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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8.06 [베트남] 하노이 ③ (2)
  2. 2015.04.23 중국 산둥성 취푸, 공부/공림 (2)



이제 하노이 지리가 어느 정도 눈에 익은 것인지 어디를 찾아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노이 역을 지나 문묘(文廟)로 향했다. 입장료로 3만동을 지불했다. 문묘는 1070년에 지어진 사당으로 공자를 모시는 곳이었다. 과거에 유생을 가르치던 베트남 최초의 대학, 국자감(國子監)도 문묘 안에 있었다. 공자를 모시고 유학을 가르쳤다는 말은 역사적으로 베트남이 얼마나 중국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우리 나라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몇 개의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정원에는 오래된 나무들로 녹음이 우거져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중국풍 건물에 여기저기 한자로 적어 놓은 문구가 있어 마치 중국의 어느 곳을 걷는 것 같았다. 한자어를 통해 대충이나마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대성전 안에는 공자의 상이 가운데 있었고, 그 좌우엔 안자와 자사, 증자와 맹자의 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뒤에 있는 국자감 건물에는 베트남의 대유학자 주문안(周文安; Chu Van An)의 상이, 그리고 2층엔 세 명의 왕 조각상이 있었다.

 

문묘를 빠져나오는데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렸다. 비를 피해 엉겁결에 들어간 길거리 카페가 콩 카페(Cong Caphe)였다. 카페란 단어를 베트남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특이했다. 베트남에선 체인점이 많은 유명한 카페라 그런지 우리 나라 젊은이들에게도 꽤 인기가 있었다. 베트콩을 컨셉으로 잡아 그들이 사용했던 물품과 비슷한 장식품을 진열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커피 생산국으로 이름난 나라인만큼 베트남 특유의 커피를 시켰다. 에스프레소에 연유를 넣은 커피였는데,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커피를 무슨 맛으로 마시는지 잘 모르겠다. 입맛만 버린 셈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기차 건널목을 지났다. 기찻길을 따라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가 있었고 사람들도 철로를 따라 지나다니고 있었다. 기찻길 풍경이 군산에 있는 경암동 철길마을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철길을 따라 걸었다.


 



문묘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더니 오래된 나무가 있는 정원과 과거급제자들의 명단을 적은 비석이 나타났다.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대성전 안을 둘러보았다.





 

대성전 뒤로는 예전에 유생들을 가르치던 국자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1층엔 주문안의 상이 있었다.





콩 카페에서 베트남이 자랑하는 커피를 한 잔 주문했으나 연유를 넣은 커피는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대도시 빈민촌을 지나는 기찻길 풍경은 이 세상 어느 곳이나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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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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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08.22 1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시아에서 공자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네요~ 그나저나 베트남 사람들은 커피의 쓴맛을 싫어하는걸까요? 어떻게 연유를 넣을 생각을 했을까요? 맛이 조금 궁금하긴 합니다.

    • 보리올 2018.08.22 2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양 사상에서 공자의 위상이야 막강 아니냐. 우리 나라와 베트남은 더 하고. 커피에 연유를 넣어 마시는 것을 왜 좋아하는지 난 모르겠더라.

 

공부(孔府)는 공묘 오른쪽에 바로 붙어 있었다. 출입문이 달라 공묘를 빠져나와서 5분을 걸어야 했다. 공부는 공자의 직계 자손이 대대로 살았던 저택으로 성부(聖府)라고도 불렸다. 실제 대문에 성부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공자 후손들이 얼마나 오랫 동안 귀족 대우를 받으며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현재까지도 공부에는 152채의 건물에 480개나 되는 방이 있다고 한다. 건물을 일일이 찾아다니기가 힘이 들었다. 공자 가문의 종손은 송나라 때부터 연성공(衍聖公)이란 관직을 받아 집안에서 업무를 보았기 때문에 공적 업무를 보는 공간이 있었고, 뒷채로 갈수록 가족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나타났다.

 

공부를 나와 공림(孔林)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걷기엔 좀 먼 거리라 셔틀버스가 있다고 했지만 우리는 걸어가기로 했다. 만고장춘(萬古長春)이라 적힌 문을 지나 공림 입구에 닿았다. 공림은 지성림(至聖林)이라고 불린다. 공자묘부터 찾아갔다. 공자 묘소 앞에는 대성지성문성왕(大成至聖文宣王)이란 시호가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왕자를 함부로 쓸 수 없어 길게 늘여쓴 트릭도 보였다. 공자묘 옆에는 공자의 아들인 공리(孔鯉)의 무덤이 있었고, 손자 공급(孔伋)의 묘는 좀 떨어져 있었다. 공급은 자사(子思)라고도 불리는데 공자의 학맥을 이어받아 중용(中庸)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공씨 후손들도 죽으면 공림에 묻혔다. 공자나 공리, 공지의 묘소와는 달리 야산에 초라하게 쓴 무덤들이 엄청 많았다.

 

 

 

 

 

 

 

 

 

(사진공자의 후손들이 살았던 공부를 성부라 부르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공림은 노목들 사이로 공자와 그 후손들 묘소가 산재해 있다. 2천 년의 세월에 걸쳐 10만 명의

공자 자손들이 여기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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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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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5.04.23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자 공부의 절실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