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발론 반도의 바닷가를 한 바퀴 돌아 세인트 존스(St. John’s)로 돌아가기로 했다. 100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플러센샤(Placentia)란 제법 큰 도시가 나왔다. 하지만 인구는 고작 4,000명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이곳이 한때 뉴펀들랜드의 프랑스 중심지였었다. 17세기 중반부터 프랑스가 여기에 요새를 짓고 본거지로 사용하다가 1713년부터는 영국이 통치하면서 아일랜드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게 되었다. 모처럼 발견한 팀 홀튼스에서 우선 커피 한 잔으로 입을 축이고 플러센샤를 거닐며 고풍스런 성당과 고즈넉한 바닷가를 둘러 보았다.

 

플러센샤에서 멀지 않은 아르젠샤(Argentia)도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고 하기엔 좀 그랬다. 인가보단 공장이나 부두 설비가 많았다. 여기에서 노바 스코샤(Nova Scotia)를 오가는 페리가 출발한다. 100번 도로를 타고 다시 북으로 향하다가 잠시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Trans Canada Highway)를 탔다. 하이웨이를 좀 달리다가 바로 80번 도로로 빠져 다시 지루한 북상이 계속되었다. 화이트웨이(Whiteway)를 지나면서 바다에 떠있는 바위 섬, 샥록(Shag Rock)을 보게 되었다. 우리 나라 도담삼봉 같은 바위가 먼 바다에 떠있는데, 너무 거리가 멀어 카메라로 잡기가 쉽지 않았다.

 

 

 

 

 

 

 

 

 

플러센샤는 16세기 초에 바스크(Basque) 부족이 고기잡이를 왔다가 잠시 정착을 시도했던 곳이라

도시 이름도 바스크 부족의 마을 이름을 땄다. 한때는 꽤 번성했던 곳이라는데 지금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노바 스코샤를 출발한 페리가 19시간이나 걸려 도착하는 곳이 바로 이 아르젠샤라는 조그만 마을이다.

 

 

 

 

 

샥록이란 바위가 바다에 떠있어 유명해진 화이트웨이. 샥록보단 바닷가에 놓여진 창고의 색상이 내게는 더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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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4.11.18 1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록 역사는 짧지만 그 역사를 기억하고 외진 도시나 지역에 그 이름을 반영하는 것은 인상적입니다.

    • 보리올 2014.11.18 1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해서라도 그네들 뿌리와 연결하려는 노력, 아니 의도라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다는 그런 동류의식...

 

세인트 브라이드스(St. Brides)에서 하루를 묵었다. 세인트 존스(St. John’s)에서 남서쪽으로 200km 떨어져 있는 생태보전지구, 케이프 세인트 메어리스(Cape St. Mary’s)로 가려면 거쳐가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세인트 브라이드스는 뉴펀들랜드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한적한 어촌 마을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지나는 사람도 없었다. 선착장으로 내려가 잠시 바닷가 풍경을 둘러본 후에 케이프 세인트 메어리스로 향했다. 밤새 내린 빗줄기가 그칠 생각을 않고 추적추적 차창을 때린다. 시야가 어느 정도는 트였지만 먼 곳은 운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등대 옆에 세워진 안내소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왔는지 안내소 문이 닫혀 있어 차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안내소부터 둘러보았다. 우리 외에는 방문객이 없었다. 가네트(Gannet)를 처음 본 것은 안내소에 있는 사진에서였다. 가네트란 녀석이 이렇게 큰 줄은 몰랐다. 날개를 펼치면 2m가 넘는다고 한다. 몸통은 하얀 털로 덮혀 있지만 머리 부분은 노랑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빗줄기가 조금씩 가늘어지고 운무도 점차 걷히기 시작했다. 집사람은 엄두가 나지 않는지 안내소에 머무르고 있을 테니 나 홀로 다녀오란다. 우산을 받쳐들고 밖으로 나섰다. 가네트 서식지까지는 1.4km를 걸어가야 했다. 절벽 위를 걷는 트레일이 꽤나 낭만적이었다. 날씨만 좋았다면 아주 멋진 풍광을 보여주었을 곳인데 좀 아쉬웠다.

 

멀리서 가네트 서식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 바위 위에 하얀 점들이 칠해져 있었다. 그 하얀 점들이 모두 가네트였다. 하늘을 나는 몇십 마리를 제외하곤 대부분은 바위에 앉아 미동도 않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개체수는 엄청났다. 그 숫자를 미루어 짐작할 수도 없었다. 내가 서있는 위치에서 가네트가 앉아 있는 바위까지는 불과 3~4m의 거리를 두고 있어 녀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한 눈에 볼 수가 있었다. 가슴 떨리는 광경에 넋을 놓고 바라만 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5월 말이면 알을 낳는다 하던데 이제 그 준비에 정신이 없는 듯 했다.

 

 

 

 

아발론 반도 남서쪽에 위치한 세인트 브라이드스 마을. 하룻밤을 묵은 인연으로 선착장까지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뉴펀들랜드엔 몇 군데 생태보전지구가 지정되어 있는데 케이프 세인트 메어리스는 그 중에 하나다.

가네트란 바닷새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황야를 걸어 가네트 서식지에 도착했다. 하얀 점들이 바위를 수놓고 있는 특이한 광경에

그저 넋을 잃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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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4.11.16 0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가네트라는 새는 처음 들어봅니다. 머리만 노란 것이 독특합니다. 멀리서 찍은 사진을 보고 처음에는 바위 위에 눈이 내린줄 알았습니다.

    • 보리올 2014.11.16 0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네트는 북미에 많이 서식하지. 캐나다 서부보단 동부에 많은 것 같더라. 난 일본 가려고 인천공항에 있다. 다녀와서 통화하자.

 

집사람과 둘이서 이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은 내가 큰 맘 먹고 끝까지 읽은 영문소설 <Latitude of Melt> 때문이었다. 이 책은 노바 스코샤 태생의 작가, 존 클락(Joan Clark)이 세인트 존스(St, John’s)에 정착해 2000년 출간한 것이다. 1912년 타이태닉호 침몰에서 살아남은 한 여자아이의 일생을 그렸다. 오로라란 이름의 아이는 어부 가족에 입양되어 드룩(Drook)이란 마을에서 성장했고, 등대지기와 결혼해선 케이프 레이스(Cape Race)에서 아이 둘을 낳아 키웠다. 이 케이프 레이스는 실제로 타이태닉호가 침몰하면서 보낸 조난신호를 처음으로 잡았던 육상기지였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이 책의 배경이 되었던 곳을 가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고 그것이 여행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핼리팩스에서 포터(Porter) 항공편을 이용해 세인트 존스(St. John’s)로 날아갔다. 포터 항공은 사실 처음 타보았다. 토론토를 중심으로 캐나다 동부에 많이 취항하는 포터 항공은 규모 면에선 캐나다에서 세 번째로 크다고 한다. 70인승 프로펠러 항공기에 올랐다. 포터 항공은 국내선임에도 기내 서비스로 맥주나 와인을 제공한다. 다른 항공사에선 적어도 6불은 받을 것이다. 밤늦게 도착하는 비행기인데도 무슨 이유인지 40분이나 연착을 했다. 공항에서 렌트카를 받았다. 600km밖에 뛰지 않은 새차라 기분이 좋았다. 세인트 존스 시내에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아침에 호텔을 나와 케이프 스피어(Cape Spear) 등대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도심을 벗어나 어느 정도 경사를 오르자, 세인트 존스 시내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색깔을 가진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케이프 스피어는 안개에 가려 겨우 형체만 식별할 수 있었다. 바다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 안개가 짙은 지역이라고 들었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그래도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새로 지은 등대와 옛 등대를 차례로 둘러보았다. 선물 가게나 다른 시설은 모두 문을 닫았다. 꽃피는 5월인데도 여긴 관광 시즌이 되기엔 너무 이른 모양이다.  

 

아발론 반도 남서쪽으로 향하는 10번 도로(Route 10)를 타고 남으로 이동했다. 내비나 지도의 도움없이 감으로 10번 도로를 찾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먼저 페리랜드(Ferryland)부터 들렀다. 1621년에 마을이 형성되었다니 캐나다 여타 지역과는 생성연대가 완전 다르다. 황량한 해안가에 집 몇 채 있는 것이 전부였다.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는지 배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차를 세우고 빨간 등대가 서있는 곳까지 걸어 들어갔다. 여기도 온통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빨간 등대만 겨우 식별할 수 있었다. 여름철이면 이 등대에서 바구니에 넣어 파는 피크닉 런치(Picnic Lunch)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이 마저도 문을 열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공짜로 나온 맥주 한 캔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미국이나 캐나다 국내선에선 이런 서비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세인트 존스는 도심 전체가 형형색색의 페인트를 칠한 건물과 주택들로 가득하다.

알록달록한 형상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도시다. 첫날은 그냥 맛보기로 그 일부를 보았을 뿐이다.

 

 

 

 

 

케이프 스피어는 세인트 존스에서 유명 관광지로 손꼽히는데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추곤 우리 앞에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았다.

 

10번 도로는 아일랜드 이주민들의 고단한 숨결과 역사가 스며있는 곳이라 아이리쉬 루프 드라이브(Irish Loop Drive)라고 불린다.

 

 

 

 

 

 

 

 

  페리랜드는 인구 465명을 가진 조그만 어촌 마을이다. 하지만 해안 구릉위에 빨간 등대가 있어 유명해진 곳이다.

그 등대에서 파는 피크닉 런치를 먹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문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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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4.10.10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가 미스터리 영화에 나올듯 한 으스스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5월이래도 꽤 추웠을 것 같아요..

    • 보리올 2014.10.11 0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뉴펀들랜드는 늘 안개도 짙고 대지도 황무지로 덮여 있으니 으스스한 분위기를 느낄만 할 겁니다. 그래도 전 그런 풍경에 마음이 편하던데요.

  2. justin 2014.11.10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동차로 캐나다 횡단을 했지만 뉴펀들랜드를 앞에 놓고 노바스코샤에서 다음을 기약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아무래도 일정상 페리를 타고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너무 길었습니다. 아버지 블로그를 통해서 그 아쉬움을 달래야겠습니다.

    • 보리올 2014.11.10 22: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 그때 뉴펀들랜드까지 갔더라면 완벽한 캐나다 대륙 횡단이었는데 말이다. 나중에 나를 데리고 한번 더 하라는 신의 계시 아니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