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을 꾸려 아랫층 식당으로 내려왔다. 테이블 가운데 비스켓이 담겨 있는 바구니가 있어 몇 개 집어 먹었다. 처음엔 순례자들을 위해 누가 가져다 놓은 것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바구니 안에 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것도 도네이션을 요구하고 있었다. 비스켓 값으로 2유로를 통에 넣었다. 알베르게를 나서니 구름이 역동적으로 움직여 일출이 장관일 것 같았다. 일출까지는 시간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걸어가는 도중에 동이 트는 것을 보기로 했다. 마을을 벗어나 30분쯤 걸었을까. 붉게 물든 구름이 동녘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 설레는 장면이 드디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 자리에 서서 붉은 하늘에 푹 빠져 들었다.

 

예전에 템플 기사단의 영지였다는 테라디요스(Terradillos)에 도착했다. 벽돌로 지은 성당이 보였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돌로 지은 성당이었는데 여긴 벽돌로 지은 것이었다. 석조 건물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이렇게 건축 양식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돌을 구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문이 잠겨 있어 성당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모라티노스(Moratinos)엔 조그만 언덕 아래 굴을 파서 그 안에 와인을 저장하는 셀러를 만들어 놓았다. 저장고 앞으로 갔더니 안은 들여다 볼 수 없었지만 와인 냄새는 풀풀 풍겨 나왔다. 화살 표식이 분명치 않아 마을에서 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밭 사이로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길을 따라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San Nicolas del Real Camino)에 닿았다. 여기도 땅에 굴을 파서 와인 저장고를 만들었다.

 

산 니콜라스를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팔렌시아 주에서 레온(Leon) 주로 들어섰다. 순례길엔 이를 알리는 표지판이 없어 도로로 나가 차량용 표지판을 찍어야 했다. 멀리 사아군(Sahagun)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까닭인지 길을 우회해 작은 성당으로 향하게 했다. 비르헨 델 푸엔테(Virgen del Puente) 성당이라고 한다. 사아군도 큰 도시답게 성당이 무척 많았다. 현재는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는 트리니다드(Trinidad) 성당과 그 옆에 있는 산 후안(San Juan) 성당을 둘러보고 산 베니토(San Benito) 수도원의 잔재인 아치형 문도 보았다. 지금은 그 문 아래로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가 놓였다. 베니토 수도원은 알폰소 6세를 지원하는 정치적 도박에 성공해 한때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수도원으로 군림했었다. 오랫동안 엄청난 영화를 누리다가 18세기 대형 화재로 한 순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산 베니토 수도원 뒤에 있는 산 티르소(San Tirso) 성당을 둘러보곤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산 로렌쏘(San Lorenzo) 성당도 찾아갔다. 사아군은 무데하르 건축 양식의 태동지라 불리는데, 무데하르(Mudejar) 양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두 성당이었기 때문이다. 성당을 둘러보면서 무데하르 건축 양식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무데하르란 12~17세기에 유행한 것으로 유럽의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에 스페인을 점령했던 아랍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스페인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말한다. 이 양식은 주로 벽돌을 사용하고 특히 종루에 벽돌과 타일을 세련되게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사아군에서 베르시아노스 델 카미노(Bercianos del Camino)까지 10km 구간이 무척 멀게 느껴졌다. 솔직히 오후가 되면 늘 그랬다. 왼쪽 발목은 거의 회복이 되었는데 이젠 오른쪽 발가락에 생긴 티눈이 문제다. 요즘 들어 통증이 상당했는데 이것도 오후가 되면 더 심해졌다. 칼싸다 델 코토(Calzada del Coto)에서 길이 갈라진다. 왼쪽 오리지널 루트를 택했다. 거기서 베르시아노스까지는 5km. 도네이션제로 운영하는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어떻게 운영하는지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시설은 형편없는데도 침대는 거의 다 찼다. 사람은 도착하지 않았는데 누가 먼저 와 침대를 미리 잡아놓은 것 같았다. 나중엔 침대가 모자라 방바닥에 매트리스만 깔고 자기도 했다. 난 운좋게 침대 하나를 잡아 숙박비와 식사비로 10유로를 기부함에 넣었다.

