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에 고히 모셔둔 마지막 신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모처럼 먹은 매운맛에 코에 땀이 났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일출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여명이 제법 아름다웠다. 비만 그쳐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말이다. 길을 가다가 땅에 떨어진 사과 몇 알을 주웠다. 이따가 간식으로 먹자고 배낭에 넣었다. 뉴욕 주에서 왔다는 60대 중반의 케빈과 함께 걸었다. 얼굴은 본 적이 있지만 오늘에서야 통성명을 했다. 뉴욕 주에서 낙농업 NGO로 활동하다가 얼마 전 은퇴를 했단다. 그는 돌로 지은 이 지역 주택이나 돌담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케빈과 함께 카사 수사나(Casa Susana)에서 커피를 한잔 했다. 수사나는 호주에서 온 수잔나의 스페인 이름이었는데, 이 집을 빌려 도네이션제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실내도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축사가 집안에 있는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포르토마린(Portomarin)으로 들어섰다. 1960년대 미뇨(Mino) 강에 댐이 건설되면서 옛 도시가 물에 잠기자 역사가 어린 건물들을 현재의 위치로 옯겼다고 한다. 성채처럼 생긴 산 후안(San Juan) 성당이 대표적인 경우다. 미뇨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 시내로 향했다. 마을을 들르지 않고 왼쪽으로 빠져도 되지만 수잔나가 알려준대로 시내를 돌아보고 싶었다. 산 페드로(San Pedro) 성당에서 시작해 중심가를 따라 시내 구경에 나섰다. 산 후안 성당이 단연 돋보였지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성당 앞에 있는 광장엔 시청사와 순례자상이 세워져 있었다. 중앙로를 따라 상가가 마주보고 있는데 1층은 회랑으로 되어 있어 걷기에 편했다. 회랑 끝에 Km 88이란 바가 있어 여기서부터 산티아고까지 88km 남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남은 거리는 88km가 아니라 9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포르토마린을 벗어난 오솔길에서 체코에서 왔다는 루시를 만났다. 배낭이 엄청 커서 무게가 얼마나 되냐 물었더니 15kg은 될 것이라 했다. 이 아가씬 길가에서 자라는 버섯에 대해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 이것저것 가르키며 이 모두가 식용 버섯인데 여기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했다. 이름도 모른 채 마을 몇 개를 지나쳤다. 풍경이 그만그만 해서 별 미련은 없었다. 소똥 냄새는 여전했지만 날씨가 점점 맑아져 기분은 절로 좋아졌다. 겨우 비 하나 그쳤다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사람 참 간사하다. 그 즐거움을 방해하는 일이 일어났다. 탁 트인 순례길에서 한 젊은 남녀가 길에 누워 포옹을 한 채로 열렬히 키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명색이 순례길인데 대낮부터 이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라 하진 못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마지 못해 떨어진다. 발걸음을 빨리 해서 현장을 벗어났다.

 

곤싸르(Gonzar)에서 빵과 아침에 주운 사과로 점심을 먹었다. 먹는 것에 비해 열량 소모가 많은 때문인지 뱃살이 홀쭉해졌다. 이제부터 관리를 잘 해야할텐데 말이다. 오스피탈 다 크루쓰(Hospital da Cruz)로 들어서기 전에 아스팔트에 쭈구리고 앉아 송충이를 지켜보던 제이미를 만났다. 처음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라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나중에 K77 표지석이 있는 지점에서 다시 만나 통성명을 하곤 아까 아스팔트에서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았다. 아스팔트를 지나는 송충이가 행여 지나가는 차량에 깔릴까 걱정이 되어 나뭇잎을 이용해 숲으로 유도하는 중이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그 아가씨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참으로 마음씨 착한 아가씨였다. 유타 주에서 왔다는 그녀는 평소에도 나비와 곤충을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리곤데(Ligonde)를 지나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까진 꽤 멀게 느껴졌다. 팔라스 데 레이는 왕의 궁전이란 의미라던데, 여기가 예전에 어떤 왕국의 수도였던 모양이었다. 팔라스 데 레이는 인구 4,200명을 가진 제법 큰 도시였다.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최신식으로 깨끗하게 꾸민 공립 알베르게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이 없었다. 그 큰 시설을 나를 포함해 모두 5명이 썼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심까진 1km를 더 가야 했고 도심에도 알베르게가 여러 개 있었다. 부식을 사러 도심으로 가는데 일몰이 시작되었다. 도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석양을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혼자서 부엌을 독차지하곤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단백질을 보충한답시고 고등어 통조림과 소시지를 고추장에 찍어 와인과 함께 먹으니 그 조합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페레이로스에서 아스팔트 길로 내려서면 만나는 산타 마리아 성당은 공동묘지를 끼고 있었다.

