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서 포르투로 올라가는 길에 세계 3대 성모 발현지로 유명한 파티마(Fatima)에 들렀다. 난 카톨릭 신자도 아니지만 성모 발현지와는 의외로 인연이 깊다. 아이들 역시 이곳이 성모 발현지란 말에 나름 경건한 자세를 취한다. 1917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에 여섯 차례나 세 목동 앞에 성모가 발현하면서 유명한 순례지가 되었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광장을 가로지르는 대리석 길을 따라 참회의 길을 걷는다. 무릎을 꿇고 소성당까지 오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1917년 성모의 발현을 목격한 세 목동은 모두 파티마 대성당 안에 묻혔다. 자신타와 프란시스코는 어린 나이에 죽었고 수녀 생활을 했던 루시아는 2005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파티마 대성당 앞에 있는 커다란 광장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레이리아 주교였던 다 실바(D. Jose Alves Correia Da Silva)의 동상이 우릴 맞았다. 그 뒤에 교황 요한 바오르 2세 동상, 단순한 형태로 하늘로 솟은 십자가가 나타났다. 엄청난 규모의 현대식 건물인 성삼위 성당(Igreja da Santissima Trindade)부터 찾았다. 실내 장식은 무척 소박했지만 금빛 장식을 많이 사용하여 눈이 부셨다. 참회의 길을 걷는 사람들을 따라 소성당까지 걸었다. 소성당이 있는 곳이 성모가 발현한 지점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무릎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을 눈으로 맞았다. 높은 종탑을 가진 대성당, 즉 바실리카는 보수를 끝내고 단장을 마쳤다. 제단을 비롯한 실내 장식이 하얀색을 칠해 깔끔함을 자랑했다. 성모 발현을 목격한 세 목동의 무덤도 볼 수 있었다.

 

 

 

광장으로 들어서 다 실바 주교의 동상과 단순한 형상미를 가진 십자가를 지나쳤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성당이라는 성삼위 성당은 새로 지어 깔끔하면서도 품위가 넘쳤다.

 

 

예배당 몇 개가 있는 지하에 작은 전시장이 하나 있었고, 거기서 성모 발현 소식을 전하는 1917년 신문을 발견했다.

 

 

대리석을 깔아 만든 참회의 길을 무릎으로 걷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참회의 길을 걸어 소성당으로 들어오는 순례자와 그들을 맞는 신도들 모두 경건하긴 마찬가지였다.

 

 

하늘 높이 솟은 종탑이 인상적인 파티마 대성당의 외관

 

대성당 입구 양 옆으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묘사한 모자이크화가 설치되어 있었다.

 

 

파티마 대성당의 깔끔한 실내 장식

 

성모 발현을 목격한 세 명의 목동 무덤이 대성당 안에 자리잡고 있다.

 

대성당 주변 곳곳에 현대적 감각의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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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연이 닿았는지 카톨릭 신자도 아니면서 난 세계 3대 성모 발현지로 알려진 곳을 모두 다녀왔다.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와 프랑스의 루르드에 이어 포르투갈의 파티마(Fatima)까지 돌아본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처음으로 접한 파티마는 성지 때문에 생겨난 도시 같았다. 파티마의 로자리오 성모를 찾아 수많은 순례객들이 여길 찾는다. 호텔과 식당, 기념품 가게로 이루어진 도시 전체가 성지를 찾는 사람들 덕분에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파티마 성지는 19175월부터 10월까지 매월 13일에 여섯 차례나 세 명의 목동 앞에 성모가 발현하면서 순례지로 알려지게 되었고 1930년에는 성모 발현지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 세 명의 목동 가운데 히야친타(Jacinta)와 프란치스코(Francisco)는 어린 나이에 죽었고 수녀 생활을 했던 루치아(Lucia)2005년까지 살았다. 그 셋은 모두 파티마 대성당에 묻혔다.

 

성지로 걷다 보니 성물 가게를 거쳐 자연스럽게 광장으로 들어갔다. 단순한 형상으로 만든 십자가와 그 아래 세워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상을 먼저 만났다. 파티마 성지엔 광장을 가로지르는 대리석 길을 무릎을 꿇고 소성당까지 걸어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 대리석 길은 참회의 길이라 하는데 무릎으로 걸어오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 무릎으로 걷는 사람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소성당에 앉아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며 말없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나도 의자에 앉아 한참이나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이 소성당의 성모상이 놓인 자리가 원래 성모가 발현하신 곳이라고 해서 파티마 성지의 중심지라고 할만 했다.