 

밖으로 나가 석양을 촬영하고 식사 시간에 맞춰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알베르게에 투숙한 모든 사람이 식당에 모여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자원봉사자 두 명이 식사를 준비했는데, 저녁 메뉴는 렌틸콩을 넣은 파스타였다. 빵과 와인도 나왔다. 원래는 34명분을 준비했는데 사람이 늘어 45명이 먹어야 한다고 했다. 파스타도 양이 무척 적었고 빵과 와인도 마찬가지였다. 음식을 먹기 전에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고 감사의 노래를 부른 다음에 식사를 하는 것은 꽤 인상적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 음식은 적었지만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도네이션제 숙소는 확실히 젊고 가난한 순례자들이 많아 보였다. 도네이션을 하지 않는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도네이션제 숙소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칼싸디야를 벗어나 도로 옆으로 난 길을 걷다가 일출을 맞게 되었다.

 

정서 방향으로 향하는 순례길 위에 키가 큰 그림자 하나가 나를 반겼다.

 

테라디요스 마을을 벗어나 멀리서 뒤를 돌아보며 사진 한장 찍었다.

 

모라티노스에서 산 니콜라스 레알 카미노로 이어지는 순례길을 걷고 있다.

 

땅 속에 굴을 파고 그 안에 와인을 저장하는 와인 셀러가 자주 보였다.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 마을. 무데하르 양식을 사용한 산 니콜라스 성당을 지나쳤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의 팔렌시아 주에서 레온 주로 들어섰다.

 

사아군으로 들어가면서 길을 우회해 방문한 비르헨 델 푸엔테 성당

 

알베르게로 쓰이는 사아군의 트리니다드(Trinidad) 성당 앞에 세워진 순례자 상

 

트리니다드 성당 옆에 있는 산 후안 성당은 문이 닫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베니토 수도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정문으로 쓰였던 아치형 문만 남아 옛 영화를 대변하고 있었다.

 

베니토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산 파쿤도(San Facundo) 수도원을 지었으나 지금은 시계탑만 남았다.

 

 

벽돌로 지은 산 티르소 성당. 사아군에서 무데하르 양식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건축물이다.

 

 

산 로렌쏘 성당 역시 이슬람 영향을 받아 벽돌로 지었다.

 

1085년 알폰소 6세에 의해 건립된 아치형 칸토 다리

 

칼싸다 델 코토 마을의 모습. 여길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난 오리지널 루트를 택했다.

 

아스팔드 도로 옆으로 나란히 놓인 순례길을 따라 가로수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순례길에서 멀지 않은 철로 위를 스페인 국영 철도(renfe)가 지나가고 있다.

 

베르시아노스 마을에 도착했다. 햇볕이 강한 때문인지 마을 노인들이 모두 해를 등지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고풍스런 모습의 베르시아노스 알베르게. 도네이션제로 운영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위로 해가 떨어졌다. 일출 못지 않게 일몰도 환상적이었다.

 

 

모든 투숙객이 알베르게 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재미있게 진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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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02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땅 속에 굴을 파고 와인 셀러를 만들어놓으면 두더지가 가장 신날거같은데요?

 

어제 파스타를 만들어준 젊은이에게 아침을 함께 하자고 했다. 팜플로나에서 산 신라면 두 개를 끓였다. 오랜만에 먹는 매콤한 라면이 입맛을 돋운다. 오전 8시 그 친구와 알베르게를 나섰다. 박재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친구는 학군장교 출신으로 중위로 전역한 뒤 지난 16개월간 세계여행을 하고 있었다. 돈이 떨어지면 여행지에서 일을 해 경비를 번다고 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것도 그와 무관하진 않았다. 그 친구의 장래 꿈을 들으며 길을 걸었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가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현실과의 괴리를 극복하려면 앞으로 어려움이 많겠구나 싶어 걱정도 되었다.

