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즈락 캠핑장에서 점심을 먹고 킹스 캐니언(Kings Canyon)으로 향했다. 차창으로 잠시 울룰루가 보이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경황없이 헤어져 버린 셈이다. 도로 옆으론 광활한 목장이 펼쳐졌다. 자그마치 1억 에이커나 되는 목장이라 하는데, 솔직히 이 정도면 얼마나 큰 것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얼마 더 가면 이보다 더 큰 목장도 있다고 했다. 헬기로 방목 중인 소떼를 관리한다고 하니 우리와는 스케일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중간에 버스를 잠시 세우고 언덕 위로 올랐다. 오래 전에 바다였던 지역이 호수로 변했다가 이제는 거의 말라붙은 현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전날 본 적이 있던 마운트 코너(Mt. Conner)가 눈에 띄었다. 개인이 소유한 목장 안에 자리잡고 있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단다.

 

킹스 캐니언을 30여 분 남겨 놓고 길 옆에 차를 세우더니 가이드가 캠프파이어에 쓸 나무를 구해오라고 했다. 최소한 자기 팔목보다 굵은 나무를 구해오라는 단서도 붙였다. 나무로 캠프파이어를 만들고 그 주위에서 잠을 청하는 부시 캠핑을 하기 위해서다. 전원이 숲으로 들어가 고목이나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차에 실었다. 킹스 크릭 스테이션(Kings Creek Station)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불부터 피우기 시작한다. 우리는 석양이 지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며 나무가 숯으로 변하길 기다렸다. 가이드가 그걸 이용해 요리를 만들 예정이기 때문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무엇을 만드나 궁금했는데, 파스타에 감자 조림, 그리고 빵이 곁들여 나왔다. 반죽을 해온 빵도 숯불에 직접 구웠다. 가이드의 정성에 비해 음식 맛은 그저 그랬다. 스웨그 캠핑을 준비하고 9시경에 취침에 들어갔다.







모래 언덕 위로 올라 바다가 호수로 변했다는 지역을 내려다보았다. 그 반대편으론 마운트 코너가 시야에 들어왔다.



다들 버스에서 내려 숲 속에서 캠프파이어로 쓸 나무를 구해야 했다.



킹스 캐니언에 있는 킹스 크릭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캠핑장 입구에 있는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불이 넘었다.




캠핑장에서 캠핑을 준비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구름이 가득했던 하늘에 석양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가이드가 숯불을 사용해 만든 음식. 낭만은 많았지만 맛은 좀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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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07.19 2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굉장히 재밌네요~ 캠프파이어 할 나무를 직접 가지고오라고 하는 것이! 그나저나 가이드가 열심히 저녁을 준비한 거 같은데 맛이 그럭저럭이었다니 안타깝네요~ :)

    • 보리올 2018.07.20 2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무가 흔한 곳이 아닌지라 장작을 살 수가 없어서 그럴 게다. 그래도 숲 속엔 부러진 나뭇가지나 잡목이 좀 있더라. 가이드 혼자 줍기는 힘들겠지.




울룰루를 빠져나와 일몰을 볼 수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관광버스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이미 도착한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이 테이블을 꺼내 놓고 와인 한 잔씩 하고 있었다. 우리가 일몰을 기다리는 사이, 가이드는 취사도구를 꺼내 파스타를 만들기 시작했다. 모든 재료를 준비해와 쉽게 조리를 한다. 해가 지평선으로 내려올수록 울룰루의 붉은색이 점점 진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일몰이 울룰루 투어의 하이라이트라 부를 만했다. 이 일몰을 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길 찾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햇빛이 사라지자, 바위의 붉은색도 사라졌다. 어쨌든 울룰루 일몰을 보았다는 안도감과 약간은 허전함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에어즈락 캠핑장에 도착해 캠프파이어를 준비하고 하룻밤 묵을 스웨그(Swag) 캠핑을 준비했다. 스웨그는 야외 매트리스라고 보면 된다. 커버가 있어 침낭을 그 안에 넣고 들어가 잔다. 땅바닥에서 자면 뱀을 어찌 하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이드 설명이 걸작이었다. 우리가 뱀을 싫어 하듯이 뱀도 사람을 싫어해 사람이 많은 곳은 오라고 해도 오지 않는다는 말에 다들 안심하는 눈치였다. 남반구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과 함께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울룰루 일출을 보기 위해 530분에 기상했다. 어제 일몰을 보았던 장소로 다시 갔다. 해가 울룰루 위로 뜨는 것이 아니라 훨씬 왼쪽에서 떠올랐다.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세우며 울룰루의 일출을 감상했다. 일몰에 비하면 일출은 좀 별로였다.


