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 렌프류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편이라 그 다음 날로 예약이 되어 있었다. 식량이 여유가 있었더라면 트레일에서 하루 더 머무르고 아침 일찍 나오는 것인데 하는 후회도 들었다. 기왕 트레일을 빠져 나왔으니 뱀필드(Bamfield)에서 하루 묵을 수밖에 없었다. 인구 150명이 살고 있는 뱀필드는 내륙으로 들어온 바다, 뱀필드 인렛(Bamfield Inlet)에 의해 마을이 두 군데로 나뉘어져 있다. 두 마을을 연결하는 도로가 없어 바다를 건너려면 워터 택시를 불러야 한다. 뱀필드는 원래 후아이아트(Huu-Ay-Aht) 부족이 살던 곳이다. 이들의 역사까지 포함하면 10,0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한때는 트랜스 퍼시픽 텔레그래픽 케이블의 서쪽 끝단이었는데, 현재는 그 자리에 뱀필드 해양 과학 센터((Bamfield Marine Sciences Centre)가 들어서 있다.

 

인포 센터에서 뱀필드까지 5km 가까운 거리를 걸어가기로 했다. 한 주민이 콜택시 영업을 한다고 들었지만 부르지 않았다. 우리에겐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을 걸은 튼튼한 두 다리가 있지 않은가. 아스팔트를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트럭 한 대가 우리 옆에 서더니 원주민 얼굴을 가진 젊은이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는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을 걸었냐고 묻는다. 그렇다 했더니 갑자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축하 인사를 건넨다. 이 지역 원주민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한 축하 인사를 받은 것이다. 화물칸에 타라고 손짓을 해서 기꺼운 마음으로 그 친구의 화물이 되어 주었다. 뱀필드 마켓 앞에서 내렸다. 워낙 작은 마을이다 보니 우리 외에는 사람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가끔 눈에 띄는 사람은 주민보다는 하이커나 뱀필드 해양 과학 센터를 찾는 학생들이었다.

 

뱀필드 센테니얼 파크에 먼저 텐트를 치곤 뱀필드 구경에 나섰다. 바다 외에는 사실 볼거리가 없었다. 포트 알버니(Port Alberni) 행 페리가 들어오는 선착장엔 소형 어선 몇 척이 정박하고 있을 뿐, 선착장 전체가 정적에 쌓여 있었다. 어떤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 발길을 돌려 캠핑장을 지나 포장도로 끝까지 갔더니 역시 바다가 나온다. 여기도 사람을 찾을 수는 없었다. 호수같이 잔잔한 수면에 비치는 풍경을 감상하는 게 전부였다. 뱀필드 해양 과학 센터에도 잠시 들렀다. 여기도 볼거리는 많지 않았다. 해양 과학 센터는 캐나다 서부에 있는 다섯 개 대학과 연계한 일종의 해양 캠퍼스였다. 센터 안에서 학생들이 몇 명 눈에 띄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커피나 한잔 하려고 구내 식당으로 들어갔더니 우리에게도 공짜로 커피와 스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이 작은 친절에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

 

 

원주민 청년의 호의로 트럭 화물칸에 올라 뱀필드 마을로 갈 수 있었다. 성격이 무척 밝고 유쾌한 친구였다.

 

 

하룻밤 야영을 한 센테니얼 파크는 화장실과 샤워시설을 갖춘 유료 캠핑장이다.

 

포트 알버니 가는 페리가 들어오는 뱀필드 선착장은 한 마디로 적막강산이었다.

 

 

센테니얼 파크를 지나 포장도로 끝에 있는 바닷가. 고요한 수면 위에 비친 주택과 숲의 반영이 예뻤다.

 

 

 

뱀필드의 유일한 식당인 타이즈 앤 트레일스 카페(Tides & Trails Cafe)에서 햄버거로 저녁을 먹었다.

