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가 오더니 새벽에서야 그쳤다. 어느 새 비가 일상이 되었다. 파스타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이영호 선생이 다리에 통증이 심해 걷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두열 선생에게 먼저 간다고 작별을 고하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구름의 이동이 심상치 않았다. 어제 구경했던 도심에서 좁은 골목길을 지나 폰페라다를 빠져 나왔다. 폰페라다 외곽으로 나왔을 때 일출이 시작되었다. 두꺼운 구름과 묵중한 산세에 가려 일출은 그다지 볼 것이 없었다. 가로수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도로를 지나고 구획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마을을 빠져 나오니 한적한 시골길이 시작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르키는 표식도 새로워졌다. 지자체마다 개성있는 디자인을 택하기 때문에 획일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건물들이 큼직큼직한 캄포나라야(Camponaraya)로 들어섰다. 길가에 알록달록한 공장 건물이 들어서 있어 무엇을 만드는 곳일까 궁금했는데 비냐스 델 비에르쏘(Vinas del Bierzo)라는 와이너리였다. 테이스팅 룸이 마련되어 있어 와인 한잔을 시켰다. 핀초(Pincho)라는 타파스를 곁들여서 1.50유로를 받는다. 아침부터 술기운으로 걷게 되었다. 카카벨로스(Cacabelos)에 이르는 길 옆으로 포도밭이 즐비했다. 리오하(Rioja) 지역과 비슷하게 여기도 들판 대부분을 포도밭이 차지하고 있었다. 카카벨로스는 스스로를 유럽 와인의 중심지라 칭했다. 프랑스의 보르도나 부르고뉴에서 들으면 펄쩍 뛸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꿀밤을 먹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포도 품종은 멘시아(Mencia)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 초입에 와인 등급을 매기고 원산지를 증명하는 관청도 있었다. 조그만 성당을 박물관으로 바꿔놓은 곳도 있어 1유로를 기부하고 들어가 보았다.

 

피에로스(Pierros)를 지나서 발투일레 데 아리바(Valtuille de Arriba)로 우회하는 길 역시 포도밭 사이를 누비며 한없이 이어졌다. 노랗게 또는 붉게 물든 단풍이 포도밭을 뒤덮고 있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포도나무를 사람 무릎 높이로 길러 놓은 것이었다. 다른 지역은 지지대와 와이어를 이용해 사람 키만한 높이로 기르는데 말이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언덕 경사면에 조성된 포도밭을 만났는데, 언덕 위에 세워진 하얀집과 나무 몇 그루가 포도밭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쏘(Villafranca del Bierzo)는 크진 않았지만 꽤나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용서의 문(Puerta del Perdon)을 가진 산티아고 성당과 성채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섰다. 미로처럼 좁은 골목길을 걸어 마을 한 바퀴 돌아보고 길가 벤치에서 빵과 과일, 삶은 계란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로 올라야 하는 순례자들은 여기서 하루를 묵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난 좀더 올라가기로 했다. 경사는 심하지 않았지만 꾸준한 오르막이 이어졌다. 발카르세(Valcarce) 강을 따라 놓여진 도로를 걸어 페레헤(Pereje), 트라바델로(Trabadelo) 등 몇 개 마을을 지났다. 대부분 산골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라 볼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마을마다 조그만 성당이 있었지만 대개 문을 잠가 놓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해 우의를 꺼내 입었다. 하루도 봐주는 날이 없다고 연신 투덜대면서 말이다. 날이 어두워지려는 시각에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에 도착했다. 산 아래 자리잡은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었다. 거의 10시간 가까이 걸어 순례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40km를 넘게 걸었다. 알베르게부터 찾았다.