 

이름도 모른 채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찻길에 세워진 버스 정류장이 좀 낯설게 다가왔다.

 

 

돌로 지어진 주택들이 많았다. 둥글게 휘어도는 담장 처리도 뛰어났다.

 

회색 돌집에 빨간 대문을 달아 눈길을 끌었다. 그 옆에 화분을 놓아 구색을 맞춘 것도 보기 좋았다.

 

 

 

카사 수사나에서 커피 한잔 마셨다. 카페 주인인 수잔나가 집안도 구경시켜 주었다.

 

 

미뇨 강을 건너 포르토마린으로 들어섰다.

 

포르토마린의 산 페드로(San Pedro) 성당엔 특이하게도 스페인 국기가 걸려 있었다.

 

산 페드로 성당 앞에 조성된 작은 공원에 무슨 까닭인지 커다란 증류기가 세워져 있었다.

 

댐 공사로 수몰된 옛 마을에서 하나하나씩 해체해 현위치에 다시 조립한 산 후안 성당

 

 

포르토마린을 가로지르는 중앙로를 따라 형성된 상가와 주택

 

아스팔트에 10여 분을 쭈그리고 앉아 송충이를 다시 숲으로 되돌려보낸 제이미

 

벤타스 데 나론(Ventas de Naron) 마을에서 본 자판기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의 루트가 표시되어 있었다.

 

벤타스 데 나론의 막달레나(Magdalena) 예배당.

템플 기사단이 순례자를 위해 지은 병원이 19세기에 무너지자, 그 돌로 예배당을 지었다고 한다.

 

 

리곤데 마을. 건물 외벽을 장식한 절묘한 감각에 절로 감탄이 나왔고, 둥근 형태로 돌을 쌓고

그 위에 석판을 얹은 구조도 눈길을 끌었다.

 

나이 지긋한 여자 한 명과 여자아이 둘이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도 순례에 나선 것일까?

 

소들이 풀을 뜯기 위해 들판으로 나가고 있다.

 

 

아이레쎄(Airexe)와 아 칼싸다(A Calzada)에 있는 성당들은 모두 공동묘지 옆에 세워져 있었다.

 

 

팔라스 데 레이의 산 티르소(San Tirso) 성당. 마침 미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팔라스 데 레이 도심에 있는 수퍼마켓을 가다가 맞은 석양에 가슴이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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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3.21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이미의 생명을 소중히하는 자세를 본받아야겠습니다. 모기와 샌드플라이는 아직...

  2. 2019.09.23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빵에다 피넛버터를 듬뿍 발라 아침으로 먹었다. 에너지를 축적한다 생각하고 와인 남은 것도 마저 비웠다. 이 마을에서 하루를 묵은 한국인이 꽤 많아 보였는데 이 알베르게엔 한 명도 투숙하지 않았다. 부엌과 와이파이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가랑비를 맞으며 알베르게를 나섰다. 비록 양은 많지 않다 해도 벌써 며칠째 비를 맞으며 걷는다. 어려움을 묵묵히 참아내는 것이 순례자의 태도라 하겠지만 며칠 동안 계속해서 비를 맞으니 기분이 그리 유쾌하진 않다. 갈리시아의 속담에 비를 대비하고 햇살을 원하면 기도하라란 말이 있다는데, 도대체 얼마나 기도를 해야 비가 그칠까 모르겠다. 이러다가 우중충한 날씨가 갈리시아의 첫 인상으로 각인될 것 같았다. 가끔 비가 그치긴 했지만 변덕이 너무 심해 우의를 벗을 수가 없었다.

