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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5일차(비야투에르타~로스 아르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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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를 훌쩍 넘겨 눈을 떴다. 늦잠을 잔 것이다. 부리나케 출발 준비를 마쳤다. 시카고에서 온 마가렛과 함께 알베르게를 나서게 되었다. 길을 가면서 아침 먹을 곳을 찾자고 해서 따라 나섰는데 에스테야(Estella)를 지날 때까지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지 못해 결국은 아침을 굶었다. 먹은만큼 간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끼니를 챙겨 먹었는데 오늘은 뜻하지 않게 아침을 건너뛴 것이다. 에스테야는 8월 첫째주에 축제를 여는데 여기서도 소몰이 행사를 한다고 한다. 물론 팜플로나에 비해선 유명세는 많이 떨어지지만 말이다. 마가렛은 자전거를 끌고 가다가 내리막이 나오면 먼저 타고 가곤 했다. 그래도 곧 따라잡을 수 있었다. 60대 후반의 나이에 왜 혼자 왔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태국에서 골프에 반쯤 미쳐 산다고 했다. 시카고에서 자전거를 좀 탔다곤 했지만 내가 보기엔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도 못한 것 같았다.

 

에스테야 외곽에서 이라체(Irache) 와이너리로 우회하는 길로 들어섰다. 거기엔 순례자를 위해 와인과 물이 나오는 두 개의 수도꼭지를 준비해 놓았는데 이것이 순례길의 명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길로 걷는다. 물통에 와인을 조금 담아 두세 모금 마셨다. 이렇게 소비되는 양도 꽤 많을텐데 돈보다는 순례자를 우선으로 하는 배려가 고마웠다. 어떤 사람은 와인 병을 가져와 병이 넘치게 받아갔다. 히피 차림의 한 젊은이는 2리터 콜라병에 와인을 가득 담더니 그 현장을 찍는 CCTV 카메라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고마움을 욕으로 갚는 식이라 눈쌀이 절로 찌푸려졌다. 와이너리에서 운영하는 와인 박물관도 잠시 둘러보았다.

 

이라체를 벗어날 즈음 도로 옆으로 캠핑장 시설이 나타나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땅 위에 텐트를 친 모습은 볼 수가 없었고 몇 명이 쓸 수 있는 방갈로가 죽 늘어서 있었다. 어린이 놀이터도 있고 각종 스포츠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이 유독 많았다. 카페테리아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하나는 계란 스크램블이, 다른 하나는 하몽과 치즈가 들어간 보카타(Bocata)를 시키고 맥주 한잔도 주문했다. 아침을 굶었다는 핑계로 와이너리에서 아침부터 와인을 마시고 이제는 맥주까지 마셨으니 술 기운으로 순례길을 걷는 셈이다.

 

앞에서 혼자 걷던 제이슨을 만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일에서 잠시 쉬고 있다는 그는 본래 시애틀에서 알래스카를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화물선 선장이라 했다. 집도 밴쿠버에서 30분이면 닿는 벨링햄에 있단다. 국가는 다르지만 서로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친해졌다. 더구나 여행과 사진을 좋아한다니 취미도 둘이 비슷하지 않은가. 바에서 와인 한잔 사겠다고 나를 잡아 끌었다. 이러다가 진짜 술에 취해 걸을까 싶어 와인은 사양하고 애플 파이를 하나 시켰다.

 

비야마요르(Villamayor) 뒤로는 야트마한 산 위에 몬하르딘(Monjardin) 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얼마 전에 KBS 2TV <영상앨범 산>에서 방영한 산티아고 순례길 2부작에 나온 성이 바로 여긴 모양이구나 싶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후배 이상은이 몬하르딘 성에 올라 멋진 풍경을 보여준 적이 있어 나도 올라가고는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 길을 걷다보니 순례길에서 벗어나 산 정상까지 올라갈 마음은 나지 않았다. 아래에서 보는 풍경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길 양쪽으론 황토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새로 씨를 뿌리려는지 농기계가 열심히 땅을 고르고 있었다. 포도밭도 눈에 많이 띄었다.

 

예상보다 이른 시각에 로스 아르코스(Los Arcos)에 도착했다. 6유로를 받는 무니시팔 알베르게에 들었다. 한국인들이 엄청 많았다. 알베르게 정원이 70명인데 누구 말로는 그 중 1/3이 한국인이라 했다. 너무 연약하게 큰다고 걱정을 했던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보곤 우리 나라 국운이 피려나 하는 기대도 갖게 되었다. 부엌에선 한국 젋은이들이 파스타를 만들고 있었다. 나에게도 함께 저녁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와 그러마 했다. 나중에 보니 재료를 구입한 비용을 각자 나누는 방식이었다. 2~3유로면 한 끼가 해결되는 모양인데 그냥 5유로를 주었다. 그래도 밖에서 먹는 것보단 훨씬 싸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해결하긴 처음인데 괜찮은 방법 같아 보였다.

 

 

서둘러 알베르게를 나섰더니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을에서 보는 일출이라 그런지 감동은 크지 않았다.

 

알베르게부터 한 시간 가량 동행이 되어준 마가렛. 자전거로 순례를 하는데 하루 운행거리가 내 걷는 거리와 비슷했다.

 

 

 

 

에스테야도 제법 큰 도시였지만 식당을 찾는데 정신이 팔려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지나치고 말았다.

 

에스테야의 어느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문구. 바스크 지역의 독립 열기를 대변하는 듯 했다.

 

 

 

이라체 와이너리에는 무료로 물과 와인을 받을 수 있는 수도꼭지가 설치되어 있어 순례길의 명물이 되었다.

 

 

 

이라체 와인 박물관. 조그만 공간에 125년의 역사를 담았다.

 

 

도로에 인접한 캠핑장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텐트보다는 방갈로가 주를 이뤘다.

 

 

캠핑장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으로 먹은 샌드위치

 

미국 워싱턴 주 벨링햄에서 온 제이슨은 화물선 선장이라 배를 만드는 회사에 다녔던 나와는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비야마요르를 지나면서 저 위에 있는 몬하르딘 성을 갈까말까 망설임이 좀 있었다.

 

 

 

 

붉은 색깔의 들판이 끝없이 펼쳐진 나바라 지역은 황량하면서도 한편으론 아름다워 보였다.

 

 

꽤 이른 시각에 로스 아르코스에 도착했건만 먼저 온 사람들이 대낮부터 광장에서 맥주와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알베르게에서 한국 젊은이들과 어울려 파스타로 저녁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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