 

비가 그치질 않아 마을 구경도 생략했다. 부식을 사러 가게에 갔다가 박인자 선생을 만났다. 혼자서 순례길을 걷고 있는 용감한 주부였다. 간단하게 수프를 준비할테니 함께 저녁을 하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부엌이 워낙 작고 이미 다른 순례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우루과이에 온 젊은이 셋이 자기들이 마련한 저녁이 많다고 우리에게 꽤 많은 양의 음식을 건네주었다. 기소라 한다는 우루과이 볶음밥이었는데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거기에 박인자 선생이 준비한 수프를 더하고 내가 산 와인을 곁들이니 훌륭한 만찬이 되었다. 나중엔 보스턴에서 왔다는 아가씨 둘이 만든 요리도 한 접시 빼앗아 먹었다. 시금치에 떡볶이 떡 같은 것을 넣고 토마토 소스와 버무렸는데 그것도 맛은 괜찮았다.

 

파스타 면을 삶아 그 위에 통조림으로 파는 콩을 얹었다. 간편하게 만들 수 있어 아침에 자주 먹었다.

 

 

폰페라다를 벗어날 즈음 구름이 가득한 동녘 하늘로 해가 솟았다.

 

폰페라다 외곽에서 가로수 터널을 만났다.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콤포스티야(Compostilla) 성당

 

콜룸브리아노스(Columbrianos) 마을로 들어서는데 포도밭 가운데 산 에스테반(San Esteban) 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지역에 설치된 산티아고 순례길 표식이 다른 곳과는 달라 눈에 띄었으나 그 숫자가 몇 개 되지 않았다.

 

 

인구 4,200명을 가진 캄포나라야

 

 

캄포나라야의 비냐스 델 비에르쏘 와이너리에 와인 테이스팅 룸을 마련해 놓아 들어가 보았다.

 

 

 

스페인의 와인 산지로 유명한 비에르쏘 지역의 중심지 카카벨로스

 

 

카카벨로스에 있는 조그만 성당 하나를 박물관으로 개조해 도네이션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카카벨로스 외곽으로 대규모 포도밭이 펼쳐져 특유의 풍경을 만들었다.

 

주택 벽면에 과감한 색깔을 칠해 마을 분위기가 밝아 보였던 발투일레 마을

 

발투일레 마을에서 고양이 다섯 마리가 경계의 눈초리로 나를 맞이했다.

 

 

 

 

산과 계곡, 강이 어우러져 아름다웠던 비야프랑카 마을. 마르케스(Marqueses) 후작의 궁전도 있었다.

 

비야프랑카를 벗어나 N-6 도로를 따라 걷는데 순례길을 알리는 이정표에 누가 등산화를 걸어 놓았다.

 

베가 데 발카르세 마을 직전에 있는 암바스메스타스(Ambasmestas)를 지났다.

 

 

암바스메스타스에 자리잡은 이름 모를 성당엔 한 커플이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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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광주랑 2015.12.15 0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풍경이 장관이네요 ^^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광주광역시 공식 블로그 '광주랑'에도 많은 방문 부탁드려요 ~

    • 보리올 2015.12.15 1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관심을 가지고 봐주셔서 고압습니다. 광주랑이란 블로그는 엄청 방대하고 내용도 다양하던데 어떻게 그걸 다 관리하시는지 놀랍습니다. 애 많이 쓰시네요.

  2. ::리뷰:: 2015.12.15 1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포도밭이었군요.. 아름답네요. 마치 들판인듯 아닌듯...

  3. Justin 2016.03.11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집마다 색깔이 돋보여서 분위기도 밝고 상큼합니다 ~ 우리나라도 옛날 골목길을 저렇게 이쁘게 색만 칠했어도 이뻤을텐데말이죠~

    • 보리올 2016.03.11 1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애초부터 집을 지을 때 외관의 색상을 고려했다면 가능한 일이었겠지. 너무 인위적으로 칠을 하니까 오히려 보기가 흉하더구나.

 

인스턴트 미역국에 가는 면을 넣어 따끈한 수프를 끓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을 수 있다니 감격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너무 사치스럽단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바게트에 버터를 발라 먹는 것보단 속이 든든했고 돈도 적게 들었다. 알베르게를 나와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산티아고 성당 앞을 지나는데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열어놓은 것이 아닌가.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제단 장식이 다른 성당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 제단에 있는 산티아고 상은 그렇다 쳐도 그 아래에 대문 모양의 장식은 무엇이고, 왼쪽 제단에 있는 저 신기한 문양은 또 뭐란 말인가. 외계인이 만든 디자인이 이럴까 싶었다.

