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생각치도 못 했던 캐나다 겨울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것도 한겨울에 날씨가 춥기로 소문난 캐나다 로키와 유콘 준주 접경지점까지 다녀오는 장거리 여행을 말이다. 그 까닭은 이랬다. 밴쿠버 산악계의 원로 한 분이 어느 날 커피 한 잔 하자며 불러내선 한국에서 지인 부부가 오는데 내가 직접 데리고 여행을 갈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캐나다 로키도 둘러보길 원하지만 이번 방문의 목적은 오로라라고 분명히 이야길 했다. 눈길을 헤쳐가야 하는 1월에, 그것도 차로 이동하는 여행이라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결국 따라 나서기로 했다. 캐나다 온 지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오로라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로라를 보겠다고 멀리서 일부러 오기도 하는데 이런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캐나다 북부의 혹한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넷이서 장도에 올랐다.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를 타고 캐나다 로키로 향했다. 밴쿠버에서 레이크 루이스(Lake Louise)나 밴프(Banff)까지 차로 보통 하루에 가는데 한겨울의 주행이라 시간이 더 걸렸다. 도로 위 눈은 대부분 치웠다 하더라도 하얀 눈길을 마음대로 달릴 수는 없었다. 프레이저 밸리(Fraser Valley)를 벗어나 코퀴할라 하이웨이에서 처음으로 눈길을 만난 이후 열흘 내내 하얀 눈길을 달려야 했다. 골든(Golden)을 지나 차를 세운 곳은 요호 국립공원(Yoho National Park)의 에머랄드 호수(Emerald Lake). 여러 번 다녀간 적이 있지만 꽁꽁 언 얼음 위에 수북히 눈이 쌓여 있는 호수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다. 순백의 설원과 검은 산자락이 뚜렷한 대비를 이뤘다. 에머랄드 빛 호수와 호수에 반영되는 봉우리는 볼 수 없었지만 겨울 호수는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알버타(Alberta) 주로 들어서 밴프로 직행했다. 내 나름대로 밴프의 명소 몇 군데를 골랐다. 설퍼 산자락에 위치한 케이브 앤 베이슨(Cave & Basin)을 먼저 찾았다. 오늘날 밴프를 있게 만든 유황 온천이 처음 발견된 곳이다. 보 폭포(Bow Falls)도 들렀다. 낙차가 크지 않은 물길이라 얼음이 얼었고 그 위를 눈이 덮고 있었다. 버밀리언 호수(Vermillion Lakes)는 밴프를 찾는 경우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해가 지면서 마지막 한 줌의 빛이 런들 산(Mt. Rundle) 꼭대기에 내려앉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석양이 아니라도 호수에 비친 런들의 모습도 언제 봐도 아름다웠다. 모퉁이에 있는 얼지 않은 수면에 런들이 비쳤다. 생각보다 그리 아름답진 않았다. 호수를 빠져 나오는데 멀리서 한 쌍의 늑대가 나타나 우리를 반기는 것이 아닌가. 늑대를 따라 호수 건너편으로 갔다가 거긴 출입금지구역이란 것을 알고 가슴이 뜨끔했다.







호수에 쌓인 눈과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산자락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던 에머랄드 호수





오늘날 밴프와 밴프 국립공원이 태동하게 된 계기가 바로 여기서 발견된 유황온천 때문이다.

현재는 케이브 앤 베이신이란 국가 유적지가 되었다.




밴프 스프링스 호텔 인근에 있는 보 폭포는 마릴린 먼로가 주연한 <돌아오지 않는 강>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화가나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버밀리언 호수에선 해질녘 런들 산을 바라보는 조망이 좋다.


 


버밀리언 호수에서 늑대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하지만 늑대 서식지는 사람이 출입할 수 없다는 것을 뒤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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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untrain 2018.01.19 17: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사진이 정말 예술이에요

  2. justin 2018.01.31 1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겨울의 록키는 저도 가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웅장함은 여전하고 색깔 톤이 심플합니다! 겨울때만 볼 수 있는 풍경이겠죠~!

