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25일 동안 꾸준히 걸어 오늘 산티아고로 입성한다. 그렇게 흥분되거나 가슴이 설레진 않았다. 더군다나 대서양에 면해 있는 땅끝마을 피스테라와 무시아까지 4일을 더 걸을 것을 생각하니 종점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남들을 깨울까 싶어 불도 켜지 않고 배낭과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와 다시 짐을 쌌다. 출발을 하기 직전에야 안경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알베르게로 돌아가 침대를 뒤졌는데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배낭에 있는 짐을 모두 꺼냈더니 맨 밑바닥에서 나왔다. 한쪽 다리가 부러진 채로 말이다. 카운터에서 테이프를 빌려 임시로 붙여 놓았다. 살세다 마을을 통과해 나오는데 강아지들이 합창을 하듯 일제히 짖어댄다. 동녘 하늘에 붉은 기운이 퍼지더니 불쑥 해가 솟았다. 순례 마지막 날의 날씨가 화창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마을 간격이 많이 좁아졌다. km씩 떨어졌던 마을이 이제는 불과 몇 백 미터에 하나씩 나타났다. 오전에 벌써 크지 않은 마을을 몇 개나 지났다. 한 마을에선 문이 열린 오레오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 보관 중인 옥수수가 드러났고 배고픈 참새들이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가고 있었다. 참새의 굶주림까지 걱정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골 사람들의 인심이 느껴졌다. 내가 다가서는 것을 어찌 감지했는지 녹음된 음성이 갑자기 흘러 나와 날 놀래켰던 마을도 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마지막 말, 부엔 카미노는 알아 들었다. 어느 곳에 있는 알베르게를 선전하는 내용 같았다. 어제부터 느낀 것인데 길가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부쩍 많이 보였다. 지금까진 참나무가 많았는데 말이다.

 

산티아고 경내로 들어섰다.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대성당까진 11km를 걸어야 했다. 공항 활주로가 끝나는 지점을 지나 라바코야(Lavacolla)에 도착했다. 예전 사람들은 순례를 하면서 거의 씻지를 못하다가 여기서 몸을 씻곤 산티아고로 들어갔다고 한다. 라바코야의 어느 성당을 지나는데 마침 미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그 앞에 있는 임시 가판대에서 꽈배기를 한봉 샀다. 도로를 건너다 발견한 가게에서 사과와 콜라를 사서 꽈배기와 함께 점심으로 먹었다. 산티아고를 10km 남겨놓은 지점부터는 거리를 알리던 표지석이 사라져 버렸다. 몬테 도 고쏘(Monte do Gozo)에 도착했다. 얕은 언덕 위에 교황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기념해 만든 탑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었다. 순례길에서 가장 크다는 몬테 도 고쏘 알베르게는 무려 400명을 수용한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들어섰다. 이곳을 순례한 유명인사들의 부조를 넣어 만든 높다란 탑이 순례자들을 맞는다. 갈리시아 자치주의 주도답게 건물이나 식당이 크고 화려했다. 조가비 표식을 따라 대성당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이 이리저리 엉켜 상당히 복잡했지만 내 눈엔 오히려 정겹게 보였다. 세월을 머금은 고풍스러움도 물씬 풍겼다. 그래서 산티아고의 올드타운이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것이다. 1075년에 착공해 1211년 완공된 대성당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백파이프 부는 사람의 환영을 받았다. 1유로를 기부했다. 대성당 앞 광장으로 들어갔다.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완주를 축하하거나 바닥에 앉아 대성당을 올려다 보며 감동의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아쉽게도 대성당 첨탑은 보수 중이라 거푸집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순례자협회에서 순례증서를 발급받았다. 증서 발급은 무료였지만 순례증서를 넣는 통은 2유로에 판다. 순례자협회에서 추천한 알베르게는 15분 거리에 있었다. 세미나리오 메노르(Seminario Menor) 188명을 수용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알베르게에서 석양을 지켜 보았다. 오후 7 30분에 예정된 순례자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대성당으로 갔다. 먼저 성당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보고 미사에 참석했다.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 불리는 향로는 정해진 요일이나 누가 도네이션을 하는 경우에 좌우로 움직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순례자들이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이 향로를 피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순례자 미사도 마쳤으니 이제 공식적인 순례는 모두 끝났구나 싶었다. 시원섭섭하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 벅찬 감동에 절로 눈물이 났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나에겐 그런 감동은 없었다.