 

 

 

 

아침 여유 시간을 이용해 뱀필드 해양 과학 센터를 방문했다. 1972년 문을 연 이 센터는 해양 생물에 대한 연구 조사를 하는

 비영리기관이며, 캐나다 서부 다섯 개 대학의 해양 캠퍼스이기도 하다.

 

과학 센터에서 바다 건너 뱀필드 서쪽 지역을 바라다 보았다. 빨간 칠을 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킹피셔 마리나(Kingfisher Marina)에는 수상 비행기 한 대가 계류 중이었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에게 교통편을 제공하는 셔틀버스가 4시간을 달려 출발점인 고든 리버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한 사람에 운임으로 90불을 받았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7.03.07 1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몸소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해양 과학 센터가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정을 다 마쳐서인지 몸이 노곤했지만 저때는 마음 편하게 아버지와 여기저기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색다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2. 지애 2017.04.14 0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최신글에 올려야겠기에 다시 올립니다.
    6일 일정 잡고 있는데요~
    일정 계획을 어찌 잡으면 될까요?
    베낭을 최소화한다면 무게가 얼마나 될련지...물론 짐을 꾸리기 나름이겠지만.

    • 보리올 2017.04.18 14: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5박 6일 일정이면 무난한 겁니다. 배낭 무게는 전적으로 어떤 장비를 가져가고 음식을 어찌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15kg 이내로 짐을 쌀 방안을 강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배낭이 무거우면 하이킹 자체가 고역일 수도 있거든요.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의 마지막 구간을 걷는 날이 밝았다. 달링 리버를 출발해 뱀필드에 있는 파체나 베이(Pachena Bay)까지 걷는다. 거리는 14km5~6시간 걸린다 들었다. 어제 느꼈던 시원섭섭함이 오늘은 조금씩 섭섭함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빨리 나갈 필요가 없는데 우리가 너무 서두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식량도 동이 나고 포트 렌프류로 돌아가는 버스편도 이미 예약을 해놓은 상황이라 예정대로 나가기로 했다. 그 대신 출발 시각을 좀 늦췄다. 해가 떠오르는 시각부터 카메라를 들고 해변을 쏘다녔다.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싱그러웠다. 바다에서 떠밀려온 다시마 줄기에도 부드러운 빛이 내려앉았다. 공처럼 생긴 모양새에 머리카락 같은 뿌리가 달려있어 신기하단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 캠핑한 젊은이들이 아침 일찍부터 바닷가에 간이 의자를 놓고는 거기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긴다. 이 친구들 여유를 부리는 모습은 늘 우리보다 한 수 앞선다. 제대로 자연을 즐길 줄 아는 것 같아 부럽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트레일 상태는 좋았지만 오르내림은 제법 심했다. 달링 리버에서 미시간 크릭(Michigan Creek)까진 해안길을, 미시간 크릭부터 파체나 베이까지는 숲길을 걸었다. 11km 지점에 자리잡은 파체나 포인트 등대에도 잠시 들렀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등대에 거푸집을 설치해 놓았다. 부속 건물 옆에는 몇몇 도시 이름과 거리를 표시하는 화살표가 붙어 있었다. 등대에서부터 트레일은 거의 오솔길 수준이었다. 과거에 등대로 물자를 실어 나르던 길이었다. 오르락내리락 숲길을 꾸준히 걸었다. 바다를 굽어보는 조망도 없어 시간을 지체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파체나 포인트를 조금 지나 바다로 나가는 사이드 트레일이 나왔는데,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바다사자들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주저 없이 그 트레일로 들어섰다. 꽤 많은 바다사자가 무리를 지어 바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끔 덩치 큰 녀석이 무리에서 나온 한두 마리와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다른 녀석들은 싸움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블랙 리버(Black River)를 지나고 8km를 더 걸어 뱀필드 파체나 베이에 있는 국립공원 인포 센터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 출발점에서 받은 퍼밋을 반납했다. 이는 우리가 무사히 트레일을 벗어난다는 일종의 신고였다. 이제 공식적으로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 하이킹을 모두 마친 것이다. 인포 센터에 근무하는 직원으로부터 축하 인사도 받았다. 하이킹 첫날의 고단함과 하루 종일 비를 맞았던 날의 축축함도 이제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원래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은 다른 트레일에 비해 어려움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런 난관을 모두 이겨냈다는 성취감으로 가슴이 벅찼다. 거기에 이런 멋진 곳을 아들과 단둘이 걸었다는 점 또한 평생 잊지 못할 귀중한 추억이 되리라 본다.