버스만 주차할 수 있는 일몰 장소에 많은 버스가 도착해 있었다.







해가 내려갈수록 울룰루의 붉은색이 점점 밝게 빛났다.




가이드가 저녁으로 준비한 파스타



호주 아웃백에서 맛볼 수 있는 호주 전통의 스웨그 캠핑







전날 일몰을 보았던 장소에서 일출도 감상할 수 있었다.


투어 버스에 매달린 트레일러에 주방기구와 스웨그를 싣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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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07.14 1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순서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잔뜩 기대하고 그 장면을 마주치는 것보다 어딜 향하다가 뜻밖의 펼쳐지는 풍경의 놀라움이 마음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 보리올 2018.07.16 0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우연을 만나면 훨씬 감동이 크겠지.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냐. 울룰루는 사진으로 보던 장관과는 좀 차이가 있더라.

 

배낭에 고히 모셔둔 마지막 신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모처럼 먹은 매운맛에 코에 땀이 났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일출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여명이 제법 아름다웠다. 비만 그쳐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말이다. 길을 가다가 땅에 떨어진 사과 몇 알을 주웠다. 이따가 간식으로 먹자고 배낭에 넣었다. 뉴욕 주에서 왔다는 60대 중반의 케빈과 함께 걸었다. 얼굴은 본 적이 있지만 오늘에서야 통성명을 했다. 뉴욕 주에서 낙농업 NGO로 활동하다가 얼마 전 은퇴를 했단다. 그는 돌로 지은 이 지역 주택이나 돌담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케빈과 함께 카사 수사나(Casa Susana)에서 커피를 한잔 했다. 수사나는 호주에서 온 수잔나의 스페인 이름이었는데, 이 집을 빌려 도네이션제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실내도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축사가 집안에 있는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포르토마린(Portomarin)으로 들어섰다. 1960년대 미뇨(Mino) 강에 댐이 건설되면서 옛 도시가 물에 잠기자 역사가 어린 건물들을 현재의 위치로 옯겼다고 한다. 성채처럼 생긴 산 후안(San Juan) 성당이 대표적인 경우다. 미뇨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 시내로 향했다. 마을을 들르지 않고 왼쪽으로 빠져도 되지만 수잔나가 알려준대로 시내를 돌아보고 싶었다. 산 페드로(San Pedro) 성당에서 시작해 중심가를 따라 시내 구경에 나섰다. 산 후안 성당이 단연 돋보였지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성당 앞에 있는 광장엔 시청사와 순례자상이 세워져 있었다. 중앙로를 따라 상가가 마주보고 있는데 1층은 회랑으로 되어 있어 걷기에 편했다. 회랑 끝에 Km 88이란 바가 있어 여기서부터 산티아고까지 88km 남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남은 거리는 88km가 아니라 9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포르토마린을 벗어난 오솔길에서 체코에서 왔다는 루시를 만났다. 배낭이 엄청 커서 무게가 얼마나 되냐 물었더니 15kg은 될 것이라 했다. 이 아가씬 길가에서 자라는 버섯에 대해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 이것저것 가르키며 이 모두가 식용 버섯인데 여기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했다. 이름도 모른 채 마을 몇 개를 지나쳤다. 풍경이 그만그만 해서 별 미련은 없었다. 소똥 냄새는 여전했지만 날씨가 점점 맑아져 기분은 절로 좋아졌다. 겨우 비 하나 그쳤다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사람 참 간사하다. 그 즐거움을 방해하는 일이 일어났다. 탁 트인 순례길에서 한 젊은 남녀가 길에 누워 포옹을 한 채로 열렬히 키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명색이 순례길인데 대낮부터 이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라 하진 못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마지 못해 떨어진다. 발걸음을 빨리 해서 현장을 벗어났다.

