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의 잠자리 풍경은 늘 비슷하다. 좁고 딱딱한 나무 침대에서 잠이 들면 그 때부턴 무슨 의미인지도 헤아리기 어려운 묘한 장면들이 영화처럼 수시로 바뀌다가 잠에서 깬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거의 없다. 가끔은 꿈인지 생시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아마 이것도 히말라야 신들을 만나는 신나는 경험 중 하나 아닐까 싶다.

 

밤부라는 단어를 쓴 마을답게 주변에 대나무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그렇다고 엄청난 숲을 이룰 정도는 아니었다. 히말라야에도 대나무가 자란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는 정도라고나 할까. 나무숲을 관통하는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히말라야에서는 흔치 않은 길이다. 맞은 편에서 내려오던 독일 아가씨 한 명이 매직 포리스트(Magic Forest)!’라고 표현한 것을 듣고 보아서 그런지 숲길이 더 매력적이었다. 숲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낮은 관목을 통과하자, 숲이 사라지며 풍경이 트이기 시작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해발 고도를 1,000m나 올린다. 연이틀 1,000m씩을 올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해발 고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더 높은 고도였더라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점심은 리마가 수제비를 준비했다. 히말라야 산속에서 먹는 수제비라 더 맛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 밴쿠버 한인 산우회 회장을 역임한 최정숙, 안영숙 두 여걸은 이런 호사가 어디 있냐고 연신 감탄을 거듭한다.

 

해발 고도가 3,430m인 랑탕(Langtang)에 도착했다. 마을이 제법 크다. 랑탕 문화 센터란 건물에 학교를 파한 아이들이 모여 장난을 치고 있었다. 어딜 가나 개구장이들은 근심 걱정없이 활달하기만 하다. 문화 센터란 건물이 낮에는 학교 건물로 쓰이는 모양이었다. 학생들이 모두 빠져 나간 건물에선 무슨 종교 의식을 준비하는지 여자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해질녘 랑탕 구경에 나섰다. 코흘리개 아이들을 구슬려 사진 몇 장 찍고는 학교 건물로 들어갔다. 할머니 한 분이 자리에 앉으라 하더니 자꾸 차를 권한다. 처음엔 괜찮다 손사래를 쳤지만 나중엔 반쯤 강요에 가깝게 변했다. 결국 차를 한 잔 마셨다. 차값으로 100루피를 시주했더니 그것은 사찰에 내는 것이고 차값은 별도로 자기에게 달란다. 대꾸도 않고 그냥 100루피만 주고 밖으로 나왔다.  

 

랑탕의 높이면 고소증세를 걱정할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한 대장이 내일 걍진곰파(Kyanjin Gompa)까지만 갔다가 먼저 돌아서겠다 한다. 맥주로 간단한 송별식을 치뤘다. 고산병 때문에 한 잔씩으로 미리 못을 박아야 했다. 이제 또 10시간의 기나긴 취침에 들어가야 한다. 방을 함께 쓰는 후배 김정의 씨와 침대에 누워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를 논하다 잠이 들었다. 화제가 너무 무거워 잠이 쉽게 온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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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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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영숙 2013.10.04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산증으로 토하고 설사하고 코피까지 동반했던 그때 처량했던 나의 모습도 이젠
    과거로 그리움으로 가물 가물 꿈처럼 한 모퉁이에 남았네요. 랑탕의 추억으로.......

  2. 보리올 2013.10.04 15: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랑탕의 추억이라... 멋진 말이네요. 고산병이야 고산에 들면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이지요. 그래도 심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3. 설록차 2013.10.06 0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억을 공유하는 두 분이 나누는 대화가 정겨워요...흔한 경험이 아니지요...^*^

  4. 보리올 2013.10.06 0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 랑탕을 함께 갔던 분입니다. 산을 엄청 잘 타는 여걸인데 연세가 드셨다고 생각하셔서 요즘은 힘든 산행에 나서길 꺼리는 것 같습니다. 세월 앞에선 장수가 없다지만 그래도 자신감을 잃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