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트라에서 403번 버스를 타고 카보 다 호카로 향했다. 우리에겐 호카곶으로 불리는 곳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 끝단이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선 피스테라가, 때론 무시아가 유럽 대륙의 끝이라 불리던데 서경을 확인해보니 여기 호카곶이 더 서쪽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카곶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황량한 바닷가가 나왔다. 곶에는 하얀 건물에 빨간 칠을 한 등대가 하나 있었고 바닷가 쪽으로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명성에 비해선 참으로 단출했다. 십자가 아래에는 여기가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란 루이스 데 카모에스의 싯구가 적혀 있었다. 서경 930, 해발 140m라는 숫자도 발견할 수 있었다. 십자가 주변의 바닷가를 산책하며 망망대해를 이룬 대서양과 바위에 부딪혀 하얀 물보라를 만드는 파도를 내려다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모처럼 마주하는 바다에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카스카이스(Cascais)로 이동해서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우리나라 전철 같이 생긴 허름한 기차로 지나는 역마다 모두 정차를 했다.

 

신트라에서 버스를 타고 카보 데 호카에 닿았다.

 

유별난 점은 보이지 않았지만 하얀 건물과 빨간 등대가 강렬한 대조를 보였다.

 

 

 

 

 

망망대해의 대서양을 보면서 절벽 위로 난 오솔길을 걸어 산책에 나섰다.

 

 

 

하얀 물보라를 내며 부서지는 파도와 바닷가에 자생하는 이름 모를 식물이 길손을 반긴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단을 알리는 십자가

 

 

 

 

 

 

망망대해를 보며 한가롭게 산책에 나선 사람들이나 햇볕을 즐기는 사람들 모두 여유로워 보였다.

 

 

 

 

카스카이스 역에서 기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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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서 신트라(Sintra)로 가기 위해 호시오(Rossio) 역에서 기차를 탔다.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타일로 예쁘게 외관을 꾸민 신트라 역사 앞에서 434번 시내버스를 바로 탈 수 있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로 순식간에 버스는 만원이 되었다. 산으로 오르는 숲길을 지그재그로 달려 무어 성에서 내렸다. 무어 성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8세기에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들이 요새로 지어 사용을 하다가 1147년 아폰수 1세가 리스본을 해방시킬 무렵에 성을 포기하고 퇴각한 이후론 폐허로 버려졌다가 19세기에 복구되었다. 1995년에 신트라 지역에 있는 문화재를 묶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는데 이 무어 성도 그 안에 포함되었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었다.

 

오솔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성터에서 발굴된 유적을 보관하는 전시실을 만들어 놓아 들어가 보았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났고 거기서 입장권을 검사했다. 오른쪽으로 돌아 성벽으로 올랐다. 원통형 모양의 중심부(castle keep)부터 올랐다. 무어 성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했던 성과는 많이 달랐다. 성이라기 보다는 군사 요새란 느낌이 강했다. 성 안에 있었다는 시설도 모두 사라지고 성벽만 남아 있었다.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성벽 위로 난 좁은 길은 오르내림이 심해 마치 산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해발 412m의 높이에 세워진 성이라 파노라마 조망은 훌륭했다. 아래로 신트라가 내려다 보였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성과 궁전도 보였다. 신트라의 명소인 페냐(Pena) 궁전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그 너머로 대서양도 눈에 들어왔다.

 

신트라는 리스본에서 당일로 다녀오기 좋은 위치에 있다. 호시오 역에서 신트라 행 기차에 올랐다.

 

신트라 역사 건물 앞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무어 성으로 향했다.

 

 

 

페냐 궁전에 이르기 전에 무어 성이 먼저 나타나 매표소 앞에서 버스를 내렸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전시실이 하나 있었다. 무어 성의 모형을 비치해 놓았고 여기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무어 성은 성벽만 남은 요새라 성곽을 따라 걷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신트라란 지명을 아랍어로 적어 깃발을 만들어 놓았다.

 

성 밖으로 통하는 조그만 문이 하나 있는데, 이 문을 통해 적군이 들어왔다고 해서 배신의 문이라 불린다.

