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12.31 [프랑스] 루르드 ①
  2. 2015.03.22 [퀘벡] 몬트리얼(Montreal) ①
  3. 2015.03.09 [퀘벡] 퀘벡 시티(Quebec City) ① (2)

 

루르드(Lourdes)는 세계 3대 성모 발현지로 유명한 곳이다. 난 카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루르드를 꼭 가보고 싶었다. 파리에서 비행기를 내려 몽파르나스 역까진 에어프랑스 리무진을 이용했다. TGV 열차를 예약할 당시만 해도 비행기 도착부터 4시간의 여유가 있어 느긋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리무진 안에서 안절부절 속을 태워야 했다. 열차 출발 20분 전에 몽파르나스 역이 눈에 들어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바욘(Bayonne) 역에도 30분이나 열차가 늦게 도착해 루르드로 가는 연결편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역무원이 나를 데리고 어느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다른 열차편을 수배해준다. 닥스(Dax)로 되돌아가서 타르브(Tarbes) 행 기차를 타고 루르드에서 내렸다. 한 시간 가량 늦긴 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루르드엔 빗방울이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루르드 역에서 시내로 걸어가면서 눈에 띄는 호텔마다 방이 있나 확인을 했지만 무슨 일인지 대여섯 개 호텔이 모두 만실이란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별 두 개짜리 호텔에서 구한 방은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 한 사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싱글 침대와 10인치 구식 TV가 놓여 있었다. 화장실과 샤워장도 그리 깨끗하지 않았다. 요금표에는 이 1인실이 35유로라 적혀 있었는데 프론트에서 스스로 알아서 30유로로 깍아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행 다니면서 먹고 자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내 체질이라 그냥 쓰기로 했다. 그런대로 하룻밤 지낼만 했다. 이런 게 여행이 아닌가 싶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려 호텔 근처만 돌아다니다 먹을 것을 사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잠에서 일찍 깨어났다. 가로등 불빛이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와 방안이 무척 환했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섰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대성당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새벽 미사에 참석하러 가는 사람들 같았다. 나도 그들 뒤를 따랐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가는 성당을 중심으로 둘러보았다. 미사를 준비하고 있는 로사리오 노틀담 성당을 먼저 들렀다. 계단을 타고 그 위로 올라갔더니 두 개의 또 다른 성당이 나타났다. 동굴 성당과 무염시태 성당이었다. 동굴 성당에선 이미 미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무염시태 성당은 사람이 없이 적막강산이었다. 성모가 발현했다는 마사비엘 동굴(Grotte de Massabielle)에서도 미사가 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어떤 사람은 비를 맞으며, 어떤 사람은 우산을 쓰고서 경건하게 미사를 보고 있었다.

 

일단은 루르드 성지 순례의 주축을 이룬다는 마사비엘 동굴과 로사리오 노틀담 성당, 무염시태 성당을 일견했으니 날이 밝으면 다시 성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마사비엘 동굴에서 나오면서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샘에서 성수를 손으로 받아 몇 모금 마셨다. 이 성수는 질병 치료에 신통한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어 환자들이 많이 찾는다. 치유의 기적을 바라고 오는 순례객들이 의외로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샘에는 사람들이 한두 명밖에 없었다. (Pau) 강을 건너 호텔로 돌아왔다. 우선은 비에 젖은 옷을 좀 말리고 싶었고 간단하게나마 허기를 달래야 했다. 어제 저녁에 산 크로아상 두 개로 아침을 해결했다.

 

 

바욘 역에서 연결편을 놓쳐 다른 기차를 기다리면서 잠시 역 앞을 둘러보았다.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루르드 역에 도착하였다. 열차에서 내리는 사람들 대부분이 순례자들이었다.

 

어렵사리 방을 잡은 별 두 개짜리 르 밀란(Le Milan) 호텔의 초라한 싱글룸 모습

 

포 강 위에 놓인 다리에서 천혜의 요새로 알려져 있는 루르드 성이 보였다.

 

 

성지 입구에 마련된 안내소에는 성모 발현 내용을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성지로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마주치는 십자가

 

 

 

 

 

 

로사리오 노틀담 성당은 비잔틴 양식의 입구와 화려한 돔 지붕, 모자이크 종교화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미사가 시작되어 잠시 참관을 했다.

 

 

 

 

동굴 성당에서도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무염시태 성당은 희미한 불만 켜져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마사비엘 동굴에서도 새벽 6시에 첫 미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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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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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에서 몬트리얼은 오를레앙(Orleans) 버스를 이용했다. 3시간 조금 더 걸렸던 것 같은데 편도 요금으로 57불을 지급했다. 캐나다에서 장거리 버스를 타는 경우가 흔치 않지만 버스 요금 자체도 그리 싸지는 않다. 사실 버스는 캐나다에서 대중 교통이라 하기엔 좀 그렇다. 차편도 많지 않고 버스가 다니는 곳도 아주 적어 때론 불편하기까지 하다. 장거리 버스 이용객이 적고 그 때문에 요금이 꽤 비싸다. 캐나다란 나라는 워낙 땅덩이가 넓어 장거리 여행의 경우 기차나 버스에 비해 비행기가 오히려 싸게 친다.  

 

몬트리얼은 캐나다에서 토론토 다음으로 큰 도시다. 인구는 165만이라 하지만 광역으로 치면 380만명을 자랑한다. 주민중 불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70% 이상이다. 불어를 쓰는 도시로는 파리 다음으로 크다니 캐나다에 프랑스 도시가 하나 있는 셈이다. 처음엔 빌 마리(Ville Marie)라 불렸는데 도시가 설립된 것은 1642년이다. 프랑스계 카톨릭 교도들이 세운 이 도시는 세인트 로렌스 강과 오타와 강이 합류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교역으로 크게 성장을 하였다. 캐나다를 유럽에 알린 품목으로 모피가 큰 역할을 했는데 몬트리얼은 이 모피 교역의 중심지였다.

