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만화가 허영만 화백을 따라 아오모리(靑森)에 다녀왔다. <식객>이란 만화를 그리고 있는 작가와 함께 하는 여행인지라 아무래도 아오모리 명소를 돌며 그 지역의 특산물, 요리와 맛집, 그리고 온천 순례가 주종을 이뤘다. 일본은 네 개의 큰 섬, 즉 홋카이도와 혼슈, 시코쿠, 규슈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혼슈(本州)는 일본의 중심부라 할만하다. 아오모리 현은 그 혼슈의 최북단에 자리잡고 있다. 쓰가루(津輕) 해협을 가운데 두고 홋카이도와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아오모리의 인구는 144만 명이라고 한다.  

 

한적한 시골 대합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아오모리 공항에 도착해 첫날 일정을 시작했다.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걸리는 거리라 여행에 큰 부담은 없었다. 세관 검사는 예외없이 전수 검사를 한다. 아직도 일본 입국은 깐깐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마중을 나온 현지 지자체 직원들이 아오모리 지역 방언으로 인사를 건넨다. 요구키타네시(Yogukitaneshi)! 어서 오라는 의미인데 우리가 많이 듣던 이랏샤이마세와는 어감이 완전히 달랐다.

 

 

공항에서 시내 들어오는 길에 아오모리의 자랑거리인 사과밭을 만났다. 차도 밖에 안전 시설로 설치한 철제 프레임에도 사과를 만들어 넣었다. 사과 하면 아오모리의 아이콘이라 하지 않는가. 무슨 까닭으로 아오모리 사과가 그리 유명할까 궁금하던 차에 타이밍도 절묘하게 캔으로 된 사과 주스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이것 마시고 정신 차리란 말인가, 아니면 곰곰히 좀더 생각해 보란 의미겠지? 사과보다도 더 우리 시선을 끈 것은 고쇼가와라(五所川原) 시내로 들어서면서 발견한 욘사마, 즉 배용준의 광고 사진이었다. 예기치 못한 욘사마 환영 인사가 반가웠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고쇼가와라의 네푸타관이었다. 고쇼가와라는 아오모리를 대표하는 네푸타 축제를 여는 곳이다. 아오모리 현에서 무려 40군데나 네부타 축제를 열지만 그 중에서 바로 이 고쇼가와라가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있다. 종이와 철사, 나무를 사용해 삼국지나 수호전 등의 무사 형상을 한 인형을 만드는데 이것을 네푸타라 한다. 고쇼가와라에선 이 네푸타로 매년 8 2일부터 8 7일까지 축제를 연다고 한다.  

 

각종 네푸타를 끌고 시가 행진을 벌이는 것이 네푸타 축제의 가장 중요한 행사다. 이를 위해 시에서는 도로를 가로 지르는 도심의 모든 전깃줄을 걷어내 지하에 묻었단다. 그 때문에 도시가 무척 깨끗해 보였다. 이 네푸타는 종이로 만든 대형 조형물이라 비, 바람에 무척 취약하다. 비가 오면 찟기고 바람이 심하면 넘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축제가 진행된 지난 11년 동안 한 번도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게 분 날은 없었다고 한다. 안내를 맡았던 네푸타관장 오니시 씨는 이 모두가 신의 은총 덕분이라 했다.

 

하나를 새로 제작하면 그 이전 것 중에 하나는 폐기를 해서 항상 세 개만 전시하는 게 원칙이라 했다. 축제에 쓰이고 나면 이 큰 조형물을 실내 공간에 전시한다. 이를 제작하기 위해 전담 인력 8명이 1년 내내 작업한다니 그리 쉽지 않은 일인 모양이다. 30개 조각으로 쪼개 만든 후 전시장에서 크레인을 사용해 최종 조립을 하는데, 아래서 위로 올려다 보면 작업 규모도 대단하지만 네푸타 자체의 엄청난 크기에 절로 입이 벌어진다. 대형 네푸타의 경우는 그 높이가 무려 22m나 된다니 사람 기 죽이기 딱이다.

