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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29 [캐나다 로드트립 - 3] 캐나다 수도 오타와로 입성하다 (2)
  2. 2013.12.07 부산 유엔기념공원 (2)



이제부턴 중간에 어딜 들르지 않고 곧장 오타와로 가기로 했다. 우리 관심사인 캐나다 동부의 단풍 구경은 오타와에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사스캐처원과 매니토바를 지날 때도 커피나 식사를 위해 잠시 멈추었을 뿐, 구경은 모두 뒤로 미뤘다. 사스캐처원으로 들어와 메이플 크릭(Maple Creek)에 도착했더니 기름은 떨어졌는데 주유소가 문을 닫았다. 한 트럭 운전자에게 다음 주유소를 물었더니 한 시간 반은 더 가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부득이 그 옆에 있는 허름한 모텔에 투숙을 해야 했다. 캐나다에 살면서 시설이나 청결이 이렇게 엉망인 곳은 처음이었다. 바닥엔 바퀴벌레가 여기저기 기어다니고 심지어는 침대 시트에서도 바퀴벌레가 나왔다.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집사람 눈에 바퀴벌레가 띌까봐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니토바를 지나 온타리오에 들어서니 호수와 구릉, 그리고 숲도 나타났다. 대평원 지역과는 달리 풍경에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 시작한다. 버밀리언 베이(Vermillion Bay)란 조그만 마을에서 캐빈을 얻어 하루 묵었다. 여긴 그런대로 시설이 좋아 본전 생각이 나진 않았다. 선더베이(Thunder Bay)를 지나 17번 하이웨이 좌우로 펼쳐진 노란 단풍에 넋이 나가 좀 과속을 했던 모양이다. 위장 경찰이 우리 차를 세웠다. 90km 구간을 114km로 달렸다고 딱지를 떼였다. 우리가 선뜻 잘못을 인정한 덕분인지 24km 초과를 16km로 깍아주고 그에 따른 벌금도 95불에서 55불로 낮춰주는 것이었다. 앞으로 한두 시간 더 가면 단풍이 멋진 구간이 나오니 즐거운 여행을 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세상에, 이렇게 친절한 경찰을 만나다니 솔직히 벌금이 아깝지 않았다.

 

아가와 캐니언(Agawa Canyon)으로 가는 단풍 열차로 유명한 수생마리(Sault Ste. Marie)에서 하룻밤을 묵고는 오타와로 차를 몰았다. 어둠이 내려앉을 즈음에 오타와에 도착해 막내딸을 만났다. 딸의 안내로 오타와 시내로 나갔다. 오타와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인구도 90만 명으로 캐나다에선 큰 편에 속한다. 토론토와 킹스턴, 몬트리올과 퀘벡시티 등 네 개 도시가 수도가 되기 위해 격렬히 대립하자, 당시 빅토리아 여왕은 그 가운데 한 도시를 택하지 않고 온타리오와 퀘벡 경계에 있는 오타와를 수도로 정했다고 한다. 도심으로 들어가 리도 운하와 국회의사당, 충혼탑을 대강 둘러보고는 타이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여기선 유명한 식당인지 현 트뤼도 연방수상을 비롯한 유명인사와 주인이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놓고 있었다.



 

사스캐처원 초입의 메이플 크릭에서 하루 묵은 모텔은 외양도 허름하지만 내부또한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온타리오로 들어서 버밀리언 베이란 마을에서 캐빈을 구해 하루 묵었다.


매일 아침이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마을에서 팀홀튼스 커피 한잔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20분이 지난 커피는 버리고 새로 내린다는 광고 문구가 인상적이다.




선더베이를 지나 트랜스 캐나다 17번 하이웨이를 달리는데 도로 옆으로 노란색 단풍이 연이어 나타났다.


규정속도를 초과해 달렸다는 이유로 선더베이의 위장 경찰에게 딱지를 받았다.




오타와 도심의 야경도 제법 화려한 편이었다.


오타와 강과 온타리오 호수를 연결하는 리도 운하는 겨울철이면 그 일부가 아이스링크로 변한다.