 

 

 

(사진) 퀘벡에서 몬트리얼로 이동하면서 탄 오를레앙 버스와 몬트리얼 지하철 역사.

 

 

 

 

(사진) 맥길역 근처에 있는 크라이스트 교회.

14세기 영국풍의 교회를 본따 프랭크 윌리스(Frank Willis) 1859년에 지은 영국 성공회 성당이다.

빨갛게 칠한 교회문이 인상적이었다.

마침 교회 안에서는 콘서트를 준비하는 음악가들이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사진) 맥길대학교 부속의 맥코드(McCord) 박물관에 들렀다. 몬트리얼 역사를 볼 수 있는 상설 전시관만

사진 촬영이 가능했다. 특별 전시로는 핀홀 카메라로 찍은 가이 글로리오(Guy Glorieux)의 몬트리얼 사진전과

린 코헨(Lynne Cohen)의 사진전이 있었고, 온타리오 아트 갤러리가 소장한 이누이트(Inuit) 부족의

예술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누이트 작품 중에서 고래 뼈를 재료로 조각한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사진) 맥길대학교는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1821년에 설립되었다.

70여 개의 건물로 구성된 캠퍼스에서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었다.

캠퍼스 전체를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캠퍼스가 그리 크다는 느낌은 없었다.

캠퍼스 안에 있는 레드패스(Redpath) 박물관에는 공룡을 포함한 다양한 화석, 광물 표본, 동물 표본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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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몰고 토론토(Toronto)로 가는 동료가 이른 새벽 나를 낯선 도시에 떨구어 주었다. 노바 스코샤에서 밤새 운전을 해서 퀘벡 시티에 도착한 것이다. 맥도널드가 문을 열면 추위는 피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시간을 잘못 알아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퀘벡 지역은 노바 스코샤보다 한 시간이 느린 것을 나중에 안 것이다. 추위에 떨면서 스스로가 한심하다며 연신 구시렁거리다가 이른 아침부터 배낭을 메고 발길 닿는대로 걷기 시작했다. 영하의 날씨 속에 추위에 떨기보다는 그나마 걷는 것이 체온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캐나다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세인트 로렌스(St. Lawrence) 강이 바다와 만나 세인트 로렌스 만이 되는 지점에 퀘벡 시티가 자리잡고 있다. 16세기 자크 까르티에(Jacques Cartier)에 의해 발견되고 1608년 사무엘 드 샹플렝(Samuel de Champlain)이 건설한 이 퀘벡 시티는 북미에선 아주 역사가 깊은 도시로 통한다. 둘다 프랑스 탐험가였기에 오래 전부터 프랑스 식민지로 지냈다. 1759년 영국과 프랑스의 오랜 전쟁을 종식시키는 마지막 전투가 여기서 벌어졌고, 영국군이 아브라함 평원(Plains of Abraham) 전투에서 이겨 결국 뉴 프랑스를 영국 식민지로 복속시킨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퀘벡 시티는 캐나다 다른 도시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오래 전부터 뉴 프랑스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고 프랑스계 후손들이 그들 나름대로 문화와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까닭이다. 도시 전체에서 프랑스 문화의 화려함이 단연 돋보인다. 18세기에 지어진 건물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마치 프랑스 파리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영어 안내문도 도통 찾을 수 없다. 캐나다 내 프랑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위에도 아랑곳않고 발길 닿는대로 열심히 걸었다.

 

(사진) 아브라함 평원에서 일출을 기다리다 이 사진을 찍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 정작 해뜨는 사진은 찍지를 못했다.

 

 

 

 

(사진) 캡 디아멍(Cap Diamant)이라 불리는 얕은 절벽을 요새로 삼아 수비를 하던 프랑스 군을 제임스 울프(Lajes Wolfe)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은 그 옆으로 우회해 아브라함 평원에서 전투를 벌였고 결국은 프랑스 군을 패퇴시켰다.

이 전투는 캐나다 역사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일전이었다.

사진은 아브라함 평원과 세인트 로렌스 강, 캡 디아멍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 프띠 샹플렝(Petit Champlain) 거리.

옛집들이 공예점이나 부티크, 레스토랑으로 거듭나 무척 아름다운 거리로 통한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거리로 퀘벡 시티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지만,

겨울철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이 별반 보이지 않았다.

 

 

(사진) 르와얄 광장(Place Royale)은 샹플렝이 정원을 세웠던 곳으로 한 때 마켓으로 바뀌었다가 종국엔 광장이 되었다.

캐나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광장이라고 한다.

 

 

(사진) 캐나다 건축가 모시 사프디(Moshe Safdie)가 지은 박물관으로 퀘벡의 역사와 문화,

원주민들에 대한 전시물이 많았다

 

 

 

(사진) 퀘벡역을 지나 올드 퀘벡 시티의 어퍼 타운(Upper Town)으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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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헬로우드림뚜와무와 2015.03.18 0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위에 엄청 떨으셨을테니,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시려지지만, 덕분에 좋은 사진을 얻으셨네요... 퀘벡을 올려놓은 사진들에서 이렇게 사람이 없는 깔끔한 사진을 얻기란 쉽지 않은듯하니 말이죠... 글과 사진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보리올 2015.03.18 17: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퀘벡을 잘 아시는 분 같습니다. 힘이 나는 댓글을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 때는 새벽부터 정처없이 떠도느라 고생 많았죠. 연신 구시렁거리며 퀘벡 시티를 헤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