 

그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눈 깜짝할 새에 7km나 떨어져 있다는 산솔(Sansol)에 도착했다. 내 딴에는 경험이 더 많다고 이런저런 조언을 했는데 행여 노파심이나 잔소리로 들리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산솔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토레스 델 리오(Torres del Rio)가 빤히 내려다 보였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처음엔 한 마을인줄 알았다. 토레스 델 리오에는 산토 세풀크로(Santo Sepulcro)라 불리는 팔각형 모양의 아담한 성당이 있었다. 어찌 보면 에우나테의 산타 마리아 성당과 비슷해 보였다. 성당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도로를 몇 번인가 횡단한 후에야 비아나(Viana)에 도착했다. 정오도 되지 않았다. 네 시간에 18km를 걸었으니 빨리 온 셈이다. 젊은이는 여기서 묵겠다고 해서 헤어지기 전에 점심이나 함께 하자고 했다. 엘 포르틸료(El Portillo)란 식당에서 참치와 미역, 하몽을 넣은 타파스 세 종류에 맥주 한 잔씩을 시켰다. 어느 것이든 맛은 훌륭했다. 한 입에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사이즈였는데 이것도 타파스라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다. 점심을 마치고 그 친구는 알베르게로 가고, 나는 비아나 도심을 둘러보기 위해 되돌아섰다. 시청사 앞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은 문을 닫아 들어갈 수가 없었지만 거의 다 허물어진 산 페드로 성당은 입장이 가능했다. 한 귀퉁이 건물에 천장 벽화만 남아 옛날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홀로 걷는다. 어떤 사안에 생각을 집중할 수 있어 외롭단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로그로뇨(Logrono)까진 12km를 더 가야 했다. 시커먼 구름이 몰려왔지만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비아나를 벗어나자마자 벌처(Vulture)라 부르는 독수리 한 마리가 퇴비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동물의 사체를 먹이로 한다는 녀석이다. 근데 이 녀석 배짱이 얼마나 두둑한지 내가 다가가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로그로뇨를 4km 남겨놓고 나바라 주에서 라 리오하(La Rioja) 자치주로 들어섰다. 거기서 다시 얕은 언덕을 하나 넘어서야 로그로뇨에 도착했다. 어느 알베르게에서 사람이 나와 열심히 호객 행위를 한다. 적극적인 자세는 인상적이었지만 난 무니시팔로 가겠다 미리 못을 박았다. 에브로 강(Rio Ebro) 위에 놓인 피에드라(Piedra) 다리를 건너 도심으로 향했다.

 

이곳 알베르게에도 한국인들이 꽤 많았다. 침대에 시트를 깔고는 시내 구경부터 나섰다. 로그로뇨 대성당과 메르카도(Mercado) 광장, 산티아고 성당, 산 바르톨로메(San Bartolome) 성당을 찾아 다니며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성당 세 군데가 모두 문을 열지 않아 좀 실망했는데 저녁이 되어서야 대성당과 산 바르톨로메 성당이 문을 열어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알베르게로 돌아왔더니 독일에서 왔다는 모리츠가 스파게티를 준비할 예정인데 함께 하겠냐고 물어왔다.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내 식량부터 처치하고 싶어 정중히 사양을 했다. 냄비에 밥을 짓고 밥 위에 자반김을 뿌린 후에 고추장을 적절히 섞어 내 나름대로의 만찬을 즐겼다.

 

밤에 다시 밖으로 나섰다. 라우렐 거리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로그로뇨는 리오하 주의 주도인만큼 먹거리가 풍부했다. 특히 와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리오하가 세계 5대 와인 생산지 중 하나라니 그럴만도 했다. 라우렐 거리의 타파스 바(Tapas Bar) 또한 로그로뇨의 자랑거리였다. 타파스는 식사 전에 술과 함께 먹는 간단한 음식으로 통상 바게트 위에 고기나 새우, 멸치, 버섯, , 치즈 등을 얹어 만든다. 여기 리오하에선 와인과 함께 먹는 안주라 보면 될 것 같았다. 가게마다 타파스를 개성있게 만들기 때문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맛을 보는 것이 좋다. 나도 여기저길 돌아다녔다. 사람들로 붐비는 골목을 헤집고 다니며 다양한 타파스가 준비되어 있는 바에서 와인 한잔에 타파스 한 조각 입에 무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로스 아르고스를 출발해 처음 만난 마을이 산솔이었다.