페어몬트 샤토 로리에 호텔(Fairmont Chateau Laurier Hotel)


국회의사당 건물 앞에 설치된 캐나다 탄생 150주년 기념조형물


컨페더레이션 광장에 있는 충혼탑




저녁 식사를 한 로얄 타이 식당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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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11.13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그런 모텔이 있을 수 있죠? 정말 놀랐습니다. 저도 경찰들한테 들은게 있는데 자기 죄를 순순히 인정하고 그에 대한 사과(?)를 하면 오히려 경찰들이 선처를 해준다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있으셨네요!

    • 보리올 2017.11.15 07: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 말이다. 나도 캐나다 살면서 이렇게 시설이 형편없는 곳은 처음 보았다. 기름이 떨어져 오갈데 없는 손님들 받으며 근근히 살아가는 것 같더구나.

 

 

어릴 때부터 유엔묘지에 대해 들은 적이 많았음에도 유엔묘지를 찾아올 생각은 하지를 못했다. 부산을 그렇게 드나들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달랐다. 몇 년 동안 캐나다에서 꾸준히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전우가 묻혀 있는 곳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일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철이 드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나이를 먹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고국 방문길에 부산을 지나칠 기회가 있었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대연동에 있는 유엔묘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난 사실 캐나다에 계시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자주 만난 편이었다. 그들에게 개인적으로라도 고맙단 인사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같은 것이 내 마음 속에 있었던 모양이다. 자기 나라도 아닌 동양의 작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뛰어드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텐데 그들은 그렇게 했다. 노바 스코샤에 있을 때는 6 25일을 전후해 참전용사들과 충혼탑에 헌화한 후 함께 오찬을 가졌고, 연말에는 발레 공연이나 콘서트에 초청하거나 부부 동반으로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런 자리를 빌어 그들이 보았던 한국, 그들이 치뤘던 전투, 그리고 그들이 겪었던 전우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유엔묘지는 정식 명칭이 아니었다. 유엔기념공원으로 불린다는 것을 현장에 가서야 알 수 있었다. 유엔기념공원은 6.25 전쟁 당시 산화한 유엔군 장병의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유엔이 1951년에 만든 묘지였다. 유엔군 기념묘지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모두 2,300위의 전몰용사가 여기 잠들어 있었다. 영국이 885위로 가장 많았고 터키와 캐나다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무슨 연유인지 한국군도 수 십 명 묻혀 있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엄숙했고 공원 관리 또한 잘 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공원으로 산책을 나온 주민들도 보였다.  

 

캐나다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UN군으로 참전을 했다. 27,000명이 참전해 516명이 산화했다. 그 중에 378위가 여기에 묻혔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70%가 넘는 전몰용사가 여기에 묻힌 것이다. 36,500명이 산화한 미국군은 대부분 미국으로 송환되고 여기엔 36위만 묻혀 있다는 사실과는 퍽이나 대조적이었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각 나라 묘역을 천천히 돌아보며 그들을 잃고 눈물을 흘렸을 가족들을 떠올려 보았다. 캐나다 묘역에 설치된 기념동상 주변에선 더 오래 머물렀다. 유엔기념공원을 나와 그 뒤에 자리잡은 UN조각공원도 잠시 들러 보았다. 6.25 전쟁에 참전한 나라의 조각가들이 기증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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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3.12.07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용히 생각하면서 산책하기에 유엔묘지만 한 곳이 없었어요... 또래의 주검이 죽 늘어서 있는걸 보면 심각한 고민도 다 부질없게 느껴지거든요... 특이하게 유리뚜겅이 있는 박스에 소지품이 들어 있는 캐나다 or 미군 묘지가 있었는데 못보셨나요... 조각공원으로 바뀌면서 조형물이 들어서 자연스러움이 사라진듯 합니다...

  2. 보리올 2013.12.07 11: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엔묘지를 먼저 다녀오셨군요. 유리 뚜껑은 못 봤는데요. 일반인은 묘역 안으로 못 들어가게 해서 자세히는 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어떤 특정인을 찾아갔기에 직원의 안내를 받아 캐나다 묘역 안으로 들어가기는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