 

곤싸르(Gonzar)에서 빵과 아침에 주운 사과로 점심을 먹었다. 먹는 것에 비해 열량 소모가 많은 때문인지 뱃살이 홀쭉해졌다. 이제부터 관리를 잘 해야할텐데 말이다. 오스피탈 다 크루쓰(Hospital da Cruz)로 들어서기 전에 아스팔트에 쭈구리고 앉아 송충이를 지켜보던 제이미를 만났다. 처음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라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나중에 K77 표지석이 있는 지점에서 다시 만나 통성명을 하곤 아까 아스팔트에서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았다. 아스팔트를 지나는 송충이가 행여 지나가는 차량에 깔릴까 걱정이 되어 나뭇잎을 이용해 숲으로 유도하는 중이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그 아가씨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참으로 마음씨 착한 아가씨였다. 유타 주에서 왔다는 그녀는 평소에도 나비와 곤충을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리곤데(Ligonde)를 지나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까진 꽤 멀게 느껴졌다. 팔라스 데 레이는 왕의 궁전이란 의미라던데, 여기가 예전에 어떤 왕국의 수도였던 모양이었다. 팔라스 데 레이는 인구 4,200명을 가진 제법 큰 도시였다.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최신식으로 깨끗하게 꾸민 공립 알베르게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이 없었다. 그 큰 시설을 나를 포함해 모두 5명이 썼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심까진 1km를 더 가야 했고 도심에도 알베르게가 여러 개 있었다. 부식을 사러 도심으로 가는데 일몰이 시작되었다. 도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석양을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혼자서 부엌을 독차지하곤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단백질을 보충한답시고 고등어 통조림과 소시지를 고추장에 찍어 와인과 함께 먹으니 그 조합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페레이로스에서 아스팔트 길로 내려서면 만나는 산타 마리아 성당은 공동묘지를 끼고 있었다.

 

이름도 모른 채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찻길에 세워진 버스 정류장이 좀 낯설게 다가왔다.

 

 

돌로 지어진 주택들이 많았다. 둥글게 휘어도는 담장 처리도 뛰어났다.

 

회색 돌집에 빨간 대문을 달아 눈길을 끌었다. 그 옆에 화분을 놓아 구색을 맞춘 것도 보기 좋았다.

 

 

 

카사 수사나에서 커피 한잔 마셨다. 카페 주인인 수잔나가 집안도 구경시켜 주었다.

 

 

미뇨 강을 건너 포르토마린으로 들어섰다.

 

포르토마린의 산 페드로(San Pedro) 성당엔 특이하게도 스페인 국기가 걸려 있었다.

 

산 페드로 성당 앞에 조성된 작은 공원에 무슨 까닭인지 커다란 증류기가 세워져 있었다.

 

댐 공사로 수몰된 옛 마을에서 하나하나씩 해체해 현위치에 다시 조립한 산 후안 성당

 

 

포르토마린을 가로지르는 중앙로를 따라 형성된 상가와 주택

 

아스팔트에 10여 분을 쭈그리고 앉아 송충이를 다시 숲으로 되돌려보낸 제이미

 

벤타스 데 나론(Ventas de Naron) 마을에서 본 자판기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의 루트가 표시되어 있었다.

 

벤타스 데 나론의 막달레나(Magdalena) 예배당.

템플 기사단이 순례자를 위해 지은 병원이 19세기에 무너지자, 그 돌로 예배당을 지었다고 한다.

 

 

리곤데 마을. 건물 외벽을 장식한 절묘한 감각에 절로 감탄이 나왔고, 둥근 형태로 돌을 쌓고

그 위에 석판을 얹은 구조도 눈길을 끌었다.

 

나이 지긋한 여자 한 명과 여자아이 둘이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도 순례에 나선 것일까?

 

소들이 풀을 뜯기 위해 들판으로 나가고 있다.

 

 

아이레쎄(Airexe)와 아 칼싸다(A Calzada)에 있는 성당들은 모두 공동묘지 옆에 세워져 있었다.