 

성벽에 오르면 신트라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하얀 굴뚝을 가진 건물이 신트라 궁전(Palacio Nacional de Sintra)이다.

 

  

그리 멀지 않은 언덕 위에 세워진 페냐 궁전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성곽을 한 바퀴 돌아 로얄 타워를 끝으로 아래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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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를 향한 포르투갈의 열망을 직접 실천에 옮긴 사람은 주앙 1세의 셋째 아들 동 엔히크(Dom Henrique) 왕자였다. 그의 개척정신으로 포르투갈, 나아가 유럽의 대항해시대가 문을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다섯 번이나 원정대를 꾸려 아프리카 남쪽까지 보내 미지의 땅을 탐사했던 그를 후대 사람들은 항해왕이라 부른다. 항해왕 엔히크의 사후 500년을 기념해 1960년 이곳 벨렘 지구에 53m 높이의 발견 기념비(Padrao dos Descobrimentos)’를 세웠다. 기념비가 세워진 장소는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항해를 떠난 자리였다. 대항해시대에 대양을 누볐던 포르투갈의 범선 모양을 딴 이 기념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뱃머리 가장 앞에 서있는 사람이 바로 항해왕 엔히크다. 낮게 깔린 빛을 받아 붉게 빛나는 기념비가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좀 늦은 시각에 리스본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통하는 벨렘 탑(Torre de Belem)으로 향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벨렘 탑은 1515년부터 7년간에 걸쳐 마누엘 양식으로 지어졌다. 한 눈에 보기에도 그 특이한 형상이 눈에 띄었다. 직사각형의 4층 탑이 테주 강 위에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한때는 세관으로 쓰여 통관수속을 진행하기도 했고, 강물이 차올랐다가 빠지곤 하던 1층은 정치범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스페인이 지배하던 1580년부터 1830년까지 포르투갈의 독립운동가들이 여기서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입장 시각에 조금 늦게 도착해 아쉽게도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대신 석양의 부드러운 햇살을 배경으로 서있는 벨렘 탑의 우아한 자태를 맘껏 감상할 수 있었다.

 

 

 

 

 

대항해시대를 연 항해왕 엔히크의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발견 기념비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자긍심으로 보여졌다.

 

 

 

 

 

테주 강가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석양을 맞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벨렘 탑이 석양을 배경으로 강 위에 서있었다.

 

 

 

 

 호스텔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일식 부페로 저녁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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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관광의 한 축인 벨렘(Belem) 지구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고 벨렘 역에서 내려 제로니무스(Jeronimos) 수도원을 가장 먼저 찾아갔다. 이 수도원는 마누엘 1(Manuel I)가 엔히크 왕자의 위업과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의 인도 항로 개척을 기념하기 위해 16세기에 건립한 것이다. 원래는 엔히크 왕자가 세운 예배당이 있던 곳을 수도원으로 크게 증축했다. 수도원이 세워진 이후론 멀리 항해를 떠나는 원정대를 위해 여기서 미사를 드리곤 했다. 대항해시대에 유행했던 마누엘 건축양식을 따라 지어진 수도원은 외관뿐만 아니라 실내 장식도 꽤나 화려한 편이었다. 마누엘 건축양식에는 범선이나 닻, 밧줄 등의 대항해시대 상징물을 장식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렘 탑이 그 대표적인 건축물이라 한다.

 

포르투갈을 찾는 사람이라면 꼭 먹어봐야 할 것으로 에그타르트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유명한 에그타르트가 바로 벨렘에서 만들어진다. 더구나 <꽃보다 할배>란 프로그램에서 이 에그타르트가 전파를 타서 더 유명해졌다. 파스테이스 데 벨렘(Pasteis de Belem)이라 불리는 에그타르트 가게 앞에는 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바삭바삭한 빵 안에 달걀 노른자로 만든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가는데, 한 입 베어 물면 그 달콤함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오븐에서 막 구워나온 에그타르트에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면 여행의 피로도 단번에 날릴 것만 같았다. 단 음식을 피해야 하는 처지라 에그타르트를 먹어야 하나 마나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그 유명세의 무게를 이기지 못 하고 나도 결국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벨렘 역에서 나오니 아폰수 데 알부커키(Afonso de Albuquerque) 광장이 나왔고

포르투갈의 인도 식민지 총독을 지낸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벨렘 궁전은 현재 포르투갈 대통령 관저로 쓰이고 있는데 정문 옆으론 박물관까지 마련해 놓았다.

