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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5.04.21 중국 산둥성 취푸, 공묘 (2)
  4. 2015.04.20 중국 산둥성 취푸 (2)

 

이우 푸텐시장을 다시 오게 되었다. 푸텐시장의 공식적인 명칭은 이우국제상무성(際商). 이번에는 업무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들과 아들 친구에게 중국을 보여주고 싶었다. 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그들이 수행하는 역할을 직접 체험하라는 의도가 강했다. 앞으로 어떤 비즈니스를 하던 중국이란 존재를 늘 염두에 두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었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던 중국이 요즘 들어 세계의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곤 하지만 이우는 여전히 중국 공산품의 도매시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이우에 없으면 이 세상에 없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도 있다지 않은가.

 

산둥성 취푸에서 이우로 이동하는 과정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원하는 시각에 항저우(杭州)로 가는 열차 좌석을 구할 수 없었다. 취푸동역 대합실에서 3시간을 기다려서야 G35 열차에 올랐다. 그것도 이등석이 없다고 해서 비싼 일등석을 끊어야 했다. 별도 공간으로 만든 일등석에 올랐더니 고급스럽고 넓직한 좌석이 5개뿐이었다. 돈값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항저우에서 뛰다시피 이동해 갈아탄 K 열차는 완행이었는지 사람이 엄청 많았다. 3명이 앉는 좌석도 좁았고 복도도 입석 손님으로 가득했다. 극과 극을 오고가는 느낌이었다. 우리야 한 시간 반을 가니까 참을만 했지만 장거리 여행객은 여간 고생이 아닐 듯 했다. 이우 호텔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이틀에 걸쳐 푸텐시장을 돌아 보았다. 시장 전체를 자세히 돌아보는 것은 애초 불가능했다. 어떻게 7만 개가 넘는 매장을 하루 이틀에 볼 수 있겠는가. 우리 나라 남대문 시장과 동대문 시장을 합쳐 놓은 것보다 8배나 더 크다고 하니 각 구획별로 무슨 품목을 취급하는지 소개하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나중에는 발바닥이 아파왔다. 계속해서 비가 내려 저녁에 야시장은 가지 않기로 했다. 호텔 가까이에서 발마사지를 받고 길거리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건물에는 주방과 재료 보관하는 공간이 있었고 테이블은 임시로 쳐놓은 천막 안에 준비해 놓았다. 직접 재료를 고르면 주방에서 요리를 해서 내놓은 식이었다. 오징어와 새우를 골랐는데 나중에 보니 제법 비싸게 받았다.

 

 

 

 

 

(사진우리가 원하는 열차에 좌석이 없어 다른 열차의 일등석을 끊어 항저우로 이동했다.

항공기 기내서비스처럼 자리에 앉자마자 승무원이 스낵과 음료를 가져다 주었다.

 

(사진이우에 도착해 수퍼에서 고량주 한 병을 샀다.

호텔에서 뚜껑을 여는데 마개에서 꼬깃꼬깃 접어놓은 5위안 지폐가 나왔다.

 

 

 

 

 

 

(사진이우 푸텐시장의 모습.

주말임에도 갈곳없는 아이들이 부모가 근무하는 매장 근처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사진하루 저녁을 해결한 천막 식당의 해물 요리는 가격이 좀 비싸긴 했지만 맛은 있었다.

외국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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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5.04.28 0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로만 들었던 이우시장을 경험해보니 상상했던 것 몇 배 이상으로 컸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거보니 나중에 또 인연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공부(孔府)는 공묘 오른쪽에 바로 붙어 있었다. 출입문이 달라 공묘를 빠져나와서 5분을 걸어야 했다. 공부는 공자의 직계 자손이 대대로 살았던 저택으로 성부(聖府)라고도 불렸다. 실제 대문에 성부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공자 후손들이 얼마나 오랫 동안 귀족 대우를 받으며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현재까지도 공부에는 152채의 건물에 480개나 되는 방이 있다고 한다. 건물을 일일이 찾아다니기가 힘이 들었다. 공자 가문의 종손은 송나라 때부터 연성공(衍聖公)이란 관직을 받아 집안에서 업무를 보았기 때문에 공적 업무를 보는 공간이 있었고, 뒷채로 갈수록 가족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나타났다.