 

처음에 토레스 델 리오 마을을 보곤 산솔의 일부인줄 알았다.

마을 중앙에 별도의 성당이 있는 것을 보고 다른 마을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토레스 델 리오를 벗어나면 순례길 한 옆에 각종 메모들을 돌로 눌러놓은 곳을 지난다. 한글 메모도 많이 보였다.

 

어제 파스타를 요리해준 젊은이와 비아나까지 함께 걸었다.

원대한 꿈을 키우며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젊음이 마냥 부러웠다.

 

프랑스 르푸이를 출발해 산티아고를 찍고는 다시 르푸이로 돌아가고 있는 프랭키를 만났다.

왕복 3,400km의 장거리를 순례에 나선 것이다.

 

 

비아나로 들어서 시청사 앞에 있는 광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비아나에서 헤어지기 전에 젊은이에게 점심을 샀다. 참치와 미역, 하몽이 들어간 세 가지 타파스를 맛보았다.

 

 

외관이 이름다운 산타 마리아 성당은 문이 닫혀 밖에서 올려다만 보았다.

 

 

건물 대부분이 허물어진 산 페드로 성당은 정문과 성당 한 귀퉁이만 남아 있었다.

 

도로 아래를 지나는 지하 통로 벽면에 순례자들을 격려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동물의 사체를 먹고 산다는 벌처를 가까이에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라 리오하 자치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길가에 서있다.

 

로그로뇨는 산티아고 순례길 표식을 특이하게 만들어 길에 박아 놓았다.

 

11세기 후반에 지어진 피에드라 다리.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와 그의 제자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가 보수했다고 전해진다.

 

 

 

 

산타 마리아 라 레돈다(Santa Maria la Redonda)라고 불리는 로그로뇨 대성당.

성당 입구는 고딕 양식이지만 쌍둥이 탑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고딕 양식의 산티아고 성당은 문을 열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정문 위에 산티아고 마타모로스(Santiago Matamoros)라 불리는 전사 산티아고의 기마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산 바르톨로메(San Bartolome) 성당의 아치 정문에는 화려한 조각들이 가득했다.

 

 

와인과 타파스 바로 유명한 라우렐 거리. 타파스 바에는 맛과 색깔, 모양이 서로 다른 타파스가 진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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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25 0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11.25 0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선생님도 그러시군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오래 전부터 가려고 했지만 이제사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의미가 없었기에 전반적으로 제 기대에는 못 미치더군요. 만약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북쪽길을 걷고 싶습니다. 포르투갈 길도 좋을 것 같고요.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2. Justin 2015.12.23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 그 젊은이가 아버지를 형님으로 모시는 저보다 더 어린 그분입니까? 저도 아버지 친구분들을 형님으로 모시면 반응이 어떨까요?

    • 보리올 2015.12.23 15: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 그 청년이 맞다. 둘 사이를 형, 아우로 부르는 것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제 3자가 결부되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 그래서 그 친구에게 다른 호칭이 좋겠다 했더니 바로 선생님이라 부르더구나.

 

아침 8시를 훌쩍 넘겨 눈을 떴다. 늦잠을 잔 것이다. 부리나케 출발 준비를 마쳤다. 시카고에서 온 마가렛과 함께 알베르게를 나서게 되었다. 길을 가면서 아침 먹을 곳을 찾자고 해서 따라 나섰는데 에스테야(Estella)를 지날 때까지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지 못해 결국은 아침을 굶었다. 먹은만큼 간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끼니를 챙겨 먹었는데 오늘은 뜻하지 않게 아침을 건너뛴 것이다. 에스테야는 8월 첫째주에 축제를 여는데 여기서도 소몰이 행사를 한다고 한다. 물론 팜플로나에 비해선 유명세는 많이 떨어지지만 말이다. 마가렛은 자전거를 끌고 가다가 내리막이 나오면 먼저 타고 가곤 했다. 그래도 곧 따라잡을 수 있었다. 60대 후반의 나이에 왜 혼자 왔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태국에서 골프에 반쯤 미쳐 산다고 했다. 시카고에서 자전거를 좀 탔다곤 했지만 내가 보기엔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도 못한 것 같았다.

