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타리오를 벗어나 매니토바 주로 들어섰다. 사방으로 펼쳐진 구릉에 호수가 많았던 지형이 사라지고 일망무제의 대평원 지역이 나타났다. 풍경 자체가 일순 바뀐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매니토바는 프레리(Prairie)라 불리는 대평원 지역에 있다. 캐나다 중앙에 위치해 동과 서를 나누는 역할을 한다. 위니펙(Winnipeg)으로 가는 도중에 메노나이트 헤리티지 빌리지(Mennonite Heritage Village)가 나타나 하이웨이를 벗어났다. 신교와 구교, 거기에 정부로부터 종교적인 탄압과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주했다가 1874년 다시 이곳으로 이주한 메노나이트의 생활상을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여름 시즌이 끝나 옛 건물 안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하여 대신 본관 안에 있는 전시물만 대강 둘러보았다.

 

위니펙으로 들어섰다. 위니펙은 매니토바 주의 주도다. 인구 77만 명을 가지고 있는 캐나다에선 꽤 큰 도시에 속한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몇 군데만 들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매니토바 주의사당이었다. 고전적인 스타일을 자랑하는 의사당 건물은 무척 웅장해 보였다. 정원에는 빅토리아 여왕 동상이, 돔형 지붕 위엔 골든 보이(Golden Boy)가 세워져 있었다. 의사당을 한 바퀴 둘러본 후 로비로 들어가 실내도 잠시 관람을 했다. 도심으로 이동해 과거 곡물 거래소가 있었던 익스체인지 디스트릭트(Exchange District)도 구경을 했다. 히스토릭 위니펙이라 불릴 정도로 고풍스런 건물이 많았다. 올드 마켓 스퀘어(Old Market Square)를 중심으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는 거리를 한 바퀴 돌았다. 거리엔 부티크나 갤러리, 공방, 공예품점이 들어서 사람들을 유혹했다.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를 달려 매니토바 주로 들어섰다.






메노나이트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메노나이트 헤리티지 빌리지도 잠시 들렀다.




위니펙으로 들어서 매니토바 주의사당부터 찾았다.

1919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캐나다 주의사당 중에서도 이름답기로 유명하다.







올드 마켓 스퀘어를 중심으로 익스체인지 디스트릭트라 불리는 구역을 천천히 걸어다니며 구경을 했다.


메인 스트리트에 있는 위니펙 시청사




어크로스 더 보드(Across the Board)란 게임 카페는 6불을 내면 1,200여 종의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게임이 아니더라도 음식이나 술, 커피를 즐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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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12.15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황량한 대평야 같은 곳이에요~! 운전도 아주 일관되게 고속도로가 직선으로 끝없이 나있고 그래도 아버지 말씀대로 주의사당이 아름다워서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저희는 여기서 남하해서 디트로이트로 갔습니다!

    • 보리올 2017.12.16 18: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매니토바의 일망무제 대평원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더구나. 일견 황량해 보여도 그 속에 아름다움이 숨어있는 편이지.



온타리오 워털루(Waterloo)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메노나이트(Mennonite) 마을이 있다고 해서 세인트 제이콥스(St. Jacobs)로 방향을 틀었다. 오래 전부터 펜실바니아의 아미쉬(Amish)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어 그와 뿌리가 비슷한 메노나이트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문명과는 좀 거리를 두고 생활하며 독특한 옷차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호기심도 일었다. 검정옷 차림의 사람들이 마차를 몰고 가는 모습을 기대했건만, 우리가 찾아간 주말엔 그런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차 여행도 운행하지 않았고 파머스 마켓마저 열리지 않아 완벽하게 허탕을 치고 말았다. 대신 세인트 제이콥스 마을만 오르내리며 여유롭게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메노나이트 또는 아미쉬라 부르는 기독교인은 아이가 태어나면 당연히 세례를 받던 구습을 거부하고 성인이 되어 본인의 입으로 신앙 고백을 한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다. 재세례파(Anabaptist)란 이름으로 불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로 인해 카톨릭과 기독교의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비폭력 평화주의를 주장하고 전쟁을 반대하며 병역을 거부함에 따라 정부로부터도 모진 탄압을 받았다. 이런 박해와 탄압을 피해 네덜란드, 스위스, 남부 독일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주했지만 러시아 공산혁명으로 다시 미국과 캐나다, 남미로 이동해 정착한 사람들이다. 캐나다에선 매니토바와 사스캐춰원, 알버타 등지에 흩어져 농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곳 온타리오에 정착한 메노나이트는 본래 펜실바니아로 이주했다가 미국 독립에 불안을 느껴 온타리오 키치너(Kitchener) 주변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밴쿠버로 돌아가기 위해 본격적인 북상을 시작했다. 인구 16만 명의 서드베리(Sudbury)에 잠시 들렀다. 빅 니켈(Big Nickel)이란 서드베리 랜드마크를 보러온 것이다. 1951년에 나온 5센트짜리 동전을 9미터 크기로 재현한 것인데, 그다지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휴런 호수에 면한 스패니시(Spanish)에서 잠시 쉬었다. 인구 700명의 작은 마을이 왜 스패니시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수생마리를 지나 와와(Wawa)로 가는 길에 아가와 베이(Agawa Bay)에서 수페리어 호수를 만났다. 차를 세우고 호숫가 비치로 걸어갔다. 오대호에서 가장 큰 수페리어 호수는 말 그대로 엄청 컸다.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져 바다를 보는 듯 했다. 바람은 차고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도 만만치 않았다. 방문자 센터나 캠핑장도 시즌이 끝나 황량함만 물씬 풍겼다.










