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설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10.12 랑탕 트레킹 - 11
  2. 2013.07.25 [멕시코] 세노테 우비쿠(Cenote Hubiku) (2)

 

내리막 일색일 것이란 예상이 이번에도 보기좋게 깨졌다. 쿠툼상부터 바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능선길이라 해서 마음을 놓았는데 그 능선길이 계속해서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이다. 쿠툼상을 벗어나자, 임시 천막을 설치하곤 의료봉사에 여념이 없는 현장을 발견했다. ‘CAN’이란 영국 단체가 주관하고 있었는데 무슨 의미냐 물었더니 ‘Community Action Nepal’의 준말이란다.

 

의료봉사 현장을 둘러볼 기회를 달라고 요청해 허락을 받았다. 영국인 월(Wall)이란 친구가 나와 우리에게 직접 간단한 브리핑을 한다. 이렇게 의료진을 데리고 봉사를 올 정도면 재원도 장난이 아닐텐데 기부금을 통해서 봉사를 실현한다니 부럽기도 했다. 어느 캠프에는 눈 수술을 받은 할머니들 십여 명이 천막 안에 앉아 있었다. 의료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살아온 이들에게 의료봉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이리라.

 

부식이 떨어졌다고 해서 이제부턴 부득이 매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식 예측을 잘못한 요리사를 힐책할까 하다가 그만 두기로 했다. 리마도 이제 경력이 쌓였으니 꾀를 낼만도 하겠지. 그 동안 열심히 봉사했으니 이제 휴가를 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대행사에도 따지지 않기로 했다. 칩링(Chipling)의 경치좋은 로지에서 차파티로 간식을 했다. 이렇게라도 네팔 음식에 적응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은가.

 

골프반장(Golfbyanjang)은 아이들이 많아 좋았다. 나에겐 사진 모델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산자락에 다랑이논도 많고 아이들 입성도 좋아 보였다. 점심으로 모모(만두)와 볶음밥, 스프를 시켜 먹었다. 맛이 좋기에 주인을 불러 음식 솜씨를 칭찬했더니 나중에서야 니마가 직접 요리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쩐지 기대 이상이라 했더니 하마터면 속을 뻔 했다. 그럼에도 외국인에게 바가지 씌우는 금액을 모두 지불해야만 했다. 우리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었지만 주인네 식재료를 섰다는 이유로 말이다. 요리사가 따로 뒷돈을 받았나?      

 

능선을 걸으며 여기서 바라보는 산자락이 꼭 우리 나라 야산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첩첩이 중첩되어 뻗어나간 모습이라니능선을 따라 오르내림을 계속했다. 쉽게 보내주지는 않겠다는 히말라야의 속셈인 것 같았다. 사막 지역에나 있을 법한 선인장이 몇 그루 보이고 용설란도 꽤 많이 보였다. 히말라야에 용설란이라니 참으로 의외였다. 우리가 지나온 고산 지역과는 식생이 상당히 달랐다.

 

트럭 한 대가 마을 가운데 세워져 있는 파티반장을 지났다. 이 산골 마을까지 트럭이 들어온다니 놀라웠다. 아이들 십 수명이 트럭 위에 실린 화물에서 놀고 있었다. 트럭이 아이들 놀이터로 변해 버린 것이다. 해발 1,800m인 파티반장에서 고도를 300m 올려 시소파니(Chisopani)에 닿았다. 닭을 세 마리 구입해 우리와 스탭이 반씩 나눴다. 니마가 맛있는 닭도리탕을 만들어 왔다. 히말라야 닭은 마당에 풀어놓고 길러 살이 질긴 편이지만 맛은 뛰어나다. 거기에 니마의 솜씨까지 가미가 되었으니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숙면을 위해 9시까지 버티다가 함께 야간 데이트를 나가자 청했다. 상현달에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보고 있자니 절로 흥이 오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산길을 걸었다. 흥에 겨워 노래도 불렀다. 랑탕 트레킹을 끝내는 우리들의 조그만 자축 파티였다. 우리의 시끄러운 합창에 호주에서 온 마이클이란 친구가 밖으로 나왔다가 우리에게 노래 한 곡을 청한다. 우리가 부르던 노래가 듣기 좋아 나왔다며 웃는다. 그래서 또 한 곡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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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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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가 되기도 전에 눈을 떴다. 치첸이샤(Chichen Itza)로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커튼을 제치자, 붉은 여명이 동녘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수도 않고 카메라를 들고 해변으로 뛰쳐 나갔다. 일출이 그리 화려하진 않았지만 멕시코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칸쿤에서 본 일출이니 나름 의미가 있었다. 일출에 맞춰 산책을 나온 한 커플이 한국말로 이야길 하면서 내 옆을 지나친다. 또 다른 중년여성 두 명도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한국 아줌마들이다. 이 세상 어디를 가나 부지런하고 열정으로 똘똘 뭉친 우리 나라 사람들을 만난다.

 

 

  

아침 7시부터 조식 부페를 제공한다고 해서 식당으로 갔더니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바닥을 청소하고 있던 청년이 8시부터 한다고 슬쩍 한 시간을 미룬다. 7 30분에 치첸이샤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럼 어쩌란 말이냐? 어디서 아침을 해결할지 난감해 하던 차에 주방에서 일하는 청년 둘이 헐레벌떡 들어와 음식을 준비한다. 이 친구들이 늦게 출근하면서 생긴 일인 듯 했다. 삶은 달걀 두 개와 소세지 몇 조각으로 급히 아침을 때웠다. 