 

에스테야 외곽에서 이라체(Irache) 와이너리로 우회하는 길로 들어섰다. 거기엔 순례자를 위해 와인과 물이 나오는 두 개의 수도꼭지를 준비해 놓았는데 이것이 순례길의 명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길로 걷는다. 물통에 와인을 조금 담아 두세 모금 마셨다. 이렇게 소비되는 양도 꽤 많을텐데 돈보다는 순례자를 우선으로 하는 배려가 고마웠다. 어떤 사람은 와인 병을 가져와 병이 넘치게 받아갔다. 히피 차림의 한 젊은이는 2리터 콜라병에 와인을 가득 담더니 그 현장을 찍는 CCTV 카메라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고마움을 욕으로 갚는 식이라 눈쌀이 절로 찌푸려졌다. 와이너리에서 운영하는 와인 박물관도 잠시 둘러보았다.

 

이라체를 벗어날 즈음 도로 옆으로 캠핑장 시설이 나타나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땅 위에 텐트를 친 모습은 볼 수가 없었고 몇 명이 쓸 수 있는 방갈로가 죽 늘어서 있었다. 어린이 놀이터도 있고 각종 스포츠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이 유독 많았다. 카페테리아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하나는 계란 스크램블이, 다른 하나는 하몽과 치즈가 들어간 보카타(Bocata)를 시키고 맥주 한잔도 주문했다. 아침을 굶었다는 핑계로 와이너리에서 아침부터 와인을 마시고 이제는 맥주까지 마셨으니 술 기운으로 순례길을 걷는 셈이다.

 

앞에서 혼자 걷던 제이슨을 만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일에서 잠시 쉬고 있다는 그는 본래 시애틀에서 알래스카를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화물선 선장이라 했다. 집도 밴쿠버에서 30분이면 닿는 벨링햄에 있단다. 국가는 다르지만 서로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친해졌다. 더구나 여행과 사진을 좋아한다니 취미도 둘이 비슷하지 않은가. 바에서 와인 한잔 사겠다고 나를 잡아 끌었다. 이러다가 진짜 술에 취해 걸을까 싶어 와인은 사양하고 애플 파이를 하나 시켰다.

 

비야마요르(Villamayor) 뒤로는 야트마한 산 위에 몬하르딘(Monjardin) 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얼마 전에 KBS 2TV <영상앨범 산>에서 방영한 산티아고 순례길 2부작에 나온 성이 바로 여긴 모양이구나 싶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후배 이상은이 몬하르딘 성에 올라 멋진 풍경을 보여준 적이 있어 나도 올라가고는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 길을 걷다보니 순례길에서 벗어나 산 정상까지 올라갈 마음은 나지 않았다. 아래에서 보는 풍경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길 양쪽으론 황토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새로 씨를 뿌리려는지 농기계가 열심히 땅을 고르고 있었다. 포도밭도 눈에 많이 띄었다.

 

예상보다 이른 시각에 로스 아르코스(Los Arcos)에 도착했다. 6유로를 받는 무니시팔 알베르게에 들었다. 한국인들이 엄청 많았다. 알베르게 정원이 70명인데 누구 말로는 그 중 1/3이 한국인이라 했다. 너무 연약하게 큰다고 걱정을 했던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보곤 우리 나라 국운이 피려나 하는 기대도 갖게 되었다. 부엌에선 한국 젋은이들이 파스타를 만들고 있었다. 나에게도 함께 저녁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와 그러마 했다. 나중에 보니 재료를 구입한 비용을 각자 나누는 방식이었다. 2~3유로면 한 끼가 해결되는 모양인데 그냥 5유로를 주었다. 그래도 밖에서 먹는 것보단 훨씬 싸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해결하긴 처음인데 괜찮은 방법 같아 보였다.

