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명물을 하나만 꼽으라면 누가 뭐라 해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Sydney Opera House)가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Harbour Bridge)를 함께 찍은 이미지는 시드니뿐만 아니라 호주를 대표하는 풍경으로 간주된다. 20여 년 전에 처음으로 시드니를 찾았을 때도 오페라 하우스를 가장 먼저 보고 싶었고, 여유 시간을 얻어 그 앞에 섰을 때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도 했다. 이 앞에 서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이번에 다시 찾은 시드니는 감회가 좀 달랐다. 시드니에서 주로 걸어 다니거나 오팔 패스를 이용해 대중교통을 탔기 때문에 자연스레 발길이 오페라 하우스로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덕분에 오페라 하우스를 대여섯 번인가 찾아간 기억이 난다. 그러다 보니 오페라 하우스에 대한 환상도 어느 정도 깨지고 가슴 설레는 일도 사라졌다. 시드니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에서 내겐 그렇고 그런 건축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1959년에 착공해 1973년에 오픈한 이 오페라 하우스는 시드니의 상징적 건축물이다. 아니, 세계적으로도 무척 유명한 건축물로 인정받는다. 오죽하면 현대식 단일 건물임에도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을까. 덴마크 건축가 외른 우쏜(Jørn Utzon)이 오렌지 껍질을 벗기던 도중에 착상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덕분에 특이한 형태의 지붕 모양을 갖게 되었고, 그 덕분에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게 된 연결고리가 나름 재미있다. 한 건축가의 창의적인 착상 하나가 우리 인류에게 대단한 선물을 안겨준 셈이다. 비록 그렇다 해도 오페라 하우스만으로 포스팅을 하려니 내용이 빈약하긴 하다. 여러 번 방문하다 보니 이미지가 많아서 그리 되었다. 그래도 촬영 날짜와 하늘이 다르고 일부는 야간에 찍기도 해서 느낌이 조금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 오후에 오페라 하우스를 만났다. 날이 뜨거워 그런지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밤에 다시 찾은 오페라 하우스.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지붕 형상이 인상적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갑작스레 불꽃놀이가 벌어졌지만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구름이 많이 낀 날이라 파란 하늘을 볼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오페라 하우스는 온화한 표정을 짓는 듯 했다.



오페라 하우스 주변 풍경


'여행을 떠나다 - 오세아니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주] 시드니 ⑤  (2) 2018.03.23
[호주] 시드니 ④  (4) 2018.03.20
[호주] 시드니 ③  (2) 2018.03.18
[호주] 시드니 ②  (2) 2018.03.15
[호주] 시드니 ①  (2) 2018.03.13
[뉴질랜드] 오클랜드  (2) 2018.03.07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8.04.05 1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삼스럽게 건축물의 중요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기에 오페라하우스 대신 그저 평범한 고층빌딩이나 부둣가가 형성이 되었다면 시드니는 저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킹스턴(Kingston)으로 들어섰다. 캐나다에서 첫째, 둘째 가는 도시인 토론토와 몬트리올의 중간쯤에 있는 도시로 온타리오 호수(Lake Ontario)의 동쪽 끝에 위치한다. 킹스턴에서 세인트 로렌스 강(St. Lawrence River)이 시작되어 오대호의 엄청난 수량을 대서양으로 흘려보낸다. 강 위에 떠있는 천섬(Thousand Islands)이란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킹스턴은 캐나다 연방이 탄생하기 전인 1841년부터 3년간 캐나다 프로빈스의 수도 역할을 했기 때문에 역사적인 건물이 의외로 많다. 우리 나라 사관학교에 해당하는 로얄 밀리터리 컬리지(Royal Military College)도 여기에 있고, 국가 역사 유적지로 지정된 문화재도 무려 21개나 가지고 있다. 포트 헨리(Fort Henry) 등 킹스턴의 요새는 리도 운하와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커피부터 한 잔 하고 다운타운을 둘러보았다. 아침 시각이라 그런지 시내는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한 시간에 걸친 시내 구경을 마쳤다. 고풍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건물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차를 몰아 포트 헨리로 향했다. 여름 시즌이 끝난 관계로 요새 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건물 안은 둘러보지 못 했다. 진홍색 군복을 입은 초병들이 펼치는 행진도 볼 수 없었다. 포트 헨리는 1813년에 처음 지어졌다가 리도 운하를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1830년대에 증축했다고 한다. 1812년에 미국의 침공으로 전쟁에 휘말렸던 쓰라린 경험이 낳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덕 위에서 킹스턴 시내와 사관학교를 내려다 보았다.