 

모처럼 아침 시간을 여유롭게 보냈다.

일출 시각에 맞춰 밖으로 나가 해변을 거닐었는데 일출 자체는 그리 극적이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간이 의자를 가지고 바닷가에 모여 앉아 여유를 부리는 젊은이들이 내심 부러웠다.

 

 

해변으로 밀려온 다시마 줄기가 눈에 띄었다. 뿌리가 마치 머리처럼 보였다.

 

텐트 정리를 마치고 달링 리버를 출발하며 해변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를 찍어 보았다.

 

 

처음엔 해변을 따라 걸었다. 등산화를 벗고 물을 건너야 했고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도 지났다.

 

달링 리버의 캠핑장을 피해 따로 호젓하게 텐트를 친 사람들도 있었다.

 

 

파체나 포인트에 있는 등대에 들렀다. 화살표로 몇몇 나라의 거리와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이드 트레일로 들어서 바다사자가 서식하는 곳을 방문했다. 무리를 지어 시끄럽게 울어대는 소리가 제법 우렁찼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의 마지막은 숲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트레일에 오토바이 한 대가 버려져 있는 현장도 지났다.

 

트레일 종료 지점에 도착했다. 뭔가 그럴 듯한 기념비라도 세울 법한데 눈을 씻고 찾아도 그런 건 없었다.

 

 

 

뱀필드 파체나 베이에 있는 퍼시픽 림 국립공원의 인포 센터. 여기에 퍼밋을 반납해야 공식적인 일정이 끝난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7.03.03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이 벅찹니다.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저도 아버지와 WCT 를 함께 해서 정말 좋았고 평생 잊지 못 할 추억이 될겁니다. 고맙습니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은 양방향으로 운행이 가능하다. 이곳 포트 렌프류를 출발해 북상해도 되고, 반대로 북쪽 기점인 뱀필드(Bamfield)에서 남으로 걸어도 된다. 양쪽 기점에서 하루에 30명씩 들여 보낸다. 일종의 쿼터 시스템인 것이다. 포트 렌프류에서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로 드는 날이 하필이면 내 생일이었다. 바깥으로 떠돌며 생일을 맞는 경우가 많아 그리 서글프진 않았다. 남은 밥을 삶아 아침을 해결하고 인스턴트 커피로 건배하며 생일을 자축했다. 보트를 타고 고든(Gordon) 강을 건너 트레일 입구에 섰다. 퍼시픽 림 국립공원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 앞에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우리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큰 배낭을 멘 사진작가가 씩씩하게 먼저 출발한다. 2주 동안 트레일에 머물며 사진 작업을 한다고 했다.

 

우리도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배낭 무게가 어깨를 누른다. 얼마 가지 않아 75km 지점을 알리는 거리 표식이 나왔다. 처음부터 꽤 긴 오르막이 시작되었고 사다리 몇 개도 오르내렸다. 반대편에서 오는 하이커 세 명을 만났다. 우리는 이제 시작이지만, 그들은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을 끝내는 날이다. 40대 아들이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를 모시고 왔다. 나이를 묻다가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것을 말하게 되었고, 갑자기 그들이 생일 축가를 불러주는 것이 아닌가. 순간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72km 지점을 지나자, 길 옆에 놓인 동키 엔진이 보였다. 무슨 용도로 쓰였길래 숲 속에 버려진 것일까. 오래 전에 통신 케이블 포설작업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 잔재가 아닐까 싶었다. 5km 걸으니 스레셔 코브(Thrasher Cove)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서 첫날 야영을 하라고 권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우린 8km를 더 걸어 캠퍼 베이(Camper Bay)로 가기로 했다.