 

 

 

 

 

 

 

 

 

 

네푸타 전시관을 돌고 나서 전시관 안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이름도 생소한 매화 우동(うどん)을 먹기 위해서다. 작은 그릇에 우동이 담겨 있었고 가운데 매실이 하나 얹어져 있을 뿐이다. 매실 외에는 뭐 그리 특별난 점은 없었다. 매실의 시큼한 맛에 난 얼굴을 찡그렸지만 그런대로 뒷맛은 개운한 편이었다. 하지만 허 화백께선 사람 기분을 좋게 만드는 우동이라고 칭찬을 하신다.

 

우동과 함께 나온 빨간 사과(いりんご) 주스. 꽤나 특별한 사과 취급을 하기에 처음엔 웬 호들갑인가 했다. 헌데 이 사과는 꽃과 과실, 과육까지 모두 빨갛다고 한다. 어떻게 과육까지 빨갛단 말이지? 아오모리에서 1976년에 특별히 개발한 이 사과는 대외 유출을 막기 위해 사과로는 판매하지 않고, 사과 주스와 같은 가공식품으로만 구할 수 있다. 특이한 맛을 기대했건만 일반 사과 주스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현지 TV에서 우리 방문을 취재하기 위해 나왔다. 그들이 일본판 <식객> 만화를 들고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만화의 나라 일본에 소개된 우리 만화가 내심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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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다녀온 뒤, 카트만두보다는 한적한 전원 숙소를 찾아 하티반(Haatiban) 리조트로 이동했다. 카트만두 외곽으로 한 시간 가량 빠져 나간 후, 어느 시골 마을에서 버스가 멈췄다. 여기서부턴 길이 좁아 리조트 차량으로 갈아타야 한단다. 짚 몇 대에 분승해 구불구불 소나무가 많은 언덕길을 올랐다. 벌써 어둠이 내려앉아 리조트 전체를 둘러볼 수는 없었다. 이렇게 하티반 리조트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하티반 리조트는 방갈로 형태로 숙소를 만들어 놓아 방이 떨어져 있었다. 허영만 화백의 일본인 친구인 사카이 다니씨와 한 방을 쓰게 되었다. 내가 일본어를 조금 하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짐을 풀고 식당에 모였더니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지 전등 대신 촛불을 켜놓았다. 우와, 약간은 어두운 분위기가 오히려 운치가 있어 좋았다. 그래도 일부 지역은 자가 발전으로 불을 밝혀 놓아 큰 불편은 없었다.

 

카트만두의 야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맥주 한 잔씩 마셨다. 정확히 오후 7 30분이 되니까 전기가 들어온다. 일단 헤드램프를 켜고 샤워하는 것은 면했다. 실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부페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원래는 통돼지 바베큐를 하기로 했으나 하티반 측에서 반대가 심했단다. 그 대신 박영석 대장이 카트만두에서 돼지고기 수육을 잔뜩 사들고 왔다. 좋은 안주가 도착한 핑계로 럼주를 몇 잔 받아 마셨더니 금방 취기가 오른다.

 

여기서 에베레스트가 보인다고 해서 일출 시각에 맞춰 테라스로 나갔다. 안개가 너무 자욱해 일출은 보지를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하더니 멀리 카트만두 시내와 그 뒤로 설산이 자태를 드러낸다. 에베레스트는 어느 봉우리인지 식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야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까지 다가가 설산을 보고 왔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발 준비를 했다. 짚을 타고 다시 큰길까지 나와 버스로 갈아 달탔다.

 

 

 

 

 

 

낮에는 카트만두에서 각자 자유 시간을 갖은 후 저녁은 고급 달밧에 네팔 전통춤을 감상할 수 있는 보전 그리허(Bhojan Griha)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 식당은 150년 전에 세워진 궁전을 개조해 만든 고급 레스토랑으로, 네팔에서는 전통 무용과 전통 음식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유명한 곳이다. 솔직히 난 벌써 몇 번을 다녀간 곳이라 그리 호기심이 많진 않았다.