 

살세다 마을을 빠져나오며 일출을 맞았다.

 

옥수수가 들어있는 오레오 문이 열려 있어 참새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N-547 도로를 만나는 지점에서 햇빛에 비친 내 그림자를 찍어 보았다.

 

산타 이레네(Santa Irene)에 있는 작은 성당은 반쯤 숲속에 숨어 있었다.

 

산티아고 경내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석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길을 걸었다. 순례자들이 공항 외곽에 쳐놓은 철망에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놓았다.

 

산 팔로(San Palo) 마을에 있는 이름 모를 성당을 지나쳤다.

 

 

라바코야의 베나발(Benaval) 성당에선 미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몬테 도 고쏘의 교황 바오로 2세 방문 기념탑

 

산티아고 도심으로 들어서면서 만난 기념탑에는 왕가의 인물이나 교황 등 유명인사들의 부조가 새겨 있었다.

 

 

산티아고의 도심 풍경

 

 

 

 

 

 

 

 

오브라도이로(Obradoiro) 광장에선 산티아고 대성당을 올려다 볼 수 있다.

시청사와 호텔 등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의 위용도 대단했다.

 

순례자협회에서 크레덴시알에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순례증서를 발급받았다.

 

산티아고 도심엔 알베르게가 없어 좀 걸어나가야 했다. 규모가 큰 세미나리오 메노르를 소개받아 하룻밤 묵었다.

 

세미나리오 메노르 알베르게는 언덕 위에 있어 산티아고 도심을 배경으로 석양을 볼 수 있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저녁에 순례자 미사가 열렸다. 무사히 순례를 마친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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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춘 호 2015.12.22 09: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가고싶게 만드는 후기인것 같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따뜻한 곳으로 떠나고 싶네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멋진 하루 되세요.

    • 보리올 2015.12.22 1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춘호님도 여행을 아주 좋아하시는 분이더군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글 부탁 드립니다.

  2. Preya 2015.12.22 1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하셨습니다 +_+/
    멋진 순례길이었네요.

  3. 농돌이 2015.12.23 0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고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생을 살면서 기념비적인 획을 하나 그으셨습니다
    일이라는 것이 하나의 과정이 지나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오래 오래 행복할 것 같습니다
    지중해까지 가시는지요?

  4. Justin 2016.04.04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짝짝짝~ 일단 산티아고에 입성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티눈과 발목 상태가 좋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오셨네요! 대단하십니다!

    • 보리올 2016.04.07 15: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뒤늦게 이런 축하를 받는구나. 지금은 발목 부상도, 티눈도 다 잊었는데 말이다. 처음엔 왜 이 길을 걷나 싶었는데 다 끝내니 다시 걷고 싶더구나.

 

오늘 새벽을 기해 섬머타임이 해제되어 새벽 3시가 2시로 바뀌었다. 아침이 한 시간 일찍 찾아온 것이다. 수프를 끓이고 거기에 과일과 요구르트를 더해 아침을 때웠다. 밤새 비가 많이 내린 것 같았다. 알베르게를 나설 때는 비가 그쳤지만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기세였다. 아스토르가를 빠져나오며 현대식으로 지은 산 페드로 성당을 지났다. 여기도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날씨도 스산하고 풍경도 단조로워 카메라를 꺼낼 일이 거의 없었다. 그 덕분에 걷는 속도는 제법 빨랐다. 마을 몇 개를 예상보다 빨리 통과한 것이다. 엘 간소((El Ganso)의 성당 입구에 젖지 않은 벤치가 있어 거기 앉아 과일로 간식을 했다. 어제 알베르게에 함께 묵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내 앞을 지나쳐 먼저 가버렸다.

