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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28 [남도여행] 목포
  2. 2016.05.06 [캄보디아] 프놈펜-3 (4)
  3. 2015.01.12 중국 허난성 유저우

 

이번엔 목포다. 한 번 다녀간 적은 있는데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았다. 목포를 간다니 왜 머릿속에 목포는 항구다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는지 모르겠다. 가사도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도 떠올랐다. 아무튼 목포가 그리 낯설진 않았다. 고속버스 터미널로 후배가 차를 가지고 나왔다. 모 부처 지방조직의 장으로 보직을 받아 서울에서 홀로 내려와 있는 후배였는데 자꾸 내려오라 해서 얼굴이나 본다고 나선 길이다. 터미널에서 바로 식당으로 직행해 저녁부터 먹었다. 목포의 봄철 별미라 불리는 바지락회무침을 시켜 먹고는 유달산에 올랐다. 시간이 늦어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해는 보지 못 했지만 그래도 불을 밝히기 시작하는 목포 시내와 어둠이 내려앉는 바다는 눈에 넣을 수 있었다.

 

다음 날, 그 친구가 근무하러 간 틈을 이용해 홀로 목포 구경에 나섰다. 해양유물전시관부터 들렀다. 신안선 등 네 개의 전시실에는 신안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도자기와 난파선 잔재를 전시하고 있었다. 길 건너편에 있는 남농기념관도 들렀다. 우리나라 남종화의 거장이자 진도 운림산방의 주인이었던 남농 허건 선생이 건립한 미술관으로 자신이 그린 몇 점의 작품 외에도 조선조 화가들 작품과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 그림까지 진열하고 있었다. 추사 김정희가 해동 제1인자라고 극찬했던 소치 허련의 작품도 보였다. 소치 선생은 남농의 조부가 된다. 바닷가를 걸어 갓바위에 닿았다. 바닷가 바위가 삿갓을 쓰고 있는 스님 모습이라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하는데 그리 대단한 물건으로 보이진 않았다. 해안 침식에 의한 작품이 많지 않은 지형이라 이것도 천연기념물로 보호를 받고 있었다.

 

 

 

유달산에선 서해 바다와 목포 시가지를 조망하기 좋았다. 이순신 장군 동상도 세워져 있었다.

 

 

 

 

 

 

무료로 입장한 해양유물전시관에서 그 동안 말로만 들었던 신안 유물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가 있었다.

그 가운데는 보물로 지정된 유물도 몇 점 있었다.

 

 

 

남농 허건 선생이 세운 남농기념관을 찾았다. 남농의 작품과 소치 허련 선생의 작품도 있었다.

관리인의 허락을 받아 남농 작품과 그가 쓰던 낙관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바닷물에 침식된 두 개의 바위가 마치 스님 두 분이 삿갓을 쓰고 모습과 같다고 해서 갓바위란 이름이 붙었다.

 

 

저녁은 목포 바닷가에 있는 해촌이란 식당에서 했다.

낚지와 바지락에 야채와 과일을 넣어 새콤하게 무친 바지락회무침은 이 식당의 봄철 별미로 통한다고 한다.

 

 

전남도청이 위치한 남악신도시에 있는 해원옥에서 후배와 점심을 먹었다. 꽃게튀김, 양념게장, 간장게장이 차례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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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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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군데 시장을 둘러보고 발걸음은 왕궁(Royal Palace)로 향했다. 현재 캄보디아 국왕인 시하모니(Sihamoni)가 거처하고 있는 왕궁은 무슨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지 문을 열지 않았다. 오후 2시에 문을 연다고 하는데 마냥 기다리기엔 날씨가 너무 더웠다. 멀리서 외관이나 보는 수밖에 없었다. 크메르 건축양식으로 지었다는 왕궁은 정중앙에 사원처럼 첨탑을 갖고 있었다. 왕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캄보디아 국립박물관에 들렀다. 이 역시 크메르 사원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빨간 건물과 푸른 정원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박물관엔 조각품이나 도자기 등 크메르 유적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다. 입장권을 살 때 분명 사진 찍을 수 있다고 해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실내에선 찍지마라고 한다. 감시원이 없는 틈을 타서 실내도 살짝 찍었다.

 

길거리에서 순박해 보이는 오토바이 운전자를 만나 킬링 필드(Killing Fields)로 가자고 했다. 툭툭은 25불을 달라고 하는데 오토바이는 10불을 달라고 했다. 혼잡한 거리를 곡예하듯이 40여 분을 달렸던 것 같다. 푹푹 찌는 아스팔트 복사열에 차량과 오토바이가 뿜어내는 매연, 수시로 빵빵거리는 경음기 소리, 내 발 옆을 스치며 지나가는 차량까지 혼잡함 그 자체였다. 한글로 쓰인 광고판을 그냥 달고 질주하는 승합차까지 모든 게 무질서 속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았다. 모처럼 스릴을 즐기는 것 같아 내 가슴 속은 오히려 뿌듯하기도 했다. 헬멧을 쓰지 않았다고 경찰이 잡는 것을 몰래 도망치는 긴장감도 나름 재미있었다. 이런 것이 캄보디아의 매력이 아닐까 싶었다.

