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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06 [캄보디아] 프놈펜-3 (4)
  2. 2016.05.04 [캄보디아] 프놈펜-1 (4)
  3. 2016.02.09 [포르투갈] 리스본 ③ (2)
  4. 2015.05.13 [네팔] 카트만두 ① (2)
  5. 2014.03.22 [네팔] 박타푸르 (4)

 

몇 군데 시장을 둘러보고 발걸음은 왕궁(Royal Palace)로 향했다. 현재 캄보디아 국왕인 시하모니(Sihamoni)가 거처하고 있는 왕궁은 무슨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지 문을 열지 않았다. 오후 2시에 문을 연다고 하는데 마냥 기다리기엔 날씨가 너무 더웠다. 멀리서 외관이나 보는 수밖에 없었다. 크메르 건축양식으로 지었다는 왕궁은 정중앙에 사원처럼 첨탑을 갖고 있었다. 왕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캄보디아 국립박물관에 들렀다. 이 역시 크메르 사원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빨간 건물과 푸른 정원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박물관엔 조각품이나 도자기 등 크메르 유적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다. 입장권을 살 때 분명 사진 찍을 수 있다고 해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실내에선 찍지마라고 한다. 감시원이 없는 틈을 타서 실내도 살짝 찍었다.

 

길거리에서 순박해 보이는 오토바이 운전자를 만나 킬링 필드(Killing Fields)로 가자고 했다. 툭툭은 25불을 달라고 하는데 오토바이는 10불을 달라고 했다. 혼잡한 거리를 곡예하듯이 40여 분을 달렸던 것 같다. 푹푹 찌는 아스팔트 복사열에 차량과 오토바이가 뿜어내는 매연, 수시로 빵빵거리는 경음기 소리, 내 발 옆을 스치며 지나가는 차량까지 혼잡함 그 자체였다. 한글로 쓰인 광고판을 그냥 달고 질주하는 승합차까지 모든 게 무질서 속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았다. 모처럼 스릴을 즐기는 것 같아 내 가슴 속은 오히려 뿌듯하기도 했다. 헬멧을 쓰지 않았다고 경찰이 잡는 것을 몰래 도망치는 긴장감도 나름 재미있었다. 이런 것이 캄보디아의 매력이 아닐까 싶었다.

 

나를 태운 운전자도 킬링 필드는 처음였던 모양이었다. 몇 번인가 오토바이를 세우고 길을 물었지만 좌회전할 골목을 놓쳐 더 갔다가 되돌아왔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충에크 킬링 필드는 사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념이니 독재니 해도 어찌 같은 국민을 이리도 무자비하게 학살할 수 있단 말인가. 1975 4 17일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군이 들어와 전국민 800만 명 중에 200, 아니 어떤 사람은 300만 명을 학살했다고 한다. 여기서도 20,000명이 죽었는데 이런 곳이 캄보디아 전역에 300개가 있었다니 너무 끔찍했다. 번호를 따라 유적지를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위령탑에 들어갔다. 17층 높이의 위령탑은 해골로 가득했다. 불쌍한 사람들의 허무한 인생이 생각나 기분이 착 가라앉은 상태로 호텔로 돌아왔다. 이런 만행을 저지른 폴 포트는 실각한 이후에도 망명 생활을 하며 천수를 누렸다는 이야기에 더욱 열불이 났다.

 

 

 

현재의 국왕이 살고 있다는 왕궁은 톤레삽 강과 인접해 있었다. 아쉽게도 문을 열지 않아 안으로 들어가진 못 했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크다는 국립박물관은 크메르 유적을 전시하고 있었다.

 

나를 킬링 필드까지 데려다 준 오토바이 운전자. 길을 찾아 헤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순박함이 돋보였다.

 

 

 

 

프놈펜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15km 떨어져 있는 충에크 킬링 필드를 오디오 설명을 들으며 한 바퀴 돌았다.

 

 

 

 

충에크 킬링 필드의 위령탑 안에는 크메르 루즈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들의해골로 가득했다.

그 끔직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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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oding 2016.05.07 10: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경잘하고갑니다

  2. Justin 2016.05.31 1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같은 사람인데 너무 잔인합니다. 하늘이 보는 것은 피할 수 없으니 꼭 그에 응당한 벌을 받을 것입니다.

    • 보리올 2016.05.31 15: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많은 인명을 학살한 크메르 루즈의 수괴인 폴 포트가 노년을 편히 살다 간것을 보면 세상이 그리 정의롭진 않은 것 같더랴. 종교적 가르침에좀 회의도 들고.

