하지만 포르투의 야경은 좀 느낌이 달랐다. 사람이 만든 풍경이지만 그래도 내겐 자연스러워 보였다고 할까. 특히 세라 필라 수도원(Mosteiro da Serra do Pilar)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꽤 근사한 풍경을 선사했다. 동 루이스 1세 다리의 조명에 도우루 강이 만들어내는 반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정도면 야경에 시간을 투자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우루 강 양안을 두루 구경하며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걸었다. 다리 위엔 야경을 보기 위해 나온 관광객들도 꽤 많았다. 포르투 역사지구로 내려서 골목길의 붉은 조명 아래를 걷기도 하고 강가로 나가 건너편 야경을 감상하기도 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서 포르투의 야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와인을 준비해 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성화였다.

 

 

도우루 강 언덕배기에 위치해 있어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조망하기 좋은 세라 필라 수도원 건물에 조명이 들어왔다.

 

 

 

 

동 루이스 1세 다리와 도우루 강, 그 뒤에 자리잡은 포르투 역사지구가 불을밝히면 아름다운 포르투 야경이 살아난다.

 

 

가이아 지구에서 강 건너편 야경을 담았다.

 

 

 

 

동 루이스 1세 다리 위에 서면 도우루 강 양안이 모두 시야에 들어온다.

 

 

이번엔 포르투 역사지구에서 강 건너편에 있는 가이아 지구의 야경을 담았다.

 

 

 

조명을 받아 낮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포르투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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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룰루를 빠져나와 일몰을 볼 수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관광버스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이미 도착한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이 테이블을 꺼내 놓고 와인 한 잔씩 하고 있었다. 우리가 일몰을 기다리는 사이, 가이드는 취사도구를 꺼내 파스타를 만들기 시작했다. 모든 재료를 준비해와 쉽게 조리를 한다. 해가 지평선으로 내려올수록 울룰루의 붉은색이 점점 진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일몰이 울룰루 투어의 하이라이트라 부를 만했다. 이 일몰을 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길 찾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햇빛이 사라지자, 바위의 붉은색도 사라졌다. 어쨌든 울룰루 일몰을 보았다는 안도감과 약간은 허전함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에어즈락 캠핑장에 도착해 캠프파이어를 준비하고 하룻밤 묵을 스웨그(Swag) 캠핑을 준비했다. 스웨그는 야외 매트리스라고 보면 된다. 커버가 있어 침낭을 그 안에 넣고 들어가 잔다. 땅바닥에서 자면 뱀을 어찌 하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이드 설명이 걸작이었다. 우리가 뱀을 싫어 하듯이 뱀도 사람을 싫어해 사람이 많은 곳은 오라고 해도 오지 않는다는 말에 다들 안심하는 눈치였다. 남반구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과 함께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울룰루 일출을 보기 위해 530분에 기상했다. 어제 일몰을 보았던 장소로 다시 갔다. 해가 울룰루 위로 뜨는 것이 아니라 훨씬 왼쪽에서 떠올랐다.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세우며 울룰루의 일출을 감상했다. 일몰에 비하면 일출은 좀 별로였다.


버스만 주차할 수 있는 일몰 장소에 많은 버스가 도착해 있었다.







해가 내려갈수록 울룰루의 붉은색이 점점 밝게 빛났다.




가이드가 저녁으로 준비한 파스타



호주 아웃백에서 맛볼 수 있는 호주 전통의 스웨그 캠핑







전날 일몰을 보았던 장소에서 일출도 감상할 수 있었다.


투어 버스에 매달린 트레일러에 주방기구와 스웨그를 싣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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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07.14 1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순서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잔뜩 기대하고 그 장면을 마주치는 것보다 어딜 향하다가 뜻밖의 펼쳐지는 풍경의 놀라움이 마음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 보리올 2018.07.16 0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우연을 만나면 훨씬 감동이 크겠지.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냐. 울룰루는 사진으로 보던 장관과는 좀 차이가 있더라.

 

이미 포르투의 관광명소가 된 동 루이스 1(Dom Luis I) 다리를 걷는 것도 꽤 낭만이 넘쳤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프 에펠의 제자 테오필 세이리그(Teophile Seyrig)가 이 다리를 설계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다리가 에펠탑의 구조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다리는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버스나 승용차가 다니고 2층은 전철이 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둘다 이용할 수 있어 다리를 오고갈 때 층을 달리 할 수 있었다. 전철이 다니지 않을 때는 철로가 놓인 공간을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것도 내 눈엔 좀 특이하게 보였다. 그 아름답다는 포르투의 야경은 이 다리에서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다리를 건너 가이아 지구에서 즐기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다. 난 본래 도시의 야경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포르투는 다른 도시의 경우완 좀 달랐다.