 

공부를 나와 공림(孔林)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걷기엔 좀 먼 거리라 셔틀버스가 있다고 했지만 우리는 걸어가기로 했다. 만고장춘(萬古長春)이라 적힌 문을 지나 공림 입구에 닿았다. 공림은 지성림(至聖林)이라고 불린다. 공자묘부터 찾아갔다. 공자 묘소 앞에는 대성지성문성왕(大成至聖文宣王)이란 시호가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왕자를 함부로 쓸 수 없어 길게 늘여쓴 트릭도 보였다. 공자묘 옆에는 공자의 아들인 공리(孔鯉)의 무덤이 있었고, 손자 공급(孔伋)의 묘는 좀 떨어져 있었다. 공급은 자사(子思)라고도 불리는데 공자의 학맥을 이어받아 중용(中庸)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공씨 후손들도 죽으면 공림에 묻혔다. 공자나 공리, 공지의 묘소와는 달리 야산에 초라하게 쓴 무덤들이 엄청 많았다.

 

 

 

 

 

 

 

 

 

(사진공자의 후손들이 살았던 공부를 성부라 부르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공림은 노목들 사이로 공자와 그 후손들 묘소가 산재해 있다. 2천 년의 세월에 걸쳐 10만 명의

공자 자손들이 여기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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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5.04.23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자 공부의 절실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취푸(曲阜)는 인구 65만 명을 가진 조그만 도시지만 도시 전체가 공자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때는 노나라의 수도였고 중국 고대사에 나타나는 황제(黃帝)가 태어난 곳도 여기라 하지만, 여기를 방문하는 사람은 예외없이 공자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취푸에는 소위 삼공(三孔)이라 불리는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이 모여 있는데, 이 삼공 또한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았다. 삼공 모두를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은 한 사람에 150위안을 받았다. 3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다시 한번 중국의 비싼 문화재 입장료에 놀랬다. 15,000자로 이루어진 논어를 모두 외우면 공짜 입장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은근히 사람 열받게 한다.

 

공묘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성인의 반열에 오른 공자에 대해 황제들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던 곳이 바로 공묘였다. 한나라 시대부터 황제가 제사를 지냈다니 2천 년이 넘는 세월을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진 것이다. 만인궁장(萬仞宮墻)이라 적힌 둥근 성벽 아래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이 연이어 나타났다. 공묘의 압권은 아무래도 대성전(大成殿)이었다. 현재의 건물은 1724년 옹정제가 재건했다고 하는데, 처마에는 청나라 황제들이 쓴 푸른 편액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이 대성전은 베이징의 태화전, 타이안 다이먀오(岱廟)의 천황전과 더불어 중국 3대 고건축으로 불린다고 한다. 공묘 구경을 마치고 공부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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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5.04.21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처음에 공묘가 공자의 묘인줄 알았습니다. 공자 선생님은 유교 사상이 이 세상 많은 나라에 퍼진걸 아실까 궁금합니다.

 

우리에게 공자(孔子)가 누구인가? 공자의 사상은 유교 문화권에서 자란 한국인의 가치관이나 생활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우리가 공자의 고향인 취푸(曲阜)를 방문한 것도 공자의 발자취를 되집어보기 위함이다. 저녁 7시가 지나 취푸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차창으로 취푸 시내를 먼저 일견할 수 있었다. 짐을 부리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섰다. 취푸가 한때 노()나라의 수도여서 그런지 우리 남대문과 비슷한 성문과 성곽이 보였다. 성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시장 골목을 발견했다. 골목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중국 간쑤성(甘肅省)의 란저우() 음식을 파는 식당을 골랐다. 회교권 음식임에도 맛은 대체적으로 훌륭했으나 술은 일체 팔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식사도 하지 않고 공묘(孔廟) 입구로 향했다. 아직 도시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한산한 거리를 걸으며 모처럼 조용한 아침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공묘 입구에선 매일 아침 8시면 공연이 펼쳐진다고 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관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팔을 불며 걸어오더니 관원 차림의 남자가 공연 시작을 알린다. 분홍색 옷을 입은 아가씨들이 한 바탕 춤을 추고 난 후에 군복을 입은 청년들이 깃발을 휘두르며 힘을 과시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출연해 공연을 펼치는데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다. 공연이 끝나자 우리는 아침을 먹으러 다시 시내로 향했다. 어떤 식당은 공자의 76대 손이 운영한다는 것을 광고하듯 버젓이 적어놓았다.

 

 

 

 

 

 

(사진취푸에 도착해 시장 골목에서 란저우식 요리로 저녁을 해결했다.

시안(西安) 서쪽에 자리잡은 란저우는 오래 전부터 실크로드 상의 교역 도시로 발전했다.

 

 

 

 

 

 

 

(사진숙소에서 공묘 입구로 걸어가면서 마주친 취푸의 아침 풍경

 

 

 

 

 

 

 (사진공묘 입구에서 매일 아침 8시면 펼쳐지는 공연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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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5.04.26 0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통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몸 동작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