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둘러싸인 레벨스톡(Revelstoke)에서 이틀을 묵었다. 캐나다 로키에서 흘러내리는 컬럼비아 강이 마을을 지난다. 마을 뒤로 장벽처럼 우뚝 솟아 있는 산이 바로 마운트 레벨스톡(Mount Revelstoke, 1939m)이다. 1914년에 이 산을 중심으로 조그만 크기의 국립공원이 생겼다. BC주에 마운트 레벨스톡 국립공원이 탄생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운트 레벨스톡을 캐나다 로키에 속한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산은 로키 산맥에 속하지 않는다. 로키 산맥에서 서쪽으로 한참 떨어진 설컥 산맥(Selkirk Mountains)에 있는 산이다. 산악 풍경이 장관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여름철이면 정상부 인근에 야생화가 만발해 꽤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다. 게다가 메도우즈인더스카이 파크웨이(Meadows-in-the-Sky Parkway)라 불리는 공원도로를 타고 정상 부근까지 차를 가지고 오를 수 있다. 그 덕분에 정상부에서 출발하는 가벼운 트레킹을 즐기기엔 이만한 곳도 드물다.

 

이 하이킹 또한 BC주 관광청에서 주관한 팸투어의 일환이라 관광청에서 배정한 현지 산악 가이드가 붙었다. 레벨스톡에서 가이드 차량을 이용해 정상부로 올랐다. 먼저 파이어타워(Firetower) 트레일을 타고 1927년에 세웠다는 산불감시초소로 올랐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은 사방으로 조망이 트이는지라 아름다운 산세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에바 호수(Eva Lake)로 가는 트레일로 이동했다. 성긴 숲과 초원이 나타났고 돌사태가 난 너덜지대도 지났다. 그리 힘들이지 않고 편도 6km를 걸어 에바 호수에 닿았다. 호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산 속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호수에 비친 산봉우리와 줄지어 선 나무들이 인상적이었다. 호수 옆에 나무로 지은 캐빈이 하나 있었다. 그 안에 비치된 방명록에 이름도 적었다. 산행 기점으로 나오다 왼쪽 사이드 트레일을 타고 밀러 호수(Miller Lake)에 들렀다. 에바 호수와 같이 한적한 호수라는 점 외엔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공원도로 26km를 오르면 정상부 주차장에 닿는다. 차로 1,600m나 고도를 올린다.

 

 

 

파이어타워 트레일을 걸어 정상에 있는 산불감시초소로 올랐다.

 

 

에바 호수로 가는 트레일을 걸었다.

 

 

 

고산 초원지대와 돌사태가 만든 너덜지대도 지났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뒤돌아보면 이런 멋진 산악 풍경도 만난다.

 

 

 

산 속에 호젓하게 자리잡은 에바 호수는 한없이 맑고 고요해서 좋았다.

 

에바 호수 건너편에 펼쳐진 산세가 제법 옹골차다.

 

 

한때 레인저가 사용했다는 캐빈 안에는 방명록이 비치되어 있었다.

 

 

 

트레일을 되돌아 나오다가 잠시 밀러 호수에도 들렀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되었다. 이곳으로 오를 때 낙석 사고가 있었던 구간이라 출발시각을 앞당기기로 했다. 새벽녘 어스름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일찍 식사를 마치고 출발을 서둘렀다. 고산병에 시달리던 사람들도 빨리 이 고지를 벗어나고 싶어하리라. 두 시간 가량 열심히 걸었을까. 우리 양옆에 있던 절벽이 사라지고 산자락이 제법 멀리 자리잡았다. 낙석 위험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도 멀리서 돌 구르는 소리는 요란했다.

 

선두는 어디를 지나는지 우리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급히 쫓아갈 이유도 없기에 여유롭게 주변 경치를 둘러본다. 그 때, 우리 오른쪽 뒤편으로 거대한 산군 하나가 나타났다. 꿈 속에서나 그리던 에베레스트가 우리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그 옆에 있는 로체와 로체샤르도 보인다. 이들을 맞을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다가오다니무심하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바위를 찾아 그 위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경건한 마음으로 에베레스트를 올려다 보았다. 모처럼 한가하던 카메라가 다시 바빠졌다.

 

상행 구간에 무척이나 지겨웠던 바룬 빙하의 너덜지대를 또 걷는다. 무릎이 시큰거려도 멈출 수는 없는 일. 거의 3일간 너덜지대를 걸었으니 입에서 신물이 날만 하다. 우리가 걷는 너덜지대 아래에서 우렁찬 물소리가 들린다. 빙하 아래로 물이 개천이 되어 흐르는 것이다. 그 위를 이렇게 태연하게 걷고 있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당말 베이스 캠프로 내려오면서 각양각색의 돌무늬가 시선을 끌었다. 바위로 생성되어 이렇게 계곡으로 떨어져 마모될 때까지 수 만년이 흘렀겠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이런 무늬를 보게 된다. 일행들과 떨어져 돌무늬에 관심을 보이다가 가장 늦게 당말 베이스에 도착했다. 라면을 끓여 늦은 점심을 대신했다. 도중에 삶은 계란과 감자로 요기를 해서 그런지 그리 시장하진 않았다.