 

포르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역시 프란세지냐(Francesinha)였다. 이것은 일종의 샌드위치인데 빵 안에 햄이나 소시지, 고기를 넣고 빵 위에 치즈와 소스를 얹는다. 맛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으나 치즈가 많이 들어가 좀 느끼했다. 이것을 맛보기 위해 식당 두 군데를 가보았는데 맛이나 요리 방식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와인을 사들고 저녁 늦게 갤러리 호스텔로 돌아왔다. 호스텔 안에 있는 바에서 밖에서 사온 와인을 꺼내 한국 젊은이들과 나누어 마셨다. 흔쾌히 테이블을 사용하라며 우리에게 와인잔도 건네 주었다. 호스텔의 서비스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시설도 좋고 직원들도 친절해 온라인에서 평점이 무척 좋다고 들었다. 와인잔을 기울이며 젊은이들에게 포르투에 대한 인상을 물었더니 다들 칭찬일색이었다.

 

 

 

 

 

동 루이스 1세 다리에서 바라보는 포르투의 아기자기한 모습과 도우루 강변의 풍경은 정말 일품이었다.

 

 

세라 필라 수도원(Mosteiro da Serra do Pilar)에 서서히 어스름이 찾아왔다.

수도원 앞 공터는 포르투 야경을 바라보는 전망대로 유명하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서 포르투의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야경은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건너 가이아 지구로 건너가 바라보는 것이 더 좋았다.

 

 

 

 

동 루이스 1세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도우루 강변의 야경

 

 

 

포르투 도심의 식당에서 맛본 프란세지냐

 

갤러리 호스텔 안에 있는 바에서 와인을 나누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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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ooony 2016.02.01 1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력적인 도시네요. 잘 보고 갑니다.

    • 보리올 2016.02.01 1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포르투 정말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저도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처음에는 그 매력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 한 셈이더군요.

 

배낭을 꾸려 아랫층 식당으로 내려왔다. 테이블 가운데 비스켓이 담겨 있는 바구니가 있어 몇 개 집어 먹었다. 처음엔 순례자들을 위해 누가 가져다 놓은 것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바구니 안에 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것도 도네이션을 요구하고 있었다. 비스켓 값으로 2유로를 통에 넣었다. 알베르게를 나서니 구름이 역동적으로 움직여 일출이 장관일 것 같았다. 일출까지는 시간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걸어가는 도중에 동이 트는 것을 보기로 했다. 마을을 벗어나 30분쯤 걸었을까. 붉게 물든 구름이 동녘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 설레는 장면이 드디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 자리에 서서 붉은 하늘에 푹 빠져 들었다.

 

예전에 템플 기사단의 영지였다는 테라디요스(Terradillos)에 도착했다. 벽돌로 지은 성당이 보였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돌로 지은 성당이었는데 여긴 벽돌로 지은 것이었다. 석조 건물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이렇게 건축 양식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돌을 구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문이 잠겨 있어 성당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모라티노스(Moratinos)엔 조그만 언덕 아래 굴을 파서 그 안에 와인을 저장하는 셀러를 만들어 놓았다. 저장고 앞으로 갔더니 안은 들여다 볼 수 없었지만 와인 냄새는 풀풀 풍겨 나왔다. 화살 표식이 분명치 않아 마을에서 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밭 사이로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길을 따라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San Nicolas del Real Camino)에 닿았다. 여기도 땅에 굴을 파서 와인 저장고를 만들었다.