 

로그로뇨는 대도시답게 도심을 빠져나오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외곽에 있는 공장지대를 지나는데 동녘에서 해가 떠오른다. 붉은 햇살이 공장 건물을 비추는 가운데 서서히 도시를 벗어났다. 커다란 저수지를 만났고 거기서 먹이를 찾아 이른 아침부터 밖으로 나온 청설모와 인사를 나눴다. 조금씩 고도를 높이는 순례길 주변엔 온통 포도밭 천지였다. 와인 산지에 들어섰음을 진즉에 알 수 있었다. 고가다리를 건너 나바레테(Navarrete)에 닿았다. 고대부터 도기를 만든 도시답게 아순시온(Asuncion) 성당 옆에는 도공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성당에서 11번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성당 안에 들어가 내부를 살펴보았다. 화려한 제단 장식이 먼저 눈에 띄었다.

 

벤토사(Ventosa)에서 점심을 먹었다. 카페에 들러 보카딜료스(Bocadillos)를 시켰는데 엄청 큰 바게트 안에 하몽과 치즈가 들어 있었다. 너무 뻑뻑해 맥주가 없었더라면 먹는데 애를 먹었을 것이다. 포도밭은 계속되었다. 수확이 끝난 곳도 있었고 아직 포도송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곳도 있었다. 와인을 담그려면 이미 수확을 마쳤어야 할텐데 아직 수확을 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설마 여기서 아이스 와인을 만들 생각은 아니겠지. 배고픈 순례자들이 포도밭에 손을 대는 것 같았다. 내 앞을 걷던 부부도 수시로 포도밭을 드나들었고, 어떤 사람은 비닐 봉지에 한 가득 포도를 따서는 손에 들고 가기도 했다. 달콤한 포도 과즙을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였지만 주인 허락이 없는 이상 포도밭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오후라 그런지 몸이 나른했다. 나헤라(Najera)까지 기껏 10km 남짓한 거린데 가도가도 끝이 없는 것 같았다. 햇볕은 따가운데 바람은 의외로 차다. 하루 종일 자켓을 벗을 수가 없었다. 나헤라로 내려서기 전에 멀리 데만다(Demanda) 산맥이 눈에 들어왔다. 해발 2,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도열해 있었다. 가장 높은 봉우리라는 해발 2,262m의 산 로렌쏘(San Lorenzo)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나헤라는 꽤 현대화된 도시로 보였다. 산 밀란(San Millan)에 있는 수도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 그곳으로 가는 대중교통이 있나 알아봤지만 버스편은 없었다. 그렇다고 택시로 다녀오기엔 부담이 컸다. 나헤라에서 하룻밤 묵을 계획을 바꿔 좀더 가기로 했다.

 

나헤리야(Najerilla) 강을 건너 절벽 아래 있는 마을로 향했다. 고풍스런 골목을 지나 산타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에 도착했다. 4유로의 입장료를 받는 것까진 좋은데 여기도 시에스타를 하는지 오후 4시에 다시 문을 연다고 적혀 있었다. 절벽에 있는 동굴과 연결된 수도원은 가르시아 3세를 비롯한 왕족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 했지만 오후 4시까지 기다릴 순 없었다. 거기서 6km를 더 가면 나온다는 아쏘프라(Azofra)까지도 꽤나 지루하게 걸었다. 오후 5시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아쏘프라에 들어섰다.

 

아쏘프라는 그리 크진 않았지만 알베르게는 아주 훌륭했다. 2인실로 되어 있는 방도 좋았고, 깨끗한 시설도 마음에 들었다. 사람도 많지 않았다. 같은 방을 쓰는 스페인 친구 호르헤(Jorge)와 인사를 나눴다. 감기 기운이 있다고 침낭 안에 들어가 나오질 않는다. 와인을 반주 삼아 밥과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식당에서 한국인 부부를 만나 인사를 나눴다. 부부가 모두 대전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큰 마음 먹고 휴가를 맞춰 함께 순례를 하고 있었다. 대전에서 병원을 하는 친구 이름을 댔더니 잘 알고 있다고 해서 세상 참 좁다 했다. 셋이 와인을 나눠 마시다가 식당으로 나온 호르헤와 일본인 요코까지 가세해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로그로뇨의 산티아고 성당이 아침 일찍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로그로뇨 외곽 공장지대를 지나는데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저수지 주변의 나무숲으로 청설모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나섰다.

