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유적'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05.23 [캄보디아] 시엠립 – 타프롬 사원 (2)
  2. 2016.05.11 [캄보디아] 시엠립-1 (2)
  3. 2016.05.04 [캄보디아] 프놈펜-1 (4)

 

 

며칠의 시차를 두고 앙코르 유적을 다시 찾았다. 지난 번과 다른 점이라면 툭툭이대신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닌 것이다. 자전거는 하루에 2불을 받았다. 거칠긴 하지만 아스팔트가 깔려 있어 그리 힘든 것은 없었다. 그래도 뜨거운 날씨에 자전거 타기가 솔직히 쉽진 않았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툭툭이 10여 대에 나누어 타고 열을 지어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번 다녀간 곳이라고 길이 낯설지는 않았다. 천천히 자전거를 몰아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타프롬 사원(Ta Prohm Temple). 자야바르만 7(Jayavarman VII)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해 1186년에 지었다고 한다. 한때는 엄청난 규모의 사원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폐허 상태로 남아 있었다. 폐허의 주범은 바로 거대한 스펑(Spung) 나무와 반얀(Banyan) 나무였다. 하지만 여기서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가 주연한 <툼 레이더>를 촬영했기 때문에 우리에겐 무척 눈에 익은 장소이기도 했다.

 

타프롬 입구부터 사람들이 꽤 많았다. 아까 툭툭이를 타고온 한국인들도 보였다. 앙코르 유적 가운데 나무 뿌리에 의해 가장 손상을 많이 받은 곳이 타프롬이다. 마치 거대한 아나콘다가 석조 건물을 칭칭 감고 있는 듯한 모습이 내게는 참으로 묘하게 보였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유적이 나무 뿌리에 휘감겨 애처롭게 서있는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원래 자연의 힘을 거스릴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평범한 이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오히려 그 나무 뿌리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에 일부 유적을 복원하곤 있지만 나무를 제거하고 석재를 다시 쌓을 경우 타프롬의 독특한 매력이 상실된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복원작업이 더디게 진행된다.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나무를 베어내고 복원을 할 것인지 사이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나무의 성장을 막기 위해 주사나 놓고 있다고 한다.

 

앙코르 유적을 관람하기 위해선 여기서 입장권을 사야 한다. 하루권은 20불이고 3일권은 40, 7일권은 60불을 받는다.

 

앙코르 유적지 초입을 알리는 표지석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10여 대의 툭툭이에 나눠타고 앙코르 유적지로 들어서고 있다.

 

 

타 프롬의 동쪽 문으로 들어서면 만나는 거목의 울퉁불퉁한 뿌리가 엄청난 생명력을 자랑한다.

 

 

 

 

사원 건물 어디에서나 굵은 나무 뿌리가 사원을 칭칭 감고 있었다. 타프롬 사원을 파괴하는 주범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툼 레이더>란 영화에 나와 졸지에 졸리 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그 나무 앞에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렸다.

 

 

 

 

심각하게 손상을 입은 사원 구석구석을 관광객들이 누비고 있다.

 

 

압살라 조각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사원 안에서 현지인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팔찌를 팔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표정의 아이들이 관광객들에게 1달러를 달라고 손을 내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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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6.12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태국에서 스쿠터를 정말 저렴하게 빌려서 탔는데 그것도 꽤 낭만이 있었습니다.

    • 보리올 2016.06.12 1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스쿠터로 여행하는 것도 좋지. 시엠립에선 스쿠터를 좀 비싸게 달라고 해서 자전거로 정했다. 언젠가 나도 스쿠터 타고 세상을 돌아다닐 날이 올지 어찌 알겠냐.

