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스톤 국립공원은 흔히 와이오밍 주에 있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아이다호 주와 몬태나 주에도 조금씩 걸쳐 있다. 국립공원으로 드는 입구는 모두 다섯 개가 있는데, 우리는 몬태나로 연결되는 북문을 통해 가디너(Gardiner)로 빠져 나왔다. 보일링 리버(Boiling River)에 온천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건만 그 입구에 차단기가 내려져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루스벨트 아치(Roosevelt Arch)로 불리는 북문은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이이콘이기도 하다. 1903년 테디 루스벨트(Teddy Roosevelt)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해 아치의 초석을 놓았기 때문이다. 다른 게이트와는 달리 이 북문은 겨울철에도 오픈하기 때문에 가디너는 늘 방문객들로 붐빈다. 우리가 가디너를 갔을 때는 북문 주변 공사로 접근을 차단해 아치 아래로 다가갈 수 없었다. 가디너를 잠시 돌아보곤 케이바(K-Bar)란 피자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제는 쉬지 않고 밴쿠버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미북서부 로드트립으로 계획한 여행일정을 모두 마친 것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북문인 루스벨트 아치는 몬태나 주의 가디너에 위치해 있다.



황량한 서부 마을 풍경을 하고 있는 가디너




가디너의 피자 식당에서 피자 두 판과 시원한 맥주로 여행일정을 모두 마친 것을 자축했다.



보스턴과 시애틀을 잇는 90번 주간고속도로를 달려 밴쿠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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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비가 오더니 새벽에서야 그쳤다. 어느 새 비가 일상이 되었다. 파스타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이영호 선생이 다리에 통증이 심해 걷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두열 선생에게 먼저 간다고 작별을 고하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구름의 이동이 심상치 않았다. 어제 구경했던 도심에서 좁은 골목길을 지나 폰페라다를 빠져 나왔다. 폰페라다 외곽으로 나왔을 때 일출이 시작되었다. 두꺼운 구름과 묵중한 산세에 가려 일출은 그다지 볼 것이 없었다. 가로수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도로를 지나고 구획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마을을 빠져 나오니 한적한 시골길이 시작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르키는 표식도 새로워졌다. 지자체마다 개성있는 디자인을 택하기 때문에 획일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건물들이 큼직큼직한 캄포나라야(Camponaraya)로 들어섰다. 길가에 알록달록한 공장 건물이 들어서 있어 무엇을 만드는 곳일까 궁금했는데 비냐스 델 비에르쏘(Vinas del Bierzo)라는 와이너리였다. 테이스팅 룸이 마련되어 있어 와인 한잔을 시켰다. 핀초(Pincho)라는 타파스를 곁들여서 1.50유로를 받는다. 아침부터 술기운으로 걷게 되었다. 카카벨로스(Cacabelos)에 이르는 길 옆으로 포도밭이 즐비했다. 리오하(Rioja) 지역과 비슷하게 여기도 들판 대부분을 포도밭이 차지하고 있었다. 카카벨로스는 스스로를 유럽 와인의 중심지라 칭했다. 프랑스의 보르도나 부르고뉴에서 들으면 펄쩍 뛸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꿀밤을 먹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포도 품종은 멘시아(Mencia)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 초입에 와인 등급을 매기고 원산지를 증명하는 관청도 있었다. 조그만 성당을 박물관으로 바꿔놓은 곳도 있어 1유로를 기부하고 들어가 보았다.

 

피에로스(Pierros)를 지나서 발투일레 데 아리바(Valtuille de Arriba)로 우회하는 길 역시 포도밭 사이를 누비며 한없이 이어졌다. 노랗게 또는 붉게 물든 단풍이 포도밭을 뒤덮고 있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포도나무를 사람 무릎 높이로 길러 놓은 것이었다. 다른 지역은 지지대와 와이어를 이용해 사람 키만한 높이로 기르는데 말이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언덕 경사면에 조성된 포도밭을 만났는데, 언덕 위에 세워진 하얀집과 나무 몇 그루가 포도밭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쏘(Villafranca del Bierzo)는 크진 않았지만 꽤나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용서의 문(Puerta del Perdon)을 가진 산티아고 성당과 성채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섰다. 미로처럼 좁은 골목길을 걸어 마을 한 바퀴 돌아보고 길가 벤치에서 빵과 과일, 삶은 계란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로 올라야 하는 순례자들은 여기서 하루를 묵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난 좀더 올라가기로 했다. 경사는 심하지 않았지만 꾸준한 오르막이 이어졌다. 발카르세(Valcarce) 강을 따라 놓여진 도로를 걸어 페레헤(Pereje), 트라바델로(Trabadelo) 등 몇 개 마을을 지났다. 대부분 산골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라 볼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마을마다 조그만 성당이 있었지만 대개 문을 잠가 놓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해 우의를 꺼내 입었다. 하루도 봐주는 날이 없다고 연신 투덜대면서 말이다. 날이 어두워지려는 시각에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에 도착했다. 산 아래 자리잡은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었다. 거의 10시간 가까이 걸어 순례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40km를 넘게 걸었다. 알베르게부터 찾았다.