 

오웬 포인트(Owen Point)를 경유하는 해안길은 만조 시간이라 포기하고 그냥 숲길을 걸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나타나 눈은 즐거웠지만, 며칠 간 내린 비 때문에 길은 무척 미끄러웠다. 물웅덩이에 진흙탕, 나무 뿌리, 외나무다리, 보드워크 등이 포진해 있어 방심을 하면 순간적으로 엉덩방아를 찧을 가능성이 높았다. 발걸음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했다. 진행 속도가 무척 더뎠다. 어떤 구간은 1km를 가는데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입에서 절로 욕이 튀어나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참고 견디는 수밖에. 이처럼 오르내림이 심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곳은 사실 이 구간을 포함해 남쪽 22km에 집중되어 있다. 그 이야긴 초반 이틀은 힘이 들겠지만 날이 갈수록 짐도 가벼워지고 트레일도 순해진다는 의미다. 여기를 다시 걷지 않는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위로하며 발걸음에 힘을 냈다.

 

66km 지점 표식을 지나서 바다로 내려섰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바위에서 잠시 쉬었다. 반대편에서 바닷가를 따라 내려오는 두 팀이 보였다. 우리도 얼마간 해안을 걸었다. 다시 숲길로 올라와 캠퍼 베이까지 내처 걸었다. 케이블 카를 손으로 당겨 캠퍼 크릭(Camper Creek)을 건너자 바로 캠프 사이트가 나왔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한 팀이 쉬고 있었다. 부목 사이의 모래 위에 텐트를 쳤다. 개울물로 대충 씻고 저녁을 준비하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도착해 우리 옆에다 텐트를 친다. 무척이나 지친 기색이었다. 한국말로 대화를 하기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둘은 부자지간으로 빅토리아(Victoria)에 산다고 했다. 내 말에 그리 반가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많아 뻘쭘하게 뒤로 물러섰다. 어둠이 내려앉는 해변을 걷곤 텐트에 누워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포트 렌프류의 퍼시픽 림 국립공원 인포 센터에서 보트를 타고 고든 강을 건넜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의 남쪽 기점을 알리는 퍼시픽 림 국립공원 표지판이 고든 강가에 세워져 있었다.

 

 

반대편에서 오는 두 팀을 만났다. 생일 축가를 불러준 팀은 뒤에 오던 팀이었다.

 

밴쿠버 섬의 웨스트 코스트, 즉 서해안은 온대우림이 널리 분포된 지역으로 유명하다.

 

 

숲길은 오르막이 길고 까다로운 구간이 많아 시간도 무척 많이 걸렸다.

 

 

 

숲길을 벗어나 해안으로 나오니 시야가 탁 트였다. 바다 건너 미국 워싱턴 주의 올림픽 국립공원이 보였다.

 

 

 

다시 숲길로 들어오니 까다롭고 성가신 구간이 우릴 반긴다. 넘어지지 않으려는 우리의 노력에 진행 속도는 자연 느려졌다.

 

 

사다리를 몇 개나 오르내리고 케이블 카를 손으로 끌어 캠퍼 크릭을 건넌 후에야 캠프 사이트에 닿았다.

 

 