 

산 니콜라스를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팔렌시아 주에서 레온(Leon) 주로 들어섰다. 순례길엔 이를 알리는 표지판이 없어 도로로 나가 차량용 표지판을 찍어야 했다. 멀리 사아군(Sahagun)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까닭인지 길을 우회해 작은 성당으로 향하게 했다. 비르헨 델 푸엔테(Virgen del Puente) 성당이라고 한다. 사아군도 큰 도시답게 성당이 무척 많았다. 현재는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는 트리니다드(Trinidad) 성당과 그 옆에 있는 산 후안(San Juan) 성당을 둘러보고 산 베니토(San Benito) 수도원의 잔재인 아치형 문도 보았다. 지금은 그 문 아래로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가 놓였다. 베니토 수도원은 알폰소 6세를 지원하는 정치적 도박에 성공해 한때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수도원으로 군림했었다. 오랫동안 엄청난 영화를 누리다가 18세기 대형 화재로 한 순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산 베니토 수도원 뒤에 있는 산 티르소(San Tirso) 성당을 둘러보곤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산 로렌쏘(San Lorenzo) 성당도 찾아갔다. 사아군은 무데하르 건축 양식의 태동지라 불리는데, 무데하르(Mudejar) 양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두 성당이었기 때문이다. 성당을 둘러보면서 무데하르 건축 양식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무데하르란 12~17세기에 유행한 것으로 유럽의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에 스페인을 점령했던 아랍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스페인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말한다. 이 양식은 주로 벽돌을 사용하고 특히 종루에 벽돌과 타일을 세련되게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사아군에서 베르시아노스 델 카미노(Bercianos del Camino)까지 10km 구간이 무척 멀게 느껴졌다. 솔직히 오후가 되면 늘 그랬다. 왼쪽 발목은 거의 회복이 되었는데 이젠 오른쪽 발가락에 생긴 티눈이 문제다. 요즘 들어 통증이 상당했는데 이것도 오후가 되면 더 심해졌다. 칼싸다 델 코토(Calzada del Coto)에서 길이 갈라진다. 왼쪽 오리지널 루트를 택했다. 거기서 베르시아노스까지는 5km. 도네이션제로 운영하는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어떻게 운영하는지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시설은 형편없는데도 침대는 거의 다 찼다. 사람은 도착하지 않았는데 누가 먼저 와 침대를 미리 잡아놓은 것 같았다. 나중엔 침대가 모자라 방바닥에 매트리스만 깔고 자기도 했다. 난 운좋게 침대 하나를 잡아 숙박비와 식사비로 10유로를 기부함에 넣었다.

 

밖으로 나가 석양을 촬영하고 식사 시간에 맞춰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알베르게에 투숙한 모든 사람이 식당에 모여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자원봉사자 두 명이 식사를 준비했는데, 저녁 메뉴는 렌틸콩을 넣은 파스타였다. 빵과 와인도 나왔다. 원래는 34명분을 준비했는데 사람이 늘어 45명이 먹어야 한다고 했다. 파스타도 양이 무척 적었고 빵과 와인도 마찬가지였다. 음식을 먹기 전에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고 감사의 노래를 부른 다음에 식사를 하는 것은 꽤 인상적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 음식은 적었지만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도네이션제 숙소는 확실히 젊고 가난한 순례자들이 많아 보였다. 도네이션을 하지 않는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도네이션제 숙소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칼싸디야를 벗어나 도로 옆으로 난 길을 걷다가 일출을 맞게 되었다.

 

정서 방향으로 향하는 순례길 위에 키가 큰 그림자 하나가 나를 반겼다.

 

테라디요스 마을을 벗어나 멀리서 뒤를 돌아보며 사진 한장 찍었다.

 

모라티노스에서 산 니콜라스 레알 카미노로 이어지는 순례길을 걷고 있다.

 

땅 속에 굴을 파고 그 안에 와인을 저장하는 와인 셀러가 자주 보였다.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 마을. 무데하르 양식을 사용한 산 니콜라스 성당을 지나쳤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의 팔렌시아 주에서 레온 주로 들어섰다.

 

사아군으로 들어가면서 길을 우회해 방문한 비르헨 델 푸엔테 성당

 

알베르게로 쓰이는 사아군의 트리니다드(Trinidad) 성당 앞에 세워진 순례자 상

 

트리니다드 성당 옆에 있는 산 후안 성당은 문이 닫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베니토 수도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정문으로 쓰였던 아치형 문만 남아 옛 영화를 대변하고 있었다.

 

베니토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산 파쿤도(San Facundo) 수도원을 지었으나 지금은 시계탑만 남았다.

 

 

벽돌로 지은 산 티르소 성당. 사아군에서 무데하르 양식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건축물이다.

 

 

산 로렌쏘 성당 역시 이슬람 영향을 받아 벽돌로 지었다.

 

1085년 알폰소 6세에 의해 건립된 아치형 칸토 다리

 

칼싸다 델 코토 마을의 모습. 여길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난 오리지널 루트를 택했다.