 

나를 태운 운전자도 킬링 필드는 처음였던 모양이었다. 몇 번인가 오토바이를 세우고 길을 물었지만 좌회전할 골목을 놓쳐 더 갔다가 되돌아왔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충에크 킬링 필드는 사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념이니 독재니 해도 어찌 같은 국민을 이리도 무자비하게 학살할 수 있단 말인가. 1975 4 17일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군이 들어와 전국민 800만 명 중에 200, 아니 어떤 사람은 300만 명을 학살했다고 한다. 여기서도 20,000명이 죽었는데 이런 곳이 캄보디아 전역에 300개가 있었다니 너무 끔찍했다. 번호를 따라 유적지를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위령탑에 들어갔다. 17층 높이의 위령탑은 해골로 가득했다. 불쌍한 사람들의 허무한 인생이 생각나 기분이 착 가라앉은 상태로 호텔로 돌아왔다. 이런 만행을 저지른 폴 포트는 실각한 이후에도 망명 생활을 하며 천수를 누렸다는 이야기에 더욱 열불이 났다.

 

 

 

현재의 국왕이 살고 있다는 왕궁은 톤레삽 강과 인접해 있었다. 아쉽게도 문을 열지 않아 안으로 들어가진 못 했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크다는 국립박물관은 크메르 유적을 전시하고 있었다.

 

나를 킬링 필드까지 데려다 준 오토바이 운전자. 길을 찾아 헤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순박함이 돋보였다.

 

 

 

 

프놈펜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15km 떨어져 있는 충에크 킬링 필드를 오디오 설명을 들으며 한 바퀴 돌았다.

 

 

 

 

충에크 킬링 필드의 위령탑 안에는 크메르 루즈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들의해골로 가득했다.

그 끔직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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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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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oding 2016.05.07 10: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경잘하고갑니다

  2. Justin 2016.05.31 1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같은 사람인데 너무 잔인합니다. 하늘이 보는 것은 피할 수 없으니 꼭 그에 응당한 벌을 받을 것입니다.

    • 보리올 2016.05.31 15: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많은 인명을 학살한 크메르 루즈의 수괴인 폴 포트가 노년을 편히 살다 간것을 보면 세상이 그리 정의롭진 않은 것 같더랴. 종교적 가르침에좀 회의도 들고.

 

허난성(河南省) 유저우(禹州)에 있는 업체를 방문했다. 상하이(上海) 푸동공항에서 비행기를 내려 셔틀버스로 홍차우공항으로 이동한 후 정저우()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유저우까진 거기서 다시 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야 했다. 그리 멀어 보이진 않았는데 시간은 꽤 걸렸다. 업체에서 예약해 놓은 5층짜리 조그만 호텔에 투숙했다. 중국의 무슨 호텔 체인이라 했는데 유저우 같은 시골에선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안에 담배 꽁초가 보이고 호텔방 침대 옆에는 콘돔이나 흥분제 같은 상품을 진열해 놓고 팔고 있었다. 호텔에 대한 인상이 좀 흐려지긴 했지만 나로선 특이한 경험을 한 셈이다.

 

허난성은 1억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성이면서 동시에 가장 가난한 성이기도 했다. 공업에 기반을 두지 않고 농업이 주된 산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고속도로와 철도가 허난성을 지나면서 교통의 요지로 떠올랐다. 그리 크지 않은 유저우도 인구 120만 명을 자랑한다. 중국 역사에 나오는 우왕(禹王)과 관련이 많아 유저우에선 우왕의 동상도 볼 수 있다. 우왕은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시대에 나오는 인물로 요순(堯舜) 임금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순임금 시절에 황하 물줄기를 다스리는 치수에 큰 공을 세워 왕으로 추대되었다고 한다.

 

유저우는 도자기로 유명한 도시다. 요순 시대부터 도자기를 생산했다니 그 역사의유구함이야 말해 뭐 하랴. 특히 유저우 외곽에 있는 센후전(神垕)이란 지역엔 길거리마다 도요(陶窯)를 알리는 간판이 줄을 잇는다. 왜 이 지역이 도자기 생산으로 유명하냐고 업체 사람에게 물었더니 예전에는 여기서 좋은 점토가 많이 났다고 한다. 요즘엔 다른 지역에서 사온다는 이야기가 뒤따랐다. 그 많은 도요를 일일이 들를 수는 없는 일이라 그 중에서 한 군데, 대송관요(大宋官窯)만 잠시 들어가 보았다. 도자기가 어떻게 이리 오묘한 색채를 발하는지 입이 벌어졌다. 유저우로 돌아오는 길에 차창으로 희뿌연 도시만 보였다. 하루 종일 스모그로 가득한 하늘은 해를 달로 보이게 만들었다. 길은 넓은 데도 차량이 적어 한적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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