 

종업원이 곡예를 부리듯 럭시를 따라준다. 팁을 적당히 쥐어주면 럭시는 거의 무한 리필이다. 치킨 커리가 들어간 고급 달밧이 기본으로 나오는데, 네팔 사람들처럼 손으로 주물러 먹어도 되고 숟가락을 달래서 먹어도 된다. 우리 입맛에도 맞아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다. 오후 7시가 되면 넓은 방으로 악대와 무용수가 들어와 공연을 시작한다. 저녁 식사는 가능하면 그 전에 마치는 것이 좋다. 남여 무용수들이 짝을 이뤄 네팔에 있는 일곱 개 부족의 전통춤을 보여준다. 음율도 흥겹고 춤사위로 꽤나 현란하다. 어느 정도 흥이 돋우면 손님들을 나오라 해서 함께 춤을 춘다. 네팔 전통춤과 우리의 막춤이 마구 섞여 무척 흥겨운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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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rtyLUV 2013.07.16 1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즐거워 보이네요~^^
    저도 함 꼭 가보고 싶네요~
    좋은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2. 올뺌씨 2013.07.16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커리 손으로 먹는거 꼭 한번 해보고 싶네요~
    저게 인도와 네팔 여행의 로망이었는데.

    화장실 문화 빼구요;;

    • 보리올 2013.07.16 14: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커리를 손으로 드시는 게 로망이셨다구요? 저는 잘 안되던데요. 아직도 숟가락을 쓰고 있답니다. 화장실은 그런대로 버틸만 하던데요.

 

 

<침낭과 막걸리>란 모임의 2010 1월 정기모임에 참가해 군산을 다녀왔다. 이 모임은 2002 11월 시작한 허영만과 함께 떠나는 백두대간 종주에 참여했던 대원들이 종주를 마치고 매월 한 차례씩 비박에 나서면서 결성된 모임이다. 30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 시끌법적했던 모임이 1월 모임에는 좀 한산했다. 열 댓명이 전부. 산행은 김성선의 추천으로 전북 군산 구불길로 정했다. 군산에 사는 마이클이 강력 추천한 모양이었다. 구불길 홍보 차원에서 군산시청 직원들이 캠핑장을 찾아와 서로 인사를 나눴고 구불길 트레킹에도 직원 한 명이 직접 안내를 맡았다.

 

2010 1 22, 대전에서 송정모를 만나 그의 차로 군산으로 향했다. 사람들 들이닥치기 전에 미리 준비할 일이 있다고 몇 시간 일찍 군산에 도착한 것이다. 가창오리의 군무를 볼 수 있다는 김성선의 이야기에 나도 한껏 기대감에 고조되어 있었는데, 여유시간에 사진을 찍으러 나갔더니 가창오리는 무슨 가창오리? 10만 마리가 떼지어 다닌다는 이야긴 말짱 거짓이었다. 금강 하구둑에 나가 눈을 부릅뜨고 찾아낸 가창오리의 수가 50여 마리나 될까? 그것도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물에 퍼져 놀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우리가 하룻밤 묵을 곳은 군산 나포면 서포리의 옹고집쌈밥집. 넓은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거나 야영 준비가 부족한 사람은 폐교를 개조한 식당을 쓰기로 했다. 속속 일행들이 도착한다. 호준이가 허영만 화백을 모시고 왔고, 치상이는 대전에서 기탁 형님을 만나 모시고 왔다. 서산 친구들도 도착을 했다. 서로 껴안기도 하면서 시끌법적한 재회 장면을 연출했다. 각자 준비한 음식도 옮겨졌다. 나도 동생이 보내준 막걸리와 귤을 전달했다.

 

