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 캐니언 림 워크의 중간지점에서 바위를 내려서면 에덴의 동산(Garden of Eden)이라 불리는 물웅덩이에 닿는다. 그 주변으로 나무가 자라 붉은 바위 색조 속에 녹색이 자리잡았다. 온통 바위만 있는 지역이라 물이 있을 것 같지 않았는데도 물이 고여 있었다. 오래 전부터 원주민들은 비가 내리지 않는 가문 시기에는 물을 찾아 이곳으로 와서 지냈다고 한다. 반대편 절벽으로 올랐다. 돔 형태의 사암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오랜 풍상에 침식이 되어 무수히 결을 만들어 놓았다. 협곡 건너편으로 건너가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어두워서 보지 못 한 표지판에 나왔다. 이곳은 더운 날씨엔 출입을 통제하는 것 같았다. 기온이 섭씨 36도를 넘는 날은 일사병이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오전 11시 이전에 하이킹을 마치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 킹스 캐니언을 출발해 앨리스 스프링스로 돌아간다. 낙타 농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앨리스 스프링스로 돌아왔다. 앨리스 스프링스 초입에 있는 표지석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23일의 호주 아웃백 투어를 마무리했다.





협곡 아래로 내려서 물웅덩이와 수풀이 있는 에덴의 동산에 도착했다.






협곡 건너편으로 올라서 붉은 사암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했다.



킹스 캐니언 림 워크를 걸어 주자창으로 내려서고 있다.




칼로 두부를 자른 듯 바위의 벽면이 매끈하게 잘라져 있었다.




하산길에 마주친 돔 형태의 사암


트레일 입구에 와타카 국립공원을 설명하는 표지판이 서있다.


투어에 참여한 일행들과 앨리스 스프링스 초입에 세워진 표지석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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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07.26 1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향을 잃고 킹스캐니언에서 길을 헤맸으면 너무 더워서 물을 찾을텐데, 저런 지형에 과연 물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거 같은데 정말 오아시스같이 물이 저렇게 고여있는 곳이 있네요~!



대구 대봉동에서 나고 자란 가수 김광석을 기리는 길을 만들었다고 해서 잠시 짬을 내어 찾아갔다. 방천시장 바로 옆에 김광석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골목길을 만든 이유가 방천시장을 살리기 위한 방책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지난 2009, 대구 중구청과 손을 잡은 작가들이 1996년에 사망한, 영원한 가객이라 불리던 김광석을 기리기 위해 이 벽화 골목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 노래에 문외한인 내게도 꽤 괜찮은 컨텐츠로 여겨졌다. 사실 난 김광석을 속속들이 알지 못 한다. <서른 즈음에>라든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 그의 노랫말이 인상적이었다는 정도였다. 오히려 최근에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타살 의혹이 있다는 언론의 추측 보도를 접하고 그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떠올렸을 뿐이다. 그리 길지도, 넓지도 않은 김광석 길에서 작가들의 상상력이 더해진, 정말 다양한 모습의 김광석을 만날 수 있었다. 아마 우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가수라는 이유로 역사적 인물의 생가를 찾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공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 방천시장을 살리기 위해 김광석 길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달구벌대로를 따라 걸으며 김광석 길로 안내하는 다양한 표지판이 나타났다.


방천시장을 지나 김광석 길 초입에 김광석의 동상이 길가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김광석 길을 장식한 벽화를 통해 정말 다양한 모습의 김광석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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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01.29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수 김광석씨가 대구 출신이었군요! 저도 노래를 먼저 접하고 팬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세대를 뛰어넘는 노래를 공유하게 한다는 것은 정말 예술의 놀라운 힘인 것 같습니다!

    • 보리올 2018.01.30 0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점점 댓글의 수준이 예술의 경지로 들어서는 듯 하다. 짧은 글이지만 분명한 내용이 들어있어 좋구나. 세대를 뛰어넘는 노래라... 네 덕분에 김광석이 더 좋아졌다.

