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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17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⑨ (2)
  2. 2014.01.06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③
  3. 2012.11.22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 <11>

 

드디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날이 밝았다. 마지막 결전을 앞둔 병사의 심정이 이랬을까. 새벽 3 30분에 기상을 했다. 밖은 아직 어두컴컴했다.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지만 일찍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로지 식당은 벌써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삶은 계란과 삶은 감자, 토스트로 간단하게 아침을 때웠다. 대부분 식욕이 없어 드는둥 마는둥 음식을 건들이다 만다. 나만 혼자 식욕이 있다고 시건방을 떨 수가 없어 계란과 감자를 봉투에 담아 배낭에 넣었다. 말을 타고 토롱 라로 오를 두 사람은 5 30분 출발이라 로지에 남겨두고 우리만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아침 4 15분에 로지를 나섰다.  

 

이 지역은 묘하게도 새벽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 춥고 세찬 골바람이 불어오면 토롱 라를 오르는데 엄청 애를 먹기 때문에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것이 하나의 불문율이었다. 신기하게도 바람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적막강산 속에서 토롱 라쪽으로 헤드랜턴 불빛이 쭉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검은 산괴를 감아오르는 커다란 뱀의 형상 같았다. 하늘엔 반달이 떠서 헤드랜턴없이도 길을 식별할 수는 있었다. 고도계를 수시로 확인해가며 고도 5,000m 지점에서 일행들을 불러세웠다. 달랑 세 명뿐이었지만 지금까지 해오던대로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들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나를 제외하곤 모두가 5,000m를 처음 경험하는 순간인데도 표정은 도통 밝지 않았다. 기념 촬영도 그들에겐 성가신 듯 보였다.

 

산자락이 점점 밝아오더니 그 위를 장식한 다양한 형태의 구름이 나타났다. 구름만 찍어도 아름다운 사진이 될 것 같았다. 토롱 라에 가까워질수록 추위를 동반한 강풍이 점점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의 가장 큰 장애물인 토롱 라가 어찌 그리 호락호락할 리가 있겠는가. 토롱 라를 20여분 남겨놓은 지점에서 말을 타고 올라온 두 분이 우리를 추월해 갔다. 표정을 보아하니 엄청난 추위에 떨었던 기색이 역력하다. 하이캠프를 출발해 네 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 해발 5,416m의 토롱 라에 닿았다. 너무 춥고 다리가 무거워 토롱 라에 오른 희열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그저 빨리 추운 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토롱 라 정상엔 찻집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사람들을 불러 찻집으로 들어섰다. 뜨거운 차 한 잔으로 추위를 녹이는 수밖에 없었다. 배낭 안에 있는 계란이나 감자를 먹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연히 짐만 만든 셈이다. 찻집은 사람들로 너무나 붐볐다. 추위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자꾸 들어오려고 해서 오래 앉아있기가 미안했다. 추위와 고산병에서 빨리 벗어나려면 하산이 최선의 방법이다. 우리도 토롱 라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는 하산을 서둘렀다. 토롱 라의 악명높은 강풍이 하산에 나선 우리의 등을 때린다. 이러다가 바람에 밀려 앞으로 고꾸라질 판이다. 새벽에 출발하지 않았더라면 이 바람과 하루종일 씨름했을 지도 모르겠다.  

 

제각각 컨디션에 따라 하산 속도가 달랐다. 최정숙 회장이 숨이 가프다며 자꾸 뒤로 처진다. 도저히 걸어 내려갈 수가 없으니 말을 불러 달라고 해서 사람을 페디로 먼저 내려보냈다. 하지만 그 마을엔 말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내가 뒤에서 부축하면서 천천히 내려왔다. 급경사를 내려와 페디에서 점심을 먹었다. 묵티나트까지는 여기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다. 길이 무척 편해졌다. 바람도 잦아들었다. 묵티나트는 힌두교에서도, 티벳 불교에서도 성지라 불리는 곳이라 일년 내내 성지순례를 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묵티나트를 유명하게 만든 절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티벳 불교와 힌두교가 공존하는 특이한 절이었다. 군인이 순직했는지 수십 명의 군인들이 몰려와 추모제를 지내고 있었다.   

 

묵티나트의 밥 말리(Bob Marley) 호텔에 투숙을 했다. 호텔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전에 묵었던 로지와는 격이 달랐다. 우선 뜨거운 물이 나와 샤워도 할 수 있었고 고장이 나긴 했지만 좌변기도 갖추고 있었다. 제법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를 풍기는 식당에서 만찬을 즐겼다. 정말 만찬이라 부를만 했다. 이 식당의 요리사가 호주 시드니에서 15년 경력을 쌓은 후에 이곳에다 식당을 열었다는 거창한 소개도 있었다. 특별히 치킨 시들러를 시켰다.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과는 맛에서, 가격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다. 토롱 라를 무사히 넘은 안도감에 다들 자축하는 기분으로 치킨 시들러를 맛보았다. 우리가 치킨 시들러 먹는 모습을 눈으로만 봐야 하는 두 스님에겐 좀 미안하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 조촐한 음식으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이것도 히말라야 트레킹의 묘미 아니겠는가. 그 동안 고산병으로 고생이 많았던 사람들 얼굴에서 안도감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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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치앤치즈 2016.08.10 0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안나푸르나 등반하셨군요. 정말 특별한 추억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보리올 2016.08.10 14: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솔직히 이건 안나푸르나 등반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유명한 트레킹 코스를 돈 것뿐이지요. 그래도 5,416m의 토롱 라를 넘어야 했기에 몸이 좀 고달팠던 기억이 납니다.