 

무척 더운 날씨에 동남아시아에선 최빈국에 속하는 캄보디아를 다녀왔다. 앙코르 와트(Angkor Wat)를 비롯한 앙코르 유적이 찬란했던 그들의 과거를 대변해주고 있어 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캄보디아는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외세에 시달려 왔다. 이웃 국가인 태국과 베트남의 계속되는 핍박에 견디다 못해 1863년 스스로 프랑스 식민지가 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엔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195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지만 친미적인 론 놀(Lon Nol)의 크메르 공화국에 이어 폴 포트(Pol Pot)가 이끄는 공산당 정권에 의해 엄청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1975 4월부터 1979 1월까지 200만 명에 이르는 목숨을 학살한 킬링 필드(Killing Fields)가 자행된 것이다. 현재는 입헌군주제에 기초한 캄보디아 왕국이 설립되어 시아누크가 왕으로 복위한 후 어느 정도 상처를 회복하고 외형적으론 평온을 되찾은 것 같았다. 시아누크가 퇴위한 2004년에 시하모니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얼굴을 가진 캄보디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선량하게 생겼다. 하지만 프놈펜(Phnom Penh)에 도착해서 바로 카메라를 소매치기 당하는 사고를 겪고나자 갑자기 순한 얼굴 뒤에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경계심이 들었다. 캄보디아에 정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호텔에만 머무를 수는 없어 밖으로 나섰다. 4월 초의 동남아 날씨가 이렇게 더울 줄은 미처 몰랐다. 한낮의 온도가 39~40도를 오르내렸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피부는 타들어가고 잠시만 걸으면 땀이 줄줄 흐르고 목이 탔다. 그래도 내 수중에 스마트폰이 남아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시내를 걸었다. 톤레삽 강(Tonle Sap River)을 따라 올라 프놈펜의 상징이라는 와트 프놈(Wat Phnom)에서 시작해 왕궁으로 내려오는 도보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가감없이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이 정겨웠다. 탁발을 나온 동자승, 시장에서 생선 몇 마리 든 좌판을 깔아놓고 호객하는 아낙네, 길가 그늘에서 한가롭게 장기를 두고 있는 남자들에게서 사람 냄새가 났고 이렇게나마 그네들 생활의 일면을 보게 되어 다행이었다.

 

 

톤레삽 강을 따라 위로 올라가며 강가 풍경을 살펴 보았다.

조그만 배에서 살아가며 때론 고기잡이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와트 프놈부터 들렀다. 규모는 작았지만 치성을 드리러 온 시민들이 제법 많았다.

우리네 것과는 형상이 많이 다른 불상들이 앉아 있었다.

 

 

중앙시장 근처에 있는 168 버스 터미널에서 시아누크빌(Sihanouk Ville) 가는 버스를 미리 예약했다.

 

 

 

왕립 미술대(Royal University of Fine Arts)에서 학생들이 무슨 축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의 장기와 비슷한 체스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훈수꾼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어린 스님 둘이 대로를 따라 탁발을 다니고 있었다. 수행의 한 과정인 탁발로 얻은 음식으로 목숨을 부지한다고 한다.

 

 

릭샤를 끄는 사람이나 길에서 구걸을 하는 두 아이 엄마도 한낮의 더위를 피해 낮잠에 들었다.

한가로운 도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길거리 상가에 이렇게 도살한 돼지를 걸어놓은 곳이 있었다. 통돼지 바비큐를 하려는 것인지는 물어보지 못 했다.

 

길거리에서 미장원 안을 살짝 들여다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늦은 저녁을 먹으러 매운 국수라 적혀 있는 식당을 찾았다. 얼마나 매울까 기대를 했지만 내 입에도 그리 맵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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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라다이스블로그 2016.05.04 14: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지의 구석구석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포스팅, 잘 보았습니다 ㅎㅎ
    마지막 국수도 맛있어보이는데요. 캄보디아 여행 한번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 보리올 2016.05.04 1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감어린 댓글을 보면 힘이 납니다. 어떻게 갚지요?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은 꼭 보셔야 합니다. 카메라나 귀중품은 항상 조심하시구요.

  2. Justin 2016.05.27 1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나 더울지 상상이 안 갑니다. 캄보디아에 그런 아픈 역사가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 보리올 2016.05.28 1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때는 앙코르 유적을 만들 정도로 강성했던 민족이 저리도 몰락할 수 있을까 싶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니 저들도 언젠가 다시 부강한 나라를 만들 희망을 갖고 살겠지.

 

리스본 시가지를 굽어보는 위치에 자리잡은 상 조르지(Sao Jorge) 성은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 한다. 로마제국을 비롯해 리스본을 차지했던 모든 지배세력들이 이곳을 요새로 사용했는데, 현재의 성채는 11세기 중엽 무어인이 건립했고 1147년 아폰수 1(Afonso I)가 무어인으로부터 빼앗았다. 1255년 리스본이 포르투갈의 수도가 되자, 이 성은 한때 왕궁으로 쓰이게 되었다. 성 안으로 들어가면 성채와 요새란 측면도 있지만 왕궁으로서의 면모도 남아있다. 성은 리스본에 있는 언덕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세워져 리스본을 조망하기에 아주 좋다. 계단을 타고 성벽으로 올라 리스본을 내려다 보았다. 몇 군데 전망대에서 보았던 풍경과 비슷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보는 풍경이 시야가 넓고 가리는 것이 없어 가장 훌륭하단 생각이 들었다.