고단한 첫날 여정이 끝났다. 캠퍼 베이 캠핑장의 모래 위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7.02.02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첫날부터 엄청난 진흙, 물웅덩이, 사다리, 케이블카, 해변가 돌들 등 너무 생생하고 일상 생활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관문들이었습니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West Coast Trail)로 가기 위해 밴쿠버를 출발해 BC 페리에 올랐다. 스와츠 베이에서 내려 곧장 포트 렌프류(Port Renfrew)까지 차를 몰았다. 9월로 접어든 초가을 날씨라 선선한 느낌마저 들었다. 조그만 어촌 마을인 포트 렌프류는 인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너무 한적해서 적막강산이라고나 할까. 전에 한 번 다녀간 적이 있는 토미스(Tomi’s)란 식당을 찾아갔다. 샌드위치와 커피로 점심을 먹었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이런 문명 세계의 음식을 입에 대지 못 할 것이다. 퍼시픽 림 국립공원(Pacific Rim National Park)의 인포 센터로 가서 퍼밋을 신청했다. 여름철 성수기에는 예약 없이는 들어가기 힘들지만 9월로 접어들면서 신청자가 확연히 줄었다. 30여 분 오리엔테이션을 받고는 다음 날 첫 보트를 타고 트레일로 들어가기로 했다. 모든 일이 예상대로 잘 풀려 다행이었다. 시간이 남아 후안 데 푸카(Juan de Fuca) 공원에 있는 보태니컬 비치로 들어가 바닷가를 좀 거닐었다. 아침에 보트를 타야 하는 선착장 주변에서 하룻밤 야영을 했다. 오랜 만에 아들과 단둘이 떠나는 백패킹이라 가슴이 설레 쉽게 잠을 이루지 못 했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백패킹 트레일이다. 밴쿠버 섬(Vancouver Island)에 있는 이 트레일의 길이는 75km로 그리 길지는 않지만 종종 세계 톱 10 안에 들기도 하고 가끔은 세계 최고 하이킹 트레일로 꼽히기도 한다. 원래는 엄청난 조류에 밀려온 난파선 선원들을 구조하기 위해 만든 생명선이었지만 선박이 대형화되면서 현재는 하이킹 트레일로 바뀌었다. 모험을 즐기는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도전 삼아 많이 찾는다. 5월부터 9월까지만 문을 여는데 하루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어 원하는 날짜에 예약을 하기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5 6일이나 67일 일정에 사용할 식량과 텐트를 메고 가는 일도 고된데, 트레일 자체도 까다롭기 짝이 없다.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수많은 사다리와 줄을 끌어 강을 건너는 케이블 카, 거기에 연간 4,000mm 가까운 강수량을 자랑하는 지역답게 미끄러운 구간이 엄청 많다. 해변을 걷는 경우에도 밀물 때의 조수뿐만 아니라 해조류가 많은 바위 표면도 위험하다. 부상을 입거나 위험에 빠질 요소가 도처에 많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즐기면서 전 구간을 안전하게 마치려면 사전 준비도 철저해야 하지만 때론 위험을 미리 인지하고 회피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도 필요하다.

 

 

 

 

츠와센(Tsawwassen)에서 스와츠 베이(Swartz Bay)로 가는 BC 페리에 올랐다.

구름이 많은 날씨였지만 비가 내리진 않았다.

 

 

 

바닷가에 면해 있는 조그만 마을, 포트 렌프류에 닿았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의 남쪽 기점에 해당한다.

 

 

토미스란 식당에서 샌드위치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당분간은 문명 세계의 음식을 접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퍼시픽 림 국립공원의 인포 센터에서 예약도 없이 즉석에서 퍼밋을 받고 오리엔테이션까지 받았다.

 

 

 

인포 센터를 나왔더니 보트를 타고 트레일 기점으로 향하는 팀이 있었다. 우리는 다음 날 아침 보트로 들어간다.

 

 

 

오후 시간이 남아 후안 데 푸카 공원에 있는 보태니컬 비치를 찾았다.

이 보태니컬 비치는 47km 길이의 후안 데 푸카 마린 트레일의 북쪽 기점이기도 하다.

 

인포 센터와 보트 탑승장 가까이에 원주민 부족이 운영하는 파치다트(Pacheedaht)  캠핑장이 하나 있었다.

 

구름에 가렸던 태양이 일몰 시각이 되자, 하늘을 붉게 물들이곤 작별 인사를 건넸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7.01.24 1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기다리고 기다리던 웨스트코스트 트레일 이야기가 올라왔네요! 옛 기억을 더듬으며 감상에 젖으며 감사히 읽겠습니다!