 

트리아카스텔라 마을 끝에서 길이 갈렸다. 산 씰(San Xil)로 가는 오른쪽 길을 택했다. 사모스(Samos)로 가는 것보다 경치는 별로지만 거리가 짧다고 했다. 비오는 날씨라 앞뒤 생각없이 거리가 짧은 쪽을 택한 것이다. 구름이 많아 갈리시아 지방 특유의 구릉지대를 자세히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었다. 가파른 오르막 길을 걸어 산 씰에 도착했더니 잠시 비가 그치며 햇살이 내리쬐었다. 하지만 10여 분 뒤엔 다시 구름이 하늘을 가리더니 또 다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낙엽이 잔뜩 떨어진 오솔길을 꾸준히 걸었다. 산길 자체는 꽤 정감이 갔다. 천천히 오르막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을 앞질러 가다가 프로미스타에서 헤어진 미국 자매를 다시 만났다. 내 앞에 선 것을 보니 일부 구간을 차로 건너뛴 모양이었다. 간단히 인사만 건네고 앞으로 나섰다.

 

조그만 마을을 여러 개 지났다. 마을 이름을 적어 놓은 곳도 없어 어디를 지나는지도 모른채 그냥 걸었다. 500m 간격으로 세워진 표지판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가옥들 지붕이 좀 특이하게 생겼다. 전에도 몇 차례 보기는 했지만 여긴 지붕을 모두 커다란 석판을 이용해 집을 지은 것이다. 이렇게 얇으면서도 커다란 석판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 나라 너와집과 비슷하단 느낌이 들었다. 갈리시아로 들어와 느낀 것 가운데 하나는 길에 유난히 소똥이 많다는 것이었다. 마을마다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축사를 지날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소똥 냄새가 진동을 했다. 입고 있는 옷에서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에겐 소똥 냄새가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겠지만 그것도 너무 오래 맡으니 코가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소똥 냄새가 또 하나의 갈리시아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싶었다.

 

사리아(Sarria)로 들어섰다. 꽤 도시가 컸다. 고층 아파트도 보였다. 강을 건너 오르막 길로 들어서니 구시가 분위기가 풍겼고 알베르게도 거의 다 여기 모여 있었다. 그 숫자를 볼 때 순례자들이 이 지역 경제에 상당한 몫을 차지하는 것이 분명했다. 성당도 여기에 많았다. 산타 마리아 성당 벤치에서 빵으로 점심을 때웠다.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를 오다가 몇 개 주웠는데 맛은 시큼했으나 그래도 후식으로 먹었다. 사리아를 빠져 나오다 수도원을 만났다. 문이 닫혀 있어 외관만 살펴보고 있는데 할로윈 복장을 한 아이들이 수 십명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무슨 행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모레가 할로윈이다. 오늘이 몇 일인지도 모른 채 줄곧 걷기만 했는데 벌써 10월 말이 되었다.

 

머리 위로 고가도로가 지나가고 그 아래론 철도가 지난다. 이렇게 건널목을 이용해 철로를 건너가는 것은 순례길에서 처음이 아닌가 싶었다. 이름 모를 마을 몇 개를 또 지났다. 마을 규모도 굉장히 작았다. 어떤 마을은 집이 한 채에 불과한데도 별도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페레이로스(Ferreiros)에 도착하기 직전에 K100 표지판을 보았다. 산티아고가 100km 남았다는 표시라 배낭을 내려놓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제 앞으로 3일만 더 걸으면 산티아고에 도착할 것이다. 페레이로스 알베르게에 들었다. 크진 않았지만 깨끗하고 부엌도 갖춰 놓았다. 육개장 수프에 파스타를 끓여 먹었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 밖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와인 한잔 시켜놓고 시간을 보냈다. 다른 날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산 씰을 지날 때 잠시 비가 그치고 햇살이 나타났다.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오면서 가옥의 지붕이 검정색 석판으로 바뀌었다.

 

야곱을 다시 만난 어느 마을의 매장엔 파는 물품이 몇 가지 되지 않았다.

 

길가에서 발견한 순례길 이정표. 저 아래 문양은 무슨 의미인지 도통 모르겠다.

 

푸렐라(Furela) 마을에서 소를 몰고가는 목동을 만났다.