 

비가 그치질 않아 마을 구경도 생략했다. 부식을 사러 가게에 갔다가 박인자 선생을 만났다. 혼자서 순례길을 걷고 있는 용감한 주부였다. 간단하게 수프를 준비할테니 함께 저녁을 하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부엌이 워낙 작고 이미 다른 순례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우루과이에 온 젊은이 셋이 자기들이 마련한 저녁이 많다고 우리에게 꽤 많은 양의 음식을 건네주었다. 기소라 한다는 우루과이 볶음밥이었는데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거기에 박인자 선생이 준비한 수프를 더하고 내가 산 와인을 곁들이니 훌륭한 만찬이 되었다. 나중엔 보스턴에서 왔다는 아가씨 둘이 만든 요리도 한 접시 빼앗아 먹었다. 시금치에 떡볶이 떡 같은 것을 넣고 토마토 소스와 버무렸는데 그것도 맛은 괜찮았다.

 

파스타 면을 삶아 그 위에 통조림으로 파는 콩을 얹었다. 간편하게 만들 수 있어 아침에 자주 먹었다.

 

 

폰페라다를 벗어날 즈음 구름이 가득한 동녘 하늘로 해가 솟았다.

 

폰페라다 외곽에서 가로수 터널을 만났다.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콤포스티야(Compostilla) 성당

 

콜룸브리아노스(Columbrianos) 마을로 들어서는데 포도밭 가운데 산 에스테반(San Esteban) 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지역에 설치된 산티아고 순례길 표식이 다른 곳과는 달라 눈에 띄었으나 그 숫자가 몇 개 되지 않았다.

 

 

인구 4,200명을 가진 캄포나라야

 

 

캄포나라야의 비냐스 델 비에르쏘 와이너리에 와인 테이스팅 룸을 마련해 놓아 들어가 보았다.

 

 

 

스페인의 와인 산지로 유명한 비에르쏘 지역의 중심지 카카벨로스

 

 

카카벨로스에 있는 조그만 성당 하나를 박물관으로 개조해 도네이션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카카벨로스 외곽으로 대규모 포도밭이 펼쳐져 특유의 풍경을 만들었다.

 

주택 벽면에 과감한 색깔을 칠해 마을 분위기가 밝아 보였던 발투일레 마을

 

발투일레 마을에서 고양이 다섯 마리가 경계의 눈초리로 나를 맞이했다.

 

 

 

 

산과 계곡, 강이 어우러져 아름다웠던 비야프랑카 마을. 마르케스(Marqueses) 후작의 궁전도 있었다.

 

비야프랑카를 벗어나 N-6 도로를 따라 걷는데 순례길을 알리는 이정표에 누가 등산화를 걸어 놓았다.

 

베가 데 발카르세 마을 직전에 있는 암바스메스타스(Ambasmestas)를 지났다.

 

 

암바스메스타스에 자리잡은 이름 모를 성당엔 한 커플이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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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광주랑 2015.12.15 0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풍경이 장관이네요 ^^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광주광역시 공식 블로그 '광주랑'에도 많은 방문 부탁드려요 ~

    • 보리올 2015.12.15 1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관심을 가지고 봐주셔서 고압습니다. 광주랑이란 블로그는 엄청 방대하고 내용도 다양하던데 어떻게 그걸 다 관리하시는지 놀랍습니다. 애 많이 쓰시네요.

  2. ::리뷰:: 2015.12.15 1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포도밭이었군요.. 아름답네요. 마치 들판인듯 아닌듯...

  3. Justin 2016.03.11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집마다 색깔이 돋보여서 분위기도 밝고 상큼합니다 ~ 우리나라도 옛날 골목길을 저렇게 이쁘게 색만 칠했어도 이뻤을텐데말이죠~

    • 보리올 2016.03.11 1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애초부터 집을 지을 때 외관의 색상을 고려했다면 가능한 일이었겠지. 너무 인위적으로 칠을 하니까 오히려 보기가 흉하더구나.