 

길을 걷다가 이두열 선생을 다시 만나 함께 걸었다. 연배도 나보다 위였고 대기업과 신문사, 중소기업 등에서 근무한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요즘 이 순례길에 왜 그리 열광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화제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 새 라바날 델 카미노(Rabanal del Camino)에 도착했다. 이두열 선생은 다른 일행이 있어 여기서 쉬고 가겠다 해서 다시 혼자 걷게 되었다. 라바날은 인구 50명이 사는 조그만 마을이지만 알베르게는 네 개나 될 정도로 순례자들이 많이 묵고 가는 마을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높은 지점으로 오르기 전에 여기서 나름대로 각오를 다진다고나 할까.

 

라바날은 마라가테리아(Maragateria)에 속하는 고장이다. 마라가테리아란 마라가토라 불리는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말하는데, 레온 주의 남서쪽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다. 그들이 짓고 살던 특유의 돌집을 마라가토 스타일이라 하기에 관심을 가지고 봤지만 그리 대단하진 않았다. 그들의 가옥을 보면서 여긴 돌이 흔한 모양이로군, 돌로 튼튼하게도 집을 지었네 하는 생각만 잠시 스쳤다. 난 라바날에 머무르기보다는 가능하면 정상 가까이로 올라갔으면 했다. 라바날을 벗어나는 지점에 샘이 있어 거기서 홀로 점심을 먹었다. 어제 수퍼마켓에서 산 멕시칸 토르티야에 땅콩버터를 발라 먹었다. 산 속으로 캠핑을 갈 때 식량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자주 써먹던 방식인데 어제 수퍼마켓에서 멕시칸 토르티야를 처음 발견해 구입을 했었다. 거기에 사과와 삶은 계란을 추가하니 점심으로 충분했다.

 

라바날부터는 계속 오르막이 이어졌다. 생장 피드포르에서 출발하는 카미노 프란세스, 즉 프랑스 길엔 큰 산 세 개가 있다고 보면 되는데, 피레네 산맥은 이미 초반에 넘었고 이번이 두 번째 산을 오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산을 넘는 것에 걱정이 많지만 난 전혀 신경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라바날이 해발 1,150m고 폰세바돈(Foncebadon)1,400m, 철제 십자가가 있는 최고점은 1,500m로 그리 높지가 않다. 오르막 경사도 심하지 않은 편이다. 해발 고도는 좀 있지만 험산은 아니란 이야기다. 잔돌이 많은 노면 상태와 비 내리는 날씨, 쌀쌀한 기온이 복병이라면 복병일 것이다. 늘 비슷한 날씨겠지만 오늘도 운무가 자욱해 시야를 가렸고,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오늘의 목적지로 삼은 폰세바돈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와 가게, 식당만 있을 뿐, 사람 사는 집은 폐허가 된 채로 흉물스럽게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거기에 안개까지 자욱하니 스산한 느낌마저 들었다. 유령 마을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순례자들이 늘어나면서 마을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들었다. 새로 신축하고 있는 건물도 분명 알베르게일 것이다.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1987년에 쓴 <순례자>라는 작품 속에 이 마을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개와 싸웠다고 하는데 난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진 못했다. 다섯 개나 되는 알베르게 중에 하나를 골라 들어갔더니 이두열 선생과 이영호 선생이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제 아스토르가 알베르게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던 독일 젊은이 셋도 이 알베르게로 들어왔다.