야외 대형 텐트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옹고집쌈밥집 주인장께서 자꾸 뭔가를 가지고 나오신다. 군산시청에서 나온 직원 3명과 인사도 나눴다. 불판에는 삼겹살에 이어 석화와 조개가 구워졌다. 마이클이 마술가 한 명을 초청해 잔디밭에서 마술쇼를 벌였다. 추운 날씨에 손이 얼어 쇼가 쉽지 않았을텐데 그래도 실수없이 잘 마쳤다. 바깥 날씨가 너무 차가워 실내로 술자리를 옮겼다. 치상이가 데려온 익산 아가씨가 솜씨좋게 팥죽을 끓여낸다. 자정이 지나자 술자리를 일찍 파했다. 허 화백이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 8시에 일어나 9시 구불길로 들어섰다. 구불길은 모두 네 개 코스로 이루어졌는데 하루 한 구간씩 걸으면 모두 4일이 필요하단다. 우리는 1구간 중간에서 시작해 2구간 중간에서 끝내기로 했다. 군산시 관광진흥과 임현씨가 앞장을 서 안내를 자청했다. 비단강 길이라 불리는 구불1길은 군산역에서 시작해 자연학교까지 18.7km에 이른다. 우리는 중간 지점인 금강 하구둑에서 출발해 금강 철새 조망대, 원나포 마을을 지나 2구간으로 들어선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철새의 숫자가 너무 적어 실망을 금치 못했다. 올겨울이 너무 추워 철새들이 남쪽으로 더 내려갔단다. 겹겹이 얼어붙은 금강을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힘이 거의 들지 않아 너무 밋밋한 감도 들었다. 바람은 차지만 햇살은 따사로워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다를 떨며 걷는 재미도 대단했다. 구불2, 일명 햇빛길로 들어섰다. 잠시 백인농장에 들렀더니 사장님이 나오셔서 시원한 요구르트 한 병씩을 준다. 직접 우유를 짜서 요구르트를 만든다 했다. 평소에 먹던 요구르트보다 훨씬 걸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불주사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의사소통이 잘못 되었던지 취소한단다. 모처럼 절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라 기대감에 들떴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불주사는 전북 사적지로 백제 의자왕 때 창건된 절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오래된 절인지 순간 머리 속이 분주해졌다. 산불로 사적지가 붙타는 것을 막아보갰다고 주변에 있던 나무들을 모두 베어 버렸단다. 그렇게 해서 과연 산불을 제대로 막을 수 있을까 싶었다.

 

망해산과 축성산 능선에 올라서니 제대로 된 트레킹을 즐기는 듯 했다. 이 정도는 백두대간 능선길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능선에서 바라다 보이는 나포십자들, 금강, 그리고 둑방이 어우러진 경치에 저절로 발걸음이 늦어진다. 벤치가 준비된 곳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엉덩이를 붙이고 수다떨기에 다들 바빠 보였다.  

 

축성산에서 축산리 저수지로 내려서는 길이 의외로 아름다웠다. 멀리서 보니 구불구불 산허리를 에둘러 가는 임도가 종국엔 마을로 내려서고 있었다. 여기서 구불길이란 이름이 나왔을까? 이름 하나는 정말 잘 지었단 생각이 들었다. 저수지에 도착해 쏘가리 매운탕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옹고집쌈밥집 주인장의 도움으로 출발점으로 되돌아왔다. 서둘러 우리가 묵었던 흔적을 지우고 주인장에게 작별 인사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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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허영만 화백이 그 종주대 출신의 산꾼들을 주축으로 한반도 일주 항해에 도전했다. 2009 6월 경기도 전곡항을 출발, 2010 4월 강원도 속초를 찍고 5월에 독도에 이르기까지 근 1년 가까운 세월을 매월 2 3일씩 항해를 하면서 바닷길을 이어간 것이다. 이 계획은 본래 허영만 화백께서 제안을 했고, 그에 적극 호응한 송영복, 송철웅 등이 맞장구를 치면서 성사가 되었다. 그 뒤에 항해, 촬영, 스쿠버 등 분야별 전문가 몇 명이 동참을 하였다. 이 멋진 계획을 위해 준비한 구닥다리 레이서 크루저의 이름이 바로 집단가출호. 또 한 번의 집단 가출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난 이 계획에 전혀 발을 들여 놓지 못했다. 귀동냥으로 그런 논의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고국에 들어가 있던 2009 12, 집단가출호의 7차 항해에 운좋게도 옵저버로 승선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12 5일 새벽, 대전에서 김성선을 만나 여수로 이동을 했다. 당시 난 청주대학교 영화학과와 충북방송에서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던 영화 제작 교육 프로그램에 다니고 있었던 터라, 이 요트 여행을 촬영해 졸업 작품으로 쓸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방송사에서 대여받은 소니 6mm HD 카메라를 들고 갔더니 다들 긴장하는 눈치다.