 

시아누크빌에서 버스를 타고 시엠립(Siem Reap)으로 이동했다. 계산상으론 11시간 걸린다고 봤지만 실제는 14시간이 걸렸다. 하루 종일 차에 앉아 시간을 보낸 것이다. 땡볕에 나돌아다니는 것보단 에어컨이 있는 버스 안에 있는 것이 솔직히 더 좋았다. 시엠립은 이미 구경을 마친 곳이었다. 여기서 귀국 비행기를 타기에 어차피 돌아와야 하지만 카메라를 도난 당한 탓에 예정보다 일찍 돌아온 것이다. 다른 곳을 둘러보는 것보다 내겐 앙코르 유적을 찍어가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툭툭이 기사들의 끈질긴 호객을 뿌리치고 올드마켓까지 걸어왔다. 시엠립 도착 기념으로 시원한 과일주스부터 한 잔 했다. 이 과일주스는 캄보디아에서 발견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망고를 비롯해서 두리안, 아보카도 모두 맛이 좋았다.

 

앙코르 유적지를 보듬고 있는 시엠립을 다시 둘러보니 처음보다는 시간이 많이 절약되었다. 별로였던 곳은 대충 건너뛰고 엑기스만 둘러보는 식이었다. 더욱이 한번 다녀간 곳이라고 지리도 눈에 익어 헤매지 않고 바로 목적지를 찾아갔다. 시엠립은 관광지답게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 식당이 무척 많았다. 다른 도시에 비해 발전 속도가 빨라 변화가 심하다고 했다. 어디서나 영어가 통용되었고 돈도 현지화보단 미달러를 더 선호했다. 식당 메뉴판이나 선물가게의 상품 가격도 모두 미화로 적혀 있었다. 시엠립 자체는 솔직히 앙코르 유적을 빼면 볼거리가 그리 많지 않다. 욕심을 버리고 그저 발길 닿는대로 쉬엄쉬엄 돌아다니다가, 해가 지고 나면 물 만난 고기처럼 야시장(Night Market)과 펍 스트리트(Pub Street)를 배회했다.

 

시엠립에선 헬멧을 착용하지 않고 오토바이를 모는 운전자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었다.

 

 

로얄 인디펜던스 정원(Royal Independence Gardens) 앞에는 현 캄보디아 국왕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불상도 하나 조각되어 있었다.

 

 

해가 저물며 시엠립 주요 도로에도 어둠이 내려 앉았다.

 

 

시엠립에 있는 한국식당 대박. 위치가 다른 곳에 동일한 이름으로 또 하나가 있었다.

5불짜리 삽겹살을 시키면 푸짐하게 반찬이 나오고 무한 리필로 삼겹살이 구워져 나왔다.

 

 

 

 

 

밤이 되면 문을 열어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나이트 마켓

 

 

 

날씨가 선선해지는 밤이 되면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나와 불야성을 이루는 펍 스트리트.

툼 레이더 촬영차 왔던 엔젤리나 졸리가 찾아 유명해진 레드 피아노엔 늘 사람들로 붐빈다.

 

 

시엠립 강을 건너면 공예품 야시장이 따로 자리잡고 있는데 진열된 제품들은 좀 유치해 보였다.

 

캄보디아는 가난한 나라지만 시엠립은 관광지랍시고 강을 건너는 다리의 조명에 신경을 많이 썼다.

 

스님 한 분이 구걸하는 걸인이나 공연단에 지폐를 꺼내 적선하는 모습에 가슴이 훈훈해졌다.