 

저녁은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순례자 메뉴로 하기로 했다. 배에선 쪼로록 소리가나는데 저녁은 7시에나 준단다. 낮잠을 한숨 잤다. 그래도 5시가 되질 않았다. 구름이 많고 날씨가 쌀쌀했지만 밖으로 나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차가운 공기 때문인지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저녁으로 파에야가 나왔다. 지름이 1m나 되는 쟁반에 파에야를 요리해 모두 17명이 나눠 먹었다. 샐러드와 함께 먹으니 궁합이 아주 잘 맞았다. 와인을 곁들여 배불리 먹었다. 우리 테이블에선 한국인 셋과 독일 젊은이 셋이 함께 식사를 했다. 독일에서 5년을 살았던 기억 때문인지 독일에서 왔다니 더 정감이 갔다. 헨드릭스라는 청년과 슈테피, 그리고 다른 아가씨는 뭐라 이름을 알려줬는데 너무 길어서 기억할 수가 없었다.

 

 

 

첫 마을인 발데비에하스(Valdeviejas)에 도착하니 에세 오모(Ecce Homo) 성당이 길가에 자리잡고 있어

유리창을 통해 성당 안을 구경했다. 신앙은 건강의 샘’이란 한글 문구도 보였다.

 

 

순례길 옆으로 숲이 나타났다. 인공 조림한 숲도 있었고 자연적으로 조성된 숲도 있었다.

그나마 숲에서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길 위에 선 순례자들에겐 한걸음 한걸음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산타 카탈리나(Santa Catalina)엔 돌로 지은 성당과 집들이 있었다. 파란색 칠을 한 대문이나 창문도 눈에 띄었다.

 

 

허물어진 돌집이 유난히 많았던 엘 간소. 산티아고 성당도 문이 닫혀 있었다.

 

라바날 초입에 자리잡은 벤디토 크리스토(Bendito Cristo) 성당

 

 

이 지역 특유의 마라가토 스타일을 보여주는 라바날의 가옥들

 

 

라바날의 아순시온(Asuncion) 성당은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을 지니고 있었다.

 

라바날에 있는 또 하나의 성당을 지났는데 이름도 모른 채 그냥 지나쳤다.

 

운무가 자욱한 길을 걸어 폰세바돈으로 오르고 있다.

 

 

 

무너져내린 폐가가 많아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폰세바돈 마을

 

 

폰세바돈의 가게에 들렀더니 가격표에 한글로 상품명을 적어 놓은 것이 보였다. 한국인이 많다는 반증이리라.

 

 

 

 

알베르게에서 순례자 메뉴로 내놓은 파에야가 커다란 쟁반에 담겨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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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17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먼 기억이지만 정말 저도 독일 사람들을 만나면 방갑더라구요. 아버지께서도 독일어를 아직 많이 기억하고 계세요?

    • 보리올 2016.02.17 1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일에서 살았던 기억 때문에 독일 사람들이 더 반가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 그들도 내가 독일에서 산 적이 있다면 반가워 하더구나. 그래서 대화를 이어가기가 쉬워지지. 내 독일어는 서바이벌 수준이라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

 

새벽 6시가 되었는데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리에 누워 마냥 기다리다가 가장 먼저 일어났다. 산티아고 순례 첫째 날인데 시작부터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아침은 알베르게에서 제공했다. 바게트에 버터와 잼이 전부였다. 그 옆에선 헬레나(Helena)란 여자가 건강에 좋다는 유기농 주스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는 사람이 돈 몇 푼을 위해 새벽부터 재료를 들고 온 것은 가상한데 그래도 주스 한 잔에 3유로면 너무 비싸다. 그녀 프로필을 읽다가 캐나다에서도 활동한 적이 있다는 내용을 보곤 바로 주스 한 잔을 주문했다.