 

 

서둘러 알베르게를 나섰더니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을에서 보는 일출이라 그런지 감동은 크지 않았다.

 

알베르게부터 한 시간 가량 동행이 되어준 마가렛. 자전거로 순례를 하는데 하루 운행거리가 내 걷는 거리와 비슷했다.

 

 

 

 

에스테야도 제법 큰 도시였지만 식당을 찾는데 정신이 팔려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지나치고 말았다.

 

에스테야의 어느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문구. 바스크 지역의 독립 열기를 대변하는 듯 했다.

 

 

 

이라체 와이너리에는 무료로 물과 와인을 받을 수 있는 수도꼭지가 설치되어 있어 순례길의 명물이 되었다.

 

 

 

이라체 와인 박물관. 조그만 공간에 125년의 역사를 담았다.

 

 

도로에 인접한 캠핑장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텐트보다는 방갈로가 주를 이뤘다.

 

 

캠핑장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으로 먹은 샌드위치

 

미국 워싱턴 주 벨링햄에서 온 제이슨은 화물선 선장이라 배를 만드는 회사에 다녔던 나와는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비야마요르를 지나면서 저 위에 있는 몬하르딘 성을 갈까말까 망설임이 좀 있었다.

 

 

 

 

붉은 색깔의 들판이 끝없이 펼쳐진 나바라 지역은 황량하면서도 한편으론 아름다워 보였다.

 

 

꽤 이른 시각에 로스 아르코스에 도착했건만 먼저 온 사람들이 대낮부터 광장에서 맥주와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알베르게에서 한국 젊은이들과 어울려 파스타로 저녁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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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5.12.16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인과 물을 공짜로 주는 주인장의 인심이 후하네요. 5일차는 아침밥을 거르셨지만 술의 힘으로 걸으셨겠어요.

    • 보리올 2015.12.17 0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라체 와이너리는 이제 순례길의 명물이 된 듯 하더구나. 순례자에게 좋은 이미지를 많이 심어주었지. 종교적인 소신이 없으면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2. 제시카 2016.04.15 1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의 소소한 대화들도 재밌게 들리네요~ 조용한 길을 둘이서 얘기하면서 걷고, 또 다음날은 다른사람과 걷고. 나름 매력이있네요~~ 친구사귀는것도 늘겠어요 ㅎㅎㅎ

    • 보리올 2016.04.16 09: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막내에게 딱 어울리는 매력적인 곳이야. 이 길에 선 사람들은 모두 오픈 마인드라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거나 친구가 될 수 있지.

 

이제 올림픽 국립공원을 벗어날 시간이다. 산행으로 다음에 또 오자고 마음을 먹었다. 포트 에인젤스를 지나 올림픽 반도 북쪽에 자리잡은 던지니스(Dungeness) 야생동물 보호지역을 찾아갔다. 1915년에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으니 100년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1인당 5불인가 입장료가 있었는데 주머니에는 현금이 한 푼도 없었다. 우리가 현금이 없어 되돌아서는 것을 보더니 한 젊은이가 입장료를 내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본 관리인이 그냥 들어가라고 인심을 썼다. 숲길을 걸어 바닷가에 닿았다. 바다로 길게 뻗어 나간 꼬챙이 모양의 모래톱이 보였다. 이 세상에서 이런 모랫길로는 가장 길다고 했다. 그 끝에 세워진 등대까지 가려면 왕복 16km를 걸어야 한다고 해서 2km쯤 모래를 걷다가 미련없이 돌아섰다. 야생동물 보호구역이라 했지만 우리 눈에 띈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포트 타운센드(Port Townsend)에서 페리를 기다렸다. 인구 9,000명의 작은 도시였지만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도시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작은 보트들이 돛을 세운 채 바다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여기서 위드비 섬(Whidbey Island)의 쿠프빌(Coupeville)까지 가는 페리에 올랐다. 저녁 식사는 쿠프빌에 있는 크리스토퍼스(Christopher’s)라는 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온라인 검색에서 평점이 가장 좋았다. 우린 예약을 하지 않았다고 문 앞에서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옆 테이블에 앉은 노부부는 이 식당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마운트 버논(Mt. Vernon)에서 1시간 이상 운전을 마다 않고 왔다고 했다. 특히 여기서 제공하는 클램 차우더(Clam Chowder)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할머니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그 덕에 우리도 수프를 시켰는데 맛이 아주 훌륭했다. 메인으론 집사람은 연어를, 나는 파스타를 시켰는데 그것도 합격점을 줄만 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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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크하우스 2014.09.23 0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 좋은 하루 되세요.