 

아스팔드 도로 옆으로 나란히 놓인 순례길을 따라 가로수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순례길에서 멀지 않은 철로 위를 스페인 국영 철도(renfe)가 지나가고 있다.

 

베르시아노스 마을에 도착했다. 햇볕이 강한 때문인지 마을 노인들이 모두 해를 등지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고풍스런 모습의 베르시아노스 알베르게. 도네이션제로 운영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위로 해가 떨어졌다. 일출 못지 않게 일몰도 환상적이었다.

 

 

모든 투숙객이 알베르게 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재미있게 진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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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02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땅 속에 굴을 파고 와인 셀러를 만들어놓으면 두더지가 가장 신날거같은데요?

 

어제 파스타를 만들어준 젊은이에게 아침을 함께 하자고 했다. 팜플로나에서 산 신라면 두 개를 끓였다. 오랜만에 먹는 매콤한 라면이 입맛을 돋운다. 오전 8시 그 친구와 알베르게를 나섰다. 박재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친구는 학군장교 출신으로 중위로 전역한 뒤 지난 16개월간 세계여행을 하고 있었다. 돈이 떨어지면 여행지에서 일을 해 경비를 번다고 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것도 그와 무관하진 않았다. 그 친구의 장래 꿈을 들으며 길을 걸었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가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현실과의 괴리를 극복하려면 앞으로 어려움이 많겠구나 싶어 걱정도 되었다.

 

그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눈 깜짝할 새에 7km나 떨어져 있다는 산솔(Sansol)에 도착했다. 내 딴에는 경험이 더 많다고 이런저런 조언을 했는데 행여 노파심이나 잔소리로 들리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산솔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토레스 델 리오(Torres del Rio)가 빤히 내려다 보였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처음엔 한 마을인줄 알았다. 토레스 델 리오에는 산토 세풀크로(Santo Sepulcro)라 불리는 팔각형 모양의 아담한 성당이 있었다. 어찌 보면 에우나테의 산타 마리아 성당과 비슷해 보였다. 성당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도로를 몇 번인가 횡단한 후에야 비아나(Viana)에 도착했다. 정오도 되지 않았다. 네 시간에 18km를 걸었으니 빨리 온 셈이다. 젊은이는 여기서 묵겠다고 해서 헤어지기 전에 점심이나 함께 하자고 했다. 엘 포르틸료(El Portillo)란 식당에서 참치와 미역, 하몽을 넣은 타파스 세 종류에 맥주 한 잔씩을 시켰다. 어느 것이든 맛은 훌륭했다. 한 입에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사이즈였는데 이것도 타파스라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다. 점심을 마치고 그 친구는 알베르게로 가고, 나는 비아나 도심을 둘러보기 위해 되돌아섰다. 시청사 앞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은 문을 닫아 들어갈 수가 없었지만 거의 다 허물어진 산 페드로 성당은 입장이 가능했다. 한 귀퉁이 건물에 천장 벽화만 남아 옛날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홀로 걷는다. 어떤 사안에 생각을 집중할 수 있어 외롭단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로그로뇨(Logrono)까진 12km를 더 가야 했다. 시커먼 구름이 몰려왔지만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비아나를 벗어나자마자 벌처(Vulture)라 부르는 독수리 한 마리가 퇴비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동물의 사체를 먹이로 한다는 녀석이다. 근데 이 녀석 배짱이 얼마나 두둑한지 내가 다가가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로그로뇨를 4km 남겨놓고 나바라 주에서 라 리오하(La Rioja) 자치주로 들어섰다. 거기서 다시 얕은 언덕을 하나 넘어서야 로그로뇨에 도착했다. 어느 알베르게에서 사람이 나와 열심히 호객 행위를 한다. 적극적인 자세는 인상적이었지만 난 무니시팔로 가겠다 미리 못을 박았다. 에브로 강(Rio Ebro) 위에 놓인 피에드라(Piedra) 다리를 건너 도심으로 향했다.

 

이곳 알베르게에도 한국인들이 꽤 많았다. 침대에 시트를 깔고는 시내 구경부터 나섰다. 로그로뇨 대성당과 메르카도(Mercado) 광장, 산티아고 성당, 산 바르톨로메(San Bartolome) 성당을 찾아 다니며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성당 세 군데가 모두 문을 열지 않아 좀 실망했는데 저녁이 되어서야 대성당과 산 바르톨로메 성당이 문을 열어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알베르게로 돌아왔더니 독일에서 왔다는 모리츠가 스파게티를 준비할 예정인데 함께 하겠냐고 물어왔다.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내 식량부터 처치하고 싶어 정중히 사양을 했다. 냄비에 밥을 짓고 밥 위에 자반김을 뿌린 후에 고추장을 적절히 섞어 내 나름대로의 만찬을 즐겼다.