 

7시 조금 넘어 알베르게를 나왔다. 어제 루르드(Lourdes)에서 만나 생장 피드포르까지 함께온 김 신부님과 함께 걷는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신부님은 2012년에도 이 순례길을 걸었다고 했다. 생장을 벗어나 가파른 오르막 길을 따라 걸었다. 이 길이 나폴레옹 루트라 했다. 숨도 가프고 땀도 흘렀다. 날씨는 비가 쏟아질 듯 잔뜩 구름을 머금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살포시 여명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상황이다. 생장에서 8km 지점에 있는 오리손(Orisson)에 도착해 알베르게에서 와인 한 잔을 했다. 처음엔 차를 한잔 마시자 했으나 차와 와인이 모두 2유로라 해서 아무 망설임없이 와인으로 정했다. 승용차를 타고와 여기서 순례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론세스바예스로 넘어가는 나폴레옹 루트로 들어선 지가 한참 된 것 같은데 뒤늦게 나폴레옹 루트가 열려 있다는 표식이 나타났다. 눈이 쌓였거나 악천후인 경우에 여기까지 왔다가 되돌아서는 황당한 상황은 없는지 내심 궁금해졌다. 구름 사이로 사람들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어느 정도 올라왔는지 오르막 경사가 좀 순해졌다. 날씨만 맑다면 피레네 산맥의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인데, 그 아름답다는 풍경이 구름에 모두 가려 좀 아쉬울 뿐이었다. 가끔 구름이 걷히면 푸른 초지에 소나 말,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산등성이를 넘자 푸른 초지와 가축들이 사라지고 너도밤나무 숲이 길 양쪽으로 도열하듯 서있었다. 구름에 살짝 가린 숲이 오히려 아름다웠고 누렇게 물든 이파리에서 가을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을 지났다. 거창한 국경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국경이라는 표식 정도는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를 반긴 것은 나바라(Navarra) 자치주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전부였다. 산티아고에서 생장 피드포르를 향해 역으로 걷고 있던 포르투갈 청년은 그래도 프랑스 땅으로 들어선다고 감격에 겨워했다. 우리는 순례 첫날인데 그 친구는 종점에 섰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래도 국경은 너무 싱거웠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길가에 세워진 조그만 쉘터에서 빵과 과일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오늘 구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라는 고개에서도 세찬 바람을 맞아야 했다. 고개를 넘으면 줄곧 내리막이다. 배낭을 내려 물을 한 모금 하고 있는데 내 행색이 어땠는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온 사람이 있었다. 미시간 주에서 변호사를 한다는 중국계 미국인 마샬(Marshall)이었다. 함께 내려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중국계라 하지만 자기는 중국말도 못하고 어릴 때 한 번 빼곤 중국에 가본 적도 없단다. 더 웨이(The Way)란 영화를 보고 이 길을 걷는 꿈을 키워왔는데, 잘 걷지도 못하는 부인이 따라왔다고 했다.

 

드디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웅장한 모습의 수도원 건물이 알베르게로 변해 있었다. 어제 생장의 알베르게에서 만나 오늘 구간을 함께 걸은 자크와 필립하고 여기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들은 프랑스 르푸이(Le Puy)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한 달을 걸어왔고 여기서 집으로 돌아갔다가 스페인 구간은 내년에 걸을 예정이란다. 언제라도 쉽게 올 수 있는 이들이 부러웠다. 현대적 시설로 개조한 알베르게에 들었다. 한국인이 10여 명 보였다. 18살 고등학교 3년생도 둘이나 있었다. 김 신부님과 밖에서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고 오후 8시에 시작하는 순례자 미사에 참석했다. 무슨 말인지 몰라 지루하긴 했지만 우리의 앞길을 축복하는 미사라니 쉽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순례자들을 상대로 헬레나가 판매하던 유기농 건강 주스. 인쇄된 프로필을 나누어 주며 자기 홍보도 열심히 한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였지만 구름 사이로 여명이 조금 보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와 노란색 화살표.

지역마다 이정표는 형태를 달리 했지만 노란 화살표는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시야가 훤히 트이진 않았지만 흐린 날씨에도 목가적인 풍경은 감상할 수 있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길은 두 개가 있다. 일반적으론 나폴레옹 루트를 걷지만

눈이 쌓이거나 악천후에는 이 길을 통제하고 발카를로스(Valcarlos) 루트로 우회를 하게 한다.