 

카르테에서 다라파니까지는 한 시간 거리. 다라파니 초입에서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 일행을 먼저 보내고 내가 대표로 남아 검사를 받았다. 검문이라기보다는 허가증을 제시하면 거기에 스탬프를 찍고 장부에 인적사항을 적는 그런 요식 행위였다. 경찰은 그리 친절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트집을 잡지도 않았다. 검문소를 지나면 마나슬루와 안나푸르나 가는 길이 갈린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라르케 패스(Larke Pass) 방향으로 오르면 마나슬루가 나온다. 여기선 4~5일은 잡아야 마나슬루 베이스 캠프에 닿을 것이다. 몇 년 전에 그 길을 걸어 내려온 적이 있어 기억이 났다.

 

학생들의 등교길 행렬을 지나치고 선한 눈빛을 가진 꼬마들과 마주쳤다. 담장에 쌓아놓은 나무 위에 종이를 펴놓고 공부하는 여자아이도 만났다. 이들이 바로 네팔의 미래 희망 아니겠는가. 티망(Temang)까진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뒤로는 마나슬루가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채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우람한 산세가 단연 독보적이었다. 조금 있으니 하얀 뭉게구름이 정상을 가려 버렸다. 손목에 찬 고도계로는 해발 2,600m가 넘었지만, 지도에는 티망베시(Temang Besi)라 하여 2,270m라 표기되어 있었다. 지도가 잘못된 것인지, 서로 다른 마을을 의미하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히말라야 다른 곳보다 안나푸르나는 말똥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다. 여기선 운송 수단으로 말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길바닥엔 말라붙은 말똥이 즐비하고 거기서 나는 냄새 또한 하나의 상징물이 되었다. 우리 옆으로 크고 작은 말떼들이 지나가면서 뽀얀 먼지를 일으킨다. 탄촉(Thanchok)을 지나며 우리 앞으로 또 다른 설산이 나타났다. 포터 긴딩의 설명으로는 안나푸르나 3봉이라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지도상으론 안나푸르나 2봉이다. 3봉은 앞으로 2~3일 더 걸어야 우리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네팔 사람들 이야기라고 무조건 믿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묵을 차메(Chame)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은행도 있고 인터넷 카페도 몇 개 있었다. 급히 메일을 보낼 일이 있어 인터넷 카페에 갔더니 한글 자판은 물론 없었다. 접속 속도가 너무 느려 사이트 하나 여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장난이 아니었다. 겨우 다섯 줄짜리 메일 하나 보냈는데 220루피를 달란다. 1분에 10루피씩 받으니 이 메일 하나 보내는데 22분을 썼다는 이야기다. 우리 나라에 비하면 무척 비싼 셈이다. 하기야 히말라야까지 와서 인터넷을 하겠다는 내가 잘못이지, 인터넷을 하려면 위성을 사용해야 하는 이들을 탓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로지에 든 일행들이 슬슬 신체적 변화를 느끼면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두 분 스님은 벌써부터 약한 두통을 호소한다. 해발 2,700m의 고도를 넘겼으니 긴장감이 조금씩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부터는 나도 술을 마시지 말자 마음을 먹었지만 포터들에게 네팔 막걸리 창을 사주면서 나도 덩달아 한 잔을 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창을 한 잔 더 마셨다. 이러다가 내가 가장 먼저 뻗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일부턴 3,000m 위로 오르니 무조건 금주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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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과연 라르케 패스를 얼마나 쉽게 넘느냐에 있었다. 해발 5,200m를 처음 오르는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이 고개 오르기가 심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눈이 녹기 전에 패스를 통과할 요량으로 한 대장이 4시 기상, 5시 출발로 시각을 조정했다. 어둠 속을 랜턴 행렬이 길게 이어간다. 처음부터 우리와 줄곧 함께 했던 부디 간다키 강이 이 지점에서 우리 곁을 떠났다.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을 걸었다. 너무나 지루했다. 도대체 라르케 패스가 어디에 있는 것이냐는 불평도 쏟아져 나왔다. 눈에 반사된 강렬한 햇볕은 우리 얼굴을 금방이라도 익힐 것 같았다. 열 걸음 내딛고 호흡을 가다듬기를 얼마나 했던가. 우리 눈 앞에 오색 룽다가 휘날리는 라르케 패스가 나타났다. 3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란 예상이 결국 4시간 30분 걸려 그 지긋지긋한 라르케 패스에 도착한 것이다. 라르케라는 네팔 말이 원래 길다는 의미라니 어쩌겠는가.

 

라르케 패스의 고도에 대해선 다들 엇갈리는 자료를 내놓는다. 누구는 5,100m라 하고 누군 그 보다 높은 5,200m라 이야길 한다. 손목 시계에 찬 고도계로는 5,070m가 표시되었다. 지도마다 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좀 지루하긴 했지만 모두들 탈없이 라르케 패스를 넘었다. 큰 고통 없이 전구간 중 가장 높은 지점을 넘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그 이야긴 하행 구간에선 그 동안 자제해 왔던 음주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빔탕(Bimtang)으로 내려서는 길은 미끄럼과의 한판 승부였다. 표면이 녹으며 미끄럽기 짝이 없었다. 미끄러져 골짜기로 떨어지면 죽지야 않겠지만 부상은 면치 못할 것은 자명한 일. 빔탕에 도착하니 누군가 위스키를 꺼내 한 잔씩 돌린다. 큰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는 생각에 단숨에 들이켰다. 뱃속에서 짜르르 취기가 올라온다. 텐트에서 살짝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저녁 먹으라 부르는데 영 식욕이 나질 않는다.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밥 한 술 뜨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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