 

예약 시간에 맞춰 천섬 크루즈에 나섰다. 크루즈 운행사의 보트 세 척 가운데 아일랜드 퀸(Island Queen)이란 배에 올랐다. 세인트 로렌스 강 하류로 지루하게 내려갔다. 강 위에 진짜 1,000개나 되는 섬들이 떠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랬다. 바람이 세게 불어 체감 온도는 무척 낮았다. 밖에서 서성이다가 실내에서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 보았다. 한 시간 넘게 내려오니 강 위로 섬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크지 않은 섬에 아름다운 별장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어느 섬은 집 하나 들어서니 꽉 차는 기분이 들었다. 경관은 아름다웠지만 비슷비슷한 풍경이 펼쳐져 지루해질 무렵 배가 방향을 바꾸어 물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천섬 크루즈에 왕복 세 시간이 걸렸다.





역사가 깊은 도시답게 킹스턴 다운타운에 있는 건물에선 고풍스러움이 묻어났다.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리도 운하를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포트 헨리를 둘러 보았다.





킹스턴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천섬 크루즈를 마다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부두를 떠나는 배 위에서 점점 멀어지는 킹스턴 모습을 지켜보았다.





세인트 로렌스 강 위에 떠있는 천섬에는 각양각색의 별장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7.12.02 1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킹스턴에 대해서 아는거라곤 천섬 밖에 없었는데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줄은 몰랐습니다. 퀸즈 대학에 친구들 보러 또는 운동하러 갔었는데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둘러볼걸 그랬나봐요~

    • 보리올 2017.12.02 17: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캐나다에선 역사가 깊은 도시 중 하나지. 네 친구 원서가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대접 받았다. 퀸즈대학생들이 많이 오는 것 같더라.

 

지난 번에는 앙코르 와트(Angkor Wat)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새벽 5시에 일어나 툭툭이를 타고 갔었는데 이번에는 한낮에 자전거를 타고 앙코르 와트를 찾았다. 앙코르 톰에서 앙코르 와트로 이동하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볶음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날씨가 너무 뜨거워 나무 그늘에서 앙코르 와트를 싸고 있는 해자를 바라보며 한참을 쉬었다. 앙코르 와트엔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앙코르 와트는 12세기 초에 수리야바르만 2(Suryavarman II)에 의해 창건된 사원이다. 처음엔 힌두교 사원으로 지었다가 나중에 불교사원으로 쓰였다고 한다. 옛 크메르 왕국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 때문에 1992년 일찌감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엄청난 일출 인파로 붐볐던 호수는 한산했다. 호수를 한 바퀴 돌아 안으로 들어섰다. 대낮에 보는 앙코르 와트는 새벽보다 신비함이 좀 덜했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중앙 성소부터 가기로 했다. 경사가 무척 급한 계단을 올라야 했다. 중앙탑과 그것을 둘러싼 네 개의 탑, 그리고 회랑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신성한 공간이라 게단을 오르기 전에 모자를 벗으라 하고 짧은 바지를 입은 사람은 천으로 다리를 감싸도록 한다. 회랑을 따라 걸으며 탁 트인 앙코르 와트의 풍경을 여유롭게 즐겼다. 그 아래 2층엔 목이 잘린 불상들이 많았다. 한켠에는 불상을 모아 간단하게 불전을 만들어 놓았다. 오렌지색 가사를 입은 스님 한 분이 스마트폰에 정신을 팔다가 손님이 시줏돈을 내놓으면 얼른 축문을 읽는다. 너무 세속적인 모습이라 웃음이 나왔다.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 공명이 생긴다는 방을 거쳐 맨 아래에 있는 1층 회랑으로 내려섰다. 아래 회랑엔 엄청난 양의 부조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부조의 섬세함, 정교함이 돋보였다. 힌두 신화나 크메르 왕국의 군인들이 전쟁에 나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등 그 내용을 이해하면서 본다면 하루도 부족할 것 같았다. 오래 전에 무슨 기술이 있어서 이렇게 섬세하게 조각을 했을까 내심 놀랍기까지 했다. 한 번 보고 지나간 곳이기에 시간을 줄여 구경을 마쳤다. 어쩌면 날씨가 너무 더워 대충 건너뛰었는 지도 모른다. 3층에 걸쳐 있는 회랑만 모두 둘러보아도 엄청난 운동량이 될 것 같았다. 무거운 다리를 끌고 앙코로 와트 입구로 나왔다. 정자나무 아래서 30여 분을 쉬면서 새로 구입한 1.5리터 생수를 전부 마셔 버렸다.