  2. 설록차 2014.10.09 0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악!? 아침부터 음식 테러를 당했습니다.
    태풍이 지나 간 바닷가 모습처럼 보이는게 '자연 '그대로 두는 거지요?
    여기에도 현기차, 삼성은 알아 줍니다..자동차 스맛폰 만드는 나라..뿌듯하지요..ㅎㅎ

    • 설록차 2014.10.10 0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파스타!!!
      탄수화물 섭취를 줄인다고 풀때기만 잔뜩 먹는데 파스타가 맛있었다 하시니 ㅠㅠ

    • 보리올 2014.10.11 0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슨 음식에 식욕이 동하셨기에 테러란 말을 썼을까 했습니다. 모처럼 맛집 소개에 한 분이 낚이셨네요. 저 식당 그런대로 좋았습니다.

    • 보리올 2014.10.11 0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면류엔 탄수화물이 많으니 좀 적게 드시는 게 좋지요. 저도 지금 중국 정주(郑州)라는 곳에 도착해 호텔에 들었는데 밤 11시가 넘어 배는 출출한데 허기를 참느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3. justin 2014.11.04 1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번째 사진을 얼핏 봤을때 세상에서 가장 큰 버섯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매표소 앞 젊은이는 어떤 생각을 했길래 아버지, 어머니께 그런 배포를 풀 수 있었을까요? 참 궁금합니다.

    • 보리올 2014.11.04 1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멀리 외국에서 온듯한 동양인 커플이 현금 10불이 없어서 돌아서는 것을 보면 너도 선뜻 입장료를 내주겠다 하지 않을까?

  4. 2015.09.10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 가을에 미국 서북부쪽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요. 시애틀에서 이곳 올림픽공원으로 여행갈 때 대중교통은 어려울까요? 보니까 버스는 안 보이고 죄다 자가용들이군요

    • 보리올 2015.09.11 2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중교통을 이용해 올림픽 국립공원 구석구석을 둘러보시기엔 어려움이 많을 겁니다. 제가 지금 캐나다 로키 산 속에 있어 검색에 어려움이 많지만 한번 방법이 있는지 찾아 보겠습니다.

    • 보리올 2015.09.14 0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올림픽 반도의 큰 도시를 연결하는 Olympic Bus Line, 올림픽 반도 북쪽을 연결하는 Clallam Bus LIne이 있습니다만 이 모두 도시나 마을간 연결이라 국립공원을 둘러보기엔 적합치 않아 보입니다. 미국에는 저렴한 렌트카가 의외로 많으니 직접 운전을 해서 둘러보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합니다. 이 문제는 제가 더 이상 도움을 드리지 못할 것 같네요.