 

프레이저 밸리(Fraser Valley)의 아보츠포드(Abbotsford)에 그리 높지 않은 산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수마스 산이다. 1번 하이웨이 바로 옆에 있어서 차로 지나가면서 자주 보았던 산이다. 정상에는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어 쉽게 구별이 간다. 해발 고도가 그리 높지 않아 겨울 산행지로 좋은 곳이다. 겨울엔 정상까지 가는 경우도 거의 없다. 수마스 정상 아래에 있는 쳇시 호수(Chadsey Lake)까지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도 쳇시 호수까지만 다녀왔다. 호수에 닿을 때까지 시야가 트이는 곳이 별로 없고 조금은 지루한 숲길을 오래 걷는다. 그래서 시원한 자연 풍경보다는 나무와 숲을 대상으로 사진 찍을 일이 많았다. 호수에 도착해 일행들이 머리까지 뻗친 열기를 식힌다고 원산폭격 자세로 눈에 머리를 처박은 동작을 선보여줬다. 산중에서 모처럼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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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리왁(Chilliwack)에 있는 해발 1,630m의 써스톤 산(1630m). 써스톤에 오르면 케스케이드(Cascade) 산맥에 속하는 봉우리들이 캐나다와 미국 국경선 상에 넓게 포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것들이 펼치는 파노라마 풍경에 덤으로 하얀 빙하까지 한 눈에 볼 수가 있다. 밴쿠버 인근에선 파노라마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유명 산행지 중 하나다. 써스톤은 엘크 산(Elk Mountain) 정상을 지나서 가야 한다. 물론 엘크만 올라도 아름다운 풍경이 시야에 들어오지만, 웬만하면 조금 더 힘을 내 써스톤까지 다녀오길 권한다. 아름다운 파노라마를 각도를 바꿔가며 오래 즐기라는 의미다. 써스톤까진 왕복 15km에 약 7시간이 소요된다. 등반고도도 1,030m로 그리 낮은 편은 아니다.

 

처음에는 숲길을 따라 한 동안 걷는다. 경사가 장난이 아닌 구간이라 숨이 턱턱 막힌다. 흘러내리는 땀을 몇 번이나 훔쳐낸 뒤에야 시야가 확 트이는 바위 전망대에 닿는다. 칠리왁과 프레이저 밸리(Fraser Valley), 그 뒤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며 늘어선 해안산맥의 준봉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고개를 남쪽으로 돌리면 컬터스(Cultus) 호수와 베더 산(Vedder Mountain)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서 사람을 도통 무서워하지 않는 새들을 만나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손바닥에 빵이나 땅콩 조각을 올려 놓으면 어디선가 날아와 냉큼 물어가 버린다.

 

엘크에 오르면 남쪽으로 칠리왁 강이 흐르는 깊은 계곡이 있고, 그 건너편으론 날카로운 봉우리와 빙하를 마주하게 된다. 이 정도면 땀 흘려 올라온 보람을 느끼기엔 충분하지 않은가.  베이커 산(Mt. Baker)과 토미호이 봉(Tomyhoi Peak), 보더 봉(Border Peaks), 슬레시 산(Mt. Slesse), 렉스포드 산(Mt. Rexford) 등을 눈으로 헤아릴 수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르겠다. 보더 봉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미국 보더 봉과 캐나다 보더 봉이 따로 있어 복수형 s를 붙였다.

