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커 산(Mt. Baker)을 찾을 수 있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눈이 녹고 길이 뚫리는 여름 한철에만 가능하다. 대개 7월부터 9월까지로 보면 되지만 적설량 상황에 따라 6월이나 10월도 가능할 수 있다. 겨울철이면 베이커 지역에 엄청 눈이 오기 때문에 아티스트 포인트로 오르는 접근로가 폐쇄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연평균 강설량이 16m나 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1998년에서 1999년에 이르는 동계 시즌에 자그마치 29m의 눈이 내렸다 한다. 단일 시즌으로는 세계 신기록이란다.  

 

운좋게 8월 들어 베이커를 다시 찾게 되었다. 밴쿠버에서 활동하는 두 개의 산악회, 즉 밴쿠버 한인 산우회와 수요 산우회가 합동으로 산행을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름의 산우회가 합동으로 산행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 아닌가 싶었다. 산행 목적지는 베이커 산의 타미간 리지(Ptarmigan Ridge) 트레일. 타미간이란 우리 말로는 뇌조, 들꿩이라 부르는 산새를 말한다. 쌀쌀한 날씨의 고산 지대에 주로 서식을 하는데 크기는 비둘기만 하다.

 

지난 번에 이 코스를 다녀온 밴쿠버 한인 산우회 소속의 네 명이 전체 인원을 네 개 그룹으로 나눠 산행을 리드하기로 했다. 나도 한 그룹을 맡았다. 베이커와 그 인근 지역은 노스 케스케이드(North Cascade) 국립공원에 포함되진 않지만, 대신 생태 보전 지구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그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겐 몇 가지 제약이 따르는데, 그 중의 하나가 산행 그룹의 규모가 그룹당 12명을 초과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인원을 초과하는 경우는 인원을 나누어 따로 운행을 해야 한다. 우리도 그에 따라 네 개 그룹으로 나눈 것이다.  

 

해발 1,445m의 아티스트 포인트에서 간단하게 산행에 대한 안내를 마치고 산행에 나섰다. 내가 맡은 그룹엔 나이 드신 분들, 산행 초보인 여성들도 있어 속도를 늦춰 천천히 진행을 하였다. 우리 앞에는 만년설을 이고 만산을 호령하듯 베이커가 버티고 있었고, 우리 뒤로는 흰 눈과 시커먼 바위가 절묘하게 대비되는 셕샌이 손에 잡힐 듯 서있다. 이 두 봉우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고 가슴이 뛴다.

 

산허리를 휘감고 이리저리 돌아가는 산길이 아름다웠고 그 부드러운 곡선미에 정감이 갔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초원을 가로질러 오르락내리락거리는 산길도 제법 운치가 있었다. 베이커에는 산길 자체도 여유로움이 묻어 난다. 발걸음도 가볍게 산길을 터벅터벅 걷다가 야생화 군락이라도 만난다면 이보다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여유있는 소걸음으로 쉬엄쉬엄 걸어 산행 목적지인 콜맨 피너클 아래에 닿았다. 앞서 간 그룹은 저 아래에 있는 암릉까지 간다고 하지만 우리 그룹은 여기서 마음껏 풍경을 즐기다가 돌아서기로 했다. 산자락에 구름이 많이 걸려 있어 멀리까지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선경같았는 지도 모른다. 산자락을 둘러싸고 낮게 깔린 구름 위로 보라색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었다. 여기가 진짜 신선 사는 곳이 아닌가 싶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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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찬미맘 2013.02.20 0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멀리서 보기만 해도 신비한 산인데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니 더 놀랍기만 합니다...
    사진이 잘 나오기도 했구요....
    정말 궁금한 산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2. 보리올 2013.02.20 08: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멀리서 이 마운트 베이커를 보신다고 하니 밴쿠버 인근에 사시는 모양입니다. 정말 멀리서 보면 산신령같은 인자한 면모를 지녔지요. 제가 흠모하는 산 중에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