 

텐트에 들어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보냈다. 날씨가 갑자기 궂어지며 비바람에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런 때는 밖으로 나도는 것보다 침낭 안이 최고다. 어느 새 낮잠에 빠졌다. 이러다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 큰일인데 하면서도 잠을 뿌리치지 못했다. 저녁을 일찍 먹으면 보통 10시간에서 11시간을 잠으로 때워야 하는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 엄청난 고역이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드디어 하이 베이스 캠프로 오르는 날이 밝았다. 마칼루 정상에서 해가 돋는다 생각했는데 금방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쬔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텐트에 남기로 하고 10명만이 하이 베이스 캠프로 출발했다. 눈은 어디에도 없었고 끝없이 펼쳐진 너덜지대가 우릴 반길 뿐이다. 이럴 때 무릎 보호대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다. 며칠 동안 이런 길을 걸을 줄이야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상당한 난이도가 있어 보이는 마칼루 서벽을 보면서 발길을 재촉한다.

 

3,000m가 넘는 고도부터는 나름대로 호흡에 신경을 많이 썼다. 천천히 50보를 걷고 심호흡을 하는 식으로 꾸준히 걸었다. 급경사 오르막이라면 걸음을 30, 20보로 줄이면서 말이다. 그 덕분인지 하이 베이스 캠프까지 두통이나 구토, 무기력과 같은 고산병 증세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고산병으로 고생해 본 사람은 안다.

 

카트만두를 출발한 열흘이 지난 51일에야 해발 5,600m의 하이 베이스 캠프에 올라설 있었다. 무려 네 시간이나 걸렸다. 하이 캠프에 눈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 모르겠다. 베이스 캠프가 눈으로 덮히면 쓰레기 찾기가 매우 어렵다. 마침 마칼루를 등반 중인 브라질 원정대의 마샤(Marcia) 우리의 취지를 듣고는 선뜻 쓰레기 봉투를 들고는 앞장서 우릴 안내한다. 그녀는 브라질 마칼루 원정대의 베이스 캠프 매니저였다.

 

대원과 스탭, 마샤까지 나서 약 두 시간에 걸쳐 쓰레기를 모았다. 각자 수거한 쓰레기가 작은 산처럼 수북이 쌓였다. 쓰레기 분류 작업을 통해 소각할 것은 따로 모아 마샤에게 원정대 철수 시점에 소각을 부탁했다. 원정대가 체류하는 기간에는 소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깡통은 돌로 찌그러뜨려 부피를 적게 다음 마대에 넣었다. 깡통 중에는 한국 상표가 선명한 꽁치, 골뱅이, 등도 있었다. 어느 원정대가 즐겼을 와인 병도 넣었다. 깡통과 병으로 가득한 마대의 쓰레기는 좋게도(?) 우리와 같이 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까지 간다.

 

이제는 하산이 남았다. 머리를 강타하는 두통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출발을 서둘렀다. 어차피 재패니스 캠프까지 갈 것이면 여유가 있는데 말이다. 그 지겨운 너덜지대를 다시 지나 재패니스 캠프로 돌아왔다. 하산길이라 발걸음에 속도가 붙었다는 것이 오를 때완 달랐다. 식당 텐트에 모여 하산 코스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원래는 해발 6,000m가 넘는 이스트콜, 웨스트콜을 넘어 루크라로 빠지는 라운드 코스로 일정을 잡았으나, 대원들 컨디션을 보곤 한 대장은 무리라는 의견을 냈다. 두세 명을 빼곤 대원들도 들어온 길로 다시 나가자는 의견이었다. 무더위에 녹아나고 무릎이 시큰거렸던 그 길이 그래도 가장 쉬운 코스라니 별 수 있겠는가.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 대장이 허리가 좋지 않음에도 하이 베이스 캠프로 운행을 결정했다. 본인 문제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출발 전 축구선수들처럼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파이팅을 외쳤다. 여기서부터 하이 베이스 캠프까지는 하루 거리다. 하루를 푹 쉬었더니 컨디션이 좋아졌다. 고소 증세로 그렇게 힘들어 하는 대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조심해야 할 곳은 바로 오늘 구간이다. 당말을 출발하면 5,000m 고도를 들어서면서 하루 종일 이 고도에서 걷고 자야 하니 다들 긴장할 수밖에.

 

마칼루를 오른쪽에 끼고 계곡을 따라 오른다. 빙하를 따라 펼쳐진 모레인 지대에 엄청난 너덜지대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무릎이 튼튼하다 해도 당해낼 없는 곳이었다. 돌들이 불안정해 우리를 더욱 긴장시킨다. 아차 하면 발목을 삐끗할 위험이 높아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었다. 멀리선 눈사태 나는 소리가 들리고 계곡 양 옆에 가파르게 솟은 절벽에서는 돌들이 굴러 떨어진다. 재수가 없어 돌에 머리라도 맞는다면 생명이 왔다갔다할 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위를 쳐다보기 바쁘다. 우리 운행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계곡 한 가운데 모여 감자와 달걀을 삶아 점심을 해결했다. 식욕이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먹어 두어야 한다. 여기서 어떻게 감자 삶을 물을 구할까 궁금했는데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가이드 한 친구가 빙하 어느 부위를 돌로 깨니까 거기서 물이 콸콸 흘러 나오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이 친구들은 귀신같이 물줄기를 찾아낸다.