 

 

사모스에서 오는 길과 합류하는 아기아다(Aguiada) 마을, 조그만 성당이 문을 열어 놓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리아는 강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현대식 건물이 많았고 강 건너엔 구시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사리아에서 만난 산타 마리아 성당과 산 살바도르 성당. 둘다 문은 닫혀 있었다.

 

길가에 벽을 파서 순례자상을 세워 놓았는데 왜 철창으로 보호해 놓았는지 모르겠다.

 

언덕 위에 오르니 사리아 마을 뒤로 펼쳐진 산도 눈에 들어왔다.

 

 

 

 

콘벤토 데 라 막달레나(Convento de la Magdalena) 수도원. 할로윈 복장을 한 어린이들이 몰려왔다.

 

 

개울을 건너는 돌다리도, 낙엽이 깔린 오솔길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

 

 

빌레이(Vilei) 마을. 소떼가 초지로 이동하고 있었고, 묘하게 생긴 담장 장식도 만났다.

 

 

갈리시아의 전형적인 시골 마을 모습. 밭에는 채소가 사람 키 크기로 자랐다.

 

집집마다 옥수수를 저장하는 창고를 하나씩 세워놓아 눈길을 끌었다.

 

모르가데(Morgade)를 지나니 길가에 작은 성당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바닥도 울퉁불퉁하고 벽에는 낙서도 많았다.

 

산티아고까지 100km 남았다는 표지석을 보고는 페레이로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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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5.12.16 2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젖소가 홀스타인이네요
    기후가 따뜻한가 봅니다
    즐기시며 걸으세요

    • 보리올 2015.12.17 02: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하얀색과 검정색이 고루 섞인 소가 홀스타인이죠?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럼 그 아래 사진에 있는 누런 소는 고기를 목적으로 키우는 소인가요?

    • 농돌이 2015.12.17 09: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기를 목적으로 키우는 육용소로 보입니다
      브라만인듯 합니다 덩치가 크고 좀 싸납습니다
      뿔이 동물복지로 제각을 안했네요
      소들도 뿔을 자르거나 거세를 하면 조용해집니다 ㅋㅋㅋ
      내시?

    • 보리올 2015.12.17 15: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에 대해 해박하시네요. 제가 중학교 때 시골에서 농업을 배웠는데 지금까지 기억에 남은 것은 돼지의 임신기간뿐입니다. 앞으로 한수 가르쳐 주십시요.

    • 농돌이 2015.12.17 18: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상경을 공부했는데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모두 축산쪽 입니다
      혹시 걸으시다가 치즈(젖소, 염소,양) 만드는 농가, 소세지만드는 곳
      생햄 만드는 곳 들리시면 사진 부탁해요
      관심이 있어서 지난달에 유럽 잠시 다녀왔습니다
      한국 농촌에 희망이 되는 일이 있어야 하기에 그냥 찿아봅니다

    • 보리올 2015.12.18 0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취지가 너무 좋네요. 치즈 등을 만드는 생활 현장을 촬영하는 것 자체는 좋아합니다만 아쉽게도 그런 사진이 없네요. 예전에 네팔에서 야크 치즈 만드는 현장을 보기는 했지만 사진은 없습니다. 앞으로 염두에 두죠.

    • 농돌이 2015.12.18 0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스페인은 하몽과 탄산들어간 포도주
      치즈가 유명합니다
      참고하셔요 전 삼실 가족들과 전주
      한옥마을 대둔산에 팀빌딩 갑니다
      계속되는 일정이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 보리올 2015.12.18 0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알겠습니다. 하몽은 샌드위치에 넣어 많이 먹었습니다. 유명한 치즈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먹어보진 않았고, 탄산 들어간 와인은 금시초문이군요. 동료들과 팀빌딩 가신다고요?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2. Justin 2016.03.17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할로윈을 미국, 캐나다에서만 하는 줄 알았는데 유럽에서도 하나보죠? 아니면 원래 유럽에서 넘어왔나봐요? 아이들이 귀엽습니다~

    • 보리올 2016.03.17 16: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할로윈은 원래 유럽에서 건너온 전통인데 미국 덕분에 널리 퍼지게 되었지. 유럽 켈트 족이 오래 전부터 행하던 축제거든.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이 행사를 보전해 오다가 감자 기근으로 미국 행을 택한 사람들이 많아 미국에서 널리 퍼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