 

65m 높이의 종탑 위에 왕관과 십자가를 올려놓은 파티마 대성당, 즉 바실리카를 빼곤 모두 새로 지은 건물들이라서 고색창연함을 기대하고 간 나로서는 약간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역사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바실리카도 온통 보수 중이라 실내 일부만 개방을 하고 있었다. 그 안에 성모 발현을 지켜본 목동 세 명의 무덤이 있었고 현대식으로 꾸민 중앙 제단만 볼 수 있도록 나머지는 모두 가려놓았다. 소박하고 깔끔한 장식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광장 건너편에 있는 현대식 건물의 성삼위 성당(Igreja da Santissima Trindade)으로 갔다. 외관이 무슨 체육관 같더니만 엄청난 실내 규모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금색 무늬를 입힌 제단이 특이했다.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느낌을 주었다.

 

 

광장에서 만난 십자가와 요한 바오로 2세 동상

 

 

 

 

무릎을 꿇고 광장을 가로질러 소성당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실리카 대성당의 외관 모습.

철망을 쳐서 성당으로의 접근을 막아 놓아 좌우 회랑에 타일로 벽화를 그렸다는 십자가의 길은 볼 수가 없었다.

 

 

 

 

 

바실리카 대성당의 내부는 심플하면서도 현대적인 제단 장식을 가지고 있었다.

성모 발현을 목격한 세 목동의 무덤도 그 안에 마련해 두었다.

 

 

 

2007년에 새로 세워진 성삼위 성당은 현대식 건축물의 하나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한다.

 

 

미사를 진행하고 있는 어느 예배당에 잠시 자리를 잡았다. 포르투갈어로 진행하는 미사가 너무 무료해 오래 앉아 있지는 않았다.

 

 

파티마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손에 초를 들고 있었다.

초를 꽂는 것이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그냥 던져 넣었다. 불꽃보다는 시커먼 연기가 더 많이 나왔다.

 

 

기념품 가게에서 만난 세 목동의 어릴 적 사진과 파티마 기념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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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날씨부터 살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일출은 물 건너갔고 이제는 비나 어서 그치라고 빌어야 할 판이다. 비가 오는 줄 알았더라면 어제 만하린(Manjarin)으로 바로 올라가는 것인데 그랬다. 빵과 과일로 간단히 아침을 때웠다. 우의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꾸준히 오르막길을 걸어야 했다. 점차 날은 밝아오지만 운무가 세상을 집어 삼켜 눈에 보이는 것은 별로 없었다. 크루쓰 데 페로(Cruz de Ferro)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돌무덤 위에 십자가가 높이 세워져 있었다. 켈트족에 이어 로마인도 봉우리나 고개에 돌을 쌓는 전통이 있어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레온에 닿기 전에 준비한 돌을 올리고 나도 기도를 했다. 비 내리는 날씨라지만 사람과 십자가를 함께 찍기 위해 뒤따라 올라오는 사람을 기다렸다. 십자가 아래서 기도를 하거나 돌을 올려놓는 사람들의 경건한 태도에서 종교의 힘이 느껴졌다.

 

만하린으로 내려섰다. 토마스란 오스피탈레로(Hospitalero)가 폐허가 된 집을 재건해 알베르게를 만들었다. 형편없는 시설에 치장도 유치찬란했지만 그래도 중세의 분위기를 풍겨 정감이 갔다. 여기 오스피탈레로는 아침에 순례자가 알베르게를 떠날 때마다 종을 울린다고 한다. 순례자가 다시 길 위로 나섰음을 산티아고에게 알리는 의식이라 했다. 오스피탈레로에게 말 한 마디 건네려 했지만 다른 순례자들과 수다를 떠느라 나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순둥이 강아지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알베르게를 떠났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더니 몇 분 후에 가장 높은 지점인 해발 1,517m 지점을 찍고는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아주 긴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기슭 일부에 단풍이 들어 산색에 변화를 주고 있었지만 그리 요란하지는 않았다. 가을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비가 잦아 들면서 발걸음에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엘 아세보(El Acebo)의 가옥 구조가 산 건너편 마을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 집집마다 2층에 테라스를 만들어 놓았고 그 대부분이 집 밖으로 튀어나온 구조였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도 밖에 있었다. 검은 석판을 지붕에 얹은 것도 특이했다. 이런 것이 엘 비에르쏘(El Bierzo) 지역의 특징인 모양이다. 언덕에서 깃발이 여러 개 휘날리는 집을 보고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새로 지은 알베르게였다. 한적한 산골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산 아래 첫 마을이라 바에는 비에 젖은 순례자들로 만원이었다. 리에고 데 암브로스(Riego de Ambros)에도 벽이나 창가에 화분을 걸어놓은 집이 많았는데, 산골 벽지에 살아도 주민들 마음은 여유로워 보였다. 어느 집에는 티벳불교의 불경을 적은 룽다를 걸어 놓기도 했다. 리에고의 성당 벤치에 앉아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경사는 급하진 않았지만 내리막 길은 계속됐다. 멀리 마을이 보였다. 아름다운 산세와 계곡, 사람사는 마을을 한꺼번에 굽어보며 산길을 걷는 묘미를 어디다 견줄까 싶었다. 몰리나세카(Molinaseca)도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여기도 검정색 석판으로 지붕을 해서 마을이 좀 어둡게 보였다. 마루엘로(Maruelo) 강을 건너는 페레그리노(Peregrino)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섰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카페와 바, 그리고 주택이 늘어서 있었다. 산 니콜라스 성당도 들렀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몰리나세카를 벗어나 인도를 따라 걸었다. 아스팔트 도로를 걷는 대신 캄포(Campo)로 향하는 우회로로 들어섰다. 포도밭이 많이 나타났는데, 포도나무가 단풍이 드니 의외로 아름다웠다. 햇빛이 나기에 우의를 벗었더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물에 빠진 생쥐 모습으로 폰페라다(Ponferrada)에 도착했다. 비에르쏘(Bierzo) 지역의 경제 중심지라 규모도 꽤 컸다. 알베르게부터 찾았다. 도네이션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비가 그치길 기다려 시내구경에 나섰다. 폰페라다 외곽은 아파트와 콘도 등 현대식 건물이 많은 반면 도심은 중세풍의 건물이 많았다. 그룹으로 움직이는 관광객도 많이 보였다. 엔시나(Encina) 성모상이 모셔져 있는 바실리카부터 들렀다. 정문 입구에 템플 기사단의 십자가가 붙어 있었다. 템플 기사단의 요새였던 성채는 그 웅장한 모습에 시선이 끌렸으나 문을 닫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주마간산으로 도심을 둘러보고 수퍼마켓에서 부식을 구입했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이영호 선생이 스파게티에 돼지목살을 구웠다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나도 방금 산 와인에 계란을 삶아 테이블에 내놓았다. 꽤 푸짐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폰세바돈을 출발해 운무에 가린 산길을 걸어 올랐다.