    • 보리올 2017.01.24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기다리 고기다리'면 더 반갑지 않을까 싶구나. 그때 적은 기록을 찾지 못해 기억을 되살리느라 애 좀 먹고 있다. 하늘이 나에게 준 최고 선물인 아들과 함께 해서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2. 김치앤치즈 2017.01.29 0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보리올님 사진 중 안개가 자욱하게 낀 숲 사진이 정말 듭니다.
    저는 시원한 바다 그림이나 안개가 자욱한 숲 그림을 좋아하기에, 얼마전에 안개가 자욱한 숲 그림을 좀 대형 사이즈로 구매해서 침대 헤드보드 위 벽에 걸어두었지요. 그런데 바로 어젯밤 한참 자고 있는 중에 그 그림이 헤드보드와 벽 사이 틈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남편과 저 둘 다 거의 기절초풍했답니다.^^ 오늘 아침 자세히 들여다보니 벽과 바닥의 경계선인 하얀색 베이스보드의 한가운데가 망가져서 좀 속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부부 둘 다 별탈없이 무사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보리올 2017.01.29 1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큰일날뻔 했네요. 두 분 모두 다치지 않았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안개 낀 숲을 좋아하시는군요. 그런 사진 있으면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

  3. 비버군 2017.03.28 1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기 잘봤습니다!!

    저는 지금 캐나다에서 워킹홀리데이 중인데,

    웨스트코스트트레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행기보니 가슴이 벅차오르네요 ㅎㅎ


    5월 1일~3일 정도에 출발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예약을 하고가는 것이 낫겠죠?!

    그런데 예약을 어디서 해야할지 찾기가 어렵네요 ㅎㅎ

    당장 입장료 가격이 얼마인지도 몰라서,,



    혹시 괜찮으시다면 정보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 ^^


    갑작스레 여쭤봐서 죄송합니다.ㅜㅜ

    • 보리올 2017.03.29 0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5월 초에 가시면 굳이 예약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예약 비용도 따로 받을텐데요. 우리도 9월 하순에 예약 없이 가서 당일 오리엔테이션 받고 다음날 트레일로 들어갔습니다. 입장료라기보단 퍼밋 비용이라 하는데, 한 사람에 페리 2곳 비용 포함해서 백 몇 십 불을 냈던 것 같습니다. 뱀필드에서 포트렌프류까지 셔틀버스도 80불 넘게 준 것 같고요. 예약을 하시려면 www.pc.gc.ca에서 pacific rim national park reserve로 들어가 하면 됩니다. 무사히, 그리고 즐겁게 종주 마치길 빕니다.

  4. 나무와숲 2017.06.07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월 중순에 WCT와 로키산맥트레킹을 할 예정입니다.
    WCT는 른푸르와 뱀필드에선 퍼밋이 마감되어 미드포인트 지점 니티낫에서 출발하는 퍼밋을 받았습니다.
    이곳의 글과 사진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고 있습니다.
    님의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보리올 2017.06.07 17: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무와 숲'이란 닉네임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WCT 여행 계획에 제 블로그가 도움이 되었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고맙단 인사는 오히려 제가 드려야죠. 퍼밋 때문에 전체 구간을 걷지 못 해서 좀 아쉬움이 남겠습니다. 좋은 곳이니 다음에 또 오시란 의미로 해석하시죠. 즐겁게, 그리고 건강하게 WCT를 마치시기 바랍니다.

  5. 나무와숲 2017.06.08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드포인트에서 북쪽 뱀필드로 갔다가 다시 남쪽 른푸르로 이동하는 경로로 7박 8일 정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멀리까지 가선,
    멋진 wct를 모두 다 걸어보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아쉬움이 클 거 같거든요...
    종종 들러서 궁금한 사항들 문의하겠습니다.^^

    • 보리올 2017.06.08 1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니티나트에서 진입해 뱀필드로 올라갔다가 포트 렌프류까지 다시 내려 오실 모양이지요? 그런 방법도 있군요. 무거운 식량 메고 며칠 더 걸으셔야겠습니다. 그래도 절묘한 수입니다.