 

 

앙코르 와트로 들어가는 문은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해가 지는 서쪽은 사후세계 또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정면에서 바라다 보는 앙코르 와트. 수미산을 의미하는 중앙의 높은 탑을 네 개의 탑이 둘러싸고 있다.

 

 

 

앙코르 와트 상층부를 장식하고 있는 건축물에서 세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상층부 성소로 오르는 계단은 경사가 상당히 심했다.

 

 

 

 

가장 높은 위치에서 바라본 앙코르 와트의 건축물과 바깥 풍경. 열기구가 한가롭게 하늘을 떠다니고 있다.

 

 

상층부 성소에서 만난 와불. 곳곳에 불상이 비치되어 있었고, 압살라 조각도 많이 눈에 띄었다.

 

 

2층엔 회랑 외에도 불상을 모아 만든 불전이 있어 참배객들을 받았다.

 

 

 

 

1층 회랑엔 섬세한 부조가 끝없이 새겨져 있었다. 힌두 신화의 내용이나 전투 장면, 전쟁에 나가는 모습 등이 많았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6.06.19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로만 듣던 앙코르와트를 직접 보시다니 부럽습니다. 그런데 왜 예전부터 이나라 저나라 머리가 잘린 불상이 많은걸까요?

    • 보리올 2016.06.19 1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는 청춘이고 나는 노년에 들었는데 젊은 네가 왜 부러워하는지 모르겠다. 영원하지는 않지만 이제 시간은 네 것인데 말이다. 불상의 목이 잘린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타 종교의 배타적 신념이나 다산 등을 노린 미신이 아닐까 싶구나.

 

큰 도시란 의미를 가진 앙코르 톰(Angkor Thom)은 가로 3km, 세로 3km의 정방형도시로 크메르 왕국의 마지막 수도였다. 12세기에 이미 인구 70만 명을 가진 도시였다면 아마도 그 당시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에 속했을 것이다. 도시는 수로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외부와는 다섯 개의 문으로만 연결되어 있다. 앙코르 와트에 비해선 면적도 훨씬 넓었고 볼거리도 더 많았다. 앙코르 톰의 중심은 단연 바이욘(Bayon) 사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욘을 먼저 둘러보고 바푸온(Baphuon) 사원을 지나 코끼리 테라스까지 걷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지만 난 그 반대로 돌았다. 지난 번에 그렇게 돌았기 때문이었다. 코끼리 테라스는 왕이 군대를 사열하거나 전쟁에 나가는 출정식이 열렸던 장소였다. 코끼리 머리 석상뿐만 아니라 벽면은 갖가지 조각들로 가득했다. 바푸온 사원은 지난 번에 너무 힘들게 오르내렸던 곳이라 다시 가지는 않았다.

 

앙코르 톰 중앙에 위치한 바이욘 사원으로 갔다. 이 사원은 앙코르 유적 가운데에선 상당히 큰 불교사원에 속한다. 자야바르만 7(Jayavarman VII) 통치하던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걸쳐 지어졌다고 한다. 앙코르 와트보다는 100여 년 뒤에 세워진 셈이다. 바이욘의 백미는 아무래도 크메르의 미소라 부르는 사면상이 아닐까 싶다. 20만 개가 넘는 돌을 쌓아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을 수없이 조각해 놓았는데, 돌 하나를 깍은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돌을 깍아 서로 각을 맞췄으니 그 수고가 말도 아니었을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자야바르만 7세가 사후에도 크메르 왕국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사면상이 조각된 탑들이 늘어선 3층에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각각 네 개의 미소상을 가진 54개의 석탑이 중앙성소를 바라보도록 세워졌다고 하는데 현재는 36개 석탑에 150개의 크메르 미소만 남아 있다.

 

앙코르 톰으로 들어서기 위해 다리를 건너 동문을 통과했다. 문 위에는 크메르의 미소라 불리는 사면상이 조각되어 있다.

 

손님을 싣고오는 툭툭이로 앙코르 톰은 분주했다. 대형버스는 들어올 수가 없어 아무래도 툭툭이가 대세를 이뤘다.