 

       

버스가 나를 픽업하기 위해 호텔로 왔고 이렇게 몇 군데에서 모인 사람들이 스테이션이란 곳에 집결했다. 스테이션이라 해서 기차역이 아니고 웨트 앤 와일드(Wet & Wild)란 놀이공원의 주차장이었다. 25번 버스가 오늘 치첸이샤로 가는 버스란다. 가이드와 인사를 나누고 25번 버스에 올라탔다. 여기저기서 모인 사람들로 대형 버스가 꽉 찼다. 9시가 가까워지자, 치첸이샤로 츨발을 했다.

 

엄청 빠른 가이드의 멕시코 말이 귀전을 스쳐 지나갔지만 한 마디도 알아 들을 수 없어 우두커니 창 밖을 지켜 보았다. 풍경은 무척 단조로웠다. 그리 크지 않은 나무들이 꽉 들어찬 정글 지대를 관통해 직선으로 길이 나있다. 이 정글 속에는 아직도 마야인들이 그들 방식을 고수한 채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군데군데 발견되는 용설란에서 술과 종이, 옷감, 바늘을 얻는다 하니 그들은 나름 전통 방식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에 있는 마야인은 대략 150만 명.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야인들은 원주민 인디오와 함께 멕시코 사회의 최하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이 영어로 바뀌었다. 먼저 일정을 소개한 후 마야력과 지구 멸망설에 대해 설명을 덧붙인다. 마야인들은 천체 관측과 역법에 능했고 마야 숫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한다. 고대 마야력이 2012 12 21일에 끝나 며칠 있으면 이 지구가 멸망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가이드는 전혀 이 소문을 믿지 않았다. 마야력이 끝나는 것이 이 세상 종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이야길 한다. 이제 불과 2주도 안 남았으니 곧 어떤 결말이 날지 알게 되겠지. 나도 전혀 믿지는 않는다만

 

마야력에 대해 좀더 알아 보자. 마야력은 5,125년의 주기를 갖고 있는데, 그 이야긴 5,125년 전에 시작한 마야력의 한 주기가 올해 12월에 끝이 난다는 의미다. 마야인들은 오는 12 21일에 한 주기가 끝이 나면 그 다음부터 또 다른 주기의 마야력이 시작한다고 믿는다. 우와, 이 사람들 정말 스케일 크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대한민국도 한 주기에 해당될 뿐이니 말이다. 1~2백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이나 캐나다는 어디 명함이나 제대로 내밀겠나?

 

버스가 세노테 우비쿠(Cenote Hubiku)에 닿았다. 땅 속에 커다란 연못, 아니 물웅덩이가 있는 곳이다. 그 크기가 만만치 않았다. 마야인들은 세노테에서 물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한다. 마야 시대엔 젊은 처녀를 신에게 바치던 곳이라 했다. 그 바닥에서 처녀들 유골이 수도 없이 나왔다고 하니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불쌍한 처녀들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좀 오싹했다. 근데 요즘은 관광객들이 처녀 귀신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영과 다이빙을 즐기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안타깝게도 마야의 후예들은 어설픈 마야인 복장을 하곤 함께 사진을 찍자며 우리 주머니를 노리고 있었다. 실제 술 만드는 공장도 아니면서 어설프게 테킬라 만드는 설비를 갖추어 놓고 테킬라를 파는 전시장은 또 어떤가. 가면이나 마야력, 조각품을 갖추고 있는 기념품 가게도 우리 주머니를 노리긴 마찬가지였다. 가이드가 너무 설쳐대며 자꾸 물건을 사라 강권하는 것 같아 가게를 먼저 빠져 나왔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발라돌리도(Valladorido) 도심에 잠시 들렀다. 발라돌리도는 치첸이샤에서 동쪽으로 40km 떨어진 도시. 시골에 있는 도시치고는 꽤 번화했다. 성당을 둘러보라고 5분의 시간을 준다. 무슨 성당인지도 모른 채 사진 한 장 찍고는 버스에 올랐다. 그 틈을 이용해 마야 복장을 한 할머니 몇 명이 버스로 몰려 들어 손수건을 판다. 가게 앞에서 한가롭게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 모습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발라돌리도 외곽에 있는 부페 식당으로 향했다. 목걸이에 마야 문자로 이름을 새겨라, 쇼핑을 해라 하는 식으로 가이드가 앞장을 서더니 아예 식당에는 30분간 접근 금지다. 음식 준비도 모두 끝나고 종업원들도 한가롭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건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꽤나 배가 고팠고 쇼핑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도 가이드가 너무 노골적으로 나오니 은근히 화가 났다. 점심은 평범한 부페식. 멕시코 식으로 돼지고기를 속에 넣은 타코가 나오긴 했지만 그것마저도 그리 맛이 있진 않았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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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3.07.25 1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 근처에 가실 때에는 글에도 기대와 기쁨이 가득한데 도시에서는 불만이 쫌(많이) 있으십니다...험한 길, 불편한 잠자리,때우는 정도의 식사에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잖아요... 천상 산사나이세요..ㅎㅎ

  2. 보리올 2013.07.26 04: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 느끼셨습니까? 사실 사람들이 많은 대도시나 번잡한 곳은 오래 있기가 좀 힘이 듭니다. 마트나 백화점같은 곳에서도 오래 있으면 죄불안석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