 

홋카이도는 일본 가장 북쪽에 위치한 하나의 섬이지만 그 크기가 만만치 않다. 우리 남한의 80%에 맞먹는 크기를 가지고 있는 곳을 23일 일정으로 여행을 하면 삿포로조차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란 늘 이렇게 시간에 쫓기며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전에 둘러본 곳은 대부분 걸어서 다녔다.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처음 들른 곳은 홋카이도 구청사. 아카렌카(붉은 벽돌)란 애칭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1888년에 지어진 홋카이도의 상징적인 존재다. 붉은 벽돌로 세운 건물 자체도 운치가 있었지만 그 앞 정원도 잘 꾸며 놓았다. 무료로 입장할 수 있어 문서관을 둘러 보았지만 정원에 있는 은행나무 아래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시계탑까지 걸어 갔다. 예전에 삿포로 농학교 연무장으로 쓰였다는 곳인데 1878년에 건축된 사적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탑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그다지 볼품이 있지는 않았다. 입장료로 200엔인가 내고 들어갔더니 1층은 전시관으로 쓰고 있었고 2층은 강당처럼 넓은 공간에 책상이 놓여 있었다. 한 켠에는 시계추가 움직이고 있었는데, 노신사 한 분이 영어로 시계 작동 원리를 설명해 주었다. 시계탑에 설치된 시계와 동일한 모델을 들여와 따로 전시를 하고 있었다. 미국 보스턴에서 만든 시계라고 여러 번 강조를 했다.

 

동서로 1.5km나 길게 나있는 오도리 공원도 멀지 않았다. 삿포로 TV 타워가 단연 돋보였다. 눈축제나 라일락 축제와 같은 삿포로 특유의 이벤트들이 여기서 열린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크리스마스 장식에 다들 바빠 보였다. 2월이 되면 여기에 눈이나 얼음으로 만든 조각품들이 즐비할 것이다. 더 남으로 내려가 스스키노(すすきの)에 도착했다. 스스키노는 삿포로 유흥가로 수많은 음식점과 오락시설이 밀집된 지역을 말한다. 라멘요코초(ラ-ノン橫丁)라 불리는 라면 골목도 여기에 있다. 난 번잡한 곳을 좋아하진 않지만 라면 골목에는 관심이 많았다. 길가에 있는 신사를 둘러보고 나카지마 공원을 가기 위해 지하철에 올랐다.

 

 

 

 

 

 

 

미국의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지었다는 홋카이도 구청사는 일본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홋카이도 개척사에 대한 자료를 많이 보관하고 있었다.

 

 

그다지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이 시계탑도 삿포로의 관광명소 중 하나였다. 시계 작동 원리에 대해선 한번 들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축제 준비에 바쁜 오도리 공원은 삿포로 TV탑을 보는 것으로 그냥 지나쳤다.

 

 

 

 

 

 

 

삿포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바로 스스키노 지역이다. 홋카이도 개척 당시 7채의 가게로 시작하여 오늘날 이런 번화가로 발전을 하였다.

 

 

도요카와 이나리 신사는 지나가다 잠시 들른 곳이다. 북해도 신궁을 갈까 했으나 이것으로 대신했다. 칠복신(七福神)이란 조각상을 보니 구복 신앙은 어디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삿포로의 지하철에는 세 개의 노선이 있는데 어느 곳을 가던 지하철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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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4.12.04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홋카이도라는 섬이 그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일본은 큰 땅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왜 우리 나라를 쳐들어왔을까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 보리올 2014.12.04 14: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느 나란들 땅에 욕심이 없겠냐? 지진이 많은 섬나라를 탈피해 대륙으로 진출하고픈 욕구가 있었겠지. 우리 나라를 교두보로 해서 말이야. 우리가 힘이 없었으니 늘 당해야 했고. 가슴 아픈 일이지.

 

여행이란 시간과의 싸움이다. 세상은 넓고 볼 것은 많은데 시간은 늘 부족한 것이 내 여행의 특징이다. 어느 곳을 선택해 집중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여행하는 사람의 취향에 달려 있다. 2008년에 보스턴에 왔을 때는 하버드 대학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적이었다. 그 감동의 연장선에서 이번에는 또 다른 명문대인 매사추세츠 공대, MIT의 교정을 걷고 싶었다. 눈이 많이 쌓였고 날도 추운 겨울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엄밀히 말해 MIT는 보스턴에 있다기보다는 케임브리지(Cambridge)란 도시에 있다. 1861년에 설립해 1865년에 공대로 개교를 했다. MIT는 미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 인력을 배출하기 위해 설립되었지만, 1930년대부터는 좀 더 연구개발에 치중하는 연구 중심 대학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하버드와 더불어 매년 미국 대학 순위에서 상위에 랭크되는 명문대 중 하나이다.  