 

 

 

십자가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돌무덤에 올라 기도를 하거나 가져온 돌을 올려놓곤 했다.

 

 

십자가가 세워진 고개엔 조그만 성당이 하나 세워져 있었고 그 앞 공터엔 누군가 돌로 원을 그려 놓았다.

 

 

 

그리 요란스럽진 않았지만 산기슭에 단풍이 들어 가을 분위기를 풍겼다.

 

 

템플 기사단의 십자가가 여기저기 걸려 있던 만하린 알베르게. 산티아고까지 222km 남았다는 이정표도 있었다.

 

 

발걸음도 가벼운 하산길에 비가 잦아들면서 덩달아 풍경도 살아났다.

 

산 아래 첫 마을인 엘 아세보 마을

 

 

리에고 마을도 엘 아세보 마을과 비슷하게 2층에 테라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마루엘로 강을 끼고 자리잡은 몰리나세카 마을도 아름다웠다.

 

몰리나세카에서 캄포로 내려서다 만난 포도밭에 가을이 찾아왔다.

 

폰페라다에 있는 알베르게에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중세풍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폰페라다의 도심을 둘러보았다.

 

 

바실리카(Basilica de Santa Maria)는 폰페라다를 대표하는 성당이었다.

 

성채 입구에 위치한 산 안드레스(San Andres) 성당

 

 

13세기 템플 기사단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카스티오 데 로스 템를라리오스(Castillo de los Templarios)

 

저녁은 스파게티에 돼지 목살, 삶은 계란으로 푸짐하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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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5.12.16 2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걸으셨습니다
    20일이 넘었으니ㅡㅡ
    포도밭 가을이 예뻐요
    여긴 폭설입니다
    홧팅!

    • 보리올 2015.12.17 01: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티아고 순례길이 이제 막판으로 접어듭니다. 가을철 포도밭이 예쁘단 생각을 이번에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드넓은 들판이 노랗고 붉은 색으로 물드는데 웬만한 단풍 저리 가라더군요. 봄에는 밀밭도 괜찮다고 하고요.

    • 농돌이 2015.12.17 0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럽쪽이 단풍나무는 못봤는데,,, 중간중간 포도밭, 플라타너스
      등이 단풍들으니까 그런대로 멋지던데요!

    • 보리올 2015.12.17 16: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캐나다 동부 지역은 가을 단풍이 대단합니다. 우리나라 산하의 단풍과는 느낌이 좀 다릅니다. 언제 캐나다 단풍보러 한번 오시죠.

    • 농돌이 2015.12.17 1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싶습니다
      전 농사도 짓고, 직장도 다니고,,, 집안 대장손이라서
      내 인생에 내가 희미합니다
      ㅠㅠㅠ

    • 보리올 2015.12.18 02: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는 일도 많고 집안에서의 위치를 감안하면 자유롭게 사시기가 쉽진 않겠습니다. 그래도 꿈을 꾸시면 언젠가 이루어질 겁니다. 건승을 빌겠습니다.

  2. Justin 2016.02.25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답다는 표현이 가장 많이 나온 날인것 같아요 ~ 아침에 날씨가 흐려서 애독자로서 걱정했는데 사진을 보니까 너무 이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