 

차량을 가지고 베르겐(Bergen)을 출발해 스타방게르(Stavanger)를 거쳐 몇 군데 트레킹을 마치고 베르겐으로 돌아왔다. 며칠 동안 차로 달린 거리야 5~600km 남짓하지만 도로 환경이 무척 열악했고 페리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하는 구간도 있어 시간이 꽤 걸렸다. 우회로가 없는 환경에서 페리는 도로의 일부다 보니 그 운행 시각에 정확히 맞추는 일이 시간을 절약하는 길이었다. 노르웨이 도로 상태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많이 뒤진다. 하지만 노르웨이 지형을 살펴보면 도로를 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금방 이해가 간다. 위도가 높은 지역이라 황량한 산악 지형이 넓게 분포하고 있는데다가 내륙으로 깊게 파고든 피오르드 또한 많다.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에 터널과 교량도 많고 어느 곳을 가든 바다를 건너는 페리를 한두 번은 이용해야 한다. 노르웨이를 여행할 때 시간적인 여유를 넉넉하게 갖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다.

 

렌터카 비용도 다른 나라에 비해 엄청 비쌌고 그리 좋지 않은 도로를 달리는데도 돈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우선 피오르드를 건너기 위해 페리를 이용하는 비용이 비쌌다. 거리에 따라 다르긴 했지만 40분 걸리는 어느 구간에선 운전자 포함한 차량은 미화 32, 탑승자 한 명당 9불씩을 추가로 내야 했다.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왕복 2차선의 좁은 시골 도로를 달리는데 갑자기 뭔가 앞에서 번쩍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과속으로 카메라에 찍힌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나중에 노르웨이어로 된 표지판을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무인으로 통행료를 징수하는 시스템이었다. 도로도 엉망인데 돈을 뺏기는 것 같아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이 통행료는 나중에 렌터카로 합산 청구되어 내 신용카드에서 일방적으로 빠져 나갔다. 석유로 부국이 된 노르웨이에서 꼭 이래야만 하나 싶었다.

 

베르겐을 출발해 E39 도로를 타고 스타방게르로 내려가다 처음으로 페리에 오른 할젬(Halhjem).

 

 

할젬에서 샌드비크복(Sandvikvåg)으로 가는 페리에서 호수와 같은 피오르드를 만났다.

 

2차선 도로 상에 있는 어느 다리에서 보수 공사가 한창이라 한 차선을 통제하고 있었다.

 

아르스보겐(Arsvågen)에서 모르타비카(Mortavika)로 가는 두 번째 페리에 올랐다.

 

 

스타방게르에서 뤼세보튼(Lysebotn)으로 가는 45번 도로 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지붕에 풀이 자란 노르웨이 전통 가옥이 몇 채 있었으나 사람이 살지는 않는 것 같았다.

 

 

산악 지역으로 들어설수록 황량한 지형이 나타났고 차량 두 대가 교행이 어려울 정도로 도로는 점점 좁아졌다.

 

 

오다(Odda)로 가기 위해 히엘메란드(Hjelmeland)에서 네스빅(Nesvik)으로 가는 페리에 올랐다.

 

 

 

아름다운 풍경을 지녔다는 13번 도로를 달려서 오다 아래에 있는 뢸달(Røldal)에 도착했다.

13세기에 지은 뢸달 통널 교회(Røldal Stavkirke)가 유명한 곳이다.

 

 

오다로 접근하면서 로테포센(Låtefossen)의 쌍폭포를 만났다. 낙차 165m의 폭포는 수량이 많아 그 기세가 대단했다.

 

오다에서 베르겐으로 향하면서 존달(Jondal)에서 마지막으로 페리를 탔다.

 

 

우리가 건너온 하당게르 피오르드에 저녁 노을이 곱게 내려 앉았다.