 

 

포도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나바레테로 들어섰다.

 

나바레테 초입에서 만난 돈 하코보(Don Jacobo) 와이너리 광고판에 산티아고가 576km 남았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나바레테의 아순시온 성당. 제단 장식이 아주 훌륭했다.

 

 

나바레테를 벗어난 곳에 세워진 공동묘지.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정문은 나바레테 초입에 있던 순례자 병원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벤토사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시켜 점심으로 먹었다.

 

벤토사를 빠져나오는데 순례자 석상을 올려놓은 특이한 이정표를 만났다.

 

지자체마다 이정표 관리가 제멋대로라 이정표 상의 거리 표시 또한 혼란스러웠다. 나바레테를 들어서면서 산티아고가

576km가 남았다는 표식을 보았는데 10km를 더 걸은 지점에서 이번엔 592km 남았다는 표식이 나왔다.

 

 

포도밭이 연이어 나타났고 가끔은 와이너리도 보였다.

 

포요 데 롤단(Poyo de Roldan)은 롤랑이 던진 돌이란 의미다.

이 지역에 살던 골리앗의 후손 페라구트(Ferragut)를 물리치기 위해 샤를마뉴 대제가 기사들을 보냈지만

번번히 실패한 끝에 롤랑(Roland)을 보내 페라구트를 죽였다는 전설이 어린 곳이다.

 

 

 

 

나헤리야 강을 건너 절벽 아래에 형성된 나헤라 구시가로 들어섰다.

 

 

 

산타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은 문을 닫아 바깥만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포도밭에 물을 대기 위한 관개시설이 잘 되어 있는 아쏘프라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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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5.11.26 16: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전 독일 지나는데 포도밭이 노랗게 물들었더니,,, 가을입니다
    여긴 첫눈이 폭설로 왔습니다
    엄지발그락 저녁에 많이 주물르면 피로회복이 빠릅니다
    할 수 있으면 물 따끈하게 데워서 복숭아뼈까기 채우고 알콜 조금 넣고 족탕?
    건승을 빕니다

    • 보리올 2015.11.26 1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에 오늘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은 접했습니다. 폭설이 아니길 빕니다. 오래 걸은 발의 피로를 푸는 쉬운 요법이 있었군요. 다음에 꼭 시도를 해봐야겠네요.

  2. 스페니 2015.11.27 0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기다리며 잘 읽고있습니다
    여러분야에 해박하신것같아 부럽습니다~^^

    • 보리올 2015.11.27 07: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렇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블로그를 찾아와 주시기만 해도 고마운데 말입니다. 해박한 것은 아니고 그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3. Justin 2015.12.31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페인에도 큰 산들이 많은가봅니다. 유럽에 알프스산맥 빼고는 아는 산들이 거의 전무해서 스페인에 그런 큰 산들이 있는줄 몰랐습니다.

    • 보리올 2015.12.31 16: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스페인과 프랑스 경계를 이루는 피레네 산맥엔 제법 높은 산이 많지. 최고봉은 3,400m가 넘고.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 내가 걸은 프랑스 길은 산을 세 개 넘는데 가장 높은 지점은 1,500m 정도 되더구나. 경사도 그리 급하지 않고.

