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산(泰山)은 중국 오악(五岳)에서도 으뜸으로 여기는 산으로 역대 황제들이 여기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리는 봉선의식(封禪儀式)을 행했던 곳이다. 중국사람들이 평생 한 번 오르기를 염원한다는 곳이라 호기심도 일었지만, 이곳을 한번 오를 때마다 10년씩 젊어진다는 속설도 내심 믿고 싶었다. 출발은 다이먀오()에서 했다. 다이먀오는 타이산의 정상인 옥황봉과 남천문의 정남향에 위치하고 있는데,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치르기 전에 이곳 다이먀오에서 먼저 제례를 올린 곳이다. 황제라고 아무나 봉선의식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진시황 이후 오직 72명의 황제만이 여기서 제사를 올릴 수 있었단다. 다이먀오는 황제들이 살던 황궁에 못지 않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천황전은 자금성의 태화전, 공자묘의 대성전과 함께 중국 3대 전각이라 했다.

 

다이먀오를 나와 타이산으로 향했다. 처음엔 차량들이 오고가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이른 아침부터 길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게들도 일찍 문을 열었다. 홍문을 지나 본격적으로 타이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타이산 입장료가 그리 싸지 않았다. 한 사람에 127위안을 받아 산을 오르는데도 2 5천원에 가까운 돈을 내야하는 셈이다. 돈을 내고역꾸역 들어오는 사람들 많았다. 그나마 외국인과 내국인을 차별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일천문에서 중천문에 이르는 구간은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았다. 길은 전구간에 걸쳐 돌로 놓여 있었다. 계단길이 좀 지루하긴 했지만 그리 힘들이지 않고 중천문에 이르렀다. 산 아래에서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오르는 사람도 많았다. 여기서 곤돌라를 갈아타고 남천문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우리는 튼튼한 두 발을 믿기로 했다.

 

 

 

 

 

 

 

 

 

 

 

(사진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치뤘다는 다이먀오를 먼저 둘러 보았다.

 

 

 

 

 

 

 

 

(사진홍문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타이산 산행은 돌길과 계단을 타고 올라야했다.

이름을 모두 기억하기 어려운 몇 군데 문을 지나 중천문에 닿았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5.04.30 0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생만큼 아니지만 참 많은 문을 지나쳤습니다. 문득 모든 문들이 각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 보리올 2015.04.30 0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 문이 참 많았었지. 각각의 문이 어떤 의미를 지녔겠지만 그 모두를 모르고 지나쳤구나. 역사에 관심이 있었다면 좀 달라졌겠지?

 

린쯔()의 제국역사박물관(齊國歷史博物館)은 강태공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강태공(姜太公)이란 이름에서 나온 친밀함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이다. 위빈좌조(渭濱坐釣), 위수 강가에 앉아 세월을 낚다라는 말에서 우리는 흔히 낚시꾼들을 강태공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제나라는 강태공에 의해 지금의 산둥(山東) 지방에 세워져 800여 년을 존속하다가 기원전 221년 진시황에게 패망하면서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졌다. 제나라는 춘추시대에는 춘추오패(春秋五覇)에 들었고, 전국시대에는 전국칠웅(戰國七雄) 중 하나였다. 그만큼 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박물관 외관은 마치 무슨 성벽처럼 보였다. 건물 정면에 쓰여진 일곱 자 이름은 장쩌민(江澤民)이 직접 썼다고 적혀 있었다. 박물관에는 이 지역에서 발굴된 선사시대의 유물부터 시작해 제나라를 거쳐 진한()시대까지의 각종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나라 유물이 많았다. 800년이란 세월을 담은 제나라의 정치와 경제, 문화, 군사 등에 대한 자료를 잘 보관하고 있었다. 몇 군데 전시물에는 한글로 번역된 설명문도 있었는데, 그 내용에 너무 오류가 많아 황당스럽기도 했다. 예를 들면 춘추시기(春秋時期)라 적힌 한자 아래에는 한글로 봄과 가을 시기라 번역을 해놓기도 했다.

 

제나라 당시에 이름을 떨쳤던 인물들의 흉상도 비치되어 있었다. 강태공을 비롯해 환공과 안영, 관중의 동상이 있었고, 손자병법(孫子兵法)을 쓴 손무와 그의 후손인 손빈의 흉상도 비치되어 있었다. 그 유명한 손자가 제나라 사람이란 것을 솔직히 여기서 알게 되었다. 게다가 제나라 재상이었던 관중이 그의 친구인 포숙아와의 오래된 우정을 일컫는 관포지교(管鮑之交)란 사자성어의 주인공이란 것도 여기서 알았으니 나에겐 역사를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넉넉치 않은 탓에 박물관만 둘러보고 나왔다. 근데 매표소 부근에 조그만 전시공간이 또 하나 있기에 무턱대고 들어갔더니 입장료를 따로 받는다. 여기는 아주 작은 규모의 한나라 병마용(兵馬俑)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내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