이 하당게르 피오르드는 노르웨이 3대 피오르드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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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12.01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페리 사진을 보니까 문득 메이플리지에서 포트랭리갈때 이용하던 페리가 생각나요. 그런 조그만 페리에 비해 노르웨이의 바다를 건너는 페리는 밴쿠버에서 밴쿠버아일랜드 들어가는 페리랑 비슷하겠죠?

 

그랜드 캐니언을 보러 가는 길에 잠시 후버 댐(Hoover Dam)에 들렀다. 라스 베이거스에서 남동쪽으로 약 50km 떨어져 있는 후버 댐은 무척 유명한 건축물이다. 역사적 의미도 있지만 건축학적으로도 미국의 7대 현대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후버 댐은 검은 목요일로 촉발된 1929년의 미국 대공황을 타개할 목적으로 시행된 대규모 토목공사였다. 1931년에 착공해 1935년에 준공하였고 1936년부터 발전을 시작하였다. 높이는 221m, 길이는 379m에 이른다. 이 댐의 건설로 세계 최대의 인공 호수인 미드 호수(Lake Mead)가 생겨났다. 그 길이가 자그마치 185km. 이 호수 덕분에 라스 베이거스 같은 대도시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후버 댐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투어가 있다고 들었지만 우린 시간이 없어 댐 위를 걸어 왕복하는 것으로 댐 구경을 마쳤다.

 

루트 66(Route 66)은 현존하지 않는 과거의 길이다. 시카고를 출발해 LA를 지나 산타 모니카까지 장장 3,945km를 달리던 길이었다. 1926년에 생겨 1985년에 공식적으로 지도 상에서 사라졌다. 미국의 하이웨이 시스템에서 퇴역한 것이다. 하지만 그 명성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어떤 주에선 옛길을 복원해 히스토릭 루트 66으로 명명해 보전하기도 한다. 오래 전에 동경에서 만난 한 일본인 선배는 LA에서 할리를 빌려 시카고까지 루트 66을 완주했다고 자랑을 해서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의 기억 때문인지 셀리그먼(Seligman)에서 루트 66을 만났을 때 무척 감격스러웠다. 그랜드 캐니언으로 드는 관문인 윌리엄스(Williams)는 루트 66으로 먹고 사는 듯 했다. 온 도시를 루트 66 표지판으로 도배를 한 것이다. 여기를 지나던 루트 66 1984 I-40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공식적으로 사라졌는데도 말이다.

 

 

후버 댐 건설로 생긴 인공 호수인 미드 호수에 아침 햇살이 들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후버 댐은 미국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통한다. 댐 중간으로 네바다와 애리조나 주 경계선이 지난다.

 

 

 

셀리그먼에서 처음으로 히스토릭 루트 66을 만나는 감격을 누렸다.

 

 

 

 

그랜드 캐니언의 관문인 윌리엄스는 무슨 까닭인지 온통 루트 66 표지판으로 도배를 해놓았다.

 

 

 

윌리엄스에 있는 파인 컨트리(Pine Country)란 식당에서 피시앤칩스로 저녁을 먹었다.

내륙에 있는 도시에서 피시앤칩스를 시키는 것이 얼마나 바보짓인지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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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뱅미 2016.09.07 1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상에 앉아 여행을 꿈꾸는 있는 뱅미여요~ 언젠간 저도~ 선배님처럼 여행 길 위에 있을 꺼라 꿈꾸며ㅋㅋㅋ
    여행기와 사진 너무 너무 잘 보고 있어요 ^^

    • 보리올 2016.09.08 0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이 세상은 뱅미처럼 책상에 앉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덕분에 오늘도 버티고 있는 거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해.

  2. justin 2016.09.18 1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먼가 루트 66에 관한 글들이 마치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찾은 듯한 느낌이 묻어났습니다! 그것도 그렇고 후버댐을 보니 미국의 스케일은 어마어마하네요!

    • 보리올 2016.09.19 0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땅덩이가 큰 나라다 보니 저런 대역사가 가능하지 않았겠냐. 루트 66은 아직도 할리를 모는 바이커들에겐 끔의 길이란다.

