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 정비요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1.26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WCT) ④ (6)
  2. 2017.01.24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WCT) ③ (2)

 

케이블 카로 월브랜 크릭을 건넜더니 거기서부턴 길이 많이 순해졌다. 남쪽 끝단에 있는 어려운 구간은 이제 끝이 난 모양이다. 숲보다는 해안을 따라 걷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눈으로 들어오는 풍경 또한 훨씬 많아졌다. 월브랜 크릭을 지나 해변으로 내려섰더니 그리 깊지 않은 해식 동굴이 하나 나왔다. 한 시간 정도 쭉 해안을 걸었을까.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돋기 시작한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배낭이나 텐트가 젖을까 싶어 우비를 꺼내 입었다. 밴쿠버 포인트(Vancouver Point)를 지났다.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지나쳤다. 보니야 크릭(Bonilla Creek)엔 조그만 폭포가 있었다. 여기서 캠핑을 하면 오랜 만에 샤워도 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다. 배낭을 내리고 이른 점심을 먹었다. 점심이라고 해야 피넛 버터를 잔뜩 바른 토르티야 두 개가 전부인데, 이걸 먹고 한두 시간 지나면 금방 허기를 느낀다.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먹을 것도 덩달아 줄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거센 조류와 해풍을 맞으며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몇 그루가 눈에 띄었다. 하필이면 이런 곳에 뿌리를 내리는 선택을 했을까 싶었지만, 이 나무도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따라 여기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반대편에서 큰 규모의 그룹이 내려왔다. 일행 중에 꽤 많은 청소년들이 섞여 있는 것을 봐선 어느 단체에서 극기 훈련을 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등대가 있는 카마나 포인트(Carmanah Point)가 눈에 들어왔다. 카마나 크릭(Carmanah Creek)은 케이블 카로 건넜다. 곧 이어 인디언 보호구 안에 있다는 쉐이 모니크(Chez Monique) 레스토랑이 나타났다. 이 트레일을 걸은 사람에게서 귀에 따갑게 들었던 이 레스토랑은 천막과 비닐로 지은 가건물이었다. 허접한 외관을 지녔지만 이 식당에선 원주민 노부부가 햄버거와 맥주를 판다. 며칠간 문명 세계의 음식과 단절되었던 하이커들에겐 얼마나 반가운 곳인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이곳을 버거 천국이라 부르기도 했다. 헌데 지난 며칠간 폭풍이 몰아쳐 식재료를 구하러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이야긴 햄버거도 없고 맥주도 떨어졌다는 의미였다. 콜라로 대신 목을 축여야 했다.

 

등대가 있는 카마나 포인트엔 해안으로 길이 없어 해변 끝에서 사다리를 찾아 숲으로 올라왔다. 44km 지점 표식이 있는 곳에서 잠시 등대로 들어섰다. 빨간 지붕을 한 하얀 등대는 1891년에 세워진 것이라니 그 역사가 꽤 오래되었다. 계단을 타고 다시 해변으로 내려섰다. 몽돌이 많던 바닷가는 금세 커다란 암반으로 변했다. 오랜 세월 조수에 파여 바위가 다양한 형태로 침식되어 있었다. 울퉁불퉁 조각된 바위를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조수가 높지 않은 시각이라 크립스 크릭(Cribs Creek)까지 계속 해안을 걸었다. 거기 있는 캠프 사이트에서 배낭을 내렸다.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라 먼저 온 사람들의 텐트는 대부분 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우린 모래 위에 텐트를 치고 비를 피해 텐트 안에서 취사를 해야 했다. 먼저 온 젊은이들이 땔감을 구해와 해변에 불을 피웠다. 날씨만 좋았다면 낭만이 넘치는 밤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칙칙한 하늘 때문에 감흥이 반으로 줄었을 것이다.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어슴푸레 날이 밝아왔다.

 

월브랜 크릭엔 트레일 정비요원들이 임시 숙소를 마련해 놓았다.

 

 

숲 속을 걷는 대신 해안을 따라 걸었다. 바닷길이라고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숲에 비해 훨씬 편했다.

 

 

 

 

보니야 크릭엔 크지 않은 폭포가 하나 있었다. 푸른 초목과 하얀 포말이 묘한 대조를 이뤘다.

 

 

 

 

바닷가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와 해변으로 밀려온 다시마 줄기, 물고기를 기다리는 그레이트 블루

헤론(Great Blue Heron), 바위에서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는 바다사자 등이 차례로 눈에 띄었다.

 

 

줄곧 해변을 따라 걸었다. 멀리 카마나 포인트와 등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케이블 카를 타고 카마나 크릭을 건넜다. 케이블 카 타는 횟수도 많이 줄었다.

 

버거도, 맥주도 다 떨어졌다는 쉐이 모니크 레스토랑은 우리 기대를 무참히 무너뜨렸다.

대신 초코렛 바와 콜라를 사서 먹었다. 주인 할아버지와 수다를 떨며 젖은 옷도 말렸다.

 

카마나 포인트에 세워진 등대는 누구나 둘러볼 수 있었지만 등대 안으론 들어갈 수 없었다.

 

카마나 포인트와 크립스 크릭 사이는 주로 돌과 바위로 이루어졌다. 조수에 침식된 다양한 모습의 암석을 볼 수 있었다.