 

 

팔라스 데 레이의 산 티르소(San Tirso) 성당. 마침 미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팔라스 데 레이 도심에 있는 수퍼마켓을 가다가 맞은 석양에 가슴이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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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3.21 15: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이미의 생명을 소중히하는 자세를 본받아야겠습니다. 모기와 샌드플라이는 아직...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콩을 얹은 파스타로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알베르게가 소란스러워졌다. 옆방에 묵었던 아가씨 한 명이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뛰어나왔고 알베르게 오스피탈레로도 이곳저곳 분주히 움직였다. 간밤에 옆방에서 사건이 하나 발생한 것이었다. 60대 후반의 노인네 한 명이 술에 취해 잠을 자다가 한밤중에 용변을 본다는 것이 그만 방 안에 있는 그 아가씨 배낭에다 두 차례나 쉬를 한 것이다. 경찰을 불러라, 둘이 합의를 해라 하며 알베르게가 한동안 시끄러웠다.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어수선한 가운데 먼저 알베르게를 떠났기 때문이다.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도 한 눈에 보기에 예쁜 마을 같아 보였지만 비가 내리는 탓에 좀 스산해 보였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다가 라스 에레리아스(Las Herrerias)를 지나면서 오솔길로 접어 들었다.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비를 맞으며 산을 오르는 기분은 사실 별로다. 사방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데 비구름이 그 풍경을 가리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오늘이 딱 그랬다. 마지막 산을 오르는데 비가 내리다니 이게 뭔 조화냐 싶었다. 좁은 오솔길엔 밤송이가 지천으로 떨어져 있었다. 한해 열심히 영양분을 만들어 밤송이를 만들었건만 차에, 소에 그리고 사람에 밟혀 씨앗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밤나무의 심정을 생각하니 공연히 내 속이 탄다. 알이 실한 밤을 몇 십 개 골라 배낭에 넣었다. 어디 목이 좋은 곳이 나타나면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를 대신해 씨를 뿌려줄 생각이었다. 길엔 소똥 역시 무척 많았다. 소들의 왕래가 잦은 것을 보면 이 마을은 목축이 주요 생계 수단인 모양이다.

 

계속 오르막이 이어졌다. 해발 1,300m까지만 오르면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앞으로 이런 산악 지형은 나타나지 않는다. 레온 주의 마지막 마을 라 라구나(La Laguna)를 지났다. 어느 정도 고도를 높이자 시야가 탁 트이기 시작했다. 촉촉하게 비에 젖은 가을 정취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능선을 따라 비구름이 춤을 추고 산기슭은 군데군데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날이 맑았더라면 꽤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었을텐데 좀 아쉽다. 능선 위로 올라서 갈리시아(Galicia) 자치주의 루고(Lugo) 주로 들어섰다. 갈리시아 문장을 새겨넣은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순례길의 종착점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가 갈리시아 자치주에 있으니 이제 목적지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갈리시아 지방에서 세운 첫 표지석에도 산티아고까지 151.5km가 남았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산 꼭대기 부근에 있는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에 닿았다. 안개가 짙고 여름에도 눈이 온다는 곳인데 다행스럽게도 잠시 비가 그쳤다. 산타 마리아 성당은 깔끔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했던 성배가 여기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의 진위는 나도 잘 모른다. 돌로 지은 집 외에도 둥근 초가 지붕을 얹은 파요싸(Palloza) 몇 채가 눈에 들어왔다. 켈틱 전통의 파요싸에는 사람과 가축이 함께 기거하기도 했고 소시지나 햄을 훈제하기도 했단다. 순례길은 바로 하산하지 않고 비슷한 고도를 유지하며 오르내림을 계속해야 했다. 해발 1,270m의 산 로케 고개(Alto do San Roque)를 지나고 오스피탈(Hospital)이란 볼 것 하나 없는 마을도 지났다. 해발 1,335m의 포이오 고개(Alto do Poio)도 가볍게 넘었다. 그 후론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까지 긴 내리막 길이 시작됐다.