온타리오 대표적인 메노나이트 마을인 세인트 제이콥스를 돌아보았다.

검정옷과 마차는 보지 못 했지만 크지 않은 마을은 나름 아름다웠다.




세상에서 가장 큰 동전으로 불리는 서드베리의 빅 니켈은 한때 이곳에서 호황을 누렸던 니켈 광산을 기념해 만들었다.




미국 땅에 살던 스페인어를 하는 여인이 붙잡혀와 오지브웨이(Ojibway) 부족 추장과 결혼해 생겨난 것이란 설이 유력한

스패니시 마을의 마리나를 찾았다.





아가와 베이는 수페리어 호수 주립공원(Lake Superior Provincial Park) 안에 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단풍으로 유명한 아가와 캐니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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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12.11 0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노나이트 같은 마을이 지어진 나름 구구한 역사적 배경이 존재하네요~ 저는 재세례파 같은 방식이 더 이성적이고 타인의 결정을 존중해주는 것 같습니다.

    • 보리올 2017.12.12 05: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워털루에서 공부할 때 길거리에서 메노나이트를 만나지 않았나? 종교적인 이유로 박해와 탄압을 받으며 떠돌던 사람들이라 안 되었기도 하더라.

 

당말 베이스 캠프를 출발하면서 마칼루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고비를 넘어서자 마칼루의 모습이 우리 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마칼루와 헤어진 것이다. 이제 우리 하산 일정에서는 더 이상 마칼루를 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대원들은 섭섭함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나만 홀로 마칼루를 짝사랑했나? 다들 부담없는 하산길이라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반대편에서 한 무리의 산악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산악인 블라디슬라브 테르쥴(Vladyslav Terzyul)의 추모 동판을 설치하기 위해 마칼루 베이스 캠프로 오르는 그의 가족, 친구들이었다. 그는 3년 전 마칼루를 올라 8,000m 14좌를 완등하고 하산하던 길에 조난을 당해 목숨을 잃었단다. 한 대장에게 14좌 완등 기록을 적은 티셔츠를 하나 건넨다. 나중에 기록을 찾아보았더니 그는 시샤팡마 등정 기록에 시비가 걸려 공식적으로 14좌 완등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

 

포터들이 짐을 내려놓고 갈길을 멈췄다. 당말의 매점 주인이 장작값을 주기 전에는 못간다 길을 막은 것이다. 19명의 포터들이 나흘을 묵으며 장작을 가져다 불을 피웠는데, 그 대금으로 7,700루피를 청구한 것이다. 그것은 로지 주인과 포터들이 해결할 문제라고 우리는 한 발 물러섰다. 대책없이 시간을 끌다가 결국은 포터들이 얼마씩 돈을 걷어 로지 주인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를 봉으로 봤던 로지 주인은 우리에게 바가지 씌우려다 닭 쫓던 강아지 꼴이 된 것이다. 어떤 물품이던 외국인과 현지인에게 받는 금액이 다르기 때문이다.

 

양리 카르카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강가에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야영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먼저 도착한 포터들이 풀밭을 기면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기에 뭐하는 것이냐 물어 보았다. 그들이 찾는 것은 바로 동충하초. 한 대장이 그들이 잡은 동충하초를 몇 개 사서 나에게 하나를 준다. 한 개에 20루피씩 주었다 한다. 내 생애 처음으로 동충하초라는 것을 보았다. 상행 구간에 만났던 도마가 여기에 올라와 있었다. 기막히게 돈 냄새를 잘 맡는다 감탄을 했다. 그래서 나도 도마에게 럭시 한 잔을 팔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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