 

밤에 다시 밖으로 나섰다. 라우렐 거리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로그로뇨는 리오하 주의 주도인만큼 먹거리가 풍부했다. 특히 와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리오하가 세계 5대 와인 생산지 중 하나라니 그럴만도 했다. 라우렐 거리의 타파스 바(Tapas Bar) 또한 로그로뇨의 자랑거리였다. 타파스는 식사 전에 술과 함께 먹는 간단한 음식으로 통상 바게트 위에 고기나 새우, 멸치, 버섯, , 치즈 등을 얹어 만든다. 여기 리오하에선 와인과 함께 먹는 안주라 보면 될 것 같았다. 가게마다 타파스를 개성있게 만들기 때문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맛을 보는 것이 좋다. 나도 여기저길 돌아다녔다. 사람들로 붐비는 골목을 헤집고 다니며 다양한 타파스가 준비되어 있는 바에서 와인 한잔에 타파스 한 조각 입에 무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로스 아르고스를 출발해 처음 만난 마을이 산솔이었다.

 

처음에 토레스 델 리오 마을을 보곤 산솔의 일부인줄 알았다.

마을 중앙에 별도의 성당이 있는 것을 보고 다른 마을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토레스 델 리오를 벗어나면 순례길 한 옆에 각종 메모들을 돌로 눌러놓은 곳을 지난다. 한글 메모도 많이 보였다.

 

어제 파스타를 요리해준 젊은이와 비아나까지 함께 걸었다.

원대한 꿈을 키우며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젊음이 마냥 부러웠다.

 

프랑스 르푸이를 출발해 산티아고를 찍고는 다시 르푸이로 돌아가고 있는 프랭키를 만났다.

왕복 3,400km의 장거리를 순례에 나선 것이다.

 

 

비아나로 들어서 시청사 앞에 있는 광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비아나에서 헤어지기 전에 젊은이에게 점심을 샀다. 참치와 미역, 하몽이 들어간 세 가지 타파스를 맛보았다.

 

 

외관이 이름다운 산타 마리아 성당은 문이 닫혀 밖에서 올려다만 보았다.

 

 

건물 대부분이 허물어진 산 페드로 성당은 정문과 성당 한 귀퉁이만 남아 있었다.

 

도로 아래를 지나는 지하 통로 벽면에 순례자들을 격려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동물의 사체를 먹고 산다는 벌처를 가까이에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라 리오하 자치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길가에 서있다.

 

로그로뇨는 산티아고 순례길 표식을 특이하게 만들어 길에 박아 놓았다.

 

11세기 후반에 지어진 피에드라 다리.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와 그의 제자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가 보수했다고 전해진다.

 

 

 

 

산타 마리아 라 레돈다(Santa Maria la Redonda)라고 불리는 로그로뇨 대성당.

성당 입구는 고딕 양식이지만 쌍둥이 탑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고딕 양식의 산티아고 성당은 문을 열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정문 위에 산티아고 마타모로스(Santiago Matamoros)라 불리는 전사 산티아고의 기마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산 바르톨로메(San Bartolome) 성당의 아치 정문에는 화려한 조각들이 가득했다.

 

 

와인과 타파스 바로 유명한 라우렐 거리. 타파스 바에는 맛과 색깔, 모양이 서로 다른 타파스가 진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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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25 0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11.25 0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선생님도 그러시군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오래 전부터 가려고 했지만 이제사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의미가 없었기에 전반적으로 제 기대에는 못 미치더군요. 만약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북쪽길을 걷고 싶습니다. 포르투갈 길도 좋을 것 같고요.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2. Justin 2015.12.23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 그 젊은이가 아버지를 형님으로 모시는 저보다 더 어린 그분입니까? 저도 아버지 친구분들을 형님으로 모시면 반응이 어떨까요?

    • 보리올 2015.12.23 15: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 그 청년이 맞다. 둘 사이를 형, 아우로 부르는 것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제 3자가 결부되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 그래서 그 친구에게 다른 호칭이 좋겠다 했더니 바로 선생님이라 부르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