 

갈리시아의 전형적인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완만한 구릉이 넘실대고 그 경사면에 조성한 푸른 초지와 목장이 눈에 들어왔다. 한가롭게 그 위를 거니는 소들도 보였다.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꼭 알프스의 초원 같다며 갈리시아의 아름다움을 칭송하지만, 난 자연을 훼손한 현장을 보는 것 같아 속이 편하지 않았다. 생계가 최우선이라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말이다. 오후의 지루함이 덮쳐올 즈음,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며 빗줄기가 얼굴을 때렸다.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빨리 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비를 맞기 시작해 하루 종일 비를 맞았다. 오후 4시경에 트리아카스텔라에 도착해 알베르게를 찾느라 시간을 좀 허비했다. 공립 알베르게는 취사 시설은 없었지만 방은 4인실로 꾸며 아늑하고 깨끗했다. 이태리 친구와 한 방을 썼다.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가지 않고 빵과 사과, 삶은 계란에 와인으로 알베르게에서 대충 해결을 했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라스 에레리아스 마을은 차분하면서도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라스 에레리아스를 지나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이 나타났다.

 

라 파바(La Faba)란 마을에서 만난 어느 시골집의 벽면 모습

 

 

 

 

어느 정도 고도를 높이자 비에 젖은 가운데도 가을 정취를 풍기는 산악 지형이 나타났다.

 

라 라구나 마을에서 초가 지붕을 얹은 건물 한 채를 발견했는데 그 용도는 잘모르겠다.

 

 

다시 산으로 오르는 중에 계곡 아래 자리잡은 마을 하나가 보였다.

 

 

능선 위에 올라 바라본 풍경. 풍경에 큰 변화는 없었지만 더 넓은 지역이 한 눈에 들어왔다.

 

 

갈리시아 지치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나타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리는 표지석은 500m 간격으로 하나씩 세워져 있었다.

 

 

 

바람의 마을이란 별명을 가진 오 세브레이로에 올랐다. 파요사란 특이한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오 세브레이로를 내려서면서 잔잔한 풍경과 마주쳤다.

 

 

비를 맞으면서도 멈추지 않고 순례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

 

산 로케 고개엔 바람을 헤치고 나아가는 순례자 형상을 묘사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포이오 고개를 넘어 만난 조그만 성당 하나가 순례자에게 비를 피할 휴식처를 제공했다.

 

하산길에 갈리시아 지방의 전형적인 풍경을 만났다.

 

트리아카스텔라로 들기 직전에 만난 어느 마을의 성당 입구에 두 송이의 꽃이 꽂혀 있었다.

 

 

 

트리아카스텔라 마을의 모습. 산티아고 성당과 순례자상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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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5.12.16 23: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을 단풍 멋져요 ㅎ
    젖소도 한가롭고 산악지형 넘느라고
    고생하셨어요 엄지발가락 주물르세요

    • 보리올 2015.12.17 0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을 단풍과 농촌 풍경을 좋아하시는 것을 보면 그런 소재에 정감을 많이 느끼시는 모양입니다. 농돌이님도 저와 취향이 비슷한 것 같군요. 저도 자연이나 시골 풍경에서 마음이 푸근해짐을 많이 느낍니다.

    • 농돌이 2015.12.17 09: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 지금 시골 소읍에서 생활하는데도 휴일이면 산으로 들로
      나갑니다 어렸을 적에 몰랐던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에
      행복해합니다 조그만 들풀꽃에서도 큰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늦게 알았습니다 ㅎㅎ

    • 보리올 2015.12.17 16: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삶의 경륜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원숙해졌다는 의미겠죠. 조용히 관조할줄 아는 지혜도 터득하신 것 같고요. 부럽습니다.

    • 농돌이 2015.12.17 18: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하신 말씀이구요, 정신없이 잡으려고 뛰다가 잠시
      돌아보고, 다시 생각하니까, 삶이 짧고 아까운 거죠?
      몇 년 전부터 시작해서 산에 가면서도 책 한권 가지고 가서 점심 먹고 읽고, 졸리면 자고,,,
      삶에 순도를 높여서,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좀 완성된 모습으로
      지구별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좀 큰가요?

