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부에 자리잡은 알프스 산맥은 동으론 슬로베니아, 서쪽으론 프랑스에 이르는 광대한 산군이다. 그 가운데 오스트리아와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가 있다. 현지에선 이탈리아 알프스가 알프스 산맥에 속한 북부 산악 지역 전체를 의미하기보다는 북서쪽의 아오스타 밸리(Aosta Valley)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남티롤 지방에 속하는 돌로미티는 그냥 돌로미티란 이름으로 불린다. 예전에 우리는 돌로미테라 부르곤 했는데, 이탈리아에 속하는 땅인만큼 이탈리아 발음에 맞춰서 돌로미티라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였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 돌로미티를 영화에서 먼저 접했을지도 모른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산악구조대원으로 나오는 <클리프행어(Cliffhanger)>를 촬영한 곳이 바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클리프행어를 보면서도 로케이션이 돌로미티인 줄은 나도 전혀 눈치채지 못 했다.
돌로미티 트레킹은 트레치메를 한 바퀴 도는 당일치기 코스부터 시작을 했다. 공식적으론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라 불리는 곳인데, 트레치메란 세 개의 거대한 바위산을 일컫는 말이고 라바레도는 그냥 지명이다. 돌로미티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돌로미티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라 볼 수 있다. 작은 봉우리란 의미의 치마 피콜로(해발 2,856m)와 가장 높은 봉우리를 의미하는 치마 그란데(3,003m), 동쪽에 있는 봉우리란 의미의 치마 오베스트(2,972m)가 나란히 붙어있다. 우리 식으로 삼형제봉이라 이름을 붙이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우리가 첫날 걸은 지역은 모두 트레치메 자연공원(Parco natuale Tre Cime)에 속했다.
아우론조 산장(Rifugio Auronzo)까진 차로 오를 수 있었다. 산장 앞에 서면 시야가 탁 트이며 울퉁불퉁한 산세가 눈 앞에 펼쳐진다. 돌로미티란 명성이 명불허전이란 것을 첫날부터 확인시켜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날씨 또한 쾌청해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넓고 평탄한 길을 따라 라바레도 산장으로 향했다. 산 속에 홀로 서있는 조그만 교회 앞에는 옛날 군복 차림의 노병들이 모여 산악 전쟁에서 죽은 영령들을 추모하고 있었다. 우리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함께 묵념을 올렸다. 두 아이를 데리고 홀로 걷는 젊은 엄마가 눈에 띄었다. 한 아이 손을 잡고 또 한 아이를 등에 업은 엄마라 절로 눈길이 갔다. 엄마 손을 잡았던 네댓 살 여자 아이가 갑자기 3m 높이의 바위를 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여자 아이의 볼더링 실력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 같으면 위험하다고 뜯어말릴 판인데 이 엄마는 아이에게 격려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덩달아 옆에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 날망에 오르니 로카텔리 산장(Rif. Locatelli)이 눈에 들어온다. 산장으로 내려서며 바라본 트레치메의 모습이 위풍당당하게 다가왔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럴 때면 늘 집에 두고 온 가족이 생각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환상적인 풍경을 함께 즐기지 못 하는 것이 아쉬웠다. 산장 앞에는 돌탑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거기엔 산장을 세운 제프 이너코플러(Sepp Innerkopler)의 흉상이 새겨진 동판이 있었다. 이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산악부대를 이끌었던 사람으로 전쟁 중에 사망했다. 이 주변엔 1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가 싸운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트레치메를 한 바퀴 돌아 아우론조 산장으로 돌아옴으로써 첫날 트레킹을 마쳤다. 해질녘에 바위가 붉게 물드는 순간을 보지 못한 것은 좀 미련으로 남았다.
첫날 트레킹을 시작한 아우론조 산장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산 속에 외롭게 교회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마침 그곳에서 산악 전쟁에서 죽은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라바레도 산장을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네댓 살쯤 되었을 어린 꼬마가 볼더링 실력을 뽐내며 조그만 바위를 오르고 있다.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는 트레치메의 위용에 절로 가슴이 떨렸다.
로카텔리 산장에서 바라본 트레치메의 모습. 산장 앞에는 이너코플러의 흉상이 새겨진 동판이 있었다.
트레치메 뒤쪽을 돌다가 의외로 많은 에델바이스를 발견했다.
트레치메를 한 바퀴 돌며 돌로미티의 다양한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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