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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3일차(라라소아냐~싸리키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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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몸을 뒤척일 때마다 이층 침대는 삐걱삐걱 소리를 내고 밤새 코를 고는 사람에다 연달아 기침을 하는 사람도 있어 알베르게에선 숙면을 취하기가 어렵다. 순례의 한 부분으로 빨리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마음이 편하다. 시도때도 없이 잠에서 깨지만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워낙 길어 실제로 잠이 부족하진 않다. 오전 6 30분에 일어나 살며시 밖으로 나왔다. 다른 사람들 잠을 깨울까 싶어 고양이 걸음을 하고 말이다. 혼자서 아침을 준비한다. 인스턴트 식품인 시금치 된장국에 어제 구입한 가늘고 짧은 면발을 넣고 끓인 수프가 아침 메뉴였다. 우리 입맛에 맞는데다 씹지 않고 그냥 넘겨도 되는 면발이라 먹기에 부담이 없었다. 7 30분에야 배낭을 꾸려 알베르게를 나섰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길을 홀로 걷는다. 새벽엔 공기가 너무 서늘해서 자켓을 꺼내 입었다. 오른쪽으로 폭이 좁은 강이 흐르는데 그 너머로 도로가 지나는지 가끔씩 씽씽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동녘 하늘이 조금씩 밝아 오더니 어설프게 해가 떠올랐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성당을 들어가보려 했지만 대부분 문이 닫혀 있었다. 하지만 트리니다드 데 아레(Trinidad de Arre)에 있는 성당은 예외였다. 다리 끝에 세워진 위치도 특이했지만 사람이 없는데도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이다. 크레덴시알(Credencial)에 찍으라고 스탬프도 밖에 내놓았다. 규모는 작지만 기품이 있어 보였다. 성당을 나오면서 1유로 동전을 기부함에 넣었다.

 

트리니다드 도심에선 어떤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커다란 인형 여섯 개에 각기 다른 남녀 의상을 입혀 악대의 반주에 맞춰 시가를 행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의미를 가진 행사인지는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 다리를 건너고 성벽을 지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큰 도시에 속하는 팜플로나(Pamplona)로 들어섰다. 나바라(Navarra) 자치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매년 7월 초에는 700년의 역사를 지닌 산 페르민(San Fermin)이란 유명한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좁은 골목에서 사람과 소가 뒤엉켜 달리는 소몰이 행사가 이 축제의 하일라이트다. 헤밍웨이의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도 이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는데 난 통 기억에 없었다.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며 두 시간 넘게 팜플로나를 구경했다.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좁은 골목길이 마음에 들었고 사람들로 시끌법석한 시청앞 광장도 분위기가 좋았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수퍼마켓에서 신라면 네 개를 샀다. 라면 하나에 1.50유로를 받으니 2,000원이 넘는 금액이다. 대성당으로 갔다. 입장료를 받는데 순례자는 반값이다. 14세기부터 지어졌다는 고딕 양식의 성당을 먼저 보고 카를로스 3세의 무덤과 별도 전시관을 가진 박물관도 둘러 보았다. 나바라 왕국의 왕들이 대관식을 치뤘다는 대성당. 순례길에서 지금까지 본 어떤 성당보다도 크고 화려해 구경할만 했지만 난 이런 대규모 성당을 보면 마음이 그리 유쾌하진 않다. 대성당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타파스(Tapas)와 맥주로 점심을 먹었다. 점원이 타파스라 인정하면서도 자기들은 핀초스(Pinchos)부른다고 사족을 붙인다.

 

팜플로나를 나오면서 시우다델라(Ciudadela)도 구경을 했다. 시우다델라는 별 모양의 요새를 말하는데 요즘엔 정원으로 둘러싸인 공원으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아스팔트와 보드블럭을 걸으니 발바닥이 아파온다. 산을 오르내리는 것보다 이런 평지를 걷는 것이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쑤르 메노르(Cizur Menor)를 지나서 비포장 길로 들어섰다. 양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지닌 넓은 들판이 펼쳐져 풍경은 좀 살아났지만 계속되는 오르막 경사에 햇볕마저 따가워 땀이 제법 많이 났다. 능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풍력발전기 모습도 점점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페르돈 고개(Alto de Perdon)를 넘어 우테르가(Uterga)까지 갈까 고민하다가 고개 직전에 있는 마을, 싸리키에기(Zariquiegui)에서 발을 멈췄다. 이 마을에 있는 사설 알베르게엔 부엌이 없어 음식을 사먹어야 했다. 순례자 메뉴가 11유로를 받는다. 캐나다 퀘벡에서 왔다는 노부부와 한국인 아가씨 등 넷이서 식사를 했다. 수프와 샐러드가 먼저 나왔고 메인으론 햄과 생선요리가 나왔는데 음식은 괜찮은 편이었다. 물 한잔 마시려고 물잔을 달랬더니 순례자 메뉴엔 와인잔 하나만 포함되어 있다고 난색을 표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까닭으로 그런 황당한 내규를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너무 어이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와인잔에 물을 따라 마셨다.

 

해 뜨기 전에 알베르게를 나와 길을 걷는 중에 일출을 맞았다. 일출이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수량이 많지 않은 아르가 강(Rio Arga)에서 낚시를 하는 강태공도 만났다.

 

혼자 순례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는 배낭을 어깨에 메지 않고 이틀이나 저 자세로 배낭을 손에 들고 다녔다.

 

 

트리니다드에 들어서면서 만난 바실리카 성당(Basilica de la Trinidad de Arre).

바실리카란 이름을 쓰는 성당치곤 아담하고 소박해서 좋았다.

 

 

 

 

 

트리니다드에선 커다란 인형을 들고 시가 행진을 하는 어떤 행사와 마주쳤다.

 

 

14세기에 지은 이 다리와 구시가를 둘러싼 성벽을 지나 팜플로나 시내로 들어선다.

 

 

 

 

팜플로나는 고풍스러움과 화려함을 함께 겸비한 도시였다. 인파로 붐비는 좁은 골목도 나에겐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무너져버리자 14세기 후반부터 고딕 양식으로 다시 지은 것이 현재의 팜플로나 대성당이다.

많은 유물을 발굴해 따로 전시하고 있었다.

 

 

 

팜플로나 어느 식당에서 타파스와 맥주로 점심을 해결했다. 버섯이 올려진 타파스는 맛이 아주 훌륭했다.

 

팜플로나를 나오면서 옛 요새였던 시우다델라도 들렀다.

 

 

야트마한 산자락이 농지로 바뀌어 누런 색을 지닌 새로운 풍경을 선사했다.

 

 

싸리키에기에도 아담한 규모의 산 안드레스(San Andres) 성당이 저녁 미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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