 

 

크립스 캠프 사이트에 도착해 하루 일정을 마감했다. 비를 뿌리는 날씨라 캠프 파이어도 별 흥취가 없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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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7.01.27 05: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부 전합니다
    즐감하고 공감 꾸욱 누르고 갑니다

  2. justin 2017.02.15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때 마셨던 콜라는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저도 산길의 진흙탕보다는 해안가의 모래길이 더 편하고 파도 소리와 확 트인 시야를 즐기면서 갈 수 있었습니다~ 햄버거를 못 먹은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3. 나무와숲 2017.06.09 1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려놓으신 글과 사진을 열심히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유용한 정보가 많아 메모도 하면서요ㅎ
    다시한번 머리숙여 감사 드립니다^^ 꾸벅~^^

    • 보리올 2017.06.09 1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블로그가 어느 누구에게 도움이 된다니 솔직히 기쁩니다. 제가 7, 8월은 유럽에 갈 예정이라 님이 WCT를 걸을 때는 여기에 없습니다. 나중에 후일담을 듣고 싶네요.

 

오늘 구간도 대부분 숲길을 걷기 때문에 까다롭기는 하지만 거리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침에 일부러 늦장을 부리며 텐트를 말린 후에야 트레일로 들어섰다. 쓰나미가 발생하는 경우 대피로를 알리는 화살표와 집결 장소를 알리는 표식이 가끔 눈에 띄었다. 불의 고리란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하는 까닭에 쓰나미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들어왔단 의미였다. 나무를 길게 반으로 잘라 길을 만들었다. 미끄러지지 말라고 그 위에 철망을 씌워 놓았다. 물웅덩이가 많은 구간은 사람들이 대개 옆으로 우회하면서 식생을 짓밟는데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였다. 오늘 구간도 속도가 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길은 대부분 진흙탕이었고 사다리도 계속해 나왔다. 컬라이트 크릭(Cullite Creek)에선 케이블 카로 계곡을 건너고, 로간 크릭(Logan Creek)은 서스펜션 브리지로 건넜다. 바다로 흘러 드는 계곡 하나를 건너기 위해 사다리 몇 개를 내려섰다가 계곡을 지나면 다시 사다리로 한참을 올라야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게 은근히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로간 크릭에서 월브랜 크릭(Walbran Creek)까지도 진흙탕이 많았지만 그리 힘들진 않았다. 어떤 구간은 보드워크를 새로 정비해 놓아 걷기가 편했다. 세월이 오래된 보드워크는 그 위에 살짝 이끼가 끼거나 한쪽이 허물어져 경사가 진 경우가 많다. 행여 이슬이 맺히거나 비가 내리면 여기서 미끄러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에서 가장 사고가 많아 악명이 높다. 발목을 다치거나 골절상으로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사람도 나온다. 우리 발걸음도 더욱 신중해졌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에서 사고가 나면 일단 무전이 가능한 곳으로 가야 한다. 먹통이 되는 휴대폰은 아무 소용이 없다. 등대나 원주민 부락, 트레일 정비요원을 찾아 가거나 사람을 보내 국립공원 측에 연락을 해야 구조를 기다릴 수 있다. 53km 지점 표식을 지나고 케이블 카로 계곡을 건넌 뒤에야 월브랜 크릭 캠프 사이트에 도착했다. 모두 9km를 걷는데 무려 여섯 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제 까다로운 구간도 끝이 났으니 마음의 여유를 찾아 웨스트 코스트의 비경을 감상할 차례다.

 

캠프 사이트를 둘러싼 나무엔 형형색색의 부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일종의 장식이었다. 부표에 글씨까지 새긴 것을 봐선 여길 다녀간 하이커들이 기념으로 매달아 놓은 것 같았다. 일단 하룻밤 묵을 집을 만들어놓곤 나머지 오후 시간은 빈둥빈둥 망중한을 즐겼다. 일반적으로 여기 사람들은 하루 일정을 우리보다 짧게 잡고 이런 여유 시간을 많이 갖는다. 우리도 그들처럼 빈둥거리며 여유를 부려보려고 해도 실상 쉽지는 않다. 부목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지켜 보았다. 아들은 부목 위에 누워 낮잠을 청한다. 밀물이 들어오는 시각이라 갈매기들이 강 하구에 자리를 잡곤 물고기 사냥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해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바다에선 고래 한 마리가 나타나 수면 위로 물줄기를 뿜는다. 참으로 한가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에서 또 하루가 이렇게 흘러갔다.

 

캠퍼 베이를 출발해 다시 숲길로 들어섰다. 연이어 나타나는 사다리가 좀 성가셨다.

 

쓰나미가 발생하는 경우에 대비해 대피로 방향과 집결 장소를 알리는 표식이 가끔 눈에 들어왔다.

 

공처럼 둥근 모양의 나무 혹병은 자주 보았지만 이처럼 생긴 혹병은 처음 접한다.

 

속이 텅빈 나무 등걸에 들어가 간식을 먹고 있는 아들을 찍어 보았다.

 

 

 

긴 나무를 반으로 잘라 길을 만들어 놓았다. 사다리의 길이도 족히 20미터는 되어 보였다.

 

 

컬라이트 크릭에 도착하기 직전에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비치가 있었다.

 

케이블 카를 당겨 컬라이트 크릭을 건넜다. 강폭이 넓은 경우는 줄을 당기는데 꽤나 힘이 들었다.

 

 

상태가 좋은 보드워크와 서스펜션 브리지를 만나는 것은 우리에겐 일종의 행운이었다.

 

진흙탕 구간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다. 순간적인 판단과 균형 감각이 필요했다.

 

 

 

나무에 부표가 주렁주렁 매달린 월브란 크릭 캠프 사이트에 도착했다. 텐트를 치곤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먹이를 찾아 나선 갈매기와 고래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또 하루가 저물었다. 초저녁부터 잠을 청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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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02.09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하루 일정을 마치고 햇볕을 이불 삼아 시원한 바닷 바람을 솔솔 맞으며 통나무에 기대어 낮잠을 청하는 기분이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