 

 

두 시간을 걸어 도착한 오리손 알베르게. 차 한 잔 하러 들어갔다가 와인을 마셨다.

하루에 여기까지 걸어와 묵는 순례자들도 있었다.

 

 

 

피레네 산기슭은 방목을 하는 소나 양이 많았다.

트럭에 양을 실으려는 목동과 한사코 차에 타기를 거부하는 양떼도 만났고,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양떼도 보았다.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왔다는 줄리(Julie)와 사이먼(Simon) 부부.

캐나다, 그것도 같은 주에서 왔다는 것만으로도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자 나타난 너도밤나무 숲. 구름과 어우러진 모습이 신비스러웠다.

 

너무도 싱겁게 지난 프랑스-스페인 국경. 국경을 알리는 어떤 표식도 없었다.

 

 

 

바람도 점점 드세지고 이슬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옛 수도원 건물을 현대식 시설을 갖춘 알베르게로 개조를 했다. 하루 183명을 수용할 수 있는 꽤 큰 시설이었다.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은 식당 카사 사비나. 오후 7시가 되어야 순례자 메뉴를 내놓는다.

수프와 메인 메뉴인 헤이크(Hake) 생선요리, 요구르트 해서 3코스에 10유로를 받았다.

와인은 테이블당 한 병을 내놓는데 우리는 둘이라 양은 충분했다. 음식은 대체로 맛이 좋았다.

 

저녁을 마치고 참석한 순례자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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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심유리안나 2015.11.28 2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두 곧 가려고 준비중입니다
    좋은글 잘 읽어보겠습니당

  2. Justin 2015.12.01 0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디어 아버지의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를 보게 되네요! 저도 나중에 꼭 걷게 될 순례길을 아버지 블로그 통해서 예습하겠습니다.
    우리 형숙이와 함께요 ^^

    • 보리올 2015.12.01 0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제 아주 온라인에 공개를 하는구나. 우리 형숙이라... 잘 해주고 즐거운 시간 많이 가져라. 순례길도 미리 잘 봐두고. 12월 들어섰으니 한 해 마무리 잘 하길 바란다.

  3. 제시카 2015.12.04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캬~ 여행의 시작은 역시 알코올이죠 ㅋ.ㅋ 저도 유럽에서 물대신 맥주를 택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숲속의 사진은 해리포터에서 나온듯한.. 사진같아요 *_* 스페인으로가는 국경을 지나도 스페인인거같지 않겟어요 ㅎㅎㅎㅎ

    • 보리올 2015.12.04 15: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집에 술꾼 한 명 나왔구만. 유럽에선 물 대신 맥주를 마셨다고? 난 순례자 메뉴를 먹을 때나 겨우 와인 한잔 했는데 말이야.

  4. 해인 2015.12.27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인 한 잔에 2유로라니, 1일1와인 하셨었겠네요. 제가 상상했던 알베르게의 시설은 아주 저렴하다기에 조금은 어두침침하고 낡고 시설이 많이 빈약할 줄 알았는데, 세련되고 잘 되있는데요? 상상했던거랑은 아주 달라서 흥미로와요. 세계 각국에서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모여든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하며 걸으시니, 참 좋으셨겠어요.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오신 분들은 더욱더 각별하셨겠다! 이래서 여행이 좋아요 (엄지 척!)

    • 보리올 2015.12.27 1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와, 정말 오랜만에 오셨네. 저 와인은 한잔에 2유로를 받아 엄청 비쌌던 거야. 스페인은 한 병에 2유로 하거든. 그야말로 와인 천국이지. 알베르게는 시설이 천차만별이란다. 이 알베르게는 새로 설비를 갖춰 좋은 편이었지. 순례길에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귄단다. 너도 직접 걸으며 경험을 해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