 

점심을 마치고 먼저 출발한 대원 중에서 사고가 났다. 오른쪽 절벽 아래를 걷던 유성삼 선배가 낙석에 허벅지를 정통으로 맞은 것이다. “환자 발생!”이란 외침에 대원, 스탭들이 득달같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옆에서 부축을 하며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속력은 더딜 수밖에. 한 대장이 옹추와 협의해 오늘 야영지를 재패니스 베이스 캠프로 변경했다. 서너 시간 일찍 운행을 마치게 된 것이다. 텐트 안에서 다친 부위를 확인했더니 그 사이에 환부가 시커멓게 멍이 들었고 엄청 붓기도 했다. 머리에 맞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원래는 하이 베이스 캠프에 올라 하룻밤을 묵기로 했던 일정이 부상자 발생으로 차질을 빚었다. 우리야 일찍 운행을 마쳐 내심 좋기만 했지만서도. 해발 5,400m인 재패니스 베이스 캠프에서의 하룻밤도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대장이 일정을 조정했다. 텐트를 그대로 여기에 두고 내일 하이 베이스 캠프에 올라 청소를 마친 후 다시 여기서 하루를 묵겠다 공지를 한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늘 구간에 낙석 위험 지대가 있어 얼음이 녹기 전에 그곳을 통과하자고 새벽 4시에 기상해 출발을 서둘렀다. 이번에는 바룬(Barun) 강으로 내려간다. 어렵사리 올라온 고도를 또 다시 뚝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런 후 강을 옆에 끼고 완만한 오르막을 따르면 된다. 내려서는 도중에 뭄북(Mumbuk) 야영장에서 대원들과 함께 잠깐 동안이나마 쓰레기 치우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부터 설사면이 꽤 가파르다. 창피스럽게도 이 설사면에서 7번이나 넘어졌다. 엉덩방아야 바로 일어나면 되지만 한 번은 설사면 10 m를 미끄러져 내려와 여러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카메라를 눈 속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손을 높이 들고 넘어졌는데, 그 때문인지 오른발이 약간 뒤틀리면서 무릎에 순간적인 통증을 느꼈다. 좀 불편하긴 했지만 큰 부상이 아니라 천만다행이었다.

 

바룬 강으로 내려섰다. 이제부턴 물줄기를 거슬러 원류까지 줄곧 오르기만 하면 된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계곡 오른쪽으론 소나무가 빼곡하고 왼쪽엔 랄리구라스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누구의 손길도 타지 않은 원시림으로 보였다. 푸른 이끼도 많았다. 산사태로 무너져내린 산사면 아래에는 너덜지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몇 개의 카르카를 지났다. 카르카란 초지가 있어 야크나 양을 방목해 키우는 곳을 일컫는데, 타시가온 사람들이 봄이면 이곳으로 들어와 소와 양을 키우고 가을이 되면 마을로 돌아간다.

      

강을 따라오르는 길은 완만하고 순했다. 하얀 설산을 바라보며 걷다가 강을 건너면 양리 카르카(Yangle Kharka)에 닿는다. 점심을 먹기 위해 배낭을 내려 놓고 쉬는 도중에 영국에서 온 한 식물학자를 만났다. 3개월간 체류하며 히말라야의 식물종을 연구하고 있단다. 혼자서 가이드와 포터 6명을 데리고 다닌다. 당말 베이스 캠프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부자도 만났다. 다와와 그의 아들 치링이었는데, 7살짜리 치링이 등짐을 지고도 제법 잘 쫓아간다.

 

조금 욕심을 내서 해발 4,100m의 자크 카르카(Jark Kharka)까지 하루에 끊었다. 고도를 높일수록 바룬 강의 폭이 점점 좁아진다. 펄쩍 뛰면 건널 수 있는 개천 수준으로 변했지만 흘러가는 강물이 내는 소리는 여전히 우렁찼다. 원용덕 선배의 상태가 아주 나빠졌다. 며칠 간의 고된 일정 때문인지 몸에 이상 징후를 보이며 너무 괴로워한다. 일단 내일 아침에 헬기를 불러 카트만두로 후송시키기로 합의를 보았다. 오늘 밤에 아무 일도 없어야 할텐데

 

고산병에 대한 한 대장과 김덕환 선배의 진단법은 좀 다르다. 고산 원정 경험이 많은 한 대장은  일단 밥숟가락을 들지 못하면 고산병으로 본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김덕환 선배는 이와는 달리 의학적으로 접근한다. 높은 곳에 오르면 평소 약했던 부위가 탈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고, 진짜 위험한 고소 증세는 오줌을 제대로 누지 못하는 증상이란다. 이게 발전하면 폐수종이 되기 때문에 고소에서 이뇨제 처방은 보편적이다. 난 아직 매끼 밥도 잘 먹고 오줌도 잘 누는 편이니 걱정은 좀 덜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