 

 

여수는 날씨가 맑았다. 파란 하늘이 돋보이고 기온도 포근한 편이었다. 대원들이 어디선가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식량이 실리고 대원들 짐이 실린다. 오전 11시가 넘어서 소호항을 출발했다. 바람이 잔잔한 탓인지 속력이 느리다. 허 화백은 선장으로 전체 진행을 책임지지만, 실제적인 항해는 대부분 송영복 대원이 지휘를 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소리도. 일명 연도라고도 불린다. 행정구역상으론 여수시에 속한다.

 

 

 

 

출항할 때에는 각자 맡은 역할이 있어 바쁘게 움직였다. 나만 무엇을 할지 몰라 어정쩡하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공연히 나섰다가 오히려 일만 그르칠 것 같았다. 배가 출항할 때와 가끔 돛의 방향을 바꾸는 경우에만 대원들이 바쁘다가 막상 바람을 받아 항해를 할 때는 여기저기 모여서 수다나 떤다. 이진원은 저녁 횟감이나 구해보겠다고 바다에 낚시를 던졌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데, 몇 시간 동안 정작 물고기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해가 바다에 떨어지고 어둠이 밀려올 무렵, 소리도에 도착했다. 두 번째 방파제를 지나 내항으로 들어서다가 수심이 너무 얕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방향을 돌려 방파제와 방파제 사이에 배를 정박해 놓고 보트를 이용해 짐과 사람들을 날랐다. 어떤 사람은 방파제에 텐트를 치고 누군가는 비박을 하겠다고 맨바닥에 매트리스를 깐다. 난 매트리스와 침낭을 들고 방파제 끝에 있는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여객선 매표소로 쓰였던 건물이었는데 책상을 치우니 대여섯 명은 충분히 잘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잠자리 준비를 마치고 모두들 섬마을 구경에 나섰다. 마침 마을 입구 공터에서 멸치 건조 작업을 하고 있던 동네분들을 만났다. 소금물에 멸치를 삶아 내고 있었는데 우리의 갑작스런 출현이 그들에게도 신기했던 모양이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우리에게 삶은 멸치를 먹어 보라 권하기도 한다. 작업을 마치자, 창고 바닥에 즉석 술자리를 마련해 우리에게 소주잔을 돌린다. 낯선이를 싫다 않고 반기는 이런 정이 있기에 아직도 시골은 살 맛이 난다. 허 화백 본가도 오래 전에 여수에서 멸치 어장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허 화백은 그들과 금방 친구가 되었다.

 

 

 

 

 

 

 

 

이진원이 닭을 삶아 저녁을 준비한다. 어촌계에 연락해 횟감을 구하려 해봤지만 여의치가 않단다. 마침 고기를 잡으러 나온 배가 있어 싱싱한 생선 몇 마리를 구할 수가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횟감을 안주로 술잔이 돌고 있는데 빗방울이 돋는다. 자리를 일찍 파하고 일부는 매표소 건물로, 일부는 요트 선실로 대피를 했다. 가끔씩 몰아치는 돌풍에 빗줄기가 요동을 친다.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도 점점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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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지인 2012.10.15 0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정말 웅장해요. 저는 언제 어른되서 제 친구들과 이런 야심찬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요... ㅎㅎㅎㅎ

    • 보리올 2012.10.15 0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의지와 뜻만 있다면 기회는 언젠가 온단다. 조바심내지 말고 그때를 위해 착실히 준비를 해야지. 그리고 너도 이제 어른이야. 더 이상 어리지 않거든.

  2. 이종인 2012.10.24 1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 저도 요트타고 저 망망대해로 나가보고 싶어요. 그때 이노래 저노래 듣고 알아보고 아버지께 보내드렸던 노래들이 기억납니다.
    4월달에 이빨 치료할때 들어보니까 송원장님께서는 꾸준히 요트를 즐기신다고 들었는데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연락드려서 나중에
    다같이 요트를 탈 수 있으면 좋을것 같아요!

  3. 보리올 2012.10.25 1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 언제 한국 들어가는 기회에 송 원장에게 부탁해서 한 번 타 보렴. 처음엔 재미있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지루해지거든. 넌 어떨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