    • 보리올 2015.12.18 02: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닙니다. 크지 않습니다. 그리 소망하면 언젠가 이루어질 겁니다. 산에 책을 들고 가신다는 말씀은 저에게 각성제 같은 이야기네요.

  2. Justin 2016.03.15 1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요사라는 건물이 꼭 사람의 더벅머리 형상 같습니다 ~
    (참고로 사진 설명글 밑에 갈리시아 자치주가 아니라 지치주라고 적혀있습니다.)

    • 보리올 2016.03.15 2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도 저 특이한 건축양식이 왜 생겼는지 궁금했지만 그 내막을 알아보진 못했다. 더벅머리 형상이란 표현이 재미있구나.

 

밤새 비가 오더니 새벽에서야 그쳤다. 어느 새 비가 일상이 되었다. 파스타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이영호 선생이 다리에 통증이 심해 걷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두열 선생에게 먼저 간다고 작별을 고하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구름의 이동이 심상치 않았다. 어제 구경했던 도심에서 좁은 골목길을 지나 폰페라다를 빠져 나왔다. 폰페라다 외곽으로 나왔을 때 일출이 시작되었다. 두꺼운 구름과 묵중한 산세에 가려 일출은 그다지 볼 것이 없었다. 가로수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도로를 지나고 구획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마을을 빠져 나오니 한적한 시골길이 시작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르키는 표식도 새로워졌다. 지자체마다 개성있는 디자인을 택하기 때문에 획일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건물들이 큼직큼직한 캄포나라야(Camponaraya)로 들어섰다. 길가에 알록달록한 공장 건물이 들어서 있어 무엇을 만드는 곳일까 궁금했는데 비냐스 델 비에르쏘(Vinas del Bierzo)라는 와이너리였다. 테이스팅 룸이 마련되어 있어 와인 한잔을 시켰다. 핀초(Pincho)라는 타파스를 곁들여서 1.50유로를 받는다. 아침부터 술기운으로 걷게 되었다. 카카벨로스(Cacabelos)에 이르는 길 옆으로 포도밭이 즐비했다. 리오하(Rioja) 지역과 비슷하게 여기도 들판 대부분을 포도밭이 차지하고 있었다. 카카벨로스는 스스로를 유럽 와인의 중심지라 칭했다. 프랑스의 보르도나 부르고뉴에서 들으면 펄쩍 뛸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꿀밤을 먹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포도 품종은 멘시아(Mencia)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 초입에 와인 등급을 매기고 원산지를 증명하는 관청도 있었다. 조그만 성당을 박물관으로 바꿔놓은 곳도 있어 1유로를 기부하고 들어가 보았다.

 

피에로스(Pierros)를 지나서 발투일레 데 아리바(Valtuille de Arriba)로 우회하는 길 역시 포도밭 사이를 누비며 한없이 이어졌다. 노랗게 또는 붉게 물든 단풍이 포도밭을 뒤덮고 있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포도나무를 사람 무릎 높이로 길러 놓은 것이었다. 다른 지역은 지지대와 와이어를 이용해 사람 키만한 높이로 기르는데 말이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언덕 경사면에 조성된 포도밭을 만났는데, 언덕 위에 세워진 하얀집과 나무 몇 그루가 포도밭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쏘(Villafranca del Bierzo)는 크진 않았지만 꽤나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용서의 문(Puerta del Perdon)을 가진 산티아고 성당과 성채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섰다. 미로처럼 좁은 골목길을 걸어 마을 한 바퀴 돌아보고 길가 벤치에서 빵과 과일, 삶은 계란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로 올라야 하는 순례자들은 여기서 하루를 묵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난 좀더 올라가기로 했다. 경사는 심하지 않았지만 꾸준한 오르막이 이어졌다. 발카르세(Valcarce) 강을 따라 놓여진 도로를 걸어 페레헤(Pereje), 트라바델로(Trabadelo) 등 몇 개 마을을 지났다. 대부분 산골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라 볼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마을마다 조그만 성당이 있었지만 대개 문을 잠가 놓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해 우의를 꺼내 입었다. 하루도 봐주는 날이 없다고 연신 투덜대면서 말이다. 날이 어두워지려는 시각에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에 도착했다. 산 아래 자리잡은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었다. 거의 10시간 가까이 걸어 순례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40km를 넘게 걸었다. 알베르게부터 찾았다.