 

엘크에서 써스튼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8월경에 찾는 것이 시기적으론 가장 좋다. 산상 초원을 덮은 야생화 군락이 합창을 하듯 일제히 꽃을 피워 올리고 산들바람에 춤을 추는 곳이 바로 여기다. 별유천지 꽃밭을 산책하는 기분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야생화뿐만 아니라  땅바닥에 낮게 깔려 자라는 산딸기를 따먹을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엘크에서 써스튼까지는 1시간 이상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가 써스톤 정상에 세워진 작은 돌탑을 보고서야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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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285m의 베이커 산(Mt. Baker)은 미국 땅에 속해 있다. 이 산을 가려면 까다로운 출입국 절차를 밟아 미국 워싱턴 주로 국경을 넘어가야 한다. 그런 불편을 감수하며 사람들은 베이커를 찾는다. 왜냐 하면 밴쿠버와 그 인근의 프레이저 밸리 어느 곳에서나 고개만 들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봉우리가 바로 베이커고, 베이커를 매일 접하는 이곳 사람들에겐 일종의 모산(母山) 같다는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에겐 그랬다.

 

베이커는 케스케이드 산맥(Cascade Mountains)에 속한다. 미국 워싱턴 주 산악지형 자체가 이 산맥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보면 된다. 케스케이드 산맥의 줄기는 알래스카에서 발원한 해안 산맥에서 가지를 뻗은 것으로, 밴쿠버 인근의 가리발디 산(Mt. Garibaldi)에서부터 시작해 국경을 넘어 베이커와 레이니어 산(Mt. Rainier), 세인트 헬렌 산(Mt. St. Helens)을 지나 캘리포니아까지 이어진다. 베이커는 이 산맥의 북단에 위치해 있는데 주능선에서는 조금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베이커 산에서 가장 대중적인 트레일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타미간 리지 트레일(Ptarmigan Ridge Trail)을 꼽는다. 오르내림도 그리 심하지 않고 거리도 적당하다. 산행 기점부터 콜맨 피너클(Coleman Pinnacle)까지 왕복 16km에 등반고도 400m를 올린다. 소요시간은 대략 7시간. 이 트레일을 걸으며 베이커와 셕샌 산(Mt. Shuksan)을 바라보는 조망은 한 마디로 끝내준다. 고산 특유의 풍경과 식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후덕하고 인자한 모습을 보인다고나 할까. 산행 초반부터 벌어진 입을 내내 닫지 못했다.

 

산행 출발점은 아티스트 포인트. 차로 오를 수 있고 주차 공간이 넓다. 산행 초반에는 682번 체인 레이크(Chain Lakes) 트레일을 타고 걷는다. 급경사 초원지대를 트래버스하고 테이블 산(Table Mountain)의 하단부를 가로 지른다. 길이 뚜렷하고 평탄하다고는 하지만 산사태로 무너져 내린 잔돌이 많아 조심해야 한다. 2km쯤 가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여기서 왼쪽 길을 택한다. 오른쪽은 체인 레이크 트레일(Chain Lakes Trail)이고 왼쪽이 우리가 가는 683번 타미간 리지 트레일이다.  

 

연두색과 초록색이 적당히 섞인 초원지대, 야생화 군락, 7월인데도 군데군데 남은 잔설 등이 어우려져 만들어내는 풍경은 대단했다. ,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덧 콜맨 피너클 아래에 섰다. 여기가 우리의 목적지였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좀 더 진행하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더 가면 베이커를 지척에서 올려다 볼 수 있는 암릉에 이르기 때문이다. 

 

암릉으로 연결된 마지막 오르막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가 않다. 가슴 떨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거저 대할 수는 없는 법. 미끄러운 설원과 돌밭을 지나 콧등에 땀이 맺힐 때가 되어서야 공룡 지느러미처럼 생긴 날카로운 능선 위에 올라섰다. 눈 앞에 깎아 지른 절벽이 나타나고 그 건너편에는 베이커의 웅장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구름이 가득한 하늘 아래 정상을 살짝 드러내고 우리를 맞는 베이커. 그저 머리 속이 멍해지며 할 말을 잊었다. 베이커에 대한 첫 인상이 강하게 뇌리에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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