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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

[베트남] 하노이 ③ 이제 하노이 지리가 어느 정도 눈에 익은 것인지 어디를 찾아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노이 역을 지나 문묘(文廟)로 향했다. 입장료로 3만동을 지불했다. 문묘는 1070년에 지어진 사당으로 공자를 모시는 곳이었다. 과거에 유생을 가르치던 베트남 최초의 대학, 국자감(國子監)도 문묘 안에 있었다. 공자를 모시고 유학을 가르쳤다는 말은 역사적으로 베트남이 얼마나 중국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우리 나라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몇 개의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정원에는 오래된 나무들로 녹음이 우거져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중국풍 건물에 여기저기 한자로 적어 놓은 문구가 있어 마치 중국의 어느 곳을 걷는 것 같았다. 한자어를 통해 대충이나마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더보기
중국 산둥성 취푸, 공부/공림 공부(孔府)는 공묘 오른쪽에 바로 붙어 있었다. 출입문이 달라 공묘를 빠져나와서 5분을 걸어야 했다. 공부는 공자의 직계 자손이 대대로 살았던 저택으로 성부(聖府)라고도 불렸다. 실제 대문에 성부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공자 후손들이 얼마나 오랫 동안 귀족 대우를 받으며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현재까지도 공부에는 152채의 건물에 480개나 되는 방이 있다고 한다. 건물을 일일이 찾아다니기가 힘이 들었다. 공자 가문의 종손은 송나라 때부터 연성공(衍聖公)이란 관직을 받아 집안에서 업무를 보았기 때문에 공적 업무를 보는 공간이 있었고, 뒷채로 갈수록 가족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나타났다. 공부를 나와 공림(孔林)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걷기엔 좀 먼 거리라 셔틀버스가 있다고 했지만 우리는 걸어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