 

리스본을 방문했던 사람들로부터 28번 트램을 타보라는 권유가 많았다. 처음엔 왜 여러 노선 가운데 굳이 28번 트램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리스본의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고 유명 관광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상 조르지 성 인근에서 28번 트램에 올랐다. 트램은 알파마 지구의 언덕 곳곳을 지나 바이샤 지구와 바이루 알투(Bairro Alto) 지구로 삐그덕 소리를 내며 느릿느릿 움직였다.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불현듯 어릴 적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아버지 손을 잡고 난생 처음 상경한 시골 아이 눈에 남대문 앞을 지나던 전차가 들어왔던 순간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수 십년의 세월을 거슬러 아련한 추억을 회상케 하는 계기를 이 트램이 만들어 주었다. 종점인 에스트렐라 바실리카(Basilica da Estrela)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상 조르지 성 아래서 깃발이 펄럭이는 성벽을 올려다 보았다.

 

 

 

요새로 세워진 이래 한때는 왕궁으로, 그 뒤론 감옥으로 쓰였던 성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세 시대의 기사 복장을 한 사람 뒤로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따르고 있었다.

 

 

 

 

11개의 타워가 남아있다는 성벽으로 올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오르내리는 계단이 많아 길은 좀 복잡했지만 사각형 석조 요새를 배경으로 한 독특한 풍경은 꽤 인상적이었다.

 

 

 

 

 

시야가 훤히 트여 성채에서 바라보는 리스본의 풍경은 아주 훌륭했다.

 

공작새 한 마리가 밖으로 나와 꼬리를 펴곤 재롱을 떨며 관광객을 맞았다.

 

 

 

성채 안에 있는 전시관에선 여기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어 기원전부터 18세기까지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유명한 28번 트램을 타고 상 조르지 성에서 에스트렐라 바실리카까지 이동했다.

 

 

녹음이 우거진 에스트렐라 공원(Jardim da Estrela)을 방문해 잠시 숨을 돌릴수 있었다.

 

 

에스트렐라 공원 안에 있는 카페에서 에그타르트와 빵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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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6.02.09 1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빵이 맛나 보입니다
    설날이라고 너무 기름져서 느끼함
    계속입니다 처가에서 아침 기다립니다 멋진 여행 계속되시길!

    • 보리올 2016.02.09 10: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빵 이야길 하셔서 배가 고프신 모양이다 생각했는데 설이라고 느끼한 것을 너무 많이 드신 것이군요. 여기선 떡국 한 그릇이 전부였습니다. 올해도 건강하십시요.

 

어느 후배의 부탁으로 급히 네팔을 다녀오게 되었다. 지난 425일 발생한 대규모 지진의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효율적인 지원방안을 찾기 위한 방문이었다. 카트만두야 그 동안 여러 차례 다녀온 곳이기에 낯선 곳에 대한 설레임은 없었다. 언론 매체를 통해 엄청난 지진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침통한 마음으로 비행기 트랩을 내려섰다. 하지만 차창을 스치며 지나가는 카트만두 도심은 예전과 같이 활력이 넘쳤다. 사람과 차량이 도로에 넘쳤고 매연, 클랙션 소리도 여전했다. 아무리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카트만두에선 무너진 건물이나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가물에 콩나듯 어쩌다 무너져내린 집이 한두 채 보였다. 카트만두는 실제로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았다. 사람들 얼굴도 평안하기 짝이 없었다.

 

카트만두를 걸으며 카트만두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왕궁의 담장이 길게 무너져내렸고 넓은 공터나 운동장에는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일까? 아니면 집이 무너질지도 모를 걱정에 밖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팔 전역에서 8,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는 상황에서 카트만두가 이만 해서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트만두 도심의 건물이나 가옥이 피해를 입었더라면 사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카트만두 아래에 자리잡은 거대한 암반이 지진 피해를 줄였다는 이야기가 사실인 모양이다.

 

그렇게 신이 많다는 네팔에서 이 무슨 참변이냐고 한 마디 했더니 네팔인 친구가 답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신이 많았으니까 피해가 이 정도로 그쳤던 것이 아니냐는 반문에 할말을 잃었다. 지진이 발생했던 날이 네팔 휴일이었던 토요일이었다. 시각도 정오 직전인 오전 1155분이었다고 한다. 그 이야긴 집 안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는 의미다. 만약 이 지진이 자정 무렵에 일어났다면 집 안에서 잠자고 있던 엄청난 사람들이 참변을 당했을 것이란다. 이런 상황에선 어울리지 않겠지만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진짜 네팔 신들이 많은 덕이 아닌가 싶었다.