 

과일로 아침을 때우곤 평소보다 빨리 알베르게를 나섰다. 헤드랜턴으로 길을 비추며 어두운 밤길을 걸어 페르돈 고개(Alto de Perdon)로 올랐다. 해가 뜨기 전에 고개에 오르기 위해 일찍 나선 것인데 예상보다 이른 시각에 도착해 한 시간 가까이를 기다려야 했다. 멀리 팜플로나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늘이 밝아지면서 동이 틀 기미를 보였다. 트레일러를 뒤에 단 차 한대가 고개로 오르더니 트레일러를 열고 물품을 진열하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순례자를 위한 매점이 세워진 것이다. 내가 첫 손님이라 그냥 지나치긴 좀 그랬다. 속으로 비싸단 생각이 들었지만 바나나 두 개를 2유로에 샀다. 철판을 잘라 만든 순례자 조형물과 능선 위를 독차지한 풍력발전기, 붉어오는 하늘과 무지개 등 페르돈 고개의 아침 풍경을 여유롭게 카메라에 담았다. 여기 설치된 풍력발전기는 모두 아시오나 제품이었다. 캐나다에서 회사 생활을 할 때 아시오나가 우리 거래처였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우르테가(Urtega)로 내려섰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무지개가 뜬 것이 좀 수상하다 했더니 결국 비를 뿌린다. 성당 처마 밑에서 배낭 커버를 씌우고 우르테가를 벗어났더니 금방 비가 그쳤다. 날씨가 청개구리 심보를 닮았나? 무루싸발(Muruzabal)을 지나는데 성당에서 10번 종을 친 후에 잠시 간격을 두더니 다시 10번을 친다. 오랜만에 가까이서 듣는 종소리가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무루싸발에서 에우나테(Eunate)를 다녀왔다. 왕복 4km를 더 걸은 것이다. 에우나테에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는데, 그 모양이 팔각형으로 특이할 뿐만 아니라 내부는 검소 그 자체였다. 가운데 성모 마리아 상이 제단 장식의 전부였다. 밖에서 빛이 들어오는 창문도 얇은 대리석을 유리 대신 사용했다.

 

기에르모의 전설이 서려있는 오바노스(Obanos) 성당을 찾았지만 마침 미사를 진행하고 있어 기에르모의 해골은 볼 수가 없었다. 여기서 잠시 기에르모의 전설을 들어보자. 기에르모 공작의 여동생 펠리시아(Felicia)는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곤 프랑스 궁궐로 돌아가지 않고 나바라 지방에서 은둔하고 싶어했다. 설득에 실패하자 기에르모는 동생을 죽인다. 회한에 찬 기에르모도 산티아고 순례를 떠났고 여생을 여기서 동생을 애도하며 살겠다고 마음 먹는다. 나중에 두 남매는 카톨릭 교회에 의해 시복이 되었다. 기에르모의 해골은 아직도 성당에 보관되어 있는데 매년 성목요일에는 해골에 와인을 담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식이 진행된다고 한다.

 

오바노스에서 멀지 않은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로 들어섰다. 긴 도로를 따라 형성된 도시는 규모가 제법 컸다. 거기엔 큰 성당이 두 개나 있고 11세기에 지었다는 중세 다리도 있었다. 첫 번째 크루시피호(Crucifijo) 성당은 장식이 소박했으나, 두 번째 산티아고 성당은 제단 장식이 꽤나 화려했다. 특이하게도 왼쪽 제단에는 흑인 산티아고의 상이 있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비가 쏟아져 다리 밑에서 비를 피했다. 우중에도 다리를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가게에서 산 바게트에 훈제 돼지고기를 넣어 점심으로 먹는데 다리를 보러 온 사람들이 내 행색을 살펴본다. 그들이 행여 내 모습을 측은하게 생각하진 않았을까 궁금했다.

 

배낭도 없이 물 한 병 달랑 들고 이 길을 거꾸로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 스페인 사람들로 이 부근에 사는 주민들이 아닌가 싶었다. 가끔 산티아고에서 역으로 걸어오는 젊은이도 만나곤 했다. 오늘도 혼자서 걸어오는 젊은이가 있어 내가 먼저 부엔 까미노!하고 인사를 건넸더니 이 친구 정색을 하면서 자기에게 그런 말 하지 말란다. 도중에 도둑이라도 맞은 것 아닌가 싶었지만 귀찮은 표정까지 비친 친구에게 따로 물어보진 않았다.