    • 2015.09.14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검색한 결과 허리케인릿지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있음은 확인하였는데 듣자하니 요즘 시애틀 날씨가 우기에 가까워서 하이킹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이렇듯 도움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 보리올 2015.09.14 16: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기까지 오셔서 허리케인 리지만 보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얼마 전까지 맑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었는데 최근 들어 폭풍도 오고 비가 꽤 내렸습니다. 날씨 잘 잡으셔서 즐거운 여행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어떤 품목에 대한 시장 조사를 하기 위해 아들과 둘이서 당일로 벨링햄을 다녀왔다. 여행이라 하기엔 좀 어색하지만 그래도 아들과 둘이 떠난 길이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벨링햄은 밴쿠버에서 시애틀(Seattle)로 가다가 국경을 건너 가장 먼저 만나는 도시다. 시애틀까지는 벨링햄에서 90 마일을 더 달려야 한다. 인구는 82,000명으로 대도시에 속하진 않지만 꽤 큰 도시다. 동쪽으로는 베이커 산(Mt. Baker), 그리고 서쪽으론 태평양에 속하는 벨링햄 베이(Bellingham Bay)가 자리잡고 있어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장이라 할만했다.

 

벨링햄은 캐나다와 미국 국경에 가깝다 보니 국경도시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국경 근처에 사는 캐나다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주유를 하거나 생필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이야기다. 특히 캐나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경우에는 벨링햄 쇼핑몰을 헤집고 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캐나다에서 건너온 사람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 벨링햄 지역 경제에 캐나다 사람들의 지갑이 큰 기여를 하는 것 같았다. 나도 벨링햄을 처음 간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인가 들른 적이 있었지만 너무 가까운 곳이라 여행을 왔다는 생각이 없어 사진조차 찍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카메라를 챙겨 갔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는 다운타운은 그다지 볼 것이 없었다. 도심에 있는 가게나 부티크, 갤러리 등은 나름 고풍스런 느낌을 주었지만 그리 특별나지는 않았다. 벨링햄 사람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웬만한 도시라면 이 정도의 고풍스러움은 갖추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도시의 역사는 깊은 편이다. 영국 해군의 조지 밴쿠버(George Vancouver) 선장이 1792년 이 지역을 탐사하면서 윌리엄 벨링햄 경(Sir William Bellingham)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명명했다고 하니 이 정도면 미국에선 결코 짧은 역사는 아니지 싶다.

 

 

 

 

 

챔피언 스트리트에 있는 마운트 베이커리 카페(Mount Bakery Cafe)를 찾아갔다. 베이커 산을 좋아하는 나에겐 너무나 친근한 상호라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그리 바쁜 일도 없기에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아들과 이야기나 할까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빵이 맛있다고 소문난 곳이라 이름값을 하는 듯 했다. 각종 여행 안내책자에 꽤나 많이 소개가 된 곳이었다. 하지만 손님들 대부분은 외지인이라기보다는 브런치를 즐기러 나온 로컬 사람들 같았다. 대기석에 앉아 자리나기를 기다리다가 우리가 지레 지쳐 커피와 마리온베리 스콘(Marionberry Scone)을 사들곤 차에서 분위기없이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소개해주겠다는 식당이 있어 점심은 파스타를 먹으러 갔다. 녀석은 언제 이곳을 다녀갔는지 벨링햄 지리나 맛집도 훤히 꿰차고 있었다. 다나스 카페 이탈리아노(D’Anna’s Café Italiano)라 불리는 이곳은 벨링햄에선 꽤 유명한 파스타 식당이란다. 식당 주인인 다나 패밀리는 원래 시애틀에서 파스타 면을 만들어 식당에 공급하다가 1990년대 초 벨링햄에 파스타 식당을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35개 좌석만 가지고 하다가 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몰리자, 지금은 확장 공사를 거쳐 99석을 가진 식당이 되었다. 난 간단한 알리오 올리오(Aglio e Olio)를 시켰다. 올리브 오일에 마늘과 호두를 가미한 소스와 스파게티 면을 요리해서 나온 파스타의 맛이 깔끔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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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4.04.29 04: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만에 나름 해외(?)로 남자들끼리 갔다온 유쾌한 여행이었습니다. 제가 아주 익숙하게 아버지를 모시고 벨링햄 여기저기 갔다온 것도 신났습니다. 나중에 또 필요하시면 가이드로 써주세요 ~

    • 보리올 2014.04.29 0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가이드 덕분에 벨링햄은 아주 편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왔지. 다른 곳도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에 안내해 주려무나. 난 아들과 간다면 어느 곳이나 대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