 

 

(사진) 카트만두 트라뷰반 공항에 내렸다. 공항 앞에 늘어선 인파의 환영을 받았다.

 

 

(사진) 담장 아래 쌓인 붉은벽돌이 내 눈에 비친 첫 지진 피해였다. 피해가 크지 않아 다행이었다.

 

 

 

 

(사진) 카트만두의 유명 이태리 레스토랑인 파이어 앤드 아이스(Fire and Ice)에서 리소토로 점심을 해결했다.

 

 

 

(사진) 그리 크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들었던 빌라 에베레스트(Villa Everest)는 지붕에서 기와 두 장 떨어진 것이 전부였다.

벽면 사진 속에선 박영석 대장이 웃는 모습으로 우릴 맞았다.

 

 

 

 

(사진) 왕궁 담장이 꽤 많이 무너져 있었다. 통째로 넘어진 어느 담장은 보도로 변했다.

잔디밭에 세워진 천막도 볼 수 있었다.

 

 

(사진) 빨래터를 지나면서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사진) 저녁을 해결한 카트만두의 한식당 서울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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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5.05.24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팔에 다녀오셨어요...
    카트만두 같은 대도시에 피해가 적은 것은 천만다행이네요...
    낙천적인 사람들이라 잘 이겨낼거다 하셨지만 얼마나 불안하고 불편할지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일본이나 필리핀 지진 때 보다 언론에서도 덜 다루는 것 같아요..더 가난한 나라 아닙니까...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클텐데 빠른 복구를 빌겠습니다...

    • 보리올 2015.05.24 2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갑자기 네팔 다녀올 기회가 생겼습니다. 네팔의 현실을 참 잘 보셨습니다. 관광 수입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나란데 요즘은 그나마 트레커들도 발길을 끊고 있어 걱정입니다. 얼마간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카트만두 동남쪽에 자리잡은 네팔 고대 왕국 박타푸르(Bhaktapur)를 둘러봤다.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난 네와르 족들이 건설한 도시로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네팔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난 몇 번 다녀간 곳이지만 네팔에 처음 온 일행들이 있어 그냥 건너뛰기가 쉽지 않았다. 외국인에겐 입장료로 10불씩을 받지만 네팔인들은 무료로 들어간다. 고풍스런 건축물과 장식물, 사원, 석상들이 도시에 밀집되어 있어 커다란 박물관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특히 붉은 벽돌을 많이 사용해 고풍스러움을 더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해 정문을 들어서면 덜발 광장(Durbar Square)과 왕궁이 먼저 나타난다. 덜발 광장은 왕궁이란 의미로 카트만두에도 있고 파탄에도 있다. 박타푸르엔 덜발 광장 외에도 두 개의 광장이 더 있다. 중요한 건축물은 이 세 개의 광장 주변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 양식이나 장식품이 서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달라 그 차이를 가늠키 어려웠다. 네와르 부족의 뛰어난 손재주에 절로 감탄이 새어나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박타푸르엔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묘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박타푸르의 또 다른 매력이라 하면 나만의 생각일까. 문화재도 사람과 함께 숨쉬고 온기를 나눌 때 그 존재가치가 더욱 부각되지 않을까 싶다. 광장을 벗어나면 사람들이 들끓는 골목들이 나타난다. 공예품이나 옷감, 악기를 파는 가게도 있고 먹거리를 파는 조그만 식당도 많다. 과일 가게 앞에선 한 남자아이가, 큰 나무 앞에선 여자아이가 우리를 보곤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다. 세파에 때묻지 않은 그들 표정에 우리도 모처럼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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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토종감자 2014.03.22 1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번째 사진 참 좋네요.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이 인상적이예요.

    • 보리올 2014.03.22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참으로 부러워하는 여행을 하시는군요. 정말 멋진 삶이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토종감자님이 갑자기 부러워집니다. 네팔은 아직도 순진한 동심을 만날 수 있는 곳이랍니다. 언제 수입오이를 앞세워 한번 다녀 오시지요.

    • 토종감자 2014.03.22 2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네팔이며 인도, 라오스 등등 가보고 싶은 곳은 너무 많은데, 아직 기회가 없었네요.
      꼭 만들어야죠, 기회 ^^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블로그 제목, 너무 마음에 들어요!
      딱 제가 하고 싶은 여행이네요. ^^

    • 보리올 2014.03.22 23: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역마살을 가지곤 태어났는데 그 동안은 직장생활하느라 한 곳에 매여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야 거의 비슷하겠지만 말입니다. 많이 다니시고 좋은 글 많이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토종감자님 블로그 제목도 재미있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