 

마녜루(Maneru)를 지나면서는 포도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페인 포도주 하면 리오하(Rioja) 지방이 유명하지만 최근 들어 나바라 지방도 포도주 생산에 열을 올린다 들었다. 멀리 언덕 위에 아름다운 마을이 하나 보였다. 시라우키(Cirauqui)란 마을이었는데 내 생각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아름답기로 손꼽을만 했다.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하룻밤 묵고 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오늘 걸은 거리가 너무 짧아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애초엔 에스테야(Estella)까지 가려고 했지만 3km를 남겨놓고 비야투에르타(Villatuerta)에서 하루를 마감했다.

 

비야투에르타에 하나밖에 없는 사설 알베르게에 묵었다. 숙박비로 12유로, 저녁 식사비로 13유로를 받아 좀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테이블에 앉아 직접 음식을 먹을 때는 그런 생각이 싹 가셨다. 비싼만큼 격식도 있었고 맛도 괜찮았다. 애피타이저도 훌륭했지만 메인으로 나온 빠에야는 정말 훌륭했다. 자전거로 순례 중인 시카고 출신의 마가렛, 둘다 몬태나 글레이셔 국립공원의 레인저인 트레이시, 제프 부부, 호주 아줌마 등 모두 여섯이 와인을 기울이며 멋진 만찬을 즐겼다.

 

 

 

 

 

일출 시각에 맞춰 페르돈 고개로 올랐다. 여기 설치된 순례자 조형물은 꽤나 유명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자전거로 순례에 나선 사람도 의외로 많았다. 순례는 두 발로 걷거나 자전거로 하는 경우만 인정을 한다.

 

 

 

 

순례길에서 벗어나 에우나테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을 다녀왔다.

팔각형 모양을 한 성당에 성모상만 모셔져 있는 검소한 장식이 마음에 들었다.

 

 

 

기에르모의 전설이 어려있는 오바노스

 

 

 

푸엔테 라 레이나 초입에서 만난 크루시피호 성당은 규모는 컸지만 장식은 단출했다.

 

 

 

푸엔테 라 레이나의 산티아고 성당. 얼굴이 검은 산티아고가 모셔져 있었다.

 

 

중세 시대에 놓여진 다리는 아직도 건재해 관광객을 부르고 있었다. 다리 이름이 도시명이 되었다.

 

 

 

멀리서 보고는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시라우키 마을. 포도밭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로마 시대 유적인 이 아치형 다리는 세월이 흘러 조만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로마 시대에 놓았다는 도로도 볼 수 있었다.

 

간편한 복장으로 걷는 사람들이 순례자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씨앗을 뿌릴 준비를 마친 들판이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졌다.

 

 

알베르게에서 석식으로 나온 순례자 메뉴. 애피타이저도 괜찮았지만 메인으로 나온 빠에야가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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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im 2015.11.21 1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4일차에 많이도 가셨네요
    3년전에 걸었던 길을 다시 한번 걷는듯 합니다. 빠에야 생각도 나고요
    다음 여정도 기대 합니다.

    • 보리올 2015.11.21 14: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일정을 좀 짧게 잡는 바람에 여유를 부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하루도 쉬지 못하고 계속 걸어야 했습니다. 빠에야는 스페인 현지에서 먹는 것이 훨씬 맛이 있더군요.

  2. justin 2015.12.15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번에는 타파스가 저를 괴롭히더니 이번에는 빠에야 차례네요. 진정한 빠에야의 맛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 보리올 2015.12.15 16: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무래도 스페인에 한번 같이 가야겠구나. 아니면 내가 독학으로 배워서 해줄까? 파에야도 스페인 현지가 훨씬 맛있더구나. 해물 파에야도 좋지만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야채 파에야도 그런대로 괜찮았지.

  3. 제시카 2016.01.03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골으로 술을 따르다니.. 조금 섬뜩하네요.. 저는 못받아마실거같아요 ㅎㅎㅎ 빠에야가 참 심플해보이는데 훌륭했다니 비밀이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 보리올 2016.01.04 0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해골이라도 성배라 생각하면 무서울 이유가 없지. 빠에야는 스페인에서 그들 방식으로 만들어서 더 맛있다고 느꼈을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