 

 

 

왕이 군대를 사열하거나 전쟁 출정식을 거행했다는 코끼리 테라스

 

중앙성소를 중심으로 세워진 탑들이 하늘로 솟아있는 바이욘 사원의 전경

 

 

바이욘 사원으로 드는 초입은 다른 유적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바이욘 사원의 진가는 누가 뭐래도 탑에 조각된 사면상의 은근한 미소에 있다고 본다.

 

바이욘 사원 중앙에 모셔져 있는 불상. 안으로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했다.

 

타프롬과 마찬가지로 바이욘 사원도 폐허가 되긴 했지만 나무 뿌리에 의한 공격은 받지 않았다.

 

 

 

바이욘 사원 밖으로 나오니 사방이 트인 건물 안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다.

스님도 있었고 불공 준비로 바쁜 보살도 여럿 보였다.

 

앙코르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비석이 바이욘 사원 밖에 세워져 있었다.

 

남쪽에 있는 좁은 문을 억지로 통과해 들어오려던 이 트럭 때문에 교통 체증이 생겼다.

 

남문 밖에 있는 다리 위엔 돌로 조각된 신상들이 늘어서 있었다. 새로 만들어 붙인 신상의 머리가 영 어색하기만 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ustin 2016.06.15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메르의 미소가 묘한 매력이 있네요. 옛날 캄보디아 왕들은 웃는 상이였나봅니다.

    • 보리올 2016.06.16 0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실제로 미소짓는 상을 조각하려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얼굴 크기에 비해 입을 크게 하고 양쪽 입끝을 위로 치켜올려 웃는 얼굴을 만든 듯 하더구나.

 

리스본에서 신트라(Sintra)로 가기 위해 호시오(Rossio) 역에서 기차를 탔다.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타일로 예쁘게 외관을 꾸민 신트라 역사 앞에서 434번 시내버스를 바로 탈 수 있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로 순식간에 버스는 만원이 되었다. 산으로 오르는 숲길을 지그재그로 달려 무어 성에서 내렸다. 무어 성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8세기에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들이 요새로 지어 사용을 하다가 1147년 아폰수 1세가 리스본을 해방시킬 무렵에 성을 포기하고 퇴각한 이후론 폐허로 버려졌다가 19세기에 복구되었다. 1995년에 신트라 지역에 있는 문화재를 묶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는데 이 무어 성도 그 안에 포함되었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었다.

 

오솔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성터에서 발굴된 유적을 보관하는 전시실을 만들어 놓아 들어가 보았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났고 거기서 입장권을 검사했다. 오른쪽으로 돌아 성벽으로 올랐다. 원통형 모양의 중심부(castle keep)부터 올랐다. 무어 성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했던 성과는 많이 달랐다. 성이라기 보다는 군사 요새란 느낌이 강했다. 성 안에 있었다는 시설도 모두 사라지고 성벽만 남아 있었다.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성벽 위로 난 좁은 길은 오르내림이 심해 마치 산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해발 412m의 높이에 세워진 성이라 파노라마 조망은 훌륭했다. 아래로 신트라가 내려다 보였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성과 궁전도 보였다. 신트라의 명소인 페냐(Pena) 궁전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그 너머로 대서양도 눈에 들어왔다.

 

신트라는 리스본에서 당일로 다녀오기 좋은 위치에 있다. 호시오 역에서 신트라 행 기차에 올랐다.

 

신트라 역사 건물 앞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무어 성으로 향했다.

 

 

 

페냐 궁전에 이르기 전에 무어 성이 먼저 나타나 매표소 앞에서 버스를 내렸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전시실이 하나 있었다. 무어 성의 모형을 비치해 놓았고 여기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무어 성은 성벽만 남은 요새라 성곽을 따라 걷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신트라란 지명을 아랍어로 적어 깃발을 만들어 놓았다.

 

성 밖으로 통하는 조그만 문이 하나 있는데, 이 문을 통해 적군이 들어왔다고 해서 배신의 문이라 불린다.

 

성벽에 오르면 신트라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하얀 굴뚝을 가진 건물이 신트라 궁전(Palacio Nacional de Sintra)이다.

 

  

그리 멀지 않은 언덕 위에 세워진 페냐 궁전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성곽을 한 바퀴 돌아 로얄 타워를 끝으로 아래로 내려왔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