 

모처럼 해안 트레킹에 나섰다. 밴쿠버 섬의 남서 해안에 걸쳐있는 후안 데 푸카 마린 트레일을 걷기로 한 것이다. 후안 데 푸카 트레일은 남동쪽 기점인 차이나 비치(China Beach)에서 북서쪽의 보태니컬 비치(Botanical Beach)까지 47km 길이를 가진 트레일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West Coast Trail)과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실제 두 트레일은 포트 렌프류(Port Renfrew)를 기점으로 남북으로 갈리고 있으니 가히 이웃사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하면 중간에 탈출로가 없는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에 비해 후안 데 푸카 트레일은 중간에 두 개의 트레일 기점이 있어 진퇴가 다소 쉽다는 것이다. 중간에 위치한 파킨슨 크릭(Parkinson Creek)과 솜브리오 비치(Sombrio Beach)에 자동차 진입로가 있어 이곳을 통해 진입과 탈출이 가능하다.

 

이 트레일을 걷기로 한 것은 우리 일행 중에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 훈련을 하고 있는 노익장 한 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쉬운 코스를 택한다는 의미에서 이 트레일의 전체 구간 중 반을 이틀에 걷기로 했다. 북서쪽 기점인 보태니컬 비치를 출발해 파킨슨 크릭까지 하루에 걷고 다음 날에는 파킨슨 크릭에서 솜브리오 비치까지 걷는다는 계획이었다. 보태니컬 비치 안내판에서 지도를 보며 우리가 걸을 구간을 눈으로 먼저 확인했다. 보태니컬 비치는 바닷물이 담긴 웅덩이가 많아 다양한 해양동물이 서식하는 곳이다. 1900년 미네소타 대학에서 여기에 해양연구소를 세웠는데, 접근로가 생기지 않아 결국 1907년에 폐쇄했다고 한다. 암석투성이의 바닷가는 짙은 안개로 시야가 거의 트이지 않았지만, 해무에 가린 바위와 숲이 오히려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해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보태니컬 루프 트레일을 걸어 나오며 후안 데 푸카 트레일과 처음으로 조우했다.  

 

보태니컬 비치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해안 트레킹을 시작했다. 트레일은 좁고 울퉁불퉁해 발걸음에 각별히 조심해야 했다. 숲길을 걷다가 해안으로 나갈 수 있는 사이드 트레일이 몇 군데 나타났다. 여전히 해무가 자욱해 신기루같은 해안 풍경을 접할 수 있었다. 숲은 우람한 삼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쭉쭉 뻗은 아름드리 나무들의 늘씬한 몸매에 절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쓰러진 나무를 깍아 계단을 만들어 트레일을 낸 아이디어도 돋보였다. 하지만 나무나 판잣길은 비가 오거나 습한 날씨에는 무척 조심해야 한다. 아차하다간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 때문이다. 또 밀물에 대한 경각심도 늘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해안을 걷다가 바닷물이 들어오면 급히 숲길로 올라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바닷물에 갇혀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울창한 숲길을 걸어 파킨슨 크릭에 도착했다. 10km 거리를 5시간에 걸어 하루 트레킹을 마친 것이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4.04.01 0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들 하나하나가 멋집니다. 저렇게 해무에 빛이 들어오니까 느낌이 신비롭습니다.

    • 보리올 2014.04.01 08: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온대우림, 비치, 해무 등이 독특한 태평양 연안 풍경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나중에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을 가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될 것이야. 기대해도 좋지.

  2. 설록차 2014.04.02 0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치도 일품이지만 직접 눈으로 즐기려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 놓은 길도 인상적이에요...
    아마 쓰러진 나무를 깎아서 계단처럼 만든거지요?

    • 보리올 2014.04.02 1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트레일을 관리는 하지만 사람 손을 많이 대지는 않는 편입니다. 쓰러진 나무를 깍아서 만든 계단도 그런 철학의 한 단면이라 보면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