 

비가 그치질 않아 마을 구경도 생략했다. 부식을 사러 가게에 갔다가 박인자 선생을 만났다. 혼자서 순례길을 걷고 있는 용감한 주부였다. 간단하게 수프를 준비할테니 함께 저녁을 하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부엌이 워낙 작고 이미 다른 순례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우루과이에 온 젊은이 셋이 자기들이 마련한 저녁이 많다고 우리에게 꽤 많은 양의 음식을 건네주었다. 기소라 한다는 우루과이 볶음밥이었는데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거기에 박인자 선생이 준비한 수프를 더하고 내가 산 와인을 곁들이니 훌륭한 만찬이 되었다. 나중엔 보스턴에서 왔다는 아가씨 둘이 만든 요리도 한 접시 빼앗아 먹었다. 시금치에 떡볶이 떡 같은 것을 넣고 토마토 소스와 버무렸는데 그것도 맛은 괜찮았다.

 

파스타 면을 삶아 그 위에 통조림으로 파는 콩을 얹었다. 간편하게 만들 수 있어 아침에 자주 먹었다.

 

 

폰페라다를 벗어날 즈음 구름이 가득한 동녘 하늘로 해가 솟았다.

 

폰페라다 외곽에서 가로수 터널을 만났다.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콤포스티야(Compostilla) 성당

 

콜룸브리아노스(Columbrianos) 마을로 들어서는데 포도밭 가운데 산 에스테반(San Esteban) 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지역에 설치된 산티아고 순례길 표식이 다른 곳과는 달라 눈에 띄었으나 그 숫자가 몇 개 되지 않았다.

 

 

인구 4,200명을 가진 캄포나라야

 

 

캄포나라야의 비냐스 델 비에르쏘 와이너리에 와인 테이스팅 룸을 마련해 놓아 들어가 보았다.

 

 

 

스페인의 와인 산지로 유명한 비에르쏘 지역의 중심지 카카벨로스

 

 

카카벨로스에 있는 조그만 성당 하나를 박물관으로 개조해 도네이션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카카벨로스 외곽으로 대규모 포도밭이 펼쳐져 특유의 풍경을 만들었다.

 

주택 벽면에 과감한 색깔을 칠해 마을 분위기가 밝아 보였던 발투일레 마을

 

발투일레 마을에서 고양이 다섯 마리가 경계의 눈초리로 나를 맞이했다.

 

 

 

 

산과 계곡, 강이 어우러져 아름다웠던 비야프랑카 마을. 마르케스(Marqueses) 후작의 궁전도 있었다.

 

비야프랑카를 벗어나 N-6 도로를 따라 걷는데 순례길을 알리는 이정표에 누가 등산화를 걸어 놓았다.

 

베가 데 발카르세 마을 직전에 있는 암바스메스타스(Ambasmestas)를 지났다.

 

 

암바스메스타스에 자리잡은 이름 모를 성당엔 한 커플이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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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광주랑 2015.12.15 0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풍경이 장관이네요 ^^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광주광역시 공식 블로그 '광주랑'에도 많은 방문 부탁드려요 ~

    • 보리올 2015.12.15 1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관심을 가지고 봐주셔서 고압습니다. 광주랑이란 블로그는 엄청 방대하고 내용도 다양하던데 어떻게 그걸 다 관리하시는지 놀랍습니다. 애 많이 쓰시네요.

  2. ::리뷰:: 2015.12.15 1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포도밭이었군요.. 아름답네요. 마치 들판인듯 아닌듯...

  3. Justin 2016.03.11 1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집마다 색깔이 돋보여서 분위기도 밝고 상큼합니다 ~ 우리나라도 옛날 골목길을 저렇게 이쁘게 색만 칠했어도 이뻤을텐데말이죠~

    • 보리올 2016.03.11 1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애초부터 집을 지을 때 외관의 색상을 고려했다면 가능한 일이었겠지. 너무 인위적으로 칠을 하니까 오히려 보기가 흉하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