 

 

 

 

 

 

 

 

 

마누엘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인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그 규모도 엄청났지만 외관이나 내부 장식도 무척 화려했다.

 

 

 

벨렘 지구를 걸으며 눈에 들어온 건물들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파스테이스 데 벨렘은 1837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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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여유롭게 걸으며 리스본의 골목 골목을 누볐다. 포르투와 마찬가지로 정감이 가는 골목길이 많아 걷는 내내 가슴이 설렜다. 세월을 머금은 외관은 퇴락해 보잘것없지만 그것이 난 더 좋았다. 더구나 늦은 오후의 부드러운 햇살을 받는 골목길은 더욱 그랬다. 리스본의 크고 화려한 빌딩보다 이런 아기자기한 골목이 내겐 훨씬 매력적이었다. 경사가 급한 골목을 오르내리느라 두 다리가 퍽퍽해졌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솔직히 엘레바도르 다 비카(Elevador da Bica)가 운행하는 골목에선 엘레바도로를 탈까 하는 생각도 순간 들긴 했다. 하지만 그냥 걷기로 했다. 다른 엘레바도르보다 경사도 심했고 엘레바도르와 골목이 공동으로 연출하는 풍경도 여기가 훨씬 더 좋았다. 특히 길에 깔린 철로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 같아 엘레바도르에 오르면 우리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줄 것 같은 착각도 일었다.

 

날이 어두워져 호스텔로 돌아왔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음식인 바칼라우(Bacalhau)를 먹기로 했다. 마침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르베자리아 트린다지(Cervejaria Trindade)란 식당이 있었다. 오래된 수도원 건물을 맥주공장 겸 식당으로 개조했다고 하는데 분위기도 수도원 냄새를 물씬 풍겼다. 타일로 장식한 벽면이 무척 화려해 내심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음식을 서빙하는 사람까지 수도사 복장을 하고 있어 더 특이했다. 바칼라우는 대구를 절여서 말린 것으로 포르투갈엔 그 요리법이 365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메뉴판에서 바칼라우 아 브라스(Bacalhau a Bras)를 시켰다. 밥에 바칼라우와 양파, 감자, 계란 스크램블을 넣고 볶은 것에 파슬리와 올리브를 얹어 나왔다. 먹기는 괜찮았지만 전에 먹었던 바칼라우와는 맛이 완전히 달랐다. 맛보다는 식당 분위기가 한 수 위였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았다.

 

도심을 구석구석 누비는 옛스런 모습의 트램 하나가 도시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있었다.

 

 

 

 

급경사를 오르내리는 엘레바도르 다 비카는 1892년부터 카이스 두 소드레(Cais do Sodre)와 시아두(Chiado)를 연결하고 있다.

 

 

엘레바도르가 다니는 철길에서 만난 고양이 한 마리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거리는 퇴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취가 느껴졌다.

 

포르투갈 국기가 펄럭이고 있는 포르투갈 의회 건물(Assembleia da Republica)

 

 

 

어둠이 깔리는 시각에 숙소가 있는 페드루 데 알칸타라 전망대로 돌아와 리스본의 저녁 풍경을 만났다.

 

 

페드루 데 알칸타라 전망대 인근에서 마주친 밤거리 풍경

 

 

 

 

 

수도원을 개조해 만든 세르베자리아 트린다지 레스토랑은 독특한 분위기를풍기는 식당이라 방문할 가치가 충분했다.

몇 종류의 맥주도 자체 생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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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6.02.13 2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집니다 부럽습니다

    • 보리올 2016.02.14 1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시는 일이 있어 쉽게 몸을 빼긴 어렵겠지만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한번 다녀오십시요. 일상에서 벗어나 멀리서 일을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