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산티아고 순례길 1일차(생장 피드포르~론세스바예스)

본문

 

새벽 6시가 되었는데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리에 누워 마냥 기다리다가 가장 먼저 일어났다. 산티아고 순례 첫째 날인데 시작부터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아침은 알베르게에서 제공했다. 바게트에 버터와 잼이 전부였다. 그 옆에선 헬레나(Helena)란 여자가 건강에 좋다는 유기농 주스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는 사람이 돈 몇 푼을 위해 새벽부터 재료를 들고 온 것은 가상한데 그래도 주스 한 잔에 3유로면 너무 비싸다. 그녀 프로필을 읽다가 캐나다에서도 활동한 적이 있다는 내용을 보곤 바로 주스 한 잔을 주문했다.

 

7시 조금 넘어 알베르게를 나왔다. 어제 루르드(Lourdes)에서 만나 생장 피드포르까지 함께온 김 신부님과 함께 걷는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신부님은 2012년에도 이 순례길을 걸었다고 했다. 생장을 벗어나 가파른 오르막 길을 따라 걸었다. 이 길이 나폴레옹 루트라 했다. 숨도 가프고 땀도 흘렀다. 날씨는 비가 쏟아질 듯 잔뜩 구름을 머금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살포시 여명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상황이다. 생장에서 8km 지점에 있는 오리손(Orisson)에 도착해 알베르게에서 와인 한 잔을 했다. 처음엔 차를 한잔 마시자 했으나 차와 와인이 모두 2유로라 해서 아무 망설임없이 와인으로 정했다. 승용차를 타고와 여기서 순례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론세스바예스로 넘어가는 나폴레옹 루트로 들어선 지가 한참 된 것 같은데 뒤늦게 나폴레옹 루트가 열려 있다는 표식이 나타났다. 눈이 쌓였거나 악천후인 경우에 여기까지 왔다가 되돌아서는 황당한 상황은 없는지 내심 궁금해졌다. 구름 사이로 사람들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어느 정도 올라왔는지 오르막 경사가 좀 순해졌다. 날씨만 맑다면 피레네 산맥의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인데, 그 아름답다는 풍경이 구름에 모두 가려 좀 아쉬울 뿐이었다. 가끔 구름이 걷히면 푸른 초지에 소나 말,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산등성이를 넘자 푸른 초지와 가축들이 사라지고 너도밤나무 숲이 길 양쪽으로 도열하듯 서있었다. 구름에 살짝 가린 숲이 오히려 아름다웠고 누렇게 물든 이파리에서 가을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을 지났다. 거창한 국경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국경이라는 표식 정도는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를 반긴 것은 나바라(Navarra) 자치주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전부였다. 산티아고에서 생장 피드포르를 향해 역으로 걷고 있던 포르투갈 청년은 그래도 프랑스 땅으로 들어선다고 감격에 겨워했다. 우리는 순례 첫날인데 그 친구는 종점에 섰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래도 국경은 너무 싱거웠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길가에 세워진 조그만 쉘터에서 빵과 과일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오늘 구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라는 고개에서도 세찬 바람을 맞아야 했다. 고개를 넘으면 줄곧 내리막이다. 배낭을 내려 물을 한 모금 하고 있는데 내 행색이 어땠는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온 사람이 있었다. 미시간 주에서 변호사를 한다는 중국계 미국인 마샬(Marshall)이었다. 함께 내려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중국계라 하지만 자기는 중국말도 못하고 어릴 때 한 번 빼곤 중국에 가본 적도 없단다. 더 웨이(The Way)란 영화를 보고 이 길을 걷는 꿈을 키워왔는데, 잘 걷지도 못하는 부인이 따라왔다고 했다.

 

드디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웅장한 모습의 수도원 건물이 알베르게로 변해 있었다. 어제 생장의 알베르게에서 만나 오늘 구간을 함께 걸은 자크와 필립하고 여기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들은 프랑스 르푸이(Le Puy)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한 달을 걸어왔고 여기서 집으로 돌아갔다가 스페인 구간은 내년에 걸을 예정이란다. 언제라도 쉽게 올 수 있는 이들이 부러웠다. 현대적 시설로 개조한 알베르게에 들었다. 한국인이 10여 명 보였다. 18살 고등학교 3년생도 둘이나 있었다. 김 신부님과 밖에서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고 오후 8시에 시작하는 순례자 미사에 참석했다. 무슨 말인지 몰라 지루하긴 했지만 우리의 앞길을 축복하는 미사라니 쉽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순례자들을 상대로 헬레나가 판매하던 유기농 건강 주스. 인쇄된 프로필을 나누어 주며 자기 홍보도 열심히 한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였지만 구름 사이로 여명이 조금 보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와 노란색 화살표.

지역마다 이정표는 형태를 달리 했지만 노란 화살표는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시야가 훤히 트이진 않았지만 흐린 날씨에도 목가적인 풍경은 감상할 수 있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길은 두 개가 있다. 일반적으론 나폴레옹 루트를 걷지만

눈이 쌓이거나 악천후에는 이 길을 통제하고 발카를로스(Valcarlos) 루트로 우회를 하게 한다.

 

 

두 시간을 걸어 도착한 오리손 알베르게. 차 한 잔 하러 들어갔다가 와인을 마셨다.

하루에 여기까지 걸어와 묵는 순례자들도 있었다.

 

 

 

피레네 산기슭은 방목을 하는 소나 양이 많았다.

트럭에 양을 실으려는 목동과 한사코 차에 타기를 거부하는 양떼도 만났고,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양떼도 보았다.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왔다는 줄리(Julie)와 사이먼(Simon) 부부.

캐나다, 그것도 같은 주에서 왔다는 것만으로도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자 나타난 너도밤나무 숲. 구름과 어우러진 모습이 신비스러웠다.

 

너무도 싱겁게 지난 프랑스-스페인 국경. 국경을 알리는 어떤 표식도 없었다.

 

 

 

바람도 점점 드세지고 이슬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옛 수도원 건물을 현대식 시설을 갖춘 알베르게로 개조를 했다. 하루 183명을 수용할 수 있는 꽤 큰 시설이었다.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은 식당 카사 사비나. 오후 7시가 되어야 순례자 메뉴를 내놓는다.

수프와 메인 메뉴인 헤이크(Hake) 생선요리, 요구르트 해서 3코스에 10유로를 받았다.

와인은 테이블당 한 병을 내놓는데 우리는 둘이라 양은 충분했다. 음식은 대체로 맛이 좋았다.

 

저녁을 마치고 참석한 순례자 미사.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