 

켄달(Kendall) 지하철역에서 내려 MIT를 찾아갔다. 캠퍼스 지도를 보니 넓은 면적에 건물들이 꽉 들어서 있어 짧은 시간에 모든 건물을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추운 겨울철에 MIT를 둘러보는 것도 좀 을씨년스러웠다. 학생들도 추위에 잔뜩 몸을 움츠려 걷는다. 밖으로 나와 활동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냥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니다 찰스(Charles) 강가에서 보스턴 시내를 건너다 보았다. 어느 건물 안에 한글로 마음 수련이라 쓰인 전단지가 벽에 붙어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MIT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건물은 단연 스테이터 센터(Stata Center)였다. 솔직히 말하건대, 언젠가 이 건물 사진 한 장을 본 기억이 내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어 MIT를 방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한 장의 유혹이 나를 이렇게 스테이터 센터 앞에 서게 만든 것이다. 사진에서 느낀 것보다 더욱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건물이 몸을 비틀며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면 그건 내 착각일까. 약간 기울어져 있는 듯 보이는 건물은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하여간 건축에 문외한인 내게도 유별난 건물인데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겐 얼마나 좋은 연구 대상일까 싶다.

 

2004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기금을 가장 많이 쾌척한 레이 스테이터와 마리아 스테이터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다. MIT에서는 32번 건물동이라고도 불린다. 캐나다 태생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를 하였다. 좀 난해해 보이는 컨셉의 설계가 돋보였다. 이 건물에는 방사능 연구소와 컴퓨터 공학 및 인공지능 연구소, 정보 및 결정체계 연구소, 언어철학부가 입주해 있다. 아마 프랭크는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 특성을 고려해 건물 외곽을 구부리고 접고 주름지게 하는 특이한 디자인을 도입한 모양이다. 연구 개발의 자유로움, 과감성, 창조성을 표방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재료로는 벽돌과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스틸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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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란 개인의 감각이나 기억, 때론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음식에서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만한 공통점을 찾기란 솔직히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맛집에 대해 맛이 있다, 없다를 소개한다는 것은 엄청 위험하단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요즘은 온갖 매스컴에서 맛집 소개에 경쟁적으로 열을 올리다시피 하니 주장이 무색해지긴 했지만서도.

 

사실 미디어를 통해 맛있는 집이라 소개된 곳도 입맛엔 별로라고 생각한 적이 너무 많았기에 어느 식당을 추천하고 싶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단지, 이런 식당에서 이런 음식을 먹어 보았다는 경험 차원의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역시 여행 책자나 인터넷 검색, 또는 현지인들의 추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그들 추천에 대한 소박한 평가라고나 할까.

 

보스턴 출장길에 처음 찾은 식당은 제이콥 워스(Jacob Wirth). 1868년에 세워져 보스턴에선 번째로 오래된 집이라 소개를 받았다. 가장 오래된 식당은 유니언 오이스터 하우스(Union Oyster House)였지만 건물만 보고 지나쳤다. 제이콥 워스는 식당이면서도 고풍스런 선술집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맥주 메뉴도 다양해서 좋았다.

 

독일 음식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독일에서 많이 먹었던 예거 슈니젤(Jaeger Schnizel) 시켰는데 웨이터가 가져온 음식이 이상해 보였다. 웨이터를 불러 이게 예거 슈니젤이 맞냐 물었더니 비엔나 슈니젤이 잘못 나왔다고 음식을 도로 가져간다. 독일에서 먹었던 예거 슈니젤과는 맛도 많이 달라 실망을 금치 못했다.

 

 

 

 

 

 

둘째날 저녁은 노스 엔드(North End) 브리코(Bricco) 찾았다. 보스턴에는 아일랜드계와 이태리계 이민자들이 많아 보스턴의 유명 음식점은 거의 이태리계가 장악을 했다. 호텔 카운터에 이태리 식당을 추천해 달랬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브리코란 이름을 알려 준다. 식당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예약을 하지 않고 그냥 까닭에 30 넘게 기다리게 하더니 테이블 하나를 준다.

 

식당은 불가마를 사용해 고기를 익히는 방식이 특이했다. 고급 레스토랑에 걸맞는 품격을 갖추고 있어 마음에 들었다. 그네들 말로는 미국내 10 이태리 레스토랑에 들아간다고 한다. 식당을 소개한 신문 칼럼을 액자에 넣어 여기저기 걸어 놓았다. 여기서도 미디어의 파워를 실감할 있다. 음식은 불가마에서 구운 아이(Rib Eye) 시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기에 캘리포니아 와인까지 시켰더니 비싸게 나왔다.

 

 

 

 

 

 

보스턴을 떠나는 날의 점심은 레갈 시푸드(Legal Sea Foods)라는 식당에서 했다. 보스턴에선 여러가지 해물요리로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크램 차우더 스프에 추가해서 메인은 홍합, 조개에 소세지가 들어간 포르투갈 어부 스튜(Portuguese Fisherman’s Stew)’ 별난 요리를 시켜 보았다. 조금 짜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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