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Miami)에서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의 플라밍고(Flamingo)를 향해 출발했다. 통행료를 받는 구간이 어찌나 많은지 공연히 짜증이 일었다. 차를 빌릴 때 선 패스라는 것을 샀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오도가도 못하거나 벌금만 왕창 물뻔했다. 어느 구간은 현금이나 카드를 받는 요금 징수대가 있고 어느 구간은 이렇게 미리 구입한 패스만 허용을 하니 여기 사는 사람들도 헛깔릴 것이 분명했다. 내년부터는 현금 징수를 모두 없애겠다고 하니 아예 그러는 편이 훨씬 편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쪽으로 열심히 차를 모는데 갑자기 우리 눈 앞에 비스케인(Biscayne) 국립공원으로 빠져나가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 공원은 해상 공원이라 배를 타고 나가면 꼬박 하루가 필요한 곳이라 사실 망설였던 곳이다. 곧바로 출구가 나올 것이기에 고민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정표를 본 이상 스쳐 지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가보기로 했다. 이정표가 하늘의 계시라 생각했다.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페달을 밟는 라이더들의 뒤를 좇아 바닷가로 접근을 했다.
비스케인 국립공원은 해양 생태계의 보고라는 곳이다. 사주와 산호초, 맹글로브(Mangrove) 숲, 그리고 만 등 네 가지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1980년 지정이 되었다. 공원 95%가 바다로 이루어져 있다니 육지는 우리가 서있는 공원 안내소가 전부 아닐까 싶었다. 공원에서 운영하는 보트 투어가 있고 그 보트는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바닷속 산호와 물고기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공원 안내소의 영상물을 감상하고 주변을 산책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으로 다시 들어섰다. 플라밍고(Flamingo)까지는 홈스테드(Homestead)의 공원 입구에서 58km을 남으로 달려야 한다. 플로리다 반도 남쪽 끝단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곳과는 분위기가 좀 달라 보였다. 바닷가 잔디밭에 텐트가 몇 동 자리잡고 있었다. 캠핑장 입지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았다. 샤크 밸리에 비해선 사람들이 많지 않아 좋았다.
플라밍고로 가면서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 하나. 오르내림이 전혀 없는 평지를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길가에 무슨 패스라는 교통표지판이 나타나 잠시 멍해졌다. 아니, 이런 곳에 웬 고개? 급히 길가에 차를 세우고 표지판 앞에 섰다. 분명히 패스라 적혀 있는데 그 높이에 실소가 터졌다. 높이 3피트라 적혀 있었다. 해발 고도가 1m도 되지 않는 것이다. 패스라면 최소한 수 백 미터에서 5천 미터는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1m짜리 패스가 나타난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원의 표고가 해발 3m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플라밍고에서는 에코 폰드(Eco Pond) 트레일을 한 바퀴 돌았다. 1km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코스였지만 아주 잘 택했단 생각이 들었다. 연못 가운데 섬이 하나 있는데 의외로 나무들이 많았다. 그 나무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새들이 마치 나무 열매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배고픈 새들은 물가로 내려와 물고기 사냥에 몰입하고 있었다.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라지만 우리에겐 고즈넉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카메라에 커다란 망원렌즈를 달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내는 찰칵찰칵 카메라 소음이 전부였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조류 사진가에겐 천국과 같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국립공원을 빠져 나오면서 로얄 팜(Royal Palm)의 앤힌가 트레일과 검보 림보(Gumbo Limbo) 트레일을 엮어서 돌았다. 각각 1.2km와 0.6km의 짧은 트레일이라 부담이 없었다. 앤힌가 트레일은 늪지 속으로 판자길을 만들어 놓아 가까이에서 악어와 새들을 편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앤힌가 외에도 빨간 머리를 가진 독수리 터키 벌처(Turkey Vulture)는 사람이 다가가도 전혀 미동도 않고 본 척도 않는다. 사람에 이골이 난 것인지, 겁이 없는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검보 림보 트레일은 껍질이 붉은 검보 림보 나무를 볼 수 있는 트레일이었다.
국립공원을 벗어나 길을 재촉하다가 묘한 이름을 가진 과일 가게가 있어 차를 세웠다. 상호가 ‘Robert Is Here’였는데 우리 말로 하면 ‘로버트 여기 있다’로 해석이 된다. 1959년 한 농부가 오이를 수확해서는 길가에 가판대를 만들어 놓고 6살짜리 아들 로버트에게 팔라고 했다. 하지만 토요일 하루 종일 오이를 사겠다고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다음 날엔 길 양쪽에 ‘Robert Is Here’란 표지판을 세웠더니 오이가 모두 팔렸다 한다. 그 후로 장사가 아주 잘 돼 로버트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우리가 간 날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과일 가판대 외에도 이 집에서 만드는 밀크쉐이크가 유명해 그것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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