  3. 박인우 2016.09.24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글 항상 즐겁게 보고있습니다! 덕분에 항상 즐겁네요 ㅋㅋ

    • 보리올 2016.09.25 0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렇게 고마운 말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겐 다녀온 여행을 정리하는 차원인데 글과 사진을 통해 누군가 즐거웠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알래스카 하이웨이는 잠시 BC 주를 들렀다가 다시 유콘 땅으로 진입했다. 주 경계선에 유콘 준주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모처럼 차에서 내려 포즈를 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왓슨 레이크로 들어섰다. 유콘 준주의 관문 도시에 해당하는 이 도시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사인 포스트 포리시트(Sign Post Forest)로 꽤나 유명한 곳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하나 둘씩 여기에 사인 포스트를 붙이기 시작해 오늘날엔 하나의 숲이 형성된 것이다. 세계 각국의 사인 포스트 속에 한글로 표시된 표지판도 보여 반가운 마음이 일었다.

 

여기에도 재미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알래스카 하이웨이를 건설하고 있던 1942, 미 공병대 소속 병사였던 칼 린들리(Carl Lindley)가 부상을 입어 왓슨 레이크로 후송되었다. 큰 부상은 아니었던지 칼에게 도로 표지판을 보수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표지판을 정비하면서 그는 자기 고향마을이었던 일리노이 주 댄빌(Danville)을 적은 표지판을 하나 추가하였다. 한 젊은이의 향수병이 오늘날 사인 포스트 포리스트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때 걸었던 사인 포스트 원본은 사라져 버렸지만, 1992년 알래스카 하이웨이 건설 50주년을 기념해 칼이 왓슨 레이크를 방문했을 때 복제판을 만들어 현재는 방문자 센터에 보관하고 있었다.  

 

왓슨 레이크를 떠나 화이트호스로 향했다. 차로 족히 대여섯 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도로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차량 통행도 현저히 줄었다. 우리가 한적한 동토의 땅에 들어온 것이 확실해 보였다. 유콘 준주의 면적은 482,000 평방킬로미터로 남한의 5배 크기인데 반해, 인구는 겨우 36,000명이 산다. 그 중에 28,000명이 화이트호스에 산다고 하니 이동 인구는 꽤 있을텐데 도로는 한적한 시골길 같았다. 하이웨이 상에 있는 몰리 리버(Morley River)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자고 차를 세웠다. 꽃이 진 파이어위드(Fireweed)에서는 하얗게 부풀은 솜털 씨앗이 세상으로 날아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콘에도 파이어위드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이제 화이트호스가 멀지 않았다.

 

 

 

 

 

 

 

 

 

 

<사진 설명> 세계 각지에서 이곳을 방문해 걸어놓은 사인 포스트가 75,817개에 이른다고 방문자 센터에 적혀 있었다. 한 젊은이의 단순한 발상이 오늘날 왓슨 레이크에 엄청난 컨텐츠를 선사한 셈이다.

 

 

 

 

 

 

<사진 설명> 유콘의 하늘은 더 청명한 것 같았다. 구름 또한 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듯 했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속으로 내가 풍덩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유콘의 첫 인상이 꽤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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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4.02.10 0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에 유콘 여행을 꿈꾸는 분은 필히 한글 표시판을 지참하세요...
    저기서 자기 고향, 나라 표지판을 발견하면 얼마나 기쁘겠어요...확대경이 없어 한글 표지판 찾기는 실패했습니다..엉엉 ㅠㅠ 왕년에 *지도에서 지명찾기* 베테랑이였는데 세월이ㅠㅠ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 보리올 2014.02.10 0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혹시나 해서 일견해 보았는데 사진 속에 한글 표지판은 없더군요. 실제로 두 개인가 보기는 했지만 우리 나라 지명을 적은 것이 아니고 다녀간 분들 이름만 적어놓아 일부러 찍지를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한글로 된 지명에 거리까지 표기해 하나 가지고 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