돈을 밝히는 스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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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6.07 1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여행하면서 그런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낯설어서, 익숙치 않아서 모든 것이 새로운 느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무척 더운 날씨에 동남아시아에선 최빈국에 속하는 캄보디아를 다녀왔다. 앙코르 와트(Angkor Wat)를 비롯한 앙코르 유적이 찬란했던 그들의 과거를 대변해주고 있어 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캄보디아는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외세에 시달려 왔다. 이웃 국가인 태국과 베트남의 계속되는 핍박에 견디다 못해 1863년 스스로 프랑스 식민지가 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엔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195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지만 친미적인 론 놀(Lon Nol)의 크메르 공화국에 이어 폴 포트(Pol Pot)가 이끄는 공산당 정권에 의해 엄청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1975 4월부터 1979 1월까지 200만 명에 이르는 목숨을 학살한 킬링 필드(Killing Fields)가 자행된 것이다. 현재는 입헌군주제에 기초한 캄보디아 왕국이 설립되어 시아누크가 왕으로 복위한 후 어느 정도 상처를 회복하고 외형적으론 평온을 되찾은 것 같았다. 시아누크가 퇴위한 2004년에 시하모니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얼굴을 가진 캄보디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선량하게 생겼다. 하지만 프놈펜(Phnom Penh)에 도착해서 바로 카메라를 소매치기 당하는 사고를 겪고나자 갑자기 순한 얼굴 뒤에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경계심이 들었다. 캄보디아에 정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호텔에만 머무를 수는 없어 밖으로 나섰다. 4월 초의 동남아 날씨가 이렇게 더울 줄은 미처 몰랐다. 한낮의 온도가 39~40도를 오르내렸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피부는 타들어가고 잠시만 걸으면 땀이 줄줄 흐르고 목이 탔다. 그래도 내 수중에 스마트폰이 남아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시내를 걸었다. 톤레삽 강(Tonle Sap River)을 따라 올라 프놈펜의 상징이라는 와트 프놈(Wat Phnom)에서 시작해 왕궁으로 내려오는 도보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가감없이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이 정겨웠다. 탁발을 나온 동자승, 시장에서 생선 몇 마리 든 좌판을 깔아놓고 호객하는 아낙네, 길가 그늘에서 한가롭게 장기를 두고 있는 남자들에게서 사람 냄새가 났고 이렇게나마 그네들 생활의 일면을 보게 되어 다행이었다.

 

 

톤레삽 강을 따라 위로 올라가며 강가 풍경을 살펴 보았다.

조그만 배에서 살아가며 때론 고기잡이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와트 프놈부터 들렀다. 규모는 작았지만 치성을 드리러 온 시민들이 제법 많았다.

우리네 것과는 형상이 많이 다른 불상들이 앉아 있었다.

 

 

중앙시장 근처에 있는 168 버스 터미널에서 시아누크빌(Sihanouk Ville) 가는 버스를 미리 예약했다.

 

 

 

왕립 미술대(Royal University of Fine Arts)에서 학생들이 무슨 축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의 장기와 비슷한 체스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훈수꾼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어린 스님 둘이 대로를 따라 탁발을 다니고 있었다. 수행의 한 과정인 탁발로 얻은 음식으로 목숨을 부지한다고 한다.

 

 

릭샤를 끄는 사람이나 길에서 구걸을 하는 두 아이 엄마도 한낮의 더위를 피해 낮잠에 들었다.

한가로운 도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길거리 상가에 이렇게 도살한 돼지를 걸어놓은 곳이 있었다. 통돼지 바비큐를 하려는 것인지는 물어보지 못 했다.

 

길거리에서 미장원 안을 살짝 들여다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늦은 저녁을 먹으러 매운 국수라 적혀 있는 식당을 찾았다. 얼마나 매울까 기대를 했지만 내 입에도 그리 맵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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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라다이스블로그 2016.05.04 14: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지의 구석구석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포스팅, 잘 보았습니다 ㅎㅎ
    마지막 국수도 맛있어보이는데요. 캄보디아 여행 한번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 보리올 2016.05.04 1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감어린 댓글을 보면 힘이 납니다. 어떻게 갚지요?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은 꼭 보셔야 합니다. 카메라나 귀중품은 항상 조심하시구요.

  2. Justin 2016.05.27 1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나 더울지 상상이 안 갑니다. 캄보디아에 그런 아픈 역사가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 보리올 2016.05.28 1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때는 앙코르 유적을 만들 정도로 강성했던 민족이 저리도 몰락할 수 있을까 싶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니 저들도 언